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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로운 시작을 위한 결산 / 빌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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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을 위한 결산
빌립보1:3-6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립보 1:3-6)

시간이 흘러서 어느덧 금년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 볼 때에 우리에게는 기억하고 싶은 일들뿐만 아니라 기억하기에 너무나 부끄럽고 곤혹스러운 일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나온 일년은 이스라엘 백성의 40년간의 광야생활과 같이 험하고 고달픈 여정이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해 보다도 힘들고 어려운 한 해였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신앙의 눈으로 볼 때에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것들이 무의미한 일이나 우연으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게됩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주일을 지내며 지금을 어떻게 결산하느냐는 것은 새해 새로운 출발의 중요한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3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했으나 열매가 열리지 않아 얻을 수 없게 되자 그 나무를 찍어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과원지기가 "한 해만 더 참으소서. 다시 거름을 주어 열매가 맺도록 하겠습니다."고 간청했습니다. 다시 거름을 주어 열매를 맺도록 해보자는 요청은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마지막 결산 속에 나온 지혜이자 깨달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해의 마지막을 결산해 보느냐에 따라 새로운 새해의 출발을 바로 찾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가운데 지금까지 바울과 그들과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결산해볼 수 있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에서 마지막 주일 우리들이 찾아야 할 신앙의 결산의 모습을 찾고자 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떤 결산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감사의 결산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러므로 1장 3절에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를 위하여 늘 염려하고 기도하였던 바울은 자신이 기대한대로 빌립보 교인들의 아름답게 성장하는 신앙의 모습을 볼 때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금년 한해를 돌이켜 보며, 결산해야 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입니다. 한해 동안 우리들에게는 많은 시련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과 시련이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 되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독일의 신학자이며 설교가인 ''헬무트 틸리케''(H. Tillicke)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폐허가 된 함부르크 시내를 걷고 있을 때, 어느 중년 부인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제 밤 폭격으로 제 남편이 희생되었습니다. 남편의 시신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고 다만 남편의 모자만 발견되었습니다. 허지만 저는 지난주일 남편과 함께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고 했습니다. 지금 어려운 일들이 주어졌을지라도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 자체를 감사한 것입니다.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현실을 바르게 사는 신앙의 바른 태도입니다. 한 해를 돌이켜 보면서 감사할 수 있는 삶의 자세는 새로운 삶의 동력을 만드는 것이며 내일의 가능성을 찾게 합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마음을 가질 때, 그것은 우리에게 건강한 삶을 안겨주지만 마음에 근심과 걱정, 원망과 시비로 가득 차 있을 때, 뼈를 마르게 하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의 삶은 우리에게 새로운 치유의 능력과 우리의 삶을 새롭게 출발하게 하는 창조의 능력을 발휘하게 해줍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왕이면 이렇게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으로 인해 감사합니다. 설사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였고, 나와 다투고 싸웠을 지라도, 당신이 내게 실수했을 지라도 오히려 감사합니다. 그 모든 것은 나를 성숙하게 하는 은총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악수하며 화해하면 감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죤 자윗''이라는 사람은 감사하는 생활 속에 세 가지 기능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그 첫째는 예방제이고, 둘째는 해독제이며, 셋째는 방부제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감사함으로 결산하는 믿음의 태도를 가질 때, 새해에는 어떠한 독소와 같은 삶의 역사가 다가와도 예방되고 해독되며 방부제를 갖추는 삶이 될 것입니다.
저는 금년에도 많은 성탄 카드를 받았습니다. 그 카드 안에는 다양한 감사의 인사의 글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로 한해를 결산하며 새해를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것이라할 수 있습니다.

지나온 일 년간 하나님께서는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 삶 속에 참여해 주셨습니다. 참여라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삶을 주관하셨습니다. 때로는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시련 중에 삶을 포기하려고 까지 한 적도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지나면서 그 어려운 시련이 우리를 하나님의 참된 자녀를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작업이었음을 깨닫게 되기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시면서 위로와 격려의 말씀으로 붙들어 주시고, 때로는 책망과 감동의 말씀으로 깨달음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총의 빛 아래서 감사로 결산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새로운 시작의 한 해를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금년 한해의 모든 것을 감사로 결산하시기를 바랍니다.

확인과 함께 평가의 결산입니다.

우리는 금년 처음 출발의 신앙의 다짐을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복음 안에서 예수님과 어떤 교제의 삶을 살았는가 확인하고 평가해 보아야 합니다. 복음 안에서 어떻게 살았는가,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나와 같이 계시며 나의 삶을 지배하고 계시다고 할 수 있는가 확인해 보고 평가해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 대하여 감사와 함께 기도한 것은 그들이 바울의 선교사업을 위해 지원과 도움을 아끼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고 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와 바울의 관계가 복음 안에서 무엇인지를 확인해보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평가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저는 몇 년전 그 해마지 막 토요일새벽 중환자실에 찾아가 한 환자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분은 5년 전에 제가 목회하던 교회에 출석신 분이었습니다. 마지막 임종을 앞두고 목사를 찾은 것입니다. 저는 그분의 영생의 구원을 위하여 성서의 말씀을 읽어드리고 확신의 다짐과 함께 기도해 드렸습니다. 그분은 마지막 고통스러운 순간을 보내면서 ''주여-, 주여-,'' 하며 계속해서 주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저는 병실문을 나서면서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그렇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주님만이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복음과 함께 살며, 이 복음을 나누는 삶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성서 속에 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복음 안에서 교제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빛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바울을 만나주신 예수님은 바울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바울은 일생동안 이 기쁜 소식인 예수 그리스도이신 복음 안에서 교제하며 그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돌이켜 보며 확인하고 평가해 보아야 할 것은, 나는 복음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교제하며 살아왔는가 입니다. 나는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심각하고 신중하게 의논해 보았습니까? 그리고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그 예수님께 얼마나 순종하였습니까?

