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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자 삼으라 (마 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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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삼으라 (마태복음 28:16-20)

1.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구원하는 것

성경말씀을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인자가 이 땅에 온 것은...” 하는 표현들이 여러번 나옵니다. 그 말씀들을 종합해 보면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오셨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에 가나안 여자가 와서 자기의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때에 <자녀의 떡을 취하여서 개들에게 주는 것이 마땅치 않다,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서 왔지, 너 같은 사람을 위해서 오지 않았다>고 아주 매몰차게 이야기하실 만큼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오셨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전략(戰略)을 어떻게 세우셨는가 하면 <내가 너희와 세상을 떠나겠지만 나의 사상과 나의 인격과 나의 능력을 위임받은 제자들을 통하여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땅에는 교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부산에만 해도 천6백 여 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가 왜 세워졌습니까? 교회는 예수님의 정신을 따라서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곳입니다. 교회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교회가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목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속에 구성되어있는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도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해서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생명주시고, 삶의 모든 환경을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왜 살아가고 있습니까? 태어났으니까 그냥 삽니다. 부모님이 키워주시니까  자라서 교육받고 때가 되면 시집가고 장가가고, 또 자식 낳아서 자식 잘 키우려고 애를 쓰고, 직장생활 열심히 하여서 돈 많이 벌고 사업 잘해서 물질 많이 모아서 물려주고 노년을 복되게 준비하고 다른 사람에게 존경받으면서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삶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도 세상 사람들과 별 다를 바가 없이 이런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도 역시 이 땅에 태어나서 적당한 때에 시집 장가가고, 자식 낳고, 자식 잘 키우려고 애쓰고, 잘 먹고 잘 살고 노년이 복되려고 돈벌고 애쓰며 산다고 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삶의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왜 살아가고 있는가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서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계절이 오게끔 힘쓰는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 같은 사람은 삼층천(三層天)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난 다음에 이 땅에 살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한 사람이 이 땅을 바라보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나사로가 죽었다가 부활하고 난 다음에 한번도 웃은 적이 없었다는 말이 잇습니다. 그 영광스런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이 땅을 보니까 웃을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나니까 이 땅에 살 소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빨리 육신을 벗어나서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과 같이 살았으면, 빨리 천국 갔으면, 빨리 죽었으면...’ 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살았는데, 또 한편으로 보면 교회가 있습니다. 믿지않는 불신자들이 있습니다. 믿지않는 동족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보면 빨리 세상을 떠나서 천국에 가서 살고싶고,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교회를 보면 그들을 잘 양육하여서 하나님 뜻을 이루어야 되겠고. 그래서 ‘나 때문이 아니고 너희들 때문에 내가 이 땅에 살기로 결정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 예수님의 사역을 대신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서 구원하는 곳입니다. 그 속에 있는 우리들도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서 구원하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삶의 목적과 의미를 한 순간도 잊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2. 잃어버린 자를 찾는 전략 - 제자훈련

그런데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서 구원하는 예수님의 전략이 뭐냐하면 바로 제자양육입니다. 제자훈련입니다. 제자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세례받으시고 40일 금식하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준비를 다 마치시고, 첫 말씀이 갈릴리 해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보시고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아갔습니다.

왜 예수님이 사람을 부르셨습니까?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우리를 불러서 이 자리까지 인도하셨는가 하면 사람낚는 어부되게 하시려고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람낚는 어부되게 하시려고 부르셨음을 한 순간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말하면 제자훈련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신 명령이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제일 마지막에 하신 말씀은 <제자 삼으라, 제자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제일 처음에 하신 말씀도 표현은 다르지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은 바로 <제자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3년 동안에 하신 일이 뭡니까? 교회를 세우지도 않았습니다. 책을 저술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계승할 제자들을 양육하셨습니다. 그것도 별 볼품이 없는 사람들을 모아서 3년 동안 먹고 마시고 함께 생활하면서 양육했는데, 1명은 떨어지고 11명의 제자를 양육하고 가셨습니다.

