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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 출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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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애굽기 3:1-5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귀중히 여기시고 모든 관심이 사람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고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가십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시고 그에게 대한 기대와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고 계십니다. 그 비전은 우리가 예수님의 인격을 닮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성공해야 되고, 어떤 일을 성취해야 되는 많은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궁극적인 관심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인격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별세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별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한 사건을 내게 이루는 것입니다.

별세의 한문자의 뜻은 ‘다른 세상’이라는 말이지만 ‘세상을 바꾼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내게 주어진 운명을 바꾸어준다는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새로운 미래를 약속해주는 세계를 별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려고 한 일은 뭐냐? 예수님의 별세를 가르쳐주는 일이었습니다.

구약의 대표적인 두 인물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입니다.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별세를 계시받은 최초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씨가 하늘의 별 같고, 대적의 문을 얻으며, 천하만민이 복을 얻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씨가 예수님의 별세의 씨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는 그 씨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런 축복을 받을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는 아브라함의 믿음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출애굽기는 모세의 생애를 일관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위대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별세를 친히 그의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세에게서 예수님의 별세를 배울 때 모세가 위대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구약의 모든 인물들은 예수를 가르쳐 주는 교사들입니다. 만약에 예수를 볼 수 없다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사업 잘하는 사람을 통해서 사업을 배우고, 정치 잘하는 사람을 통해서 정치를 배우고, 과학을 많이 연구한 사람을 통해서 과학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의 인물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배우는 것도 있지만 이것은 지극히 작은 부분이고 그 사람들을 통해서 예수를 배워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모세는 예수를 보여주는 면에서 구약의 대표입니다.
그러면 모세가 어떻게 예수님의 별세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가 그 별세를 우리는 어떻게 배울 수 있는가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모세를 이스라엘 민족 최고의 지도자요, 인류 역사의 최대의 위인이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120세를 일기로 그의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스릴과, 감동과, 신비에 싸인 찬란한 업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뿐만 아니라 불가사의한 신화적 존재로 역사는 그를 추앙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일생을 크게 3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40세까지를 1기, 80세까지를 2기, 120세까지를 3기로 해서 40세 단위로 그의 생애의 구분이 됩니다. 출생으로부터 40세까지는 바로의 궁궐에서 학문을 닦고 인격을 성장시킨 청소년기라고 말한다면 40세부터 80세까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미디안 광야에서 40년동안 연단을 받았으며, 80세부터 120세까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붙들려 하나님의 일을 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한 남자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민족은 바로의 치하에서 노예생활을 했기 때문에 모세는 노예로서 태어난 아이였습니다. 당시에 바로왕은 노예의 수가 증가됨으로 위협을 느끼고 노예 중에서 출생하는 모든 남자 아이는 전부 죽이도록 했습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 용모가 준수하고, 그 눈빛이 비범하고 남다른지라 부모가 차마 이 아이를 산파의 손에 죽일 수 없어서 3개월동안을 숨겼으나 이 아이를 더 이상 감출 수 없어 갈대로 상자를 만들어 나일강에 띄웁니다. 그때 마침 바로의 공주가 나일강에 목욕하러 왔다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건져다가 바로의 궁궐에서 양자를 삼아 기릅니다. 모세는 공주의 아들이 되어 당시 전 세계 문화의 중심지인 애굽의 문화를 습득하게 됩니다. 무예를 배우고, 지성을 배우며, 궁궐의 지식을 배우면서 미래에 바로의 뒤를 이어갈 위대한 왕자로서의 교육을 받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 아래 바로의 궁궐 속에서 성장해 갔습니다. 그가 나일강에서 건짐 받을 때 어머니가 보모로 바로의 궁궐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모세는 어머니의 젖을 먹으면서 어머니와 눈빛을 맞추었습니다. “아이야, 너는 히브리인의 피를 받은 사람이다. 네가 호화로운 궁궐에서 자랄지라도 너는 언제나 네 백성을 기억하라” 어머니의 무언의 기도를 받고 자란 모세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심이 그 속에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밖에 나가서 자기 백성들이 노예생활 하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탄식하다가 애굽인이 자기 백성을 때리는 것을 봤습니다. 그것을 보고 분노한 모세는 나가서 애굽인을 쳐 죽여 모래 가운데 묻고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것이 탄로되어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쳐서 그때부터 망명객의 삶이 시작됩니다. 그의 나이 40이었습니다. 미디안에 가서 이드로라는 사람의 대릴 사위가 되어 40년 풍운아의 망명객의 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는 거기에서부터 양치는 목동이 되었습니다. 미디안 광야 생활 하늘을 지붕 삼고 떠도는 방랑객, 하늘을 보니 눈물이요, 바람 소리 스쳐가니 자기 백성들의 한숨 소리요, 양떼를 보니 자기 백성들의 초라한 모습이라 춘풍추 40년 흘러 모세의 나이 80세 노년이 되던 어느날 석양 노을이 산천을 붉게 물들이는 황혼 시간에 모세는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가끔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서 불타는 것은 보았지만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않는 광경은 처음 봤습니다. 그 이상한 광경을 보려고 돌이켜 가는 모세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모세야 모세야 너는 이리 가까이 하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모세는 신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두려워 엎드렸습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리니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드디어 모세는 40년의 광야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바로에게 들어가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해내는 지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모세를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딱 하나였습니다. “모세야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모세는 광야 40년을 통해서 발에서 신을 벗는 일을 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음성이 있습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새해 벽두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그 음성은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것입니다.
신을 벗는다는 말은 곧 자기를 포기한다는 말입니다. 신을 벗는다는 말은 자기를 겸손하게 낮춘다는 말입니다. 신을 벗는다는 말은 자기 모든 소유를 포기한다는 말입니다.

