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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장막터를 넓히라 / 사 5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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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장막터를 넓히라
본문 : 이사야 54:2~3

  볼티모어의 “쏘니”라고 하는 일간지 신문이 있는데 어느 날 년 초에
아주 큰 기사로 독자들에게 설문지를 냈습니다.『누구든지 이 문제에 대해서 답변하고 싶은 사람은 신문사로 연락해 주시오.』그래서 그 기사를 보고 독자들이 수천 통의 답변을 보내오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설문지의 문제는 “만약 앞으로 당신이 금년 일년만 더 살고 죽는다면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이런 설문조사였습니다. 그래서 그 수많은 답변 중에서 가장 많이 답한 것은 네 가지로 집약해서 또 신문에 발표를 했습니다. “일년을 이웃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고 싶다.” 그게 첫 번째로 제일 많았던 것이고, 그 다음에는 “이 세상이 좀더 밝은 세상이 되는데 나의 조그만 힘을 바치고 싶다.” 그렇게 말했고, 그 다음에는 “내가 더 많은 미소를 이웃에게 주고 싶다.” 그 다음에 네 번째가 “영원의 세계를 위해서 준비하겠다.” 이렇게 네 가지가 나왔습니다. 그랬더니 신문사에서는 그 답변을 보고 또 큰 글을 냈습니다. “그러면 금년은 그렇게 사십시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마지막 기록은 똑같은 의미의 말씀으
로 끝이 납니다. 그것은 주님의 마지막 지상의 말씀이며 승천의 장면으로 복음서가 끝이 납니다. 따라서 그 마지막 말씀은 주님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되고 유언적 교훈이 됩니다. 가룟 유다를 제외한 열한명의 제자들에게 간절한 부탁을 하셨는데 그 유언적 말씀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예수님의 관심사는 그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이 지상에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수많은 제자들이 바로 주님의 그 지상 명령에 순종을 해서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몸을 던짐으로서 세계는 이렇게 복음의 확산이 이루어졌습니다. 비교 종교학에서 연구를 해보면 다른 종교들은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자신이 간직하고 살아가기만 하면 그 이상의 어떤 책임이나 의무를 묻지 않습니다. 자기만 알아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절대적 진리로 주어지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내가 받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어서 다른 사람도 내가 소유한 영생의 자리에 초대하여야 합니다.

  우리 예수를 믿는 믿음의 열정이 있는 사람은 날마다 그 삶의 과정에서 제일 큰 관심이 어느 때든 나타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관심은 비록 아주 처음 만나는 사람일지라도 ‘이 사람이 예수님의 신자인가? 아닌가?’하는 문제를 제일 관심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누구를 만나도 그것이 첫번째 관심이 됩니다. 우리가 공공장소에 가서 어떤 때 옆에 있는 사람을 볼 때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음식점 같은 데를 가서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가 있는데 옆에 앉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고 밥을 먹는 모습을 볼 때 어때요? 괜히 친근감이 생기고 반갑고 기쁜 마음에 ‘아, 주님을 믿는 형제로구나!’ 이런 생각이 들고 동료 의식을 갖게 됩니다. 내 영혼 가운데 항상 그것이 최대 관심사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는 전도하다가 망신당한 일이 수없이 많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
게 “혹시 예수님 믿으십니까?” 관심사가 항상 그것이니까 물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겸손하게 “예, 저도 교회 나갑니다.” “아, 저는 아직 신앙을
안 가진 사람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는데 어떤 사람은 아주 기분이 나빠서는 한심하다는 듯이 날 쳐다보고 “아니, 당신 뭐 할 일이 없어서 남의 종교 생활을 묻습니까? 당신이나 잘해” 아주 망신당한 적도 많습니다. 저는 택시를 탈 때면 운전기사에게 꼭 전도했거든요? “혹시 기사 어른, 신앙생활 하십니까? 예수 믿으십니까?” 어떤 사람은 재미나게 대우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곧바로 길옆에 서면서 “내려요! 아니, 택시를 타면 목적지까지 내가 데려다 줄 것이요 돈만 내면 그만이지 아니, 여기가 교회당이요? 나는 당신 같은 사람 질색이니까 빨리 내려요!” 그래서 내렸어요. 내리면서 “그래도 교회 나가세요.” 그리고는 얼른 문닫아 버렸어요. 지금까지 생각해보면 참 많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구원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가장 훌륭하고 효과적 제도
