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복을 빌라! / 민 6:22-27

  • 잡초 잡초
  • 524
  • 0

첨부 1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복을 빌라!
민 6:22-27
2004. 1. 4. 주일예배


최근 글을 보다가 어떤 시인의 참 재미있는 인생론을 읽었습니다. 인생 100년을 따라 추적하며, 각 나이별 특징을 재치 있게 설명해 놓은 글인데요, 이 글의 첫 출발부터 상큼하더군요,“한 100년쯤은 살아봐야 인생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겠지요...”해서 그 내용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적어 왔거든요, 잘 들어 보시고, 지금 나는 몇 살쯤 살고 있는지를 한번 가늠해 보시기 바랍니다.

<1세는 누구나 비슷하게 생긴 나이, 12세는 돈의 위력을 알만한 나이, 19세는 어떤 영화도 볼 수 있는 나이, 24세는 후배에게 사회정의를 떠넘기는 나이, 29세는 아무리 변장을 잘해도 진짜 물 좋은 곳에는 못 가는 나이, 39세는 책과 매우 멀어지는 나이, 48세는 통계학적으로 돈을 제일 많이 버는 나이, 50세는 다큐멘터리 채널을 즐겨 보는 나이, 56세는 아파트가 싫어지는 나이, 59세는 성골과 진골이 아니면 뭐든지 힘들다고 생각하는 나이, 62세는 3-40대 여자가 무서워 보이는 나이, 66세는 학원간 손녀를 기다리는 나이, 73세는 누가 옆에 있어도 방귀를 뀔 수 있는 나이, 86세는 무슨 짓을 해도 그러려니 하는 나이, 99세는 가끔 하나님과도 싸울 수 있는 나이, 자, 드디어 100세, 100세는? 인생의 과제를 다 하고 그냥 노는 나이...>

참 재미있지요? 그렇다면 나는 지금 몇 살쯤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다큐멘터리 채널을 참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아파트가 아직 싫지는 않고요, 그러고 보면 저는 50세와 56세 사이를 살고 있는 거군요. 그런데요 한편으로 아직 후배에게 사회정의의 문제를 떠넘길 마음은 없고요, 그 점에서는 제 나이 24세 이하이네요, 그러나 매일 새벽마다 하나님과 씨름하며 겨루며 사니까, 그 점에서는 제 나이 99세이군요. 얼른 답이 떨어지지 않는군요.

그런데요, 이 글에서 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100세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100세란, 인생 과제 다 하고 그냥 노는 나이라 했거든요. 저는 이 설명을 조금 바꾸고 싶습니다. 100세는 하늘 소명 다 이루고, 주와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는 나이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동광 가족 여러분, 주 안에서 100수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동광의 1세대 어르신 여러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힘을 내셔서, 최소한 100수를 누리시다가 마침내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 교회에서 만나는 어르신들께 꼭 새해 인사드리시기 바랍니다. "주 안에서 만수무강하시기 바랍니다." 일단 옆의 분과 인사하며 연습하실까요?>

우리에게는 정초에 덕담을 건네면서 하늘의 복을 비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습니다. 특히 가내 어르신들이 자녀들에게 덕담을 주시면서 한 해를 축복해 주시곤 했는데요, 해서 2004년 신년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복을 빌라”는 제목의 말씀을 받으려고 합니다. 오늘도 큰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녀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는 하루에 한번 자녀를 축복해 주는 일이다!" 다시요, 잘 기억하세요. "자녀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는 하루에 한번 자녀를 위하여 복을 빌어 주는 일이다!" 정말 그렇습니다. 자녀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는 하루에 한번 내 아들과 딸의 손을 잡고, 나의 입술을 열어 하늘의 복을 빌어 주는 일입니다. 바로 이 점이 믿는 부모와 믿지 않는 부모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부모님께 여쭙겠습니다. 부모가 된 이후 지금까지 나는, 최소한 하루에 한번 내 아들과 딸을 위하여 하늘의 복을 빌어주었습니까? 정녕 나는 진심으로, 또 구체적으로, 내 자녀를 날마다 축복하고 있습니까? 질문을 조금 바꾸어 볼까요? 부모인 내가 자녀에게 하는 말 가운데 복을 비는 말이 더 많습니까? 아니면 야단치고, 들들 볶고, 혼내고, 짜증내고, 혹은 저주하는 말들이 더 많습니까?

존경하는 부모님 여러분, 부디 오늘부터는 아무리 피곤해도 내 아들, 내 딸의 손을 잡고, 하루에 한번 이상, 입술을 열어, 축복의 말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루에 한번씩 자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하루에 한번씩 자녀를 위하여 하늘의 복을 빌어 주시기 바랍니다. 마음속으로만 하지 마시고, 꼭 입 밖에 내어, 입술로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의 인생이 잘 되고 잘 될 줄로 믿습니다.

