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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들어가 얻을 땅 / 신 1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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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 얻을 땅
신명기 11:8-12

"네가 들어가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대기를 채소 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신명기11:10-12)


우리 신앙인들은 다른 삶의 영역으로 옮기어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이 영역변화를 요한복음 13장에서 ''멸망에서 영생으로''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옮기어진 영역의 변화를 다양한 표현으로 말했습니다. ''육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으로'', ''그리스도 밖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죄의 법에서 하나님의 법으로''(롬7:22-25), ''죽은 자에서 산 자로'',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의 변화로 말하였습니다.

구약성서에서는 삶의 영역변화를 ''애굽'' 에서 ''가나안'' 으로 표현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 과 ''네가 들어가 얻을 땅'' 이라는 말로 애굽에서 가나안으로의 영역변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의 삶의 영역은 ''애굽''이 아니라 ''가나안''입니다. 애굽에서 나와 건너야 하고, 들어가서 얻어야 하는 땅, ''가나안''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 기업의 지경이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시105:11)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인간 아담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따먹어 범죄 함으로 심판하셨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7-19)

애굽의 삶은 죄의 지배와 죄의 종으로의 삶임을 상징합니다. 그곳에는 인간의 수고와 땀흘리는 고통만이 있을 뿐입니다. 소망이 없는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만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이 애굽의 삶에서 구원하셔서 가나안의 구원의 삶으로 영역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하셔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생과 함께 약속의 땅 가나안의 삶을 주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애굽이 아닌 가나안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가나안의 삶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애굽의 삶으로 돌아가서는 아니 됩니다. 성서는 애굽의 삶으로 돌아가려는 끊임없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을 향하는 광야의 여정 중에 애굽을 그리워하고 애굽을 동경하며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롯의 아내는 애굽과 같은 소돔 고모라가 멸망할 때에 그곳을 탈출하는 길에 뒤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애굽과 가나안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 경고하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저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눅9:62)

2004년 새해를 맞이해서 우리들은 애굽의 영역이 아니라 가나안의 영역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결코 애굽으로 뒤돌아가거나 애굽을 동경해서는 아니 됩니다. 가나안 영역의 믿음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가나안의 영역이 보여주는 영적인 생활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가나안 영역의 구체적인 특성은 무엇입니까? 가나안의 어떤 곳입니까? 그것은 가나안 땅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럼 가나안 땅의 특성은 무엇입니까?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입니다.
성서본문은 "네가 들어가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신11:10)라고 했습니다.

애굽은 거의 비가 오지 않는 땅입니다. 따라서 정기적으로 범람하는 나일강의 물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합니다. 애굽사람들은 그 나일강의 물을 사용하기 위하여 관개시설을 만들어 놓고 수차를 발로 돌려서 농경지로 연결되는 수로에 물을 대어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은 평지인 애굽과는 달리 수많은 산과 골자기로 이루어져 자연적인 저수지와 수로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비를 내려 주심으로 물의 부족함이 없이 풍족한 농사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절히 내려 주셨습니다. 9-10월에 내리는 이른 비는 파종하기에 적당했고 3-4월에 내리는 늦은 비는 결실하기에 적당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사람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주시는 은총과 축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에 인간의 수고와 노력이 즐거운 것이 되고 보람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은혜 받는 생활을 잃어버리고 산다면 그것은 신앙인의 삶이 아닙니다. 매일 매일 은혜 받은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히브리 기자는 "우리가 긍휼 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4:16)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리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엘리야 시대 아합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하고 범죄함으로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못했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는 원인을 신명기 기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비,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신11:13-15)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 절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으로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의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신11:16-17)

가나안에 살면서 하나님과 함께 하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기를 거부할 때에 비가 내리자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며 하나님 외의 것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할 때에 비가 내리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애굽의 삶을 살아갈 때에 비는 내리지 않는 것입니다.

애굽백성은 인간의 방법에 의지하는데 반하여 하나님의 백성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의존해야 합니다. 이 비는 인간의 솜씨나 기술이 아니라 비를 주시는 분의 명령에 청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섬기는 의지에 달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해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가나안 땅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땅입니다.

본문은 가나안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권고하시는'' 의 원어 ''다라쉬''는 ''안부를 묻다'' 는 말과 함께 ''밟다''는 말로, ''추적하다'' ''조사하다'' ''찾다'' ''돌보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일이 찾아가면서 안부를 묻고 돌보아 주시는 세심한 보살핌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권고하심 속에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충고, 격려, 교훈의 깨달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보살핌과 인도하심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의 생각과 뜻을 살펴서 우리의 잘못된 생각과 뜻을 깨뜨리어 바로 고쳐 주시고, 우리가 잘못될 때에 강한 꾸짖음으로 바로 세워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실망할 때에 위로하여 주시고 격려하시며 새로운 용기와 소망으로 붙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시46:1-3)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오 나의 어릴 때부터 의지시라" (시71:5)고 고백하였습니다.

