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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심(熱心) / 롬 1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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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熱心) / 로마서 12:9-13 


오늘의 말씀 제목은 열심입니다. 이 단어에서 주목할 것은 열과 심이 만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뜨거울 열자에 마음 심 자, 그러므로 열심이란 한 마디로 뜨거운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열이란 마음으로 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만약 열을 마음으로 받지 못하고, 그 열이 머리로 올라가게 되면 우리 몸에 이상 현상이 나타납니다. 우리 인간의 머리는 일단 열을 받으면 그 기능에 이상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마치 열 받은 컴퓨터가 망가지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머리에 열 받은 사람, 열 받지 않았을 때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들을 일단 저지르고 봅니다. 해서 뜨거울 열자와 머리 두자는 만나지 않습니다. 열두라는 말이 없는 까닭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살다 보면 열 받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심하실 것, 그 열을 머리로 받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혹시 내 머리가 열을 받을 것 같다 싶으면 어서 심호흡하시고, 먼저 머리를 식히시기 바랍니다. 혹 내 사랑하는 누군가가 머리로 열을 받는 것 같으면, 그 땐 어서 식혀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열 받고 있는 사람에게 약을 올리며 부채질 하는 사람, 가장 나쁜 사람입니다. 일단 식혀 주시기 바랍니다. 인사합시다.

<<제가 식혀 드리겠습니다. 머리로 열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마음은 머리와 달리 따뜻해야 합니다. 열이 식어 마음이 차가와질 때 오히려 이상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일단 차가워진 마음의 소유자, 그를 만나면 찬 바람만 붑니다. 어찌나 쌀쌀맞게 구는지, 같이 있고 싶은 마음조차 없어집니다. 왜? 그 마음에 열 대신 냉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엔 열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는 평생 성령이 주시는 불을 품고 뜨거운 마음으로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의 뜨거운 마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식을 줄을 몰랐습니다. 아니,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그의 가슴 속에 타고 있는 성령의 불을 끌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정치적인 박해도, 심지어 린치와 테러까지도 주님을 향한 바울의 뜨거운 마음을 식힐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신 말씀에서 바울 선생님은 열심을 품으라 하십니다. 열심을 품고 사는 인생이 가장 행복한 인생인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권면을 다시 읽어봅시다. / 12:11 / (읽기) / 자, 거기“열심을 품고”라는 표현에 주목합니다. 이 표현은 헬라어로 물이 열을 받아 펄펄 끓는 것처럼, 성령을 받아 뜨거워진 마음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열심을 품으라 하지 않으시고 열심을 품고 무언가 하라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열심을 품은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내 마음을 뜨겁게 달구는 이유가 달리 있다는 뜻입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해야 할 일, 그것은 곧 주를 섬기는 일입니다. 해서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하신 것입니다. 우리 한번 크게 외치며 우리 마음에 새겨 봅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깁시다!”자, 이제 옆의 분과 뜨거운 마음으로 인사하고 가실까요?

<뜨거운 마음으로 사랑하겠습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시기 바랍니다.>

자, 그러면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는 명령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여기서 두 단어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9절의 첫 단어 사랑, 12절의 첫 단어 소망입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의 말씀을 엮어주는 키 워드가 셋이군요. 사랑과 열심과 소망, 가운데에 열심이 있고요, 그 양편에 사랑과 소망이 있네요. 주를 섬기는 뜨거운 마음엔 두 날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사랑이요 다른 하나는 소망입니다.

중요한 대목입니다.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면 우린 사랑하게 됩니다. 반대로 마음이 뜨겁지 못한 사람, 평생을 살아도, 아무리 오래 살아도,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제대로 된 사랑 한번 해 보지 못합니다.

동시에 마음이 뜨거워지면 소망을 품게 됩니다. 뜨거운 마음엔 뜨거운 소망이 일어납니다. 정말입니다. 마음이 차가운 사람, 소망을 품지 못하는 마음, 살아도 산 것이 아닙니다. 소망이 없으니, 살맛조차 나지 않는 것입니다. 해서 열심, 곧 뜨거운 마음에 사랑과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사랑과 소망으로 늘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자, 그러면 열심의 두 날개, 사랑과 소망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며,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메시지를 받겠습니다.