<주 안에서 자식 농사 잘 되시기 바랍니다.>

자, 그러면 하루에 한번씩 축복할 때 어떻게 하라는 말씀인가? 어떻게 어떤 내용으로 복을 빌어 주라는 말씀인가? 이 질문의 답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소중한 말씀, 잘 들으시고, 그대로 따라 실천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특별한 명령을 주시는 장면인데요, 명령인 즉 아론과 그 아들들, 곧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을 불러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전하라 하신 말씀의 내용인즉,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하여 축복할 때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부모가 자녀를 위해 복을 빌 때 이렇게 하라는 소중한 말씀인데요, 이제 그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복 주시고 지켜 주시기를 원하노라!”/ 6:24 

6:24 / (읽기) / 거기 보니, 누가 복을 주신다고요?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에게 주신다고요? 너, 곧 내 자녀에게! 그렇습니다. 나와 내 자녀에게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부모인 내가 주는 것 아닙니다. 아니, 내가 주고 싶어도 내가 줄 수 있는 복이란 것이 별 것이 없습니다. 부모가 주는 복만 가지고 한 평생 살라하면 우리 자녀들 한 세상 살기 어려울 것입니다. 해서 하늘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빌어 주라 하신 것입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복이 임하도록 빌어 주는 일, 그것이 우리 부모의 몫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에 한번씩 자녀들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아빠는 말이야, 하나님이 내 딸에게 큰 복을 주셨으면 참 좋겠다. 엄마는 말이야, 사랑하는 내 아들이 하늘의 큰 복을 받았으면 정말 좋겠다. 그럼, 우리 아들, 우리 딸, 하나님이 복 주실 거야, 복 주시고 말구, 그럼, 내 복둥이!”

그런데 살다 보면 이게 그리 쉽지 않습니다. 내가 내 배 아파 낳은 내 새낀데, 그런데 그 녀석들을 보는 부모에 마음에 어쩜 그리 화가 나는지요, “에이그 이 화상아, 애물단지야, 도대체 넌 누굴 닮아 그러니, 너 어쩌려고 그러고 사니, 내가 너 때문에 제명에 못 죽어.. 이 애물단지야!” 지금 씩, 웃으시는 분들, 전과가 있으신 분들인데요, 아니요, 그렇게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24절 말씀을 보니, 우리 자녀들을 위해 빌어 주어야 하는 복 중에 가장 중요한 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다시 보실까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켜 주시기를 원하노라, 아멘! 정말 그렇습니다. 하늘의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복을 잘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생명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생명을 잘 보전하는 일이 더욱 중요합니다. 은혜 받는 일도 중요하지만, 받은 은혜를 잘 간직하는 일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의 복을 받아 그 복을 잘 지켜가는 일, 참 중요합니다.

여기서 지킨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울타리를 쳐서 보호해 준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내 자녀 지켜주시기를 원한다는 말은 사탄과 마귀가 내 자녀를 넘보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내 자녀의 삶에 튼튼하고 안전한 울타리를 쳐 주시고, 철저하게 보호하여 주시기를 원한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적절한 기도이며 적절한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녀들이 너무나 많은 유혹과 위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해서 자식이 일단 집을 나가면 부모는 걱정에 땅이 꺼집니다. 그러다가 내 아이 무사하게 집으로 돌아와야 안심을 하게 되죠, 그렇다고 부모가 날마다 일일이 자녀들 쫓아다니며 보디가드 노릇을 할 수도 없고,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을 축복하되,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복을 빌라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님 여러분! 꼭 그렇게 기도해 주시고 복을 빌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부모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수호천사를 보내셔서 우리 자녀들이 오가는 모든 길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인사한번 하실까요?

<주 안에서 자식 농사 잘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6:25

6:25 / (읽기) /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해 빌어야 할 두 번째 복의 내용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한 마디로 은혜를 주십사고 빌고 또 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25절 말씀의 표현 자체가 참으로 은혜가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한노라. 무슨 뜻입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살아갈 수 있는 자녀가 되기를, 하여 늘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녀가 되기를 위해 빌라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선지자 모세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만 해도, 누구 한 사람 시내 산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했습니다.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할 때, 그 때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도 죽지 않았다 해서 그 곳 이름을 브니엘, 곧 하나님의 얼굴이라 지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대면할 수 있음은 그 자체로 은혜 중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해서 이 귀하고 복된 은혜를 자녀들에게 빌어 주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도 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야곱처럼 새 이름과 새 복을 얻어 새 인생을 살아가는 복된 자녀 되도록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부모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선 내가 먼저 하나님을 뵙고도 죽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환도 뼈가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주님께 매달려 한 판 영적 씨름을 해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씨름에서 이기셔야 합니다. 나와 내 아들딸을 위하여 복을 주지 아니하시면, 죽어도 이 손을 놓을 수 없다고 매달려 간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얼굴을 돌려 버리신 인생이 가장 불쌍한 인생입니다. 우리 하나님, 꼴도 보기 싫어 아예 얼굴을 돌려 버리신 가정, 저주받은 가정입니다. 하나님이 외면하시면 은혜가 내리지 않습니다. 은혜가 떨어지니 모든 일이 각박해지고 여기저기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도대체 인생의 수레바퀴가 잘 굴러가질 못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려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해서 은혜가 떠나고 하늘의 영광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부모님 여러분, 하루에 한번씩, 꼭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부디 얼굴을 내 자녀에게서 돌리지 마시고, 오직 하늘의 은혜로만 충만케 하옵소서.”기도할 때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해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 동광의 자녀들, 모두가 잘 되고 잘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자, 입술로 덕담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했습니다. 옆의 분에게 복을 빌어 주실 때에 저를 따라, 힘 있고 똑똑하게 복을 빌어 주십니다. 주 안에서 은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넘치는 은혜로 자식 농사 잘 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 6:26