를 하나 만드셨어요. 그게 교회입니다. 이것보다도 더 좋은 제도가 있다면 주님은 그것을 만드셨을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가장 훌륭한 하나님 나라의 효과적 제도이기 때문에 사도들을 세우고 사도들에 의해서 교회가 세워지도록 예수께서 그렇게 축복하셨어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리고 그 제자들로 하여금 교회를 세워 사도적 역할을 해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이 땅에서 이루어 가도록 예수님 때부터 이 교회는 이렇게 예수님이 창립하셨단 말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이 교회 공동체는 안디옥을 거쳐서 소아시아 일대에 퍼져 나갔고 바울을 통해서 유럽 일대로 확산 된 것이 벌써 초대교회 시절에 되어진 일이란 말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하나였던 요한이 기록한 요한계시록만 해도 소아시아 일대에 일곱 교회가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교회가 훌륭하게 성장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 확장이 됩니다. 반대로, 교회가 쇠퇴한다는 것은 그만큼 구원의 숫자가 감소된다는 뜻이 있어서 우리는 이 땅에 주님께서 세우신,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땅에 교회를 훌륭하게 잘 성장시켜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 확장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의 창조적 발전을 위해서 우리가 있고, 지금 우리가 선교를 열심히 합니다. 교회마다 다 합니다. 선교를 받고 있는 교회도 또 선교합니다. 그 사명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저희 교회가 한 70군데 미자립 교회에다가 선교비를 보내잖아요? 한 달에 그 갈보리교회가 보내는 선교비를 받아서 생활하는 그 교회도 또 선교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선교라는 것은 먼저 세워진 교회가 다른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해서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 복음이 전해짐과 동시에 그곳에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그러는 의미에서 이 교회 공동체는 선교의 모체가 되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선교의 모체가 튼튼하고 훌륭해야만 선교가 가능할 수 있도록 그렇게 되어져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세계 선교에 두번째로 큰 몫을 담당하고 있는 나라인데, 한국 교회 지원하에 선교지에 나간 선교사들이 제일 힘들었던 때가 IMF때입니다. 모체가 빈약해져 버리니까 선교비를 보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대량 귀국을 해 버렸고, 선교지의 선교 예산이 부족해졌습니다. 그때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들이 참으로 고맙게 힘을 많이 써준 것을 기억합니다.

  금년에 2004년 우리 갈보리교회는 ‘이 선교의 모체를 좀 튼튼하게 되겠다. 여기에 역점을 두고자 이와 같은 제목을 내걸고, 그 이후는 이 모체를 튼튼히 함으로 더 좋은 선교를 하기 위해서, 더 많은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서 그렇게 이 일년을 정해봅니다. 간혹 사회가 이 교회를 향해서 따가운 비판의 소리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소리들도 우리가 겸손히 잘 받아들여야 된다고 보는데, 그 비판의 소리는 다른 것이 아니라 “교회가 사회는 외면하고 예배당만 짓느냐?” 이런 소리를 많이 합니다. 그래요. 정말 어떤 교회가 사회 일은 하나도 관심하지 아니하고 예배당만 지으면 그교회는 잘못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는 없습니다. 예배당만 짓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예배당을 짓는 것은 그 사회와 선교를 더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의 충족을 위해서 하는 것뿐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잖아요? 이 사회에서는 교회를 참 모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일년 내내 이 갈보리교회도 이 사회에 관심을 갖고 우리 이웃의 아픈 사람을 돌보고 선교지에 선교비를 보내고 가장 긍지로 하는 일이 그런 일입니다. 그런데 교회라는 그 프로그램을 교인들도 모르는데 사회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알지도 못하고 그냥 비판하는 겁니다. 이 사회에 어느 기업이나 어느 공동체에서 교회들만큼 사회를 위해서 관심하는 데가 있습니까? 아무리 작은 교회라도 사회와 선교는 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예배당을 건축하고 그 부대시설을 확장하고 자체 필요 충족
