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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핑계없는 2003년도 나의 신앙 (아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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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없는 2003년도 나의 신앙 (아 1:1~7) 

2003도에 유명한 말들이 많이 있더군요.
제 1위가 : 대단해요. 2위가 향숙이. 3위가 그것은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파파 파이브 식스 세븐 에잇.
그리고 56도, 45정, 38선, 이태백 - "이십대 태반이 백수"
교회적으로는 새 식구도 많이 늘었습니다. 세계선교도 참 열심히 하였고, 악기 팀도 만들어 주셨고. 개인적으로는 2달간 많이 아팠는데도 다시 새 힘을 얻게 되었고 생각해 보면 참 감사한 일이 너무나도 많았던 2003년도입니다.
2003년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세월과 더불어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자취도 없이 그저 흘러 흘러가기만 한다면 사람으로 태어난 아무런 의미도 없을 거입니다. 올해도 며칠 안 남았지만 어떻게 살아왔나?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면서 사람으로 태어난 진정한 의미를 찾아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아가서는 솔로몬 왕이 지은 노래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노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아가서는 시적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에 꼭 문자 그대로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아가서에는 남녀의 사랑이 매우 노골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옛날 유대인들은 반드시 성인이 되어서만 아가서를 읽도록 하였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아가서에서 나오는 대화를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간의 대화로 생각하고 읽으면 나를 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엄청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아가서입니다. 아가서는 매우 짧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아가서를 읽으면서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발견하시고, 체험하시고, 가슴 깊숙이 아로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나누어주시면 그 중에 제일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포도원을 지키라는 책임 맡은 소녀의 변명이 적혀 있습니다. 포도원을 지키라는 사명을 맡은 이 처녀를 보세요!
"아! 내가 무엇이 모자라서 저 따위 무덥고 해가 쨍쨍 내리 쫴는 들에서 포도원 지기를 해야 한단 말인가! 왜! 내가 포도원지기 밖에 안된단 말인가? " 이 처녀는 자신이 포도원 지기가 된 것이 불만과 불평이 가득하였습니다.
6절을 보세요!
"내가 일광을 죄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 지기를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은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하였습니다.
그녀가 일은 강제로 맡긴 것이기에 그의 마음에는 기쁨도 없고 보람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해가 쨍쨍 내리쫴는 사명의 시간과 자리가 얼마나 얼마나 원망하며, 따분하고, 지겨웠겠습니까?
여러분은 2003년을 어떻게 사셨습니까?
지겨우셨습니까?
따분하셨나요?
그저 하품과 권태 속에서 의미도 모르고 그냥 눈치만 보면서 부끄럽게 살지는 않으셨습니까?
절대로 그렇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인생 중에서 최고의 날은 "내가 해야할 사명을 깨닫는 날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심리학자 빅토로 후랑켙은 "오늘날 인간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절망은 삶의 가치를 상실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빅톨 후랑켙 부부가 독일 나치의 체포되어서 서로 다른 수용소에 감금이 되었습니다.
포로 수용소에서는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면서 하루에도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죽어 나갑니다.
야! 이렇게 사느니 아예! 죽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때 그 마음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 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네 인생의 가치를 찾아라"
짐승 취급을 받으면서 입으로 자꾸 되새겨 봅니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가치는 무엇일까?
내 인생의 가치는 무엇일까?
그러나 아무리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인생의 가치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단 한가지! 내가 아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사랑을 못해 주었는데 이제 이 포로 수용소에서 살아 남아서 아내에게 못 다한 사랑의 즐거움을 안겨 주어야지!
이런 삶의 가치를 정한 후부터는 그 엄청난 괴로움과 슬픔들을 이겨낼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전쟁이 끝이 났습니다.
포로 수용소의 문이 활짝 ― 열리자마자 아내를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아내는 그 악독한 수용소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이미 죽고 세상엔 없었습니다. 땅을 치며 통곡을 합니다.
내가 이 짐승 같은 생활을 무엇 때문에 견뎌냈는데
여보! 왜 먼저 갔어 왜
여보! 보고 싶어!
어떻게 하면 아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그는 남은 생애를 혼자 살았고 예수 믿던 아내를 천국에서라도 만나기 위해 교회에 나아가게 되었고, 신실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시 146:5에서는 "하나님으로 자기의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서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였습니다.
영국의 역사학자였던 아놀드 토인비는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서구 문명은 이미 절정에 이르러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의 걱정은 없습니다. 그러나 문명은 사람을 절망과 허무의 질병 속에 빠뜨리게 되었습니다. 집이 없을 때에는 집을 장만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결사적으로 살았는데 이제 그러한 요소들이 갖추어 지니 사람은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초기 기독교의 성령의 불세례가 없으면 성령의 부흥이 휘몰아쳐 오지 않으면 서구의 문명은 종말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줄 믿으시면 아멘하십시다.
창 1:27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였다" 하였습니다.
짐승처럼 잘먹고, 잘자고 잘 노는 것으로는 절대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저 잘먹고, 잘 자고, 잘 노는 것에 사로잡혀 있다면 남아 있는 건 파멸뿐입니다.
잠 3:6은 이렇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너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사람다운 사명을 신앙인의 사명을 발견하는 송년주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자기의 사명을 발견한 사람은 시간을 아껴써야 합니다. 돈을 보람있게 써야 합니다. 성실하게 일을 해야 합니다. 알차게 생활해야 합니다. 규모 있게 행동해야 합니다.
입에서 나오는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해야 합니다.
너무 쉽게, 생각 없이 분을 토하는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나 몰라라 하는 악독도 내 버려야 합니다.
인생을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됩니다.
가치 있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의사 한 분이 계셨습니다.
오래 전에 미국엘 가서 외과 전문의가 되고 대학교수도 되고 연구소의 소장도 되고 미국에서 훌륭한 의사가 되어 돈도 많이 벌고 한국인으로서 명성도 드높이신 분입니다.
이것, 저곳에 별장이 있고 여러대의 고급 승용차가 있어서 때에 맞추어서 벤츠, 롤스로이스, 스포츠카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점점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합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미국엘 왔나?
·내가 무엇 때문에 의사가 됐나?
·이 많은 돈을 모아서 무엇에 쓰겠단 말인가?
이러한 질문을 던질 때마다 그 많은 재산, 지위와 명성들이 그의 빈 마음을 채워 주지 못했습니다.
그때 전주 예수회 병원의 원장 이셨던 씰 박사님을 만나게 됩니다.
씰 박사님께서 이런 말을 합니다.
"나두요 미국 사람이지만 한국 사람들을 돌보는 사명이 있어서 한국에 가서 한국 병자를 돌봅니다. 전박사님! 우리 한국에 가서 같이 일하십시다. 한국에는 전박사님 같은 분이 너무나도 필요합니다." 미국사람이 한국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고는 미국 생활을 다 정리하고 한국에 와 보니 그 수입이 미국에서 보다 1/10밖엔 안되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돈이 채워 주지 못하던 감격과 기쁨이 그의 마음속을 가득 채워 주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돈만 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사람의 사는 것이 가산에 넉넉한데 있지 않다"하였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보람을 느껴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일을 맡겨 주셨다는 사명감을 다시 찾아내는 일입니다.
나를 이 곳에 보내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요셉을 보세요!
형들의 시기와 마음으로 애굽에 종으로 노예로 팔려 나갑니다.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꿈만 잘 해몽해 주면 살려 주겠다던 관원들이 배신을 합니다.
그런데도 감옥의 창살을 뒤흔들며 소리지르지 않았습니다.
난 잘못 없어 난 그런 짓 않겠다고. 오히려 창 50:20절을 보면 원수 같은 형들을 만난 자리입니다. 요셉은 총리가 되었고 형들은 쌀을 구걸하러 온 신세입니다. 그러나 형님!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멋있는 삶의 자세입니까?
어떠한 삶의 환경이나 조건 속에서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사명 때문에 이곳에 보내셨다는 사명감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포도원 지기는 불평에 사로 잡혔습니다.
내가 무엇이 모자라서 이 울산에 왔단 말인가?
이 정도 미모, 이 돈, 이 학력이면 뭐가 모자라서 여기에서 산단 말인가?
난 달라. 우린 달라. 뭐가 달라?

