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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 막 5:25 -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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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마가복음 5 : 25 - 34
 

예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려고 가실 때 큰 무리가 예수를 따라가며 에워싸 밀고 있었습니다. 이 때 한 병든 여인이 그 곳에 나타났습니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수치스러운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12년이라는 긴 세월을 혈루증이라는 흉측한 병으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인간으로서의 대접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행복의 조건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가 앓고 있는 혈루증이라는 병은 하혈이 계속되는 무서운 질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경은 이 여인의 처지를 실감있게 표현하기를 여러 의원들로부터 치료를 받는 중에 낫기는커녕 더 괴로움만 가중되었고 재산마저 허비한 비참한 형편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제 이 여인에게 남은 것이란 고독과 실의와 절망과 가난으로 더 이상 사는 것에 지쳐서 죽음만을 기다리는 육체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 여인에게 Big News가 들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방문을 하신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이제 마지막 남은 유일한 소망을 가지고 주님께 가까이 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을 괴롭히는 두 가지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외적 조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르며 둘러싸고 있기에 환자 된 몸으로 그곳으로 뚫고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께 나올 때 방해되는 외적인 여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족이나 친구나 때로는 먼저 믿는 사람들이 나로 하여금 주님께 나오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내적 조건으로 자신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많은 다른 환자들은 자기들의 병명를 말하며 그들의 환부를 보일 수가 있었습니다. 예컨대 눈먼 자는 "눈을 뜨게 해주세요", 문둥병자는 "내 몸을 깨끗하게 해 주세요" 라고 자기 사정을 주님 앞에 내어놓고 고쳐주기를 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지금 부끄러운 병에 걸려 있습니다. 특히 여인으로서 많은 사람 앞에 내 놓을 수 없는 숨겨진 병이기에 남다른 괴로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레위기 15장 25절에 의하면 이 여인과 같은 사람은 회당에 들어오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 여인에게서 바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지마는 내적으로 자기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습니다. 조용한 것 같고, 무사한 것 같고, 아쉬운 것이 없는 것 같이 살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숨겨진 악이 있고,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말 못 할 고민이 있습니다. 가슴에 담고 있는 상처가 있습니다, 삶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 여자의 형편은 나보다 나을 수 있습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을 수 있지만 병명도 나오지 않는 내적고민이나 패배감 그리고 실망이라는 병은 우리의 삶을 박제화 시키는 병 중의 병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누구에게 그 병을 말한다 해도 치료를 받기 보다는 더 큰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극적으로 예수님께 가까이 가는 유일한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것은 그 여인의 경건과 겸손과 지극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아니 이것은 죽고 사는 생의 마지막 기회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일생의 한번 있는 찬스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려는 그 결심은 실로 무서웠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예수님의 뒤로 가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내적 믿음이 행동화 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는데 느낌이 왔습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그 느낌, 수 없이 치료를 받기 위해서 병원을 찾을 때 느끼지 못했던 그 느낌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그 순간 병이 낫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게도 고통스러웠던 몸이 순간적으로 깨끗해지는 것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언제나 이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열려있고 기적은 상식으로 이해될 수 없는 믿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문제는 내게 믿음이 없어 이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고 고민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여인은 행동화 된 그의 믿음으로 인하여 소원을 이루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능력을 훔친 죄책감과 하나님의 은혜를 도둑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거기에다 자신에 대한 두려움도 생겼습니다.

이제 병이 나았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감사해야 되는가라는 자기 처신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바로 이 순간 예수께서 이 여인을 찾았습니다. 본문 30절에 보면 예수께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고 하시며 군중 속에서 여인을 찾습니다. 이때 제자들의 반응은 합리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와서 에워싸 밀릴 정도가 되니 옷깃이 스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저 지나가다가 스친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정을 가지고, 믿음으로 옷자락을 만진 그 여인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라고 하신 말씀은

Ⅰ. 이 여인이 들은 소문에 대한 정당성의 선언입니다.

본문 5장 27절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라고 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에 대한 기적을 이미 듣고 있었습니다. 복음은 들음에서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이 장님의 눈을 뜨게 했고, 문둥병도 고쳤으며, 죽은 자도 살렸다는 소문을 그대로 믿고 달려 온 것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께서 저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으니 내게도 은혜를 베푸실 것을 믿었고 저곳에서 기적이 있으면 여기에도 기적이 있을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전능성과 기적의 현재성을 믿는 믿음입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라고 하신 말씀은

Ⅱ. 이 여인의 신실한 믿음에 대 한 공개적 선언입니다.