첫째, 거룩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모세는 바로의 궁궐에서 위대한 학문을 배웠습니다. 지식을 배웠습니다. 무술을 닦았습니다. 그는 굉장한 자존감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인물이 뛰어났습니다. 그의 가슴속에는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심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너는 사람으로서 사람은 되었다. 그러나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높은 학문을 가지고 있습니까 인물이 잘났습니까 사회적인 명예가 있습니까 지위가 있습니까 분명한 인생관을 가지고 있습니까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누구의 사람이 되려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명령하십니다.
신을 신으면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합니다. 가고 싶은 대로 갑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자기 신을 신기 시작하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저도 어린 아이를 길러가면서 최근에 느낀 것이 있습니다. 신을 신지 않고 있을 때는 말을 잘 듣는데 신을 신으면 그때부터는 제 고집대로 하려고 합니다. 신을 신을 때부터 아이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을 벗으라는 말은 자기 고집과, 마음과, 인간의 모든 주장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기라는 신을 신은지 40년, 그것을 벗는데 40년이 걸렸습니다. 바로의 궁궐에서 자기 신을 신고 자기를 세우는데 40년이 걸렸고 이것을 벗는데 40년이 걸렸습니다.

일반적으로 교육학에서 말하기를 배운 것을 버리기까지는 그만큼의 세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성격과, 고집과, 인간성을 버리는데 그만한 햇수가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배운 것을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붙으면 안빠지나 봅니다. 어느 때 빠지느냐? 죽어야 빠집니다. 죽어서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없애는 것이 곧 별세입니다. 