1. 뜨거운 마음은 뜨거운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 12:9-10

첫째, 뜨거운 사랑, 그것은 거짓이 없는 사랑입니다(9절). 거기 9절에 보니, 사랑엔 거짓이 없다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사랑을 깨는 주범은 거짓입니다. 거짓은 우리의 마음을 싸늘하게 만듭니다. 그토록 뜨겁게 사랑하다가도 일단 그 사이에 거짓이 끼어들면 어느 새 사랑도 마음도 싸늘하게 식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거짓을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사랑한다면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냥 용서를 빌면 됩니다. 대개 거짓을 말하는 경우는 내가 무언가 잘못을 범했을 경우입니다. 그러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도 절대로 거짓말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냥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거짓 없는 사랑, 가장 뜨거운 사랑입니다. 거짓 없는 사랑, 가장 용감한 사랑입니다. 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과 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거짓을 말하는 자, 그는 가장 나쁜 죄인입니다. 부디 거짓 없는 사랑으로 평생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연습 /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둘째, 뜨거운 사랑이란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는 사랑입니다(9절). 그렇습니다. 뜨거운 마음의 소유자, 결코 악의 편에 설 수 없습니다. 뜨거운 사랑은 항상 선을 선택하고 선에 속합니다. 그런데 이 점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큰일입니다. 악에 대한 불감증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 사회의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악에 대한 불감증은 심각한 상태입니다.

한국의 경제계 인사들, 악을 미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악을 즐기는 듯 합니다. 한국의 정치인들, 선에 속하라는 말을 비웃는 것 같습니다. 권선징악? 이제 우리 사회에선 이미 시효가 지나버린 말 같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 교회와 한국 성도들 역시 이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데 있습니다. 이런 온갖 불의를 보고도 최소한 방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조리를 보면서도 여전히 침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 점에서 한국 교회는 꼭 병원 아니면 학교 같습니다. 평생 치료만 받으려 하고, 평생 배우려고만 합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판치는 사악한 무리들에 대하여는 천만 성도가 있어도 속수무책입니다. 밤하늘을 수놓는 서울 거리의 십자가 네온사인이 오히려 민망할 지경입니다. 아니오,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의 제자들이 언제까지 여기서 젖만 먹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제 젖병 내 던지고, 이부자리 걷어내고, 떨쳐 일어나 죽는 한이 있어도 악의 무리와 맞서 싸워야 합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이대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손해 보는 것 같아도 목숨 걸고 선의 편에 서시기 바랍니다. 주와 함께 영적 전투에서 꼭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겠습니다.>

셋째, 뜨거운 사랑은 내가 먼저 형제를 사랑하고 자매를 존경하는 사랑입니다. / 12:10 / (읽기) / 거기 10절의 맨 마지막 단어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서로 먼저 하며, 사랑하되 서로 먼저 사랑하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뜨거운 사랑은 내가 먼저 하는 사랑입니다. 가슴이 뜨거운 사라, 당신이 사랑해 주기를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왜? 내 가슴이 뜨겁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요, 대개 사람들은 사랑이란 받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아니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사랑이 오기까지 여기 앉아서 기다립니다. 그러니 외롭지요. 그러니 짜증나지요. 그러니 섭섭하지요. 그러니 점점 마음이 차가워지지요. 아니요, 사랑은 내가 먼저 주는 것입니다. 하여 서로 먼저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요 10절을 보니, 형제 사랑에는 존경이 필요하군요. 사랑에 존경을 더하면 금상첨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해서 담임목사는 우리 동광 가족들이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든 사랑받고 존경받는 분들이 되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비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조건 먼저 사랑만 하시기 바랍니다. 무조건 먼저 존경하시기 바랍니다. 하여 사랑받고 존경받는 귀한 성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인사하며 다짐하기 / 제가 먼저 사랑하겠습니다. 제가 먼저 존경하겠습니다.>

자, 지금까지 열심, 곧 뜨거운 마음의 한쪽 날개인 사랑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열심의 또 다른 쪽 날개인 소망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뜨거운 마음엔 소망이 넘친다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뜨거운 마음의 소유자, 곧 소망의 사람입니다. 그러면 소망의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말씀을 통해 알아봅니다.

