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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냇가에 심은 나무 / 시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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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시냇가에 심은 나무
성경본문 : 시편 1편 1~3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편 1~3절) 

<목회기도>
 
생명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추위를 느낄 수 있음에 감사 드립니다.
더웠던 때를 그리워할 수 있음에 감사 드립니다.
하나님, 이 추위로 인해 고생하는 이들이 있어 기도합니다.
사는 것이 어려워 따뜻하게 지내지 못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여 주시옵소서.
기둥교회에 속한 이들 중에
전후방에서 국방의 의무를 감당하는 군인들,
길거리에서 힘들게 어렵게 근무하는 경찰관/소방관들…이 있습니다.
저들에게 평안함으로 돌보시는 은총으로 함께 하시옵소서.
특별히 구하옵기는 성도들 중에 병들어 몸이 괴로운 이들이 있습니다.
큰 수술을 받고 회복중인 이들, 큰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한 이들이 있습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구합니다.
저들의 아픔을 헤아리시고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이 복된 주일 아침, 예배의 자리에 있는 복을 주신 하나님!
우리들의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옵소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사는 화목을 원하지만
이 자리에 함께 있지 않은 심령들이 있어 안타까움으로 기도합니다.
저들이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게 하시옵소서.
오늘도 구석구석에서 이름 없이 빛 없이 애쓰는
모든 봉사자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믿고 감사 드립니다.
이 시간 말씀 들고 선 부족한 종을 붙드셔서
능력 있게 말씀 전하게 하시고 성령께서 역사 하여 주셔서
이 시간 이 자리에서 영육간에 치료받고 회복되는 체험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서 만난 것이 기쁨이요 감사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감사합니다.
옆의 분들과 [복(福)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라고 인사하십니다.
 
우리는 지난주간 명절을 지내면서 복을 많이 빌었고
'복 받으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또한 금년 송구영신 예배 때부터 '어떤 사람이 복(福)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말씀을
계속해서 저는 전하고 있고 여러분은 듣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복(福)있는 사람입니까?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1:1~2)
 
우리는 이미 복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악인의 꾀와 죄인의 길과 오만한 자의 자리'와 상관없이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말씀의 물가에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어떤 결과를 얻는 가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어떻게 된다고 했나요?
따라서 합니다.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1:3)
그러나 그냥 "다 형통"한다고 하지 않고
앞 부분에 정확한 이해를 위해 자세한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복(福)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시1:3)
 
나무가 잘 자라서 열매를 맺으려면 그 뿌리를 바른 곳에 깊이 내려야 합니다.
나무가 딱딱한 흙이나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길이나,
돌밭이나 가시 떨기가 있는 곳에서 자라 뿌리를 내린다 해도
그런 곳에서는 잘 자라지 못하고 열매를 거둘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가뭄을 타지 않기 때문에
어떤 환경에서도 잎이 무성하여 풍성하고 여유 있는 결실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이… 바른 곳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3절 말씀의 첫 단어는 "저는"입니다.
이  "저는"이 무엇을 가리킵니까?
2절에 나오는 복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린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복 있는 사람의 영혼은 활기찹니다.
왜냐하면 바르게 심겨졌기 때문에… 시냇가에 심겨졌기 때문입니다.
나무도 잘못 심기면 안되지만 사람도 잘못 심겨지면 안됩니다.
그런데 잘못 심겨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잘못 심겨진 교인들도 많습니다.
나무가 시냇가에 심겨져야 하듯이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두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곳에 뿌리를 두고 살고 있습니까?
- 어떤 사람은 돈에 뿌리를 두고 삽니다.
돈 때문에 살고 돈 벌기 위해 삽니다. 돈 타령만 합니다.
- 어떤 사람은 먹는 타령만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먹자고 하는 일 아니냐"고 합니다.
여러분은 먹기 위해 삽니까?
어디에 가면 뭐가 유명하고, 무엇을 먹을까… 먹는 얘기만 합니다.
- 어떤 사람은 자식에 뿌리를 두고 삽니다.
만사가 자식 자랑이고, 자녀에 대한 얘기만 합니다.
-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은 향락에 뿌리를 두고 삽니다.
어떻게 하면 즐거울까,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살까… 
노는 일, 즐거운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구원받은 기쁨으로, 천국의 소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대로 살지 못하는 낙망'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예배드리고도 세상에 나가서 죄를 짓습니다.
다시 부끄러운 마음으로 교회 나와 회개하고 결심하고
또 나가 죄짓고… 그런 자신이 한심하여 탄식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예수 믿는 사람은 구원의 방주를 떠나서는 안됩니다.
그래도… 예수 믿는 사람은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복 있는 나무가 물가에 심겨져 있듯이
복 있는 사람은 말씀의 물가에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행사의 형통함이 있습니다.
 