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더 많은 사회를 향한 관심과 선교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 신앙생활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영적 구심점입니다.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교회를 다니지 말고 혼자 노력으로 신앙을 지켜보십시오. 누구도, 목사들도 신앙생활이 안 됩니다. 할 수가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를 세우시고 교회 공동체를 만드시고 영적 구심점을 만드셨는가?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신앙생활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제가 목회하던 교회도 열심히 자체 성장 즉, 교회 건축을 위해서 노력을 했고, 선교지에도 20개 교회 이상, 수십 개 교회 건축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비판을 해도 그냥 밀고 나갑니다. 절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됩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비판하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함부로 하다가 매우 불행한 사태가 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구심점으로서의 구원 역사는 구약 시대 때부터 신약화되어지고 있습니다. 구약의 성전 건축 역사는 하나님 백성의 필수적 의무 사역으로 조명되어 지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B.C 957년에 삼만명의 역군을 동원해서 칠년에 걸쳐서 대 성전을 완공을 합니다. 그래서 솔로몬 성전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렇게 큰 노력을 통해서 건축한 하나님의 성전도 어느 때는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B.C 587년에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침략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또다시 재건하는 역사! 바벨론의 포로를 자백했던 유대인들이 파사왕 고레스의 칙령을 받아서 본국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이 뭐냐? 하나님의 성전 재건입니다. B.C 586년의 일이에요. 학개 선지자가 성전 재건하자고 설교를 했고, 국민들은 이것이 옳은 일이라고 협조를 해서 스룹바벨의 협조를 통해 성전 재건이 이루어지므로 그 성전 재건이 약 500년 동안 히브리 민족의 영원의 안식처, 또 영적 구심점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전쟁으로 인해서 폐허가 됩니다. B.C 20년에 헤롯의 도움을 얻어서 또다시 성전을 건축하게 되는데 그 성전이 예수님 당시에 사용했던 성전입니다. 그런데 그 성전은 예수님 말씀대로 A.D 70년에 또다시 로마군에 의해서 폐허가 되었고, 지금은 서쪽에 벽 하나만이 남아 있어서 그것을 ‘통곡의 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타난 것을 영적으로 한번 해석하면 이 지상의 교회는 완전한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완전의 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무형 교회만이 완전하고 지상의 것은 교회일지라도 불완전해서 어느 때는 없어지기도 하고 또 새로 생기기도 하면서 그 과정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이루어지도록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어느 교회의 헌당 예배를 드렸어요. 그런데 교회들을 새로 짓고
그 시절에 판자촌에 빨간 벽돌로 아름답게 지어서 그 교인들이 헌당 예배를 드리는데 너무 좋아서 한복을 입고 떡을 해놓고 온갖 손님을 다 초대하고 큰 기쁨의 잔치가 벌어졌어요. 그러니까 교단에서, 대한민국에서도 몇번째 안가는 큰 목사님이 오셔서 설교를 하시게 됐잖아요? 모두가 흥분을 하고 교인들이 예배당에 꽉 차고 손님들이 꽃을 달고 수십 명이 강대상에 있고…. 그런데 헌당 예배드리는 그분의 설교 제목이 뭐냐하면 “무너질 교회”입니다. 아니, 남의 집에 와서 찬물을 끼얹어도 분수가 있지, 이렇게 헌금 열심히 해서 이렇게 교회 잘 지었는데 무너질 교회가 뭡니까? “내 설교 끝까지 들으시오.” 그분의 주장은 “지상의 교회는 불안전한 줄 알고 섬깁시다. 주님이 오실 때 이 지상의 모든 교회는 아무리 건축을 잘 한 교회도 다 불타 없어질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사회가 변하면 몇 십년 후에는 이것도 모자라서 그렇게 정성을 들여 지은 이 예배당도 여러분의 손으로 때려 부수고 또 더 큰 성전을 지을 것입니다. 그럼, 이 건물은 불안전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가 있는 게 교회입니다. 예배당이나 지었다고 해서 자만하거나 교만하거나 그러지 마시고 그런 교회의 의미를 알고 이 교회에서 하나님 원하시는 것은 인간 구원이시니까 건물 바라보고 너무 좋아하거나 흥분하지 마세요. 오늘 한복 입었으니까 예쁩니다. 떡들 잡수시고 신앙생활들 잘 합시다.” 그 얼마나 훌륭한 설교예요? 그렇습니다. 자, 여러분이 헌금해서 갈보리교회를 이렇게 잘 지었습니다. 필요하면 앞으로 이 성전을 헐고 더 크게 지을 수 있고 그럴 것이 아닙니까? 그러는 과정 속에서 솔로몬 성전도 전쟁이 나서 무너지고 재건한 성전도 무너지고 그 후의 성전도 또 무너졌잖아요? 그러나 그러는 역사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인간 구원은 계속 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의미를 알고 우리가 성전을 재건하고 성전을 건축하고 이러면서 살아야 됩니다.

