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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Buffet, just for God! (12) / 히 11:1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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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ffet, just for God! (12)
히 11: 1 - 6

제 하루 일과 중 거의 빠지지 않고 하는 일 중에 하나는 제 아이들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막내는 군대에 가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지만 큰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둘째 아들 홈 페이지에 들러 저들과 저들에게 올라온 글을 읽고 사진들을 보는 것이 거의 유일한 저의 취미생활이 되어 버렸습니다.

공부만 하다가 시집을 온 제 며느리는 살림을 하는 것이 제법 재미있나 봅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위하여 밥상을 차리는 일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가끔씩 밥상을 사진 찍어 홈 페이지에 올려놓습니다. 그 사진을 통하여 저는 우리 아들놈이 아침에 뭘 먹고 출근을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제는 보니 밥상에 단 호박 쪄 놓은 것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제 아내가 단 호박을 좋아하는데 아마 제 아들놈도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남편이 잘 먹는 것을 보고 즐거웠던 모양인지 단 호박을 한 박스 사다 놓고 생각날 때마다 쪄 주고 싶다고 하면서 생활비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글을 며느리가 적어 놓았습니다. 소위 월급이 넉넉지 않으니 무엇을 박스 채 사다 놓고 살림을 하기는 아마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제가 그 글과 사진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여러분 맞추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어렵지 않으시지요? 예, ‘다음번에 갈 때는 단 호박을 한 박스 사들고 가야 되겠다. 그래서 우리 며느리 깜짝 놀라게 해 주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호박 핑계대고 아들 며느리 집엘 한 번 더 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사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뭐 하나라도 자꾸 사주고 싶습니다. 큰 아이 결혼 한지 두 달도 채 안 되는데 대형할인마트를 뻔질나게 아내와 함께 다니며 이것저것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겠다 싶으면 사 가지고 그걸 핑계 삼아 가깝지도 않은 계룡대 아들 내외 집을 벌써 몇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얼마 전에는 별것도 아닌 화장실 수건 비누 넣어두는 장을 사가지고 그 먼 곳을 다녀오기도 하였었습니다. 요즘도 그러고 싶은데 너무 그러면 아이들 피곤할까봐 절제를 합니다. 그래도 늘 ‘새 살림을 하는 아들 내외에게 뭐 필요 한 게 없을까?’를 생각하며 삽니다. 그것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그렇게 즐겁고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요즘 주일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나름대로 즐겁습니다. 매 주일 Buffet 설교를 준비하면서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실까? 하나님께 필요하신 것이 뭐 없을까?’를 생각하는데 그것이 그렇게 즐겁습니다. 정말 저는 그것이 그렇게 즐겁습니다. 저는 여러분들도 저처럼 즐거우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번 주 설교를 준비하다가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이 일 저 일을 하는 것도 기뻐하시지만 그냥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어 드리는 것을 기뻐하시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6절의 말씀이 떠오르면서 그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 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믿음’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메뉴는 그냥 ‘믿음’으로 정하였습니다. 오늘 이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믿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메뉴로 하나님의 잔칫상에 올려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하여 한번 함께 생각해 보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믿음을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의 대상입니다. 우리 믿음의 대상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누구를 하나님으로 믿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신구약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만을 우리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신구약 성경과 그 성경의 계시를 떠나면 우리는 정확한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에 대하여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신구약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만을 하나님으로 믿는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신구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시작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을 믿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만 합니다. 저는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이 성경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우리 믿음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의 아버지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우리를 보통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라면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일도 마다하지 않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할 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고백을 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와 같이 사랑하시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고 믿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잔칫상에 올려드려야 할 ‘믿음의 메뉴’인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 하신다’라는 믿음이 맺는 매우 중요한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평안과 소망’입니다. ‘불안과 절망’이 불신앙의 열매라면 ‘평안과 소망’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믿음의 열매인 이 ‘평안과 소망’을 그 어떤 것보다도 기뻐하시고 좋아하십니다.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였을 때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하였습니다. 불안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다윗은 골리앗을 보고도 전혀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그 누구보다도 많은 고난과 역경을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절대 권력자인 사울에게 쫓기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환경은 언제나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언제나 희망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삶에는 정말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있었습니다. 그의 시편에서 우리는 그의 절망적인 상황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시편에서 한번도 그의 절망을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가 누렸던 소망과 평안을 우리는 그의 시편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 으로 인도 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 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 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편 23:1-6)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 하시는 도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 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시3:1-8)

