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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성경본문 : 로마서 1: 16-17

설교내용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의인은 죄 없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 가운데는 의인이 없습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일한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죄가 없을 뿐 아니라 죄를 알지도 못하는 분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의인은 예수님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칭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서 의인이라고 불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의인으로 부르셨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을 입혔기 때문입니다. 죄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의인으로 받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여호와의 은혜를 입은 자요, 의롭다함을 받아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의인의 대우를 받는 은혜 안에 있는 자를 가르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규정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하박국 선지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본문 말씀에 인용을 했습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 의가 어디서 나왔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을 때에 의가 복음에서 나타나서 그 복음이 우리를 의롭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믿음으로 믿음에 이릅니다.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며 믿음으로 의를 실행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의롭다 함을 받으며, 의인이 됩니다. 그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믿음에 대한 관심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동안에 제자들에게 책망과 탄식의 말을 거듭하신 것 중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이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보고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의심, 두려워하느냐, 염려하느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믿음이 함양미달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함양미달입니다. 예수님이 인정하기에 미달되는 믿음, 예수님이 쓰시기에 미달되는 믿음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는 중요한 문제를 하나 풀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이 원리와 원칙은 살아있고 이것은 불변의 원리입니다. 그렇지만 믿음으로 산다는 것에는 믿음이 아닌 것을 이기는 개념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 이 말 앞에는 불신앙을 이긴다는 말입니다. 불신앙을 이겨야 믿음으로 살아집니다. 이 불신앙에 막혀 버리면 믿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이 불신앙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정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불신앙과 영적전투를 하는 것입니다. 이 불신앙과 부딪혀서 싸워 이겨야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성립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전투적인 용어입니다. 영적전투입니다.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영적 전투가 일어나야만 어떤 면에서 바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함께 역사하시는 것에는 영적전투가 일어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잠잠하시면 우리는 영적전투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불신앙을 넘어서야 합니다. 갈등을 넘어서야 합니다. 이것을 가장 잘 수행한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즉 믿음을 우리에게 전수해 주었습니다. 율법은 믿음을 가둬 놓은 상태입니다. 구약의 선지자, 제사장들은 그들끼리 믿음을 논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그 율법에 의해서 가두어진 믿음을 모든 성도들이 따라올 수 있는 믿음으로 생활화했고 실천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조금 어려운 용어로는 ‘신학화’라고 합니다. 이 율법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제는 사람들에게 다가오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쉬운 말로 ‘교리화’했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교리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가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이 진리가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 진리가 우리에게 복이 됩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이 진리가 나의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역사 속에서 표본적으로 보여준 사람이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입니다.