6:26 / (읽기) /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빌어 주어야 하는 마지막 복인데요, 여기 26절에도 하나님의 얼굴이란 표현이 나오는군요. 그런데 이번엔 얼굴을 너에게로 향하여 드사 라고 표현하네요. 얼굴을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너를 향하여 얼굴을 든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지요. 이는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할 때 취하던 행동인데요, 이와는 반대로 너를 향하여 고개를 숙인다, 혹은 너 앞에서 얼굴을 떨군다는 표현은 너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해서 하나님께서 얼굴을 내 자녀에게로 향하여 들어 주시기를 비는 것은 내 자녀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리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26절에 참으로 중요한 단어가 하나 나옵니다. 평강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 특청을 드리되, 다른 것이 아니라 평강을 주십사고 부탁드리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각별한 관심과 사랑의 내용이 평강이라는 것입니다. 해서 우리 부모가 자녀들을 축복할 때, 하늘의 평강을 빌어 주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평강을 마지막으로 빌라 하신 것일까요? 한 마디로 24절에서 빌어주었던 하늘의 복과 25절에서 빌어주었던 하늘의 은혜, 이 복과 은혜가 완성되기 위해선 26절의 평강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인생을 복 받은 인생, 행복한 인생으로 완성해 주는 것이 바로 평강입니다. 평강이 없이는 복이 복일 수 없으며, 평강이 없이는 은혜가 은혜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평강이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평강이 빠진 그 무엇도 복과 은혜가 되기 어렵습니다. 건강도, 미모도, 재능도, 재산도, 권력도, 명예도, 아니, 세상의 그 무엇도 평강이 없으면 오히려 화근이 되기 쉽습니다. 그렇습니다. 평강을 그 중심에 세우는 것이 바로 우리 자녀들의 인생이 행복할 수 있는 첩경인 것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평강이 빠진 복은, 복이 아니요, 평강이 빠진 은혜는, 은혜가 아닙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 이 소중한 복과 은혜와 평강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우리 부모가 아무리 원해도, 우리 부모가 아무리 잘 난 것 같아도, 우리 부모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진 것 같아도, 우리 부모들이 내 손으로 빚어 줄 수 있는 복과 은혜와 평강이란 것이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것들입니다. 해서 24절, 25절, 26절 모두, 구구절절이 여호와 하나님께 복을 빌고, 은혜를 빌고 평강을 빌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내 자녀를 위하여 하나님께 복을 빌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부모는 자녀를 위한 축복의 통로입니다. 중요한 단어입니다. 나는 내 자녀를 위한 축복의 통로이어야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간단합니다. 내 아들과 내 딸에게 하늘의 복이 임하도록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부모라고 하는 축복의 통로가 막히면 그 자녀들 인생이 참으로 불쌍해집니다. 부모를 통해서 하늘의 복과 은혜와 평강을 받아야 할 터인데, 그 통로가 꽉 막혔으니, 그 모든 복과 은혜와 평강을 자기 손으로 빚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수성가하는 분들의 인생이 참으로 힘겨운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문제는 모두가 다 자수성가에 성공하지 못한다는데 있지요. 해서 부모라는 축복의 통로가 막힌 자녀가 가장 안 되고 불쌍한 자녀인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마당을 닫으려고 합니다. 존경하는 부모님 여러분, 2004년을 맞이하는 신년 주일, 이 부족한 종, 주님의 이름으로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새 해, 한 손으론 주님의 손을 잡으시고, 다른 한 손으론 내 자녀의 손을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을 향해서는 복을 주십사고 기도하시고, 자녀를 향해서는 복을 받으라고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부모에게 주신 하늘의 소명인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참으로 소중한 약속의 말씀 한 구절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 6:27 / (읽기) /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잘 간직하시며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분명히 약속해 주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내 이름으로 복을 빌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아멘. 이 말씀 붙들고 2004년 한 해 크게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인사하실까요?!

<말씀 안에서 자식 농사 잘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 안에서 모든 일 잘 되고 잘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