신앙 생활하는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교회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예배에 참석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성경을 읽고 배웁니다.
왜냐하면 거기가 말씀의 시냇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주일에 교회에 왜 오십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물가에 심기운 나무 같은 복(福) 있는 사람은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1:3) 라고 했습니다.
 
[형통]이란 말이 무엇입니까?
형통(亨通, 형통할 형, 통할 통, prosper)
일반적으로 '모든 일이 잘 되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모든 하는 일이 잘 되어서 원하는 대로 잘 풀리고
물질적으로는 번영하고 풍성해 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며 사는 것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사는 복"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물가에 심기운 나무는 바람도 타지 않고 가뭄도 겪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물가에 심기운 나무는 바람이 불어도, 가뭄이 닥쳐도, 어려움을 당해도… 
바른 곳에 뿌리 내렸기 때문에 아무리 흔들고 가뭄이 닥쳐도
잎이 푸르고 때를 따라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은
"하나님의 은혜로 어떤 경우에도 낙망치 않고, 뿌리뽑히지 않고, 마르지 않고…
결국은 선한 열매를 거두는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탄 구원의 방주인 배, 교회에 등록하여 신앙생활 하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해도
우리들의 믿음의 항로가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천국의 항구에 들어가기 전입니다. 항해중입니다.
그러므로 풍랑도 만납니다. 흔들리기도 합니다. 멀미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
 
예수 믿어도 핍박을 받을 수도 있고,
때로는 눈물을 흘릴 수도, 탄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외면하시지 않습니다(요14:18).
하나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마28:20).
그러기에 힘이 들고 어려워도 찬송하며 가는 것이고
험하고 높은 길도 싸우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곳을 걸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형통입니다.
 
▶ 예수 믿는 우리는 영생을 보장받았습니다.
-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예수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 요한복음 1장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갈라디아서 3장 26절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 예수 믿는 우리는 천국 시민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 빌립보서 3장 20절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 예수 믿는 우리 안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 요한일서 4장 15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 예수 믿는 사람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은 성전입니다.
- 고린도전서 3장 16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 에베소서 2장 20~22절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하나님의 자녀는 저주와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머리 속에, 가슴속에, 삶 속에, 생활 속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예수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천국 시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주와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저주와 상관이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때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라],
[저주를 풀어야 한다] 는 내용의 책이 있었습니다.
집안에, 가문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무당, 점쟁이들이 하는 소리와 똑같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잘 안되고,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이
가계에 무슨 저주가 흘러서 그렇습니까?
그래서 그 저주를 끊으려면 액땜하듯
특별한 기도(?)를 받아야 하고, 특별한 안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바보 같은 내용이 담긴 책이 팔리고 있고
그런 책을 보고 다른 사람에게 읽어보라고 권하는 바보도 있습니다.
그런 책 보지 마세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그런 책 볼 시간이 있으면 성경을 읽으세요.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3:13)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받을 저주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다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는데(갈3:26, 빌3:20)
예수 믿고 영생을 얻었는데 어떻게 저주가 우리와 상관이 있으며
어떻게 우리에게 우리의 가문에 저주가 흐른다는 말입니까?
 
여러분, 가슴을 펴시고 당당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바람 불 수도 있고, 흔들릴 수 있습니다.
눈물이 날 수 있고, 한숨 나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은 복 있는 사람은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됩니다.
 