3년 동안에 예수님은 참으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여러 가지 일들을 하셨는데, 물론 그 병자가 불쌍해서 고치시기도 하셨고, 여러가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하기도 하셨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제자들을 교육하신 것입니다.
사자는 새끼들 앞에서 짐승잡는 법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잡으라고 보여줍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실 때에 그렇게 고치신 것은 내가 떠난 다음에라도 너희는 이렇게 고쳐라하고 보여주시고, 또 실제적으로 제자들을 보내서 병자고치는 것, 귀신 쫓는 일들을 하도록 실습까지 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군중을 향해서 하신 말씀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나와 있는 산상보훈도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하고 팔복(八福)을 위시해서 산상보훈을 말씀하십니다. 사실 그 말씀도 무리를 보고 하신 말씀이 아니고 제자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처럼 자세히 보면 모든 것이 다 제자훈련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불러 제자를 훈련시켜 놓으시고, 또 그들에게 명령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제자로 만들었던 것처럼 너희들도 나가서 나와 같이 제자 삼으라. 제자 만들라>고 명령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서 예루살렘에서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음으로 제자훈련의 마지막 과정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정말 예수님께서 믿을 수 있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또 다른 제자를 만들었습니다. 제자의 수가 3천으로 불어났습니다. 날이 갈수록 제자의 수가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유다로 사마리아로 소아시아 지역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정말 예수님의 제자로 살았습니다. 예수믿는 순간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예수믿는 순간에 예수님의 능력을 소유하고, 예수믿는 순간에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각오를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갔던 제자들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보면 믿는 사람을 곧 <예수님의 제자>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거대한 로마를 복음화시키고,  전 세계의 3분의 1이나 되는 사람을 예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앞으로도 전 세계를 복음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제자만드는 일, 예수님께서 하신 전략대로 제자를 만들어서 또 다른 제자를 만드는 제자양육과 훈련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전략이었고, 또 우리의 전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단순히 신앙생활하는 성도가 아니라 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2004년 금년도에는 제자로 살아가리라, 좀 더 신앙생활 잘 하리라. 지금까지도 믿음생활하려고 애를 써 왔지만 2004년에 더욱 더 주의 뜻을 따라서 제자의 삶을 살아가리라고 다시 한번 다짐하고 제자되는 이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제자되기를 원하십니다.

교인들을 분류해보면 말 그대로 교인이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등록카드를 내고 등록하여서 교회에 적(籍)이 올려져 있는 사람입니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이 교인에서 신자로, 신자에서 성도로 변화되지만, 아직도 교인수준에서 머물러 있는 사람. 구원의 확신도 없이 단순히 주일에 한번 출석하는 정도로 교회에 관한 일에 아무 동참도 하지 않고 구경만 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성경은 뭐라고 하는가 하면 <무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리, 군중, 그 가운데서 예수님이 제자를 뽑아내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교회 안에서도  무리와 군중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개인적인 어려움이 있다든지, 교회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든지 하면 곧 신앙생활을 포기하고 떠나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무리로, 군중으로 따르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제자로 따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또, 교인 가운데는 신자가 있습니다. 처음에 나왔을 때는 교인으로 등록했지만, 예수님을 믿는 가운데 믿음이 생깁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사도신경에 나와 있는 모든 사실이 믿어집니다. 이해가 되어집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천지를 창조하실 만한 분이시고, 또 우리의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이 믿어집니다. 예수님이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되셨다,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박혀 달려 돌아가셨다, 3일 만에 부활하셨다, 40일 만에 승천하셨다, 다시 심판주로 오실 것이다하는 믿음이 생깁니다. 성령의 존재를 믿고, 죄사함을 믿고, 영원한 삶을 믿는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발전되어 나가야 됩니다.

