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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께서 문제에 개입하시니 (눅 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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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문제에 개입하시니 (누가복음 7: 11-17) 

오늘 이 시간에는 누가복음7장 11절에서 17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예수께서 문제에 개입하시니"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본문 14절에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나인 성에 과부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과부에게는 외아들이 있었는데 죽었습니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성문 밖으로 나오다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께서 관에 손을 대시고 살려주셨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서 죽은 사람을 살리신 일은 첫째로 야이로의 열두 살난 딸입니다. 야이로가 예수님께 와서 병들어 죽게 되었으니 고쳐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가는 길인데 사람들이 딸이 죽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집에 갔더니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고 하시면서 깨우러 들어가겠다고 하셨을 때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비웃는 사람들을 다 내쫓고 부모를 데리고 들어 가셨는데 그들은 믿는 대로 받았습니다. 비웃는 사람들은 받을 것이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으면 믿는 만큼 받았고, 비웃으면 받지 못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셨고. 세 번째는 나사로를 살린 기록이 있습니다. 오늘은 나인 성 과부의 독자를 살린 일을 통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 해결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11-15절 상반절)

사건의 내용을 보면 첫째로 믿는 대로 받는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예수님께 많은 사람이 따를 때 빈들로 나가서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백성들은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집에 가는 것도 잊고 배고픈 것도 잊은 채 은혜를 받습니다. 무엇을 먹여서 보내야겠는데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이것은 혼자 먹어도 모자라는 양인데 5천 명이 믿고 앉았습니다. 혼자 먹어도 모자라 보이는 데도 5천 명이 먹을 수 있다고 앉았으니 믿음 하나는 끝내 주었습니다. 결국에는 5천 명이 먹고도 남았습니다. 이것은 믿는 대로 받는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50명씩 무리지어 앉으라고 하였습니다. 즉 질서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 제멋대로 하면 안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50명씩 질서를 지키듯이 교회 안에서도 질서를 지켜야 됩니다. 세 번째는 사람들에게 떡과 고기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각자 가져가라고 해도 되지만 제자들이 받아 나누어주었습니다. 먹고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가 되어서 봉사하고 수고한 제자들에게 한 광주리씩 나누어주었습니다. 봉사하고 축복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 사건이 있은 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바다 건너편으로 가라고 명하시자 제자들은 그곳으로 가는 도중에 풍랑을 만납니다.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예수님 말씀에 순종을 했는데도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이 닥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밤이 깊도록 산에서 기도하시다가 한밤중에 풍랑을 타고 오셨습니다. 풍랑과 환란을 만날 때 주님은 고난 중에 있는 제자에게 찾아오신다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보았습니다. 주님 나를 물위로 걸어오라고 하십시오. 그리고 걸어 가다가 산더미 같은 물결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산더미 같은 물결 뒤에서 역사 하시는데 베드로는 그 주님을 보지 않고 물결만 보다가 빠져 들어갔습니다. 우리에게 닥쳐오는 여러 가지 환란과 고통의 물결이 우리를 삼킬 듯이 닥쳐와도 그 속에 계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고 환란만 보면 우리의 믿음은 가라앉습니다. 구원을 호소하는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건져 주시고 배에 오르셨을 때 파도는 잠잠해지고 목적지까지 갔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많습니다. 성도 여러분 감당키 어려운 고난을 고난으로만 끝내지 마십시오 주님의 손에 붙잡히면 그리고 주님과 한 배를 타시면 문제는 깨끗이 해결됩니다.

11절에서 15절 상반절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 쌔 제자와 허다한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 ."

예수님이 앞장서시고 제자들은 뒤따르고 또 많은 사람이 함께 따라옵니다. 예수님이 앞장섰으니 생명의 대열입니다. 나인 성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성문 밖으로 나가는 한 무리가 있고 그 앞에는 관이 지나가고 있으니 이것은 죽음의 행렬입니다. 생명의 대열과 죽음의 대열이 부딪히니 생명의 대열이 승리하였습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불교는 죽음의 종교이기에 이들과 부딪히면 불교가 꼼짝을 못합니다. 그래서 불교 믿는 집안에 예수 믿는 사람이 새로 들어가면 그들은 겁을 내고 결국 복음화됩니다 예수님께서 과부를 보시니 얼마나 슬프게 우는 지 모릅니다. 제일 불쌍한 사람이 젊어서 남편 잃은 과부입니다. 어린 아들을 남겨 두고 갔으니 아들을 키우며 수고를 아끼지 않고 살아갑니다. 청년이 되었으니 수고한 보람을 느낄 수는 있지만 외로움만은 어쩔 수 없습니다. 남편에게 할 말이 있고 아들에게 할 말이 따로 있습니다. 이처럼 과부는 외롭습니다. 그런데 청년이 되어서 장가를 보낼 때기 되었는데 죽었으니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이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백 마디 천 마디 위로한들 위로기 안 됩니다. 복음성가에 나오는 가사가 생각납니다. "많은 사람 찾아와서 나의 친구가 되어도 병든 몸과 상한 마음 위로 받지 못했다오 예수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의지할 곳 없는 이 몸 위로 받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가까이 가셔서 관에 손을 대고 청년아 일어나라고 하시니 죽은 사람이 일어나 앉고 말을 하였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천 명, 만 명이 별소리를 다 해도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로 위로 받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과부로서는 무슨 일을 해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죽은 아들을 어떻게 살아서 다시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억장이 무너지고 앞이 캄캄한 일을 당할 때 그때가 예수님이 가장 가까이 오시는 때인 줄 아시고 예수님께 내 문제를 맡기면 문제에 개입해주시고. 그러면 좋은 해결이 있을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즉 예수께서 우리의 문제에 개입하시니 해결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II.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15절 하반절)