사도바울을 보세요!
아무런 죄도 없이 감옥소에 갇혔으면서도 "형제들아 내가 만난 일이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데 진보가 된 줄 아노라 내가 매임을 당한 것은 그리스도를 위함인 줄 안다. 오히려 감옥소에서 더 많은 전도를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감옥소에 있으면서도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격려의 편지를 썼는데 그것이 바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라는 옥중서신입니다.
그 어떤 곳에 있는지. 무슨 일을 하던지 그 곳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내가 할 일을 찾아낸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사람도 복된 사람입니다. 신앙인으로서의 최고의 사명은 예배입니다. 지난 1년간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사명으로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이 포도원 지기를 보세요!
일을 안한 게 아닙니다.
6절에 보면 얼굴도 거무스름하게 그을리도록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6절 하반절 "내가 나의 포도원을 지키지 못하였구나"
포도원에 있으면서도 불만과 불평뿐이니 어찌 포도원은 지킬 수 있었겠습니까?
통계에 의하면 85%는 보람없이 만족을 모르고 일한답니다. 고작 15%만이 만족스럽게 감사하며 일한다는 거예요.

2003년이 지나갑니다.
나에게 주어진 포도원을 살펴보십시다.
얼굴만 탔지 핑계와 불만 속에서 딴 것에 관심을 두진 않았습니까?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구하라 주실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 첫째는 이것이니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핑계하지 맙시다.
눅 13장의 과수원 지기처럼 주여! 내가 게을렀나이다. 주여 내가 교만하였나이다. 그러나 주여 이제 다시 두루두루 파며 거름을 주겠나이다. 부지런하게 아멘하겠나이다. 기도 쉬는 죄를 범치 않겠나이다. 내가 복음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으리이다. 주신 사명 이 손 가슴속에 각인하고 두 손을 내민 후 헌신하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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