  믿음의 실천

  마틴 루터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이 성구를 읽는 순간 그의 영의 눈이 떠졌습니다. 그가 수도하던 그 수도가 허무한 것이고 잘못된 것을 알았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 ‘하나님의 백성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이 말씀을 붙잡고 수도원을 뛰쳐 나왔습니다. 굉장한 일입니다. 지금부터 오백년 전에 수도사가 수도원의 규칙을 위반하고 무단 이탈하는 것은 그 당시의 분위기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잡히면 죽는 일입니다. 그러나 루터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에 확신을 가지고 수도원을 나오게 됩니다. 그는 정말 위대한 모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마틴 루터와 동조해서 여러 수도사가 함께 나왔고, 수녀들도 9명이나 함께 나왔습니다. 수도사와 수녀들은 그저 수도원에서 수도만 했던 사람들입니다. 밖으로 나오니 직업이 없습니다. 생계가 막연합니다. 그 때 기도하던 중 마틴 루터에게 이런 지혜가 생겨났습니다. 그 수녀들을 보고 결혼을 권유했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허용하는 것이고, 결혼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 수녀들을 전부 결혼시켰습니다. 그래서 생계를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수녀 중에 카타리나라는 한 수녀가 있었는데 혼담이 성립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의 반응이 없습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카타리나는 얼굴이 매우 길었답니다. 긴 얼굴에 광대뼈가 불쑥 튀어 나오고, 코도 균형이 잡히지 않고 길게 늘어져 있고, 이마가 불쑥 나온 그런 용모를 갖추었다고 합니다. 이런 용모를 갖춘 카타리나는 혼담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애쓰는 중에 루터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저 여자와 결혼을 해야겠구나!’ 그래서 카타리나와 결혼을 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를 뒤흔든 놀라운 스캔들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교회와 사회는 일제히 루터의 결혼을 공격했습니다. ‘타락한 성직자의 표본이다, 알고 보니 루터는 수도원에서부터 불륜을 저질렀고, 결국 수도원 밖에서 결혼하고 말았다.’ 그 당시 지성의 대표 에라스무스는 “종교개혁은 코메디로 막을 내렸다.”고 혹평을 했습니다. 루터와 카타리나의 결혼만큼 스캔들이 컸던 결혼은 역사 속에서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루터가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유일한 근거는 “우리의 결혼은 하나님 앞에 정당하다.” “우리의 결혼은 믿음으로 이룬 금혼을 강요하고, 수도사와 수녀들에게 결혼을 금한 악법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여 승리하는 것이다.” 이 신념으로 결혼을 붙잡고 공격을 이겨내면서 승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얼굴이 못난 이 카타리나에게 두 가지 은사를 주셨습니다. 카타리나는 그 당대의 지성이 뛰어난 수녀였다고 합니다. 원전을 해독하고 이해하는데 탁월했으며, 그는 타고난 천사와 같은 성품을 가졌다고 합니다. 루터를 개혁자로 성공시킨 배후에는 카타리나의 공을 아무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유명한 일화 중에 한번은 카타리나가 상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루터가 돌아와서 놀라 물었습니다. “여보, 왜 상복을 입었소?” “하나님 아버지가 죽었소.” “하나님이 죽다니?”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죽었기 때문에 당신이 그렇게 낙심하고, 절망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때 루터가 깨닫고 용기를 얻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루터는 수도원에 가두어 놓은 믿음, 로마교회가 가두어 놓은 그 믿음을 모든 믿는 자에게 복이 되는 믿음으로 실천하는데, 믿음을 교리화하는데 앞장섰던 종교개혁자입니다. 믿음은 모든 믿는 자의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수도사, 성직자들의 전용물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는 다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 속에서 믿음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믿음의 교리화

  우리가 승용차를 타고 갈 때는 도로교통법을 지키면서 가야 합니다. 교통위반을 하고 나는 헌법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도로교통법은 내가 운전하는 도로에 해당되는 법입니다. 모법이 있고 시행세칙이 있습니다. 모법은 멀리 있고 시행세칙은 가깝습니다. 내가 행동하는데 시행세칙은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멀리 있지만 믿음으로 살 때 이 말씀은 내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법이 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나를 다스리는 법이 됩니다. 내 생각, 행동을 다스립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연결됩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산다는 개념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여기에 가장 도전하는 세력은 사탄의 세력입니다. 이 사탄은 믿음으로 사는 성도를 그냥 두지 않습니다. 이 사탄은 우리를 공격합니다. 불신앙의 길로 가도록 충동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여기에는 사탄의 충동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 사탄은 우리 안에서 믿음으로 가는 자들을 정확하게 구분합니다. 이 말을 역설적으로 말하면 마귀도 믿음으로 사는 성도를 좋아합니다. 불신앙으로 사는 성도는 마귀가 좋아하지 않습니다.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미 자기 손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는 마귀의 시기 대상이 됩니다. 어떻게 하든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이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자신의 장애물 속에서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는 영역이 세 가지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영역만 극복하면 믿음으로 살게 됩니다. 첫째는 우리 자신입니다. 불신앙은 내 자신 안에 있습니다.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신앙의 제1영역은 내 자신, 내 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믿음의 함양미달 자들입니다. 엄격히 말하면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자격이 없습니다. 찬송 부를 자격도 없습니다. 예배당에 들어올 자격도 없습니다. 그만큼 우리 자신들은 우리 주님 앞에 볼 때 함양미달입니다. 불신앙의 흔적이 우리 안에 많이 있습니다. 사탄은 이것을 공격합니다. “네가 무슨 크리스챤이냐? 네가 무슨 서울영천교회 교인이냐?” 그리고 하나님께 참소합니다. “하나님 보십시오, 저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놓아 주십시오. 왜 붙잡고 있습니까? 저런 못난이를 왜 하나님이 관심을 가집니까? 버리십시오.” 이것이 사탄의 충동입니다.