물론 살기가 힘이 듭니다. 피곤하고 속상한 일도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마음 상하기도 합니다.
기막힌 사연을 가지고 있고 말못할 고민도 많습니다.
그러나 힘들고, 피곤하고, 마음에 상처가 있어도
그 살면서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악인의 조언과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좌석에서 하지 마십시오.
쉽게 해결될 것 같아 그 길로 가면 그게 망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다 보면 못된 사람들이 잘되는 것이 보입니다.
열심히 주일성수 하고 예배 잘 드리고, 성경 읽고, 십일조 드리고…
어떻게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해도 일이 잘 안풀리는데
옆의 사람은 바르게 생활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돈도 잘 벌고 잘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마음에
"내가 그 동안 잘못 살았나. 나도 저렇게 살아볼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잠23:17)
죄인의 형통은 세상적인 형통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삽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이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가서 살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좁은 이 세상이 우리의 무대가 아닙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편한 것, 좋은 것, 쉬운 것,
즐겁고 맛있는 것…만을 찾다가는 스스로 파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우리를 향해 유혹하는 여러 가지 악인의 꾀들이 있습니다.
우리를 향해 열려 있는 죄인의 길이 얼마나 넓습니까.
우리에게 와서 앉으라는 오만한 자의 자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을 외면하고, 하나님을 배반해야 하는 자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곳에서 달콤하게 유혹하는 것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저술가이며 강연가인 '지그 지글러'(Zig Ziglar)라는 사람이 쓴
[정상에 오르는 길에서 배운 것- What I learned on the way to the top.]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내용 가운데 '에스키모인들이 늑대를 사냥하는 방법'에 대해 나옵니다.
에스키모인들은 늑대를 잡기 위해 아주 날카로운 칼에 피를 발라서 얼려
늑대들이 지나는 길에 세워 놓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피 냄새를 맡은 늑대가 그 얼은 피덩이를 핥다가
자기의 혀까지 무감각해져서
나중에는 자기 혀가 피 얼음 속에 숨겨진 칼에 잘려서
자기 혀에서 나는 자기의 피를 빨다가 지쳐서 죽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죽은 늑대를 에스키모인들이 끌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이처럼 많습니다.
그런데 잘못 혀를 대었다가는 내 혀가 잘리는 것도 모르고
내 피가 흐르는 줄도 모르고 핥다가 결국 망하게 됩니다.
 
 
착각의 십자가를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복을 공짜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누구든지 하나님이 주신 독생자를 믿기만 하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복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멸망치 않게 하신다고 했는데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생각대로 말하고 자기 생각대로 합니다.
 
예수님이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기 때문에 져야 하는 아픔이 있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작별해야 하는 것도 있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십자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다 십자가로 생각하고 참고 살아야지요.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는 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는데
  십자가로 생각하고 견뎌야죠."
그러나 평소 너무 많이 먹고 불규칙한 식사 생활로 인해
위장병이 생긴 것이 십자가입니까?
자신이 몸 관리를 잘 못하고 음식에 지나친 탐욕을 부리다가 얻은 병을
십자가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방탕하고 사치해 생긴 가난이 십자가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겪는 고난이 다 십자가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분명한 잘못과 실수로 야기되는 고난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복음의 십자가'는
신앙을 버리면 겪지 않아도 될 불이익과 고난입니다.
순전히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맞게 되는 고난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눈물 흘리고 아픔 겪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적인 십자가입니다.
자신이 잘못해서, 방탕하고 타락해서 겪는 고통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떤 짐을 지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살기로 결심하셨습니까?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복있는 사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힘들고 어려워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형통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사시기 바랍니다.
 
2월부터 교역자들이 여러분의 가정을 심방할 것입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말씀을 들고 기도하러 가는 심방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가족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에 심방 받으시기 바랍니다.
가급적 식구들이 다 있는 시간에 심방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번 심방 때는 스티커를 교역자들이 준비해 갈 것입니다.
여러분의 집에서 밖으로 나오는 문의 손잡이가 있는 곳에 붙여 드릴 것이비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살아 보자고…,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복 있는 사람으로 살자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형통의 삶을 살자고, 복 있는 사람으로 살자고…
이 스티커를 준비했습니다.
여러분, 복 있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형통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복 있는 사람과 복 없는 사람,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은 차이가 많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가난해도 오히려 그 가난을 평안의 기회로 삼지만
  불행한 사람은 가진 재물도 고통의 원인으로 삼습니다.
? 행복한 사람 눈에는 남의 장점이 잘 보이지만
  불행한 사람 눈에는 남의 흠과 허물만 잘 보입니다.
? 행복한 사람은 자기의 조금 가진 것도 이웃과 나누어 가지려 하고,
  불행한 사람은 남의 것까지도 다 자기 것으로 취하고 싶어합니다.
? 행복한 사람은 많은 시련과 고난 실패 속에서도 교훈을 찾아내지만
  불행한 사람은 아무 탈이 없는 안일 속에서도 마음의 죄를 짓습니다.
? 행복한 사람은 남의 잘못에서도 자신의 책임을 찾아내고,
  불행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조차 남의 탓으로 돌리려 합니다.
? 행복한 사람 얼굴에는 하늘의 평화가 내려지는 흔적이 있고
  불행한 사람의 얼굴에는 세상의 욕심에 가득 찬 흔적만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사시렵니까?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형통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함이 있는 줄 분명히 믿습니다.
하나님, 십자가를 지고 주님 따르기 원합니다.
때로 육신이 연약하여, 마음이 연약하여 믿음이 없어 십자가를 외면할 때도 있습니다.
연약한 우리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주님 따르고 사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가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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