  아마 여러분도 경험이 많을 것입니다. 경험은 ‘나는 어떻게 출석하는
교회마다 건축 문제가 나와?’ 그래서 건축 헌금을 평생 하면서 살아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사실 건축 문제를 내 목회에서 끝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1월 1일 송구영신 예배드리고 ‘어이구, 이거 안 되겠군!’ 2003년 1월 1일부터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12월 31일날 저 주차장이라도 1,400평짜리 주셨잖아요? 31일날 등기가 끝났습니다. 그러면 가는 데마다 이런 고난스러운 사명이 주어지는 사람은 세상 노릇 재수 없는 사람인가? 큰 축복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성전 건축의 노력을 아무에게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 목회자들도 평생 성전 건축, 오막살이 하나도 안하고 그냥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는 데마다 이런 문제들이 있는 목회자들이 또 있습니다. 난 후자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구약 성경 가운데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한 사람이 누구인가? 나는 다윗이라고 봅니다. 얼마나 하나님 마음에 들었으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했습니까? 다윗의 평생소원이 뭐죠? “내 평생소원 이것뿐 하나님의 성전 한번 짓고….” 그것이었어요. 얼마든지 지을 수 있어요. 왜? 왕인데? “지어라!” 하면 짓는 거지요.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에게는 안 주셨습니다. 그렇게 사랑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는데도 “너는 안 된다!” 그렇다면 그 사명이 주어지는 자는, 평생 주어지는 자는 평생 하나님의 복 속에 들어있는 겁니다. 

  저는 오늘 이 첫 주간에 금년 우리의 장막터를 좀 넓히고 내일부터 공
사 시작하고 증축하고 또 많은 프로그램을 앞으로 5개년, 10개년 계획으로 좀 설계하는데, 이 첫날에 두가지 예화를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게 있어요. 하나는 내가 목회 하면서 만난 제 교회 교인의 경우이고, 또 하나는 미국 사회에 아주 가장 널리 알려진 예화 두 가지를 여러분에게 소개하겠습니다. 예수를 잘 믿는 집안이 대한민국 농촌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의 별명은 그 동네에서 “예수 믿다 망한 집”입니다. 왜 망했느냐? 뭐든지 좋은 것만 있으면 교회에 갖다 바치니까 망할 수밖에! 그래서 그런 별명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된 일인지 그런 집을 좀 축복을 해서 잘 살게 하면 축복이 될 거 아니에요? 점점 망하게 하시는 거예요. 이런 일도 있어요. 우리 교회에 나오시는 집사님이 그 할머니 때부터 이야기하시는데 이 할머니는 너무 열심히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좋은 것만 있으면 다 교회에 갖다 바쳤어요. 그 시절에는 쌀밥 먹기도 힘든 그런 시절 아니에요? 그런데 쌀이 한말 생기니까 반쯤 덜어다가 목사님 갖다 드려야 된다고 그걸 치마 속에다 쌌대요. 그리고 급하게 뛰다가 자동차에 치었대요. 돌아가셨어요. 할머니가 흘린 피와 쌀이 길바닥에 뻘겋고 허옇게 되었어요. 동네 사람들이 “저것 봐. 저 집은 예수 믿다가 망한 집이야!” 자기는 그렇게 어린 시절에 그런 말을 들으며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를 따라서 교회를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해서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면 그 사람의 아버지는 좀 절제를 해야 될 거 아니에요? 