하나님은 다윗의 이와 같은 믿음을 무엇보다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행 13:22)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표현은 마음에 꼭 드셨다는 뜻인데 하나님이 다윗을 그렇게 마음에 꼭 들어 하셨던 가장 중요한 것은 다윗의 믿음이었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 교인여러분들과 이 설교를 듣고 보시는 모든 분들이 다 이와 같은 다윗의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아무리 삶이 곤고해도 절대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욥은 사탄의 시험으로 말도 못할 고난에 처했으나 그 입으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 1:21)

욥의 처한 상황은 하나님을 원망할만한 자리였습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욥과 같이 하나님을 원망해도 될만한 상황과 처지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믿음은 그때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믿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아무리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절대로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환난을 만나도 포기하지 않는 것. 하나님을 바라고 묵묵히 참아내는 것입니다. 견뎌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겨내는 것입니다. 제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너무 힘들어 싸우는 것은 고사하고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마음으로 늘 묵상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편 42편 5절의 말씀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 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그와 같은 믿음을 통하여 ‘인내’를 배웁니다. 일단 인내를 할 수 있게 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연단이 됩니다. 전보다 많이 강해집니다. 그러면 고난을 이길 수 있게 됩니다. 절망 중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소망을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로마서 5장 1절에서 4절의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이렇게 믿음이 자라게 되면 보통 역경과 어려움이 아니라 사망과 같은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게 됩니다.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는 것과 같은 고난을 당하여도 당당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믿음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우리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기뻐하시는 메뉴입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와 같은 믿음의 글들이 많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에서 10절의 말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아멘.

고린도전서 15장 55절에서 58절의 말씀,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아멘.

살다보면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가 참 많습니다. 편하고 좋을 때 하나님을 믿는 것은 쉽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기도도 할 수 없고 찬송도 할 수 없는 일을 당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정말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는 것과 같은 상황과 처지에 빠지는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절망하고 싶고 포기하고 싶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더 나빠지게 되면 ‘과연 하나님이 계시는가?’ 의심이 될 때도 참 많습니다. 그와 같은 지경에 빠지게 되면 삶의 평정을 잃어버리고 불안하게 됩니다. 소망을 잃어버리고 낙심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믿음의 메뉴’를 준비할 때입니다.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아니하고, 마음에는 깊은 상처와 절망이 가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인생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없는 사람은 세상에 어느 누구도 없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거인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고난이 없었던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역경이 없었던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절망스러운 환경에 빠져 보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와 같은 환경과 처지는 믿음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똑 같았으나, 삶의 자세와 고백을 전혀 달랐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일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의심하고 절망하고 포기하였으나, 믿음의 사람들은 그와 같을 당할 때마다 오히려 더 하나님을 바라고 의지하고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결국 승리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 중에도 힘들고 어려운 처지와 환경에 이미 빠져 있는 분들도 많으시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때가 하나님을 위한 최고의 메뉴를 준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것은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을 믿어 드리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 저를 따라 조용히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창조주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나의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기까지 함으로 나를 구원하신 분이시다.
나는 비록 부족하고 흠이 많은 죄인이지만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다.
구원 받은 사람은 죽지 않는다. 망하지 않는다.
지금 상황은 절망이지만 내 삶의 결국은 소망이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나는 내가 구원받은 사람임을 믿는다.
이번의 문제로, 이와 같은 문제로 내가 죽고 망할 사람이라면 우리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지도 않으셨고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 믿음이 저와 여러분을 구원할 줄 저는 믿으며, 무엇보다도 그 믿음이 우리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젓가락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잔칫상을 준비하는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 교인 여러분들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잔칫상을 준비하는 여러분들이 빼놓지 않고 준비해야 할 메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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