그런데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마음에는 확신하게 와 닿지 아니하는 교인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정말 이 사실이 확실히 믿어지면 머리로 이해하는 정도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가슴으로, 삶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는데, 아직도 그렇게 확신하는 단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해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는 성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단순히 믿는 것 뿐만 아니라 제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교회 가운데는 성도가 있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이 믿어질 뿐만 아니라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생활이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가치관이 바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서 영원한 삶을 위하여서 살아가는 사람과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는 삶이 얼마나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자동적으로 귀하게 여기는 것과 귀하지 않은 것이 달라집니다. 믿지 않을 때는 귀하게 여겨지던 것이 예수믿고 나니까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 믿지 않을 때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던 것이 믿고 나니까 정말 귀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삶의 가치관이 바뀌어지게 되면 삶이 변화됩니다. 인생이 바뀌어집니다. 자기자신이 알고 또 다른 사람이 알만큼 삶이 달라지게 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삶이 달라지는 그 정도에서 머물러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제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교인 가운데는 헌신된 교인들도 있습니다. 교회에 등록하고, 예수님 믿어지고, 생활도 변화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여서 몸과 마음을 드려서 봉사하는 교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실 때 시간도, 몸도, 물질도 아낌없이 드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 좋은 교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기에만 머물러있지 말고 제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제자가 어떤 사람입니까? 제자는 예수님을 배워서, 예수님을 닮아서, 예수님을 위하여서 생명을 바칠 각오를 가지고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자기와 같은 제자를 복제해 내는 사람이 예수님의 참 제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제자 되라고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시고, 이 땅에서 불러주시고, 이 땅에서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직장을 주신 것도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직장에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만나서 구원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 영혼들을 만날 수 있는 채널로, 또 그 영혼들을 구원하는 기회로, 도구로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지, 직장생활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떡하든지 이 땅에서 제자로 살아갈 것을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제자되라고 불러주시고, 제자될 것을 원하고 계시는데, 나는 어느 수준의 교인으로 머물러 있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계속해서 성장하라. 너의 진보를 다른 사람이 볼 만큼  진보를 나타내라>고 이야기합니다. 교인에서 신자로, 신자에서 성도로, 성도에서 헌신자로, 헌신자에서 제자로 계속해서 삶이 진보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느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까? 교인(教人) 정도입니까? 신자(信者), 성도(聖徒), 헌신자(獻身者), 제자(弟子), 어느 정도에 지금 머물러 있습니까?

예수님을 구심점(求心點)으로 해서 원을 한번 그려보세요. 그러면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서 그 첫 번째 원에 들어오는 사람이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입니다. 두 번째 원에 들어오는 사람이 아홉 제자입니다. 세 번째 원에 들어있는 사람이 나사로를 위시한 마르다, 마리아 형제같이 헌신된 사람들입니다.

그 다음 바깥에 있는 원에 삭개오와 사마리아 여인같은 변화된 성도들입니다. 그 다음에는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 같은, 믿기는 하지만 자기 신앙을 드러내지 아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바깥의 원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바깥에는 예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교인은 신자가 되고, 신자는 성도가 되고, 성도는 헌신자가 되고 계속해서 안으로 안으로 주님께 더 가까이 와서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뜻임을 확실히 믿고, 주님께 더 가까이 가서 주님이 원하시는 제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제자의 의미