할머니보다 더하는 거예요. 저 농촌 교회, 시골 교회 목사님을 위해서 “저희 교회 건축을 해야 되는데 돈이 없는데 좀 도와주십시오.” 그러니까 “그러죠. 나 돈이 하나도 없지만 내가 땅이 좀 있습니다. 이거 팔리면 드릴께요.” 그 시골에서 돈, 밭 좀 가지고 있고 먹고 사는 기반을 뚝 잘라 팔아 가지고 교회를 지었어요. 그러니까 소문이 날 거 아니에요? 다른 교회 목사가 또 왔어요. “그 교회 지어주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희 교회도 좀 도와주세요.”그래요? 나머지도 싹 팔아서 이것으로 지으라고 지으세요. 교회 3개를 짓고 나니까 먹을 것도 없어진 거예요. 그때 자기는 고등학생이었대요. 학교를 가는데 먹을 것이 없어지니까 너무 배고프고, 엄마가 밥을 따뜻하게 차려 주셔아 되는데 엄마가 아침에 짬짬이 “우리 집안은 정말 예수 믿어 다 망했다.” 망한 것 끝까지 망해보자. 교회 나가서 새벽기도를 시작했대요. 그런데 새벽기도 3년 동안 열심히, 하루도 안 빠지고 열심히 기도했는데 그 기도한 제목
은 한가지! “하나님 아버지! 나 먹을 것만 주시면 평생동안 하나님이 하라는 것 다 하겠습니다. 뭐든지 하겠습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먹을 것은 점점 더 없어지는 거예요. ‘하나님은 안 계신가 보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 집안이 이렇게 하나님을 위해서 가장 훌륭하게 살고 있는 우리 조상부터 나까지 이렇게 망할 수는 없다. 안 믿는다!’ 그리고 자기가 기도한 자리에다 가래침을 뱉고 교회를 나와 버렸대요. 그 다음부터 교회 안나갔대요. 역사가 수십 년이 지났어요. 어느 날 아이들이 “아빠! 왜 우리는 교회를 안가?” “뭐라고?” “다른 집들 다 교회 다니잖아. 우린 교회 안나가?” ‘아! 교회! 그렇지, 내가 교회 다니던 사람이었지!’ 그리고는 교회를 나왔어요. 그래서 몇 십 년 만에 교회를 탁 나와 앉았는데 그 시간부터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이거, 창피하게 내가 왜 이래?’ 그저, 교회 와서 그 설교 제목만 봐도 벌써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어느 날 저를 만나자고 했어요. “목사님, 좀 만납시다.”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몰라요. 우리 교회 나온다는 것만 알아요. 혼자 만났어요.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한 이야기를 그때 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안 계시다고 생각했는데 내 눈물은 뭐죠? 내가 마음이 좀 완악하고 지독한 데가 있어서 눈물을 안 흘리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벌써 목사님 서론만 시작하면 눈물이 쏟아지니 이게 뭐죠? 하나님이 정말 계세요?” “네, 그렇군요.” 저는 좋은 기회를 만났다고 생각을 해서 그분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네 집은 예수 믿다 물질적으로 망했는데 이런 상담을 요청하셨으니 거짓말하지 마시고 지금 당신의 물질 능력을 나한테 밝히십시오. 그래야 이야기가 됩니다.” 저는요 지금까지 제가 가깝게 만난 사람 중에 그 사람만큼 돈 많은 사람은 못 만났어요. “목사한테 거짓말 하시면 안돼요. 숨기지 말고 그대로 이야기하세요.” 그날 타고 온 자동차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롤스로이드를 타고 왔어요. 그게 집 한 채 값이에요. “다 이야기 해봐요. 미안하지만 당신 호주머니에 돈 얼마나 있는지 한번 꺼내봐요.” 그날따라 남한테 빚 받은 것 50만 달러! 50만 달러가 얼마인지 계산 못하시겠어요?