오래 전 이탈리아 나폴리의 한 공장에서 위대한 성악가를 꿈꾸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경제적 형편 중에 겨우 첫 레슨을 받았을 때에 레슨교사는 "너는 성악가로서 자질이 없어. 네 목소리는 덧문에서 나는 바람소리 같다" 고 혹평했습니다. 그 때 소년의 어머니는 실망하는 아들을 꼭 껴안으며 말했답니다. "아들아, 너는 할 수 있어 실망하지 말아라" 네가 성악공부를 할 수 있도록 엄마는 어떤 희생도 아끼지 않겠다" 소년은 어머니의 위로와 격려를 받으면서 열십히 노래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성악가인 ''아리코 카루소''입니다.
하나님의 충고와 격려, 하나님의 권면은 우리를 바로 세워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해에는 하나님의 충고와 격려 하나님의 위로와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신부님과 수녀님이 마차를 타고 교구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마차가 험한 비탈길을 내려가다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두 분의 몸이 덜컹거릴 때마다 두 분의 몸이 심하게 서로 부딪쳤습니다. 두 분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녀님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그러나 신부님은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오 주여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것은 인간의 연약한 특성을 엿보게 하는 풍자적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간이라는 것은 확고하고 분명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권고하심이 함께 하는데서만 바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결코 하나님의 권면과 돌보심이 떠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영국을 여행하던 한 사람이 해안지방을 지나던 중에 많은 갈매기들이 모래시장에 죽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죽은 갈매기를 치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갈매기가 왜 죽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그 물음에 일하던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곳에는 여행객들이 많이 옵니다. 여행하는 사람들은 갈매기가 많은 것을 보고 먹이를 던져줍니다. 갈매기들은 과자, 사탕, 등 여러 가지를 맛있게 받아먹게 됩니다. 실은 그런 음식은 갈매기들에게는 해로운 음식들이며, 좋은 음식은 자연 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갈매기들이 과자나 사탕을 받아 먹다보면 그들에게 좋은 자연 음식에 대한 식욕을 아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철이 지나고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어지면, 갈매기들은 자연음식을 먹는 것을 잃어버려 이처럼 굶어 죽는 답니다."

우리에게 좋은 하나님의 충고와 격려의 멀리하고 맛이 있다고 세상의 유혹의 속삭임을 따라가면 우리의 영혼은 죽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세상의 죄악의 유혹을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의 속삭임을 듣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고하심을 받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권고하심이 있기에 아름다운 가나안의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새 해에는 하나님의 권고하심 속에 살아가는 성도가 되십시오.

하나님의 눈이 항상 있는 땅입니다.

성서 본문은 가나안 땅을 향하여 "세 초부터 세 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세 초부터 세 말까지'' 란 한해의 ''첫날부터 끝 날까지''의 뜻으로 ''1년 내내'' 또는 ''항상''이란 의미입니다.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는 말씀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살핌과 관심을 보여주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지켜보아 주시고 보살피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눈이 항상 당신의 백성 위에 머물러 있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하나 다 살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하시도다. 저는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시33:13-15)고 찬송했습니다.
어떤 아이가 전봇대 옆을 지나가다가 보니 엿을 사먹기 좋은 구리 철사이며 연장들 여러 가지 물건들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서 그것들을 가져가려고 할 때, 전봇대 위에서 ''이놈'' 하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아이는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전공을 의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위에서 살펴보는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살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책망의 눈임과 동시에 사랑의 눈이시고 긍휼과 자비의 눈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을 관찰하심과 함께 우리의 아픔을 살피시며 우리의 고통을 심각히 보고 계십니다. 이것을 깨달은 시편기자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시121:1-8)라고 했습니다.

아기 어머니는 자기 자식을 유모에게나 탁아소에 맡겨서 대신 보게 하는 때도 있으나 하나님은 ''내가 보살피는 대신 네가 보살펴라'' 고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그의 자녀들을 보살피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항상 우리 위에 있습니다 신앙인의 삶은 이 하나님의 눈 아래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 눈 아래서 벗어나는 행동일 때, 죄악과 거짓의 신앙으로 변하고 원망 과 불평, 절망의 삶에 빠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길과 예수 그리스도의 눈길 아래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해에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눈에서 벗어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의 눈 아래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분의 눈에 합당한 자의 삶이 복된 삶입니다. 그 분의 눈길을 의식하며 살아가십시다.

제 사무실에는 예수님의 초상화가 걸려있습니다. 하인리히 호프만의 작품입니다. 그 예수님의 얼굴은 엠마오 도상에사 두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신 에수님의 얼굴을 확대하여 초상화로 편집한 그림입니다. 그 예수님의 얼굴은 제 책상을 향하여 보고있습니다. 그 그림의 예수님의 눈빛은 애정 어린 눈빛이되 책망과 함께 염려스러워 하시는 눈빛입니다. 그 예수님의 눈을 의식할 때마다 나는 목회자로 어떻게 하고 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갈 때에 우리는 영적 가나안의 삶을 바로 살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애굽 땅의 삶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유혹의 강과 광야를 건너가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의 삶이 우리들의 삶입니다.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땅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삶의 영역은 들어가 얻어야 할 가나안 땅과 같이 은혜 안에 사는 삶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권면 하심과 하나님의 눈 아래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제 새해에는 하나님의 약속 안에 들어간 가나안 땅의 삶을 사십시오.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풍성한 인생을 사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아름답고 복된 삶을 만들어 가시는 신앙의 승리자가 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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