본문 15절 하반절에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 대"라고 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네 아들은 죽은 것으로 여겨라 내가 데리고 가서 쓰겠다. "고 말입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고맙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에게 돌려 주셨습니다. 묘지로 장례 지내러 가다가 집으로 되돌아가게 되었으니 완전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장례를 위해 마련한 음식으로 잔치를 하였으니 초상이 변하여 잔치 집이 된 것입니다. 지옥은 전혀 희망이 없고 절망만 있습니다. 이 과부를 보십시오. 절망과 한숨, 좌절, 뿐이었습니다. 바로 지옥이 있다면 그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다시 살아났으니 희망이요, 기쁨이요. 찬송이요 바로 그 집이 천국입니다. 감옥 같은 집이 변해서 천국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황해도 안악에서 태어난 우리가 잘 아는 김익두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외아들로 태어났는데 13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잘 살지도 못하는 집안이어서 공부를 한 수가 없었습니다 어른들을 따라다니며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로 장사를 하다 보니 돈을 벌고 재미가 납니다. 힘들 때 한잔씩 술을 먹다 보니 장사를 하는 것 보다 술 먹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그러니 돈을 벌 수가 없습니다. 돈을 안 벌어도 술을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사람을 때리면 됩니다. 태권도를 배운 것도 아닌데 한 대 때리기만 하면 턱이 돌아갈 정도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깡패가 되었습니다. 시장에 길을 가로막고 버티어서면 돈을 내야만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과부로 외아들 하나에 희망을 가지고 키웠는데 하는 것이 저렇게 망나니짓을 하니 기가 막힙니다. 눈물로 타일렀지만 듣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안악읍에 작은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에는 박태환 집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 살면서 못되게 구는 것을 보았기에 김익두에게 열심히 전도하였습니다. 술을 사주면 가겠다고 해서 술을 사주고 기분이 좋을 때 교회에 데리고 갔습니다. 지금 우리가 전도 할 때에도 술을 끊고 교회에 가자고 하면 죽을 때까지 못나옵니다. 교회 나와 믿음이 들어가면 끊어집니다. 그때 황해도 지방에서 선교하던 유명한 한위렴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마침 『새 생명과 새 생활』이란 제목의 설교를 하였는데 그 말씀에 녹아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는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부홍회를 열심히 참석하다가 은혜 받고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평양신학교를 3회로 졸업하였습니다. 그 후에 목사가 되어 전국을 다니면서 부흥회를 하였고, 병자를 위해서 기도하면 굉장한 신유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을 지내셨고. 남대문교회 목사로 있다가 나중에는 자기가 세운 황해도 신천에 있는 본 교회로 돌아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처럼 예수가 들어가면 깡패가 목사가 되고. 망나니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속담처럼 그 집안에 큰 인물이 난 것입니다.

여러분의 남편이 변화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들딸들이 개천에서 인물 났다는 소리를 듣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남편의 문제, 아들의 문제, 딸의 문제에 예수님이 개입하시면 여러분 가정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예수님만이 나인 성 과부의 가정을 변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III. 영광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16-17절)

우리에게는 목적이 많습니다. 공부하는 목적, 결혼의 목적, 애기 낳는 목적, 사업하는 목적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 제일가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요17: 4).그런데 내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도 좋지만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영광을 돌리게 하면 그것은 더 좋은 일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신앙고백입니다. 16절에서 17절을 보면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더라.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나인 성에 같이 사는 사람들이 과부에게 와서 많은 위로를 해 주고 같이 울어 주어도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나인성 과부의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 본 사람들입니다. 이 과부가 처녀 때 시집가는 것도 보았고 남편 죽었을 때 장례도 치러준 사람들입니다. 아들이 죽는 모습도 보았고 장례를 치르려다 예수님에 의해서 살아나고 놀라운 역사와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만난 하나님은 너무 좋으신 분이시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그들의 말이 우리 중에 큰 선지자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메시야가 났다는 말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 고백을 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다는 말입니다. 주정뱅이 내 남편이 변화되어 예수가 그리스도라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즉 예수 믿는 믿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는 신앙 간증입니다. 나인 성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힘을 합쳐 도와주어도 안되던 문제를 하나님께서 돌아보아 주시니 과부의 가정이 회복되는 것을 친히 목격했고 그것을 간증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구속하신 백성을 이렇게 반드시 챙겨주십니다. 자기의 백성을 챙겨 주지 못하시는 분이라면 우리가 믿을 이유도 없고 영광돌릴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불행을 제거하시며 필요로 하는 도우심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십니다. 나인 성 과부를 돌보신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애굽으로 팔려 가는 자기 백성 요셉을 돌보셨고 믿음 때문에 사자 굴속에 던져지는 다니엘을 돌보셨습니다.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셋째로 예수에 대한 소문을 내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나인 성 과부의 가정을 통해서 온 유다와 사방에 예수의 소문이 널리 퍼졌습니다. 예수께서 한 번은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퍼졌습니다(막 2: 1).우리 성도의 가정에 예수께서 계신다는 소문이 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예수 믿는 사람도 얼마든지 괴로운 문제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나인 성 과부의 외아들의 죽음은 실로 감당키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 문제에 개입하시니 해결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나인 성 과부의 외아들이 살아난 것은 온전히 예수님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초상집이 변하여 잔치 집이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문제에 항상 개입하시므로 승리하는 인생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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