모세는 자기가 능히 자기 백성들을 지도할 인물인 줄 알았습니다. 백성들이 모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인도해라” 지금까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백성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야, 네 백성이 아니고 내 백성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자기’라는 것을 포기할 때까지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열심 낸다고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자기가 열심을 내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열심히 하게 하셔서 해야 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신을 벗으라는 명령을 내릴 때 거기에서 자기 자신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곧 사라지지 않는 불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모세는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정의감과, 의협심과, 애국심으로 불이 타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타오른 불로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애굽인을 죽이는 살인자가 된 이후에 그는 모든 타던 불이 다 꺼진 채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40년동안 잿더미로 거기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 때 교회에서 열심내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런데 열심내다가 그 불이 꺼질 때가 있습니다. 언제 꺼지느냐? 누가 말 한마디 하면 꺼지고, 목사가 악수 안했다고 꺼지고, 눈 흘겼다고 꺼집니다. 모세도 자기가 열심냈습니다. 그런데 살인자가 된 이후에 그 불이 꺼지고 미디안 광야에서 잿더미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사라지지 않는 불을 주십니다.

저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시골교회에 갔습니다. 시골에 가서 마을을 돌아보면서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연약한 종을 이 땅에 보내신 주여, 동학 혁명의 발상지 한국 민족의 새 역사를 피로 물들인 이 땅에 이 종을 보내셨으니 복음이 피로 물든 이 땅을 적시어 이 백성을 살려내게 하옵소서.” 이 기도를 하는 순간 성령께서 이 종을 감동하셨습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제가 신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땅에 엎드려서 잔디밭에 키스를 했습니다. 그때 제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면서 이런 감동이 왔습니다. ‘네가 밟는 땅은 거룩한 땅,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땅이다.’ 그래서 그 땅에서 길을 걸어도 온통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습니다. 이것은 40년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설레입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버릴 때 오는 것입니다. 자기를 버리지 않는 한 하나님의 은혜는 오지 않습니다. 자기를 많이 버리시기 바랍니다.


둘째, 거룩한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신을 벗으라’는 말은 지금까지 네가 하던 일을 포기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이력서라는 말을 한문으로 풀이하면 밟을 이(履), 걸어올 력(曆), 글 서(書)입니다. 그래서 ‘지나오면서 밟아온 내력을 쓴 것’이 이력서입니다. 자기 발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왔는가 이것이 바로 이력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는 말은 이력서를 다시 쓰라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네가 쓴 이력서, 네 발로 걸어온 생애를 다 포기하고 새로운 이력서를 쓰라는 말입니다. 다른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네 인생을 새 출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됩니다. 지금까지 내 이력서를 썼다고 한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이력서를 써야 합니다.
슈바이처 박사가 20살 되던 때, 그가 대학 졸업 논문을 쓰던 때였습니다. 부활절 다음날 아침 밖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아침 성경을 읽으면서 명상하는 시간에 이런 감동이 왔습니다. ‘내가 30세까지는 나를 위해서, 30세 이후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으리라’ 그는 30세까지 자기를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신학 박사, 철학 박사, 음악 박사 3개의 박사 학위를 얻었으며 유명한 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30세가 되던 때에 다시 의과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해서 의학 박사가 됩니다. 그리고 40세가 되던 해에 아프리카로 건너갑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내 인생의 행복한 날을 나만을 위해서 살 수 없다.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나눠야 한다’ 결국 그는 아프리카에서 의사로서 그의 생애를 마쳤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강남에서 좀 잘 살고 있습니까 또 자기 생애가 어딘지 모르게 다른 사람에 비해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반드시 자기에게 거룩한 일을 찾아야 됩니다. 자기 삶을 통해서 거룩한 일을 만들어내야 됩니다.

영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늘상 국회에서 짜증내고 스트레스 받으면서 회의에 임하는 하원의원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인상을 쓰면서 집으로 퇴근하면서 골목길을 지나오는데 청소부가 골목길을 노래하면서 기쁘게 쓸고 있습니다. “형제여, 그렇게 기분이 좋습니까?”  “예, 너무 너무 좋습니다.”  “청소하면서 뭐가 그렇게 좋은 일이 있던가요.”  “하나님이 창조한 이 아름다운 세계의 지구 한 모퉁이를 정화하고 있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때문에 너무 좋습니다.” 하원의원이 그 말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 그렇다’ 그러면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찾아낸 것입니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청소를 하든,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든, 재봉틀로 옷을 짜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든, 무슨 일을 하든 그 자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거룩한 땅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주님과 같이 살라는 것입니다.