본문 5장 28절에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고 했습니다.
그는 많은 의사들에게 괴로움을 받은 사람입니다. 더 이상 사람을 믿지 못하도록 상처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님께서만은 그렇지 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온 것입니다. 흔히 우리들은 세상일이 잘되고 형편이 좋으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믿고 그 반대로 누구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형편이 좋지 못하고 일들이 풀리지 않으면 하나님도 나를 버렸다고 불평이나 불만을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부터는 결단해야 합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버리고 배신해도 예수님은 나를 버리지 않고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소원의 기도를 드린 후에 하나님이 주신 기도의 응답이 무엇이었습니까? 창세기 28장 15절에 보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여러분과 영원히 함께 하심을 믿으십시오. 이 여인은 예수님만은 자신과 함께 할 것을 믿었습니다. 사람들이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확실히 믿어야 됩니다.
여기 『함일러라』( , 엘레겐)는 미완료시제로 그녀가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병이 낫겠다는 것을 심중 깊숙이에서 거침없이 연속적으로 믿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라고 하신 말씀은

Ⅲ. 예수 자신의 초능력에 대한 선언입니다.

본문 5장 29-30절에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12년 동안이나 그녀를 괴롭혔던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그녀의 병은 즉시로 치료되었습니다. 여기 혈루의 근원이라고 하므로 일시적이거나 재발의 위험이 있는 것도 아닌 완전치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지금 그녀는 치유에 대한 자각 증세를 느낄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녀는 수많은 군중 속에서 천신만고 끝에 그것도 예수의 뒤쪽으로 가서 손을 옷에 대었는데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믿음이 크게 공개되지 않는다고 해서 효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믿음이 진실하냐 그렇지 못하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속사정을 그의 전지성을 가지고 모두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녀가 군중 속에 있는 것도 뒤로 와서 옷자락을 만진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 『스스로 아시고』라는 말은 예수님이 가지신 초월지식 즉, 그의 전지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치료과정을 수동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예수 자신이 그녀에게 소문을 듣게 하고 그녀를 부르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녀의 치료 과정을 능동적으로 알고 계신 것입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고 하신 말씀도 예수님이 그녀가 손을 댄 줄을 전혀 모르시고 물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초능력을 모든 사람에게 공개하시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라고 하신 말씀은

Ⅳ. 믿음으로 구원 얻는 다는 진 리에 대한 선언입니다.

본문 5장 31절에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의 생각은 절대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 불만 섞인 항변을 한 것입니다. 무리가 에워싸고 밀리고 있는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고 하시는 말씀은 전혀 의미 없다는 제자들의 말입니다.
이 때 예수께서 이 일을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 여자가 자신에게 이루어 진 일을 알고 두려워 떨며 와서 예수 앞에 엎드려 자신에게 지금 순식간에 되어진 모든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의 옷에 아무라도 손을 대면 병이 낫는 것이 아닙니다. 나아만 장군이 일곱 번 담근 요단강물에 약효가 없듯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혈루병을 치료할 만한 무슨 약효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혈루병에서 구원을 얻은 여인과의 관계를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준 자와 받은 자만이 아는 영적 세계의 비밀입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라고 하므로 그녀는 주께로부터 받은 그 믿음이 그를 형통케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불안정한 삶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무능력으로 연속된 나날들을 지혜롭게 극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의 옷자락을 만지는 이 여인과 같이 깨끗하고 겸손한 마음과 간절한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야만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이 여인이 병이 낫는 느낌을 체험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삶도 형통해지는 자각증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예배를 드리면서 진실하게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겠다는 믿음으로 나와 보셨습니까? 매 주일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기적은 중단되지 않고 진행 중에 있습니다.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기만 해도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입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한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언제나 주 앞에 나올 때마다 이 여인이 느꼈던 그 터칭파워(touching power)를 여러분들도 체험하시길 소원합니다. 그리고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넘쳐흘러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이 소리를 듣는 축복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의 삶 가운데서 직접 경험하는 믿음입니다. 제 3자를 통해서 듣는 믿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느끼는 감동이 아닙니다. 타에 의한 간접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주님이 이 여인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직접적인 믿음'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신앙영역에 불필요하게 제 3자를 끼워 들이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형통하게 하실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행 4:12).
이 땅에 그 어떤 종교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그 어떤 종교도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멀리 떼어놓고 영적으로 고갈되게 하고 말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탕진하게 만들고 구원의 여망은 자꾸 멀어지게 됩니다. 새해가 왔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우리 주님 한분뿐이십니다. 우리와 우리 자손들을 형통케 하실 분은 우리 주님뿐이시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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