성경에 보면 제자의 의미가 여러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제자는 스승을 배우는 자입니다. 스승의 것을 배우는 학생입니다. 스승의 인격을 배우고, 스승의 철학을 배우고, 스승의 기술을 배우는 잡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게 나아와 내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배워야만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제자는 따르는 자입니다. 성경에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데, 다른 말로 말하면 따르는 자는 본받는 자입니다. 글을 쓸 때 스승의 체본(體本)을 받아서 그대로 쓰는 것처럼 스승을 본으로 삼고 모방해 나가는 사람이 바로 제자입니다.
세 번째로 제자는 종입니다. 헬라 문화에서 스승을 master라고 했습니다.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주인을 따라가는 사람이 바로 종입니다.
네 번째로 제자는 스승의 일을 계승하는 자입니다. 스승의 하는 일을 위탁받은 자들입니다. 스승이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인데, 그 스승이 하는 일들을 계속해 나가는 사람이 바로 제자들입니다.
이처럼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에 절대 복종하여서 스승의 것을 배우고 본받아서 스승의 분신이 되어서 스승의 일을 계승하는 자가 제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주인으로, 왕으로 모신, 예수님을 위해서는 내 생명을 바칠 자세를 가지고 예수님의 모든 삶을 배우고 본받아서 예수님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을 제자로 만들어낼 수 있는, 복제해 낼 수 있는, 잃은 양을 찾을 수 있는 사명을 감당하는 자, 바로 그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뜻임을 믿고,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의 부르심의 이유인 줄 믿고, ‘내 남은 삶은 제자로써 살아가리라’고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제자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부족합니다. 교인들이 들어오면 새가족반에서 양육합니다. 크로스웨이, 베델같은 성경공부를 통하여서 또 양육합니다. 처음부터 양육이고, 계속해서 양육이고, 그 다음에는 죽을 때까지 양육입니다. 군대가면 몇 개월 동안 훈련을 받습니다. 그 훈련을 통하여서 총을 어떻게 쏘고, 적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승리하는가 하는 훈련을 받고 나면 좋은 군인이 됩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1학년, 2학년, 3학년, 4학년, 5학년, 6학년 과정을 마치면 나중에는 읽고 계산하고 쓸 수 있는 학생이 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그런 과정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10년 되어도, 20년 되어도 성경이 말하는 제자가 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선교단체에서는 그 일이 상당히 되는데, 교회에서는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과정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제 그 과정을 우리교회에서 만들어서 제자의 길을 가고자 합니다. 네비게이토(Navigator) 운동의 창시자인 도슨 트로트만은 성령으로 거듭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전도하여 그가 성숙한 그리스도인 제자가 되기까지 지도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6개월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나온지 6개월 된 사람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처음 교회나온 사람이 무슨 그런 일을 하느냐고, 일하려고 하는 사람을 막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도슨 트로트만은 6개월만 되면 훌륭한 그리스도인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또 다시 같은 방법으로 두 사람을 전도해서 1년 반이면 8명이 되고, 2년 반이면 16명, 3년이면 64명, 5년이면 1,024명, 10년이면 150만 명이 될 수 있는 제자훈련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길만이 세계 복음화의 지름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이제 예수님을 제대로 믿어보아야 되겠습니다. 감사한 것은 제자가 내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는 부르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서 “예, 나도 제자가 되겠습니다.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하고 나서기만 하면 주님께서 나를 제자로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같은 무식한 사람도 제자가 되니까 유식한 사람이 되어서 베드로서를 저술하고, 그를 통해서 역사가 얼마나 바뀌어졌습니까?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배운 사람은 몇 사람 안 됩니다. 대부분이 고기잡는 어부들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예수님께서 부를 때에 “예”하고 나서기만 하면 제자가 되어졌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를 부르고 계십니다. 제자를 찾고 계십니다. 제자되라고 명령하시는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 인간의 생사화복을 홀로 주장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제자 되라고, 제자 삼으라고, 제자 만들라고 하시는데, 이것은 우리의 옵션이 아닙니다. 선택이 아닙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홀로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령입니다. 거부할 수 없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9절, 20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거기에 명령형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갑니까? 제자 삼기 위하여서 가라는 것입니다. 왜 세례를 줍니까? 제자를 삼기 위해서 세례주라는 것입니다. 왜 가르쳐야 됩니까? 제자 삼기 위해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왜 지키게 하도록 강요해야 됩니까? 제자 삼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관심, 최초의 명령, 최후의 명령도 제자 삼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불러주신 뜻이 제자 삼으라는 주님의 명령인 줄 믿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여러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던 첫 날 하나님께서는 <너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 땅을 다스리라, 땅을 정복하라>고 하나님의 대행자(代行者)로, 대리자(代理者)로 세워놓았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짓는 이름이 곧 그 이름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지키고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가시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나의 대행자로써 살아가라. 나의 사역을 너희에게 위임한다. 그러므로 그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의 대행자요, 쉽게 말하면 예수님의 대사(大使)들인 것입니다.
이 귀한 사명을 감당하려고 하면 <교인>의 수준으로는 안 됩니다. <신자>정도로도 안 됩니다. <성도>도 부족합니다. <헌신자>도 좀 더 보태어져야 됩니다. <제자>가 되어야만 이 귀한 사명, 그리스도의 대사로써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대사입니까?

이렇게 영광스럽게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이 부르심에 응하여서 왔습니다. ‘이제 제자가 되리라. 금년 한 해 제자로 살아가리라.’ 고 다짐하여서 스승되시는 예수님 따라가며, 죽기까지 따라가며,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고, 예수님의 삶을  본받고, 잃은 자를 찾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이 귀한 사명을 계승하되 제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서 예수님의 전략을 따라서 이 땅에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오게끔 만들어 낼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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