''죤 와니메이커''(John Wanamaker, 1833-1922)는 미국 제23대 대통령 ''벤자민 헤리슨'' 내각 정부의 요원으로서 체신부 장관을 역임하여 큰 공헌을 끼친 사람이었습니다. 이 와니메이커는 미국의 백화점을 초기에 본격적으로 운영했던 백화점 왕으로서 크게 성공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훌륭한 신앙의 본이 되는 삶과 헌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와니메이커씨, 당신은 큰 사업에 바쁠 뿐만 아니라 체신 장관의 업무를 수행하고 또, 다른 일들이 많을 터인데 어떻게 4000명의 주일학교 학생을 다루고 주일학교 교장직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와니메이커는 정색을 하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무슨 말씀을, 주일학교가 나의 본 사업입니다. 그 외의 다른 일들은 그저 일들일 뿐입니다. 나는 이미 45년 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는 말씀을 믿고 깨달았단 말입니다."

와니메이커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누는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는 그의 생애에 주어진 일들을 예수님과 함께 의논하며, 그분이 주시는 지혜 속에서 살았고, 또 그분이 요구하시는 주일학교 사업에 충성함으로 복음을 나누며 복음으로 교제하는 삶을 산 것입니다.
우리가 결산해야 할 일은 내가 복음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교제하며 살았는가 확인과 함께 평가하며 결산하면서 그리스도와 새로운 교제의 삶을 다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결심하는 결산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신앙의 삶은 죽음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이를 때에 끝이 날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신앙의 삶을 우리 가운데서 계속 이루어 가시기에 후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그 구원을 끝까지 완성시키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또다시 새로운 시작을 다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수가 있었어도 잊어야 합니다. 잘못이 있었어도 잊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루어 가는 믿음의 삶은 계속되는 새로운 시작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결심을 찾는 것이 마지막 주일을 보내면서 찾아야 할 우리의 결산의 모습입니다.

''실락원''을 쓴 ''죤 밀턴''은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는 52세에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를 불쌍히 여길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경이 된 것이 비참한 것이 아니라 소경을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이 비참한 것이다" 이것은 ''새로 시작해야 할'' 시작을 찾아야 함을 말한 것입니다.

연필 끝에 지우개가 달린 이유는 실수한 것을 지우고 다시 새롭게 쓰기 위함입니다. 금년 마지막주일인 오늘이 왜 있습니까? 새로운 시작을 위해 지울 것을 지우기 위해 있는 날이 되도록 하십시다. 지나온 시간의 실수와 부끄러움을 지워버리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3:13-14)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중동 산 ''카펫트''는 유명합니다. 저는 호주에서 목회할 때, 많은 가정에서 중동 산 ''카펫트''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도 손으로 직접 짠것이 기계로 짠것보다 훨씬 비싼 고가품이었습니다. 기계로 짠것이 손으로 짠 것 보다 훨씬 고르고 곱고 깨끗한데도 손으로 짠것이 훨씬 비쌌습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이기에 정성이 담겨있어 질기고 아주 단단해서 실수한 흔적이 많더라도 기계로 짠 것 보다 훨씬 가치 있었습니다.

가치 있는 인생의 삶이라는 것은 획일적이고 일률적인 기계적인 삶이 아닙니다. 부끄러움과 흠과 실패의 사건을 엮어서 튼튼하고 값비싼 삶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아픔의 자국, 고통의 자국이 있을 지라도 그 인생의 카펫트는 더욱 든든하고 질기며 깊은 멋이 담기게 되어 갈수록 아름다워집니다. 이렇게 카펫트를 짜듯,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계속해서 새롭게 시작하며 만들어 가는 것이 아름답고 위대한 신앙의 삶인 것입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인간의 훌륭한 점은 우리가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다" 고 했습니다. 마이너스의 삶을 플러스의 삶으로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은총의 삶입니다. 야곱은 계속 실수했어도 다시 시작함으로 축복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으로 새롭게 시작함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한 유태인이 묘지에서 큰 소리로 울고 있었습니다. "아아, 살기가 괴롭다" 그는 탄식하며 말을 이었습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일찍 죽었단 말입니까?" 그러자 다른 묘를 참배하러온 사람이 안타까워하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죽어 이곳에 묻힌 사람과 당신은 어떤 관계이기에 이토록 슬퍼하는 것입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 아내 전 남편입니다"
이 사람의 슬픔은 아내와 함께 살아가면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로 삶의 의미를 송두리째 빼앗아 가는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이시간 바울의 확신의 기도를 듣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의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 우리는 우리 속에 선한 일 구원을 행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구원의 삶을 완성시키실 줄을 확신하기에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덧 금년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결산해 보겠습니까? "아-, 금년도 덧없이 지나간다" 면서 세월이 유수와 같으니 마음껏 흥청망청 살아보겠습니까?

금년의 마지막이 다가왔다는 것은 인생의 끝을 향해 더욱 한 걸음 다가갔다는 것입니다. 끝과의 거리가 짧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짧은 거리를 굵고 가치 있고 귀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시작이 되도록 지나온 시간을 감사로 결산하고, 복음 안에서의 복음과 함께 하는 삶을 바로 세우고 새로운 다짐을 가지심으로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 가시는 축복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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