  사탄은 욥을 참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자랑했습니다. “욥을 보라. 얼마나 착하고, 신실하고, 순전하느냐?” 그때 사탄이 “그거야 뭐 자식 잘 되게 하고, 사업 잘 되게 하고, 형통하게 해 주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빈정거렸습니다. “아무한테도 욥처럼 복 주시면 누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겠습니까?” 사탄의 말입니다. 이 사탄은 성도가 은혜 안에, 믿음으로 사는 것을 시기합니다. 우리 안에서 사탄이 그렇게 충동질을 합니다. 우리가 좌절할 때 사탄은 기회다 하고 찾아옵니다. 우리의 좌절을 붙잡고 공격을 합니다. 우리 안에 염려가 있을 때 이 염려를 붙잡고 사탄은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일차적인 영역은 나 자신을 이겨야 합니다. 나를 넘어서야 합니다. 내 자신을 넘어서지 못할 때 거기에는 믿음으로 산다는 출발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실상 자기가 망가진 형태로 사탄의 도구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금년에 믿음이라는 주제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그 믿음으로 산다는 일차적인 싸움의 대상이 여러분의 자신입니다. 여러분 자신 안에 있는 좌절, 낙심, 연약함, 비겁함, 불순종의 흔적들, 내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면서 믿음으로 사는 자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의 모순 속에서

  두 번째,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믿음으로 살도록 그냥 두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온갖 일들은 모두가 사탄의 충동 하에 있습니다. 이 땅위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입니다. 이 땅의 것은 영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하나도 온전한 것이 없습니다. 다 병들어 있습니다.

  어느 교사의 탄식입니다. 숙제를 잘 해오는 아이가 숙제를 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참 모범적으로 수준있게 숙제를 잘 했는데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렀습니다. “얘야, 너 왜 오늘 숙제를 하지 않았니?” “엄마가 편찮아서요.” “그렇구나! 엄마 간호하느라 숙제를 못했구나.” 아이가 너무 당황하면서 “선생님 사실은요, 지금까지 엄마가 숙제를 해 준 거예요.” 교사가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숙제를 잘 해 오는 아이들이 모두 가짜가 아닌가? 하고 살피게 되었습니다. 살펴보니 대행숙제가 여기 저기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중고등 학생들이 어려운 숙제를 대행업에 맡겨서 한다는 그런 보도가 한번 있었습니다. 지금 인터넷 사이트에 숙제 대행업이 여러 개가 있습니다. 모순이고 부조리입니다. 무엇이 실체인지 우리가 모릅니다. 이 세상은 드러나지 않는 내면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온갖 비리와 부조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과 더불어 싸워 이겨야 합니다. 타협을 해서는 믿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어느 대기업의 임원되는 장로님은 장관과 술자리 하면서 폭탄주를 거절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다고 합니다. 폭탄주를 돌리는데 모두 희희낙락 하면서 분위기가 고조되는데 장관 옆에 앉은 이 장로님에게 폭탄주를 권했습니다. 사업상 장관을 모시고 대접하는데 장관이 폭탄주를 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로님은 “장관님, 저는 크리스챤입니다. 술을 못합니다.” 장관은 정색을 합니다. 얼굴색이 변합니다. 그렇게 모두 웃고 떠들던 술좌석이 조용해졌습니다. 무슨 벼락이 떨어질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요, 크리스챤은 술을 먹지 않습니까?” “예, 저는 먹지 않습니다.” “다들 잘 먹던데?” “예, 그러나 저는 먹지 않습니다.” 그때 술잔을 내려놓고 장관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오늘 진짜 예수꾼을 만났구만.” 그때부터 폭탄주를 권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분명하면 잠시 후에는 우리를 알아주는데 타협을 하면 잠시 후에 ‘네가 무슨 장로라고, 네가 무슨 크리스챤이라고’ 속으로 비웃습니다. 사탄은 그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극단적인 예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돈을 좀 모으려면, 곁길로 가면 돈이 좀 보이는데 바른 길로 가려니까 돈이 잘 잡히지 않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유혹입니다.

  한 목사님의 간증은 그가 13살 때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종가집의 종손입니다. 13살 때 믿음이 있어서 제사를 거부했습니다. 옛날 종가집의 종손이 제사를 거부하면 그것은 벼락이 떨어지는 일입니다. 13살짜리가 제일 겁내는 사람은 할아버지입니다. 종가집의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손자를 보고 꾸중을 하면 견딜 사람이 없습니다.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그런데 13살짜리가 기어코 제사지내는 것을 거부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절을 할 수 없습니다.” 종가 집에 어떤 난리가 났을 줄은 짐작이 갑니다. 