2. 뜨거운 마음의 소유자, 소망의 사람입니다. / 12:12-13

첫째, 12:12 / (읽기) / 소망의 사람, 환난 중에 참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 자신이 엄청난 환난을 겪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 환난을 이겨낸 힘이 무엇이었을까? 돌아보니, 바로 소망이었습니다. 소망이 있었기에 환난 중에도 참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소망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 우리가 참아내지 못할 환난은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참아내지 못할 환난이란 이 하늘 아래 없습니다. 하여 환난 중에 참으며 오히려 소망으로 즐거워하라 하신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혹시 요즘 역경과 환난 속에서 힘들어하고 계십니까? 왜 내 인생만 이렇게 고달픈 거냐고 하늘 향해 원망하십니까? 이젠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고, 해서 이쯤에서 이런 못난 인생 아예 포기하겠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아니오, 소망을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금만 더 참고 견디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생각하며, 오늘의 고난을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열심을 품은 자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꼭 이겨내실 줄 믿습니다. 주 안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12절 말씀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군요. 한 마디가 더 있는데요. 무엇입니까? 기도에 항상 힘쓰라! 그렇습니다. 오늘의 환난을 이겨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 소망의 즐거움과 항상 쉬지 않는 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고서 소망의 즐거움을 누릴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기도로 익히지 않는 소망은 설익은 소망입니다. 그렇게 익지 않은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설익은 소망은 오히려 우리 생에 아편이기 쉽습니다. 기도가 빠진 소망, 하여 환난과 고통을 잠시 잊게 하는 진통제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소망으로 환난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하여 환난 중에도 항상 기도에 힘쓰라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는 인내입니다. 특히 환난 중에 하는 기도는 인내의 기도입니다. 하여 기도는 끝까지 참아 승리하게 하는 신비한 힘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전반전엔 참 잘 하다가, 후반전에 가서 그만 탈진하는 경우를 봅니다. 그러나 전반전 까지만 잘 하는 것은 잘 하는 것 아닙니다. 아무리 전반전에 잘 해도 후반전에 가서 지면 그 경기 전체를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로 승리하는 멋진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 12:13 / (읽기) / 아하, 여길 보니 소망의 사람은 그냥 앉아 있질 못하는군요. 그렇습니다. 소망의 사람, 일어나 일하지 않고서는 견디질 못합니다. 왜? 내 안에 소망의 즐거움이 넘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뜨거운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망의 즐거움을 품지 못한 자는 봉사의 즐거움을 모릅니다. 아니, 봉사하는 성도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봅니다. 이 바쁜 세상에 참 어리석다는 것이지요. 아니오, 봉사할 줄 모르는 인생이 진짜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소망의 즐거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요, 소망의 사람에게 주시는 봉사의 소명이 둘이군요. 13절 말씀에 보니, 하나는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는 일이요, 둘은 손 대접하기를 힘쓰는 일인데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손님 보다 먼저 우리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라 명하신 대목입니다. 히브리서 13장의 결론과도 같습니다. 먼저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기 동광 공동체 안에서, 우리 하늘 가족 안에서,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여기 공급이란 단어는 구제라는 단어와 같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 안에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먼저 구제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우리 안의 어려운 형제자매를 놓아두고, 바깥손님만 잘 대접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소망의 사람, 우리 공동체 안에서의 구제를 먼저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내 마음에 넘치는 소망의 즐거움이 있으십니까? 기도에 응답을 받아 기쁘십니까? 주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에 충만하십니까? 이제 그 소망, 그 은혜, 그 사랑으로 우리 안에 혹 다급한 일 당한 분은 없는지, 지금 말 못할 어려움에 눈물짓는 성도는 없는지, 세심하고 꼼꼼하게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혹 그런 분을 발견하시거든 오른 손이 하는 일이 왼 손이 모르도록 그 분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어서 공급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길입니다. 그것이 소망으로 즐거워하는 길입니다. 그것이 하늘의 복을 받아 누리는 길입니다.

<<이 소망을 담아 다짐 / 제가 당신을 책임지겠습니다.>>

그런데요, 성경은 항상 우리의 사랑이 울타리 안에 머무는 것을 경계하십니다. 가장 가까운 데서부터 사랑을 실천하라 하신 주님, 이제 그 사랑으로 손님을 대접하라 하십니다. 그런데 당시 손 대접하는 일이란, 나그네를 자기 집에 들여 먹여주고 재워주는 일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민박에 해당하는데요, 그러므로 손님 대접한다는 말은 내 가정을 공개해야 하고, 같이 먹고 자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한자로 풀면 동찬 하며 동숙하는 일이었는데요, 이는 뜨거운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여 손 대접하는 일이 곧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일의 마지막 관건이라 하신 것입니다.

<<오직 사랑과 소망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더 긴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늘엔 아름다운 별이 있고, 이 땅위엔 아름다운 꽃이 있듯이, 우리 인간의 마음에는 뜨거운 사랑이 있습니다. 해서 사랑을 품은 인간은 꽃보다 아름다운 법, 더욱 감사한 것은 오늘 하나님은 우리 동광 교회를 사랑하셔서, 꽃보다 아름다운 주님의 강한 제자 24분을 새롭게 세워주신 것입니다. 잠시 후 만나시겠지만, 정말 이 분들은 어느 한 분 예외가 없이 꽃 보다 아름다운 분들입니다. 그 가슴 속에 뜨거운 사랑이 불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분들과 함께 우리 교회는 더욱 뜨거운 교회, 더 행복한 교회가 되리라 믿습니다. 마음껏 축복해 주시고 또한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뜨거운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받는 것이라고 외치며 여기 홀로 앉아 있는 사람, 가장 불쌍하고 외로운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 일어나 뜨겁게 사랑하십시다. 저 천국을 이미 소유한 성도답게, 항상 기도하면서, 소망의 즐거움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 승리하십시다. 사랑과 소망으로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십시오

마지막으로 오늘 졸업하시는 주님의 제자들과, 또한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여러분 모두에게 말씀 선물 하나 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열심을 품고 뜨거운 마음으로 주를 섬기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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