“아, 이거 오늘 마침 빚을 받았어요.” “그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봐
보세요. 당신 집안은 조상들이 훌륭합니다. 그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그 고난 속에서도 당신의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모두다 신앙의 위대한 순교자들입니다. 그렇게 동네 사람들한테 비난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분들에게 주시지 않고 남기셨던 하나님의 복을  당신에게 다 주신 겁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큰일 납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게 하신 겁니다. 당신 조상이 위대했던 것처럼, 당신도 당신 후손들에게 위대한 조상이 되십시오. 할머니가 하셨던 일, 아버지가 하셨던 일을 그대로 하십시오. 하십시오! 내 목사의 인격을 걸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하십시오!” 그 자리에서 하겠다고 했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 될까요?”
“제가 인도해 드릴 테니 하십시오. 지금까지 아버지가 교회를 3개 건축했는데, 당신이 7개 하십시오.” 일곱 개 아주 정교하게, 다 혼자 개인의 돈으로 일곱 개 완성시키시고 여덟 개 또 약속하고 지금 건축 중에 있습니다. “아니, 돈이 얼마나 많은 거요?” 나한테 속이지 않아요. 뭐, 그 미
국 같은 사회에서 골프장이 몇 개가 되고 호텔이 있고, 빌딩도 있습니다.
“당신은 조상을 잘 두었소.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평생을 하나님 나라 갈 때까지 그런 일을 계속 하세요.” 그랬어요. 그게 내가 경험한 겁니다.

  또 하나는, 해티웨이트라는 미국 소녀가 있었어요. 시골 마을에 주일학교 입학을 하러 갔어요. 그런데 미국 같은 데서는 여름하계학교가 정원제입니다. 막 오라고 해서 받아들이지 않아요. 딱 한 선생님이 잘 교육시킬 수 있을 만큼, 또 시설 이런 것이 미국 사람들은 북적거리며 안 해요. 그래서 정원제로 하니까 이 아이가 늦게 하기 때문에 이미 정원이 차서 시설과 선생님이 “그만이야!”하고 안 받아줬어요. 철저하게 등록금도 냅니다. 책임있는 선생님들이 철저하게 신앙 교육을 시킵니다. 교회에서 그렇게 하는 게 있어요. 그래서 여름하계학교도 우리는 3~4일 하고 말지만, 두 달씩 합니다. 그런데 학생수가 꽉 찼기 때문에 입학을 못했어요. 교회가 너무 조그마해서 자리가 부족하거든요. 그 소녀는 2년 후에 병이 들어서 죽었어요. 그가 죽을 때 그의 베개 밑에서 돈지갑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57센트가 들어 있었고 유서가 한 장 들어있었어요. 유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이 조그만 교회를 더욱 크게 짓고 좀더 많은 어린이가 예수님의 말씀을 배울 수 있도록 내 재산을 교회 건축에 써주세요.』57센트! 1불도 안 되는 돈입니다. 그 교회 목사는 그의 장례식을 치르고 그의 유언장을 발표했어요. 사람들이 “아, 어린이 교육이 이렇게 중요한 것을! 이 한 영혼에 상처를 주었다.” 그 자리에서 25만 달러 헌금을 했고 그 후로 그 헌금은 점점 액수가 늘어서 마침내 그 교회는 필라델피아에 3,300석의 교회를 건축했어요. 그리고 1,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부설 대학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이런 불쌍한 소녀가 죽는 것을 막아야 된다고 그의 죽음을 기억하면서 병원을 하나 지었는데 “Penful Hospital” 미국사회에서는 유명한 병원! 그렇게 되었습니다. 죽으면서 드린 57센트가 하나의 그 실마리가 되어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창출한 것은 미국사회에 다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옳은 일이라고 판단되는 것에 몸을 던지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가장 옳고 거룩한 일입니다. 그 믿음이 있는 자들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어 가는 겁니다.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소쩍새는 그렇게 보다.”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꽃피우기 위해서 항상 울면서 사는 겁니다. 아름다운 역사의 뒤안길에는 흘린 눈물의 주인공들이 있음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2004년 이 목표를 가지고 찬송을 부르며 힘있게 승리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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