신을 신으면 함께 못삽니다. 신을 벗었을 때만 함께 사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가족들이 함께 사는 시간은 신 벗고 집안에 들어왔을 때만 사는 것이지 정장하고 신 신고 나서면 이미 헤어진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은 ‘너와 같이 살자’는 말입니다. 신 벗고 집 안에 들어올 때만 한 가족입니다. 신 벗고 누웠을 때만 안식입니다. 신 벗고 함께 있을 때만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가셨는데 마르다는 밖에서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마리아는 신발 벗고 예수님 발 아래 앉아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를 받고 있었습니다. 마르다가 한참 일하다 보니까 동생이 안보여요. 문을 열고 보니 마리아가 예수님 발 앞에 있었습니다. 그래 예수님 보고 “예수님, 내 동생을 명하여 나를 좀 도와주라 하소서.” 할 때 예수님께서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나 한가지만으로 족하니라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신발 벗고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이것이 함께 사는 경지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중요한 원리를 알아야 됩니다. 뭘 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을 벗으라’는 말은 ‘나와 같이 살자’는 말입니다. 천국은 어떤 곳이냐? 신 벗어야 들어가는 곳입니다. 신 벗어야 안방에 들어갑니다. 신 벗어야 하나님 품 안에 안깁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5절) 그리고 8절에 “너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라고 말합니다.
신 벗어야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수 1:2-3). 가나안 땅에 가려면 신 벗고 발바닥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 여전히 언덕에 넘쳤더라”(수 4:18). 요단강을 건너갈 때 신 벗고 발바닥으로 땅을 밟을 때 강물이 갈라졌습니다.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수 5:15).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데 가장 큰 성이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군대장관 사자를 보내서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그리고 여리고 성을 들어가라”라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음성이 들립니다.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되기 위해서는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이 말은 자기를 포기하고 썩어져가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야 할 강이 셋이 있습니다. 첫째는 유프라테스강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건너간 강이었습니다. 둘째는 이스라엘 민족이 건너간 홍해강입니다. 이 강은 애굽에서 건너야 광야에 갈 수 있는 강입니다. 셋째는 광야를 건너야 할 강이 있습니다. 이 강은 요단강입니다. 유프라테스강은 아브라함이 건너서 이스라엘 민족의 선민의 약속을 받은 강이요, 홍해 강은 노예를 청산하고, 하나님의 불신을 청산하고 건너간 세례의 강입니다. 요단강은 완전히 자기 자신을 죽이고 건너가는 별세의 강입니다. 이 강을 건널 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약속하십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신자가 세 종류가 있습니다. 애굽 신자, 광야 신자, 가나안 신자가 있습니다. 애굽 신자는 아직도 세상에 있는 사람들, 하나님을 아직 온전히 섬기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노예로서 종살이하는 것처럼 세상의 종노릇하고 있으면서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광야 신자는 세상에서 하나님 편으로 나오기는 나왔지만 육신의 소욕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는 “주여” 하고 나가면서는 “나여” 하는 사람들입니다. 가나안 신자는 나도 세상도 간 곳 없고 오직 예수로 만족하는 신령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발에서 신을 벗은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정, 젖과 꿀이 흐르는 직장, 젖과 꿀이 흐르는 심령, 젖과 꿀이 흐르는 이 나라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발에서 신을 벗는 것입니다.
어떻게 벗습니까? 날마다 기도하면서 벗어내야 됩니다. 말씀으로 벗어내야 됩니다.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으므로 벗어내야 됩니다. 이것을 벗어낼 때 내 심령은 가나안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밟는 땅마다 거룩한 땅이 될 것이며, 사는 세계가 지상의 천국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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