  세상의 모순은 우리를 믿음으로 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과 더불어 싸워야 합니다. 쉽게 포기하고, 쉽게 타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넘어서야 합니다. 여러분의 직업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 모르지만 저도 여러분과 똑같은 세상에 살고 있고, 이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이 무엇인지를 똑같이 알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불가피한 일도 있습니다. 그 문제를 가지고 제게 상담을 해 옵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그렇게 하십시오.” 라고 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말씀의 원칙을 말할 뿐입니다.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지 내가 장려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도 내가 그것을 허락, 장려, 격려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원칙대로 말만하고 끝날 뿐입니다.

  만약 교회 지도자의 신학의 선이 무너진다면 교회의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순은 너무도 우리를 극하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여기 오기 전에 이미 승부가 난 것입니다. 여러분이 엿새 동안 어떻게 살았는가? 그것이 오늘 예배의 승부가 난 것입니다. 이 예배를 하나님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예배드리는 자세, 예배순서, 예배 분위기가 아니라 엿새동안 세상에서 여러분이 어떻게 승리하고 왔느냐 입니다. 어떻게 살고 왔는가? 하는 것이 이 예배를 복되게 하고 은혜받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모순 속에서

  셋째, 사탄은 교회를 공격합니다. 교회를 바로 알아야 하고, 교회의 약점을 이해하고, 교회의 모순을 이겨가야 합니다. 마귀는 내 자신 안에서 나를 공격합니다. 그러다가 안 되면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나를 넘어지게 합니다. 그러다가 안 되면 교회 안에서 나를 넘어지게 합니다. 이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세상에서 상처받는 것은 교회 와서 위로를 받는데 교회에서 상처받는 것은 위로 받을 곳이 없습니다. 이것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는 우리 자신들이 모순된 존재들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도 몹쓸 사람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 때문에, 그가 섬기는 교회가 결코 몹쓸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거룩한 교회입니다. 지도자에게 실망하는 교인이 있습니다. 교인끼리 서로 실망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실망시키는 그 한사람 때문에 전체 교회를 매도하면 안 됩니다. 그 한사람의 모습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 교회가 사탄의 공격장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 교회 안에 자유롭게 출입을 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허용합니다. 성도가 성공한 그 자리에도 사탄이 와서 그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꿈을 이루었습니까? 꿈을 이룬 그 자리에 사탄이 배석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교회 안에서 우리를 넘어지게 합니다. 이것을 극복해야만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리라” 이것은 말씀의 교리화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믿든지 안 믿든지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내가 믿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나의 말씀이 되게 하려면 믿음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려면 세 가지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나 자신, 세상, 교회안의 모순과 싸워 이기는 믿음의 승리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언제나 믿음편에 서십시오. 불신앙편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사탄은 포장만 했지 전부 가짜입니다.

  여러분 귀신들린 사람이 웃는 것을 보셨습니까? 귀신들린 사람이 웃는 것도 실감있습니다. 그러나 귀신들린 사람의 웃음은 한 가지도 기쁨으로 웃는 웃음이 없습니다. 그것은 빈정대는 웃음이고, 노리는 웃음입니다. 악령의 웃음입니다. 불완전한 것입니다. 하나도 완전한 것이 없습니다. 이 땅위의 것은 근본적인 영적 가치에 있어서는 그렇게 불완전하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 세상 것이 그렇게 좋아 보이십니까? 그 내면에는 귀신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것 때문에 넘어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은 완전한 것이 없습니다. 좋아보이는 것 뿐이지 좋은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다 좋은 것입니다. 새 것입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좋은 것은 우리에게 복된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보기에 좋은 것은 귀신의 웃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땅위의 것을 목적화하면 안 됩니다. 땅위의 것 때문에 믿음을 타협하고, 세상 것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하고, 땅위의 것 때문에, 인간적인 것 때문에 내 믿음의 양심을 져 버리면 둘 다 잃어버립니다.

  맺는 말

  미국 남북전쟁의 영웅, 아브라함 링컨의 예화를 봅니다. 한번은 참모가 와서 “각하, 안심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편입니다. 전쟁은 반드시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링컨이 그 때 조용히 말했습니다. “이봐. 하나님은 우리 편에도 계시고, 저 쪽 편에도 계시는 거야.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야 되는 거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은 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은 믿음입니다. 2004년도 사탄의 편에서 꾸물거리지 마시고 믿음의 편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짧은주소 : https://goo.gl/6ywD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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