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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십시오 (히 12:18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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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히브리서 12장 18 - 29절         
제 목 :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십시오


< 표준새번역 > - 성경원어에 제일 충실하게 번역하고자 했던 성경

12:18 여러분이 나아가서 이른 곳은 시내 산 같은 곳이 아닙니다. 곧 만져 볼 수 있고, 불이 타오르고, 흑암과 침침함이 뒤덮이고, 폭풍이 일고,

12:19 나팔이 울리고,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리는 그러한 곳이 아닙니다. 그 말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더 말씀하시지 않기를 간청하였습니다.

12:20 그들은 d) "비록 짐승이라도 그 산에 닿으면 돌로 쳐죽여야 한다"하신 명령을 견디지 못하였습니다. (d. 출19:12,13)

12:21 그 광경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모세도 e) "나는 너무도 무서워 떨린다"하고 말하였습니다. (e. 신9:19)

12:22 여러분이 나아가서 이른 곳은 시온 산,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시인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여러분은 축하 행사에 모인 수많은 천사들과

12:23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집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완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12:24 새 언약의 중재자이신 예수께 나아왔고, 아벨의 피보다 더 훌륭하게 말하는 그가 뿌리신 피 앞에 이르렀습니다.

12:25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분을 거역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 사람들이 땅에서 경고하는 사람을 거역하였을 때에, 그 벌을 피할 수 없었거든, 하물며 우리가 하늘로부터 경고하시는 분을 배척하면, 더욱더 피할 길이 없지 않겠습니까 ?

12:26 그 때에는 그분의 음성이 땅을 뒤흔들었지만, 이번에는 그분께서 약속하시기를 f) "내가 한 번 더, 땅뿐만 아니라, 하늘까지도 흔들겠다" 하셨습니다. (f. 학2:6,21(70인역))

12:27 이 한 번 더 라는 말은 흔들리는 것들 곧 피조물들을 없애 버리시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하시는 까닭은 흔들리지 않는 것들을 남아 있게 하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12: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으니, 감사를 드립시다. 그래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섬깁시다.

12:29 a) "우리 하나님은 태워 없애시는 불이십니다." (a. 신4:24)

표준새번역을 보시면 오늘 본문이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셨습니까? 오늘 본문은 히브리서의 기본 논리구조라고 할 수 있는 옛 언약(Old Covenant)과 새 언약(New Covenant)의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18-21절>까지는 시내산으로 대표되는 옛 언약의 한 특징에 대한 설명.

<22-24절>까지는 시온산으로 대표되는 새 언약의 한 특징에 대한 설명.

<25-29절>은 멧세지.

옛 언약은 시내산으로 대표되며 새 언약은 시온산으로 대표됩니다.

옛 언약의 상징인 시내산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가시적인 것이었지만, 그러나 새 언약의 상징인 시온산은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비가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때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적인 실재(reality)입니다.

오늘 본문 <22절>에서 "너희가 이를 곳은"이 아니라 "너희가 이른 곳은"이라고 말씀하였듯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은 현재 누려지는 영적인 실재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은 미래에 죽어서 가는 천국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도리어 현재 누려지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가 지배되는 영역을 말합니다. 물리적 공간으로 나눌 수 없지만, 물리적 공간으로 가둬 놓을 수 없는 영적인 실체를 말합니다.

옛 언약의 상징인 시내산은 어떤 분위기가 연상됩니까? "불이 타오르고, 흑암과 침침함이 뒤덮이고, 폭풍이 일고, 나팔이 울리고, " 짐승이라도 그 산에 닿으면 돌로 쳐죽여야 한다"하시며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리는" 시내산, 어떤 분위기가 느껴지십니까?

꼭 SF 영화의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장엄함을 넘어서 위압감을 느끼게 하고 위압감을 넘어서 공포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시내산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기겁을 하고 제발 말씀하시지 말기를 간청했고 시내산에 올라오도록 초청을 받은 모세조차도 무섭고 떨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새 언약의 상징인 시온산은 어떻게 묘사되어 있습니까? 대표적인 특징을 성경은 "축하 행사(joyful assembly)", 공동번역에는 "잔치"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기쁨의 모임, 신나는 모임입니다.

누가 함께 하는 잔치입니까? "수많은 천사들",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예수님"과 함께 하는 잔치입니다.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는 옛 언약에 따라 믿음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총회라는 표현은 출애굽하여 광야를 거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던 표현입니다.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라고 하였으니, 하늘나라에 간 앞선 믿음의 선조들을 말합니다.

천사들과 먼저 믿은 믿음의 선배들과 세상의 절대 주권자인 하나님과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잔치입니다.

또 그 잔치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속죄하는 피, 아벨의 피와는 비교할 수 없이 넉넉히 속죄하는 능력, 정결케 하는 능력이 함께 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분위기를 느끼십니까? 천사들의 노래와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던 그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하는 기쁨의 잔치, 정죄하지 않고 내 죄와 허물을 다 용서해 주시고 새롭게 살도록 격려해 주시는 분위기... 그 가운데 있을 때에 어떤 느낌을 받겠습니까?

안심이 되지요? 신바람이 나지요? 환하게 웃을 수 있지요?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밝은 유모어가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심령이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감사하며 사랑의 마음이, 감격이 샘솟지 않겠습니까?

시내산으로 대표되는 옛 언약에는, 율법이 선포되고/ 율법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엄위함이고/ 또 율법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이 두려움으로 대표된다면,

시온산으로 대표되는 새 언약에는, 예수님의 피, 속죄하고 우리를 넉넉히 받아주시는 은혜가 내려지고/ 은혜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사랑이고/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은 잔치, 즐거움과 기쁨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이처럼 예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와 사랑 가운데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축제의 마당,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 은혜 가운데 잔치에 참여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늘의 예루살렘은 미래에 우리가 죽어서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은 그리스도인의 심령에, 성도들의 관계에, 우리들의 공동체 안에서 이미 실현되었고 누려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스도인, 우리가 누리는 삶은 형벌과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가 지배하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이 지배하는 환희의 삶입니다. 우리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은 위협과 공포가 아닙니다. 우리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은 은혜와 사랑입니다.

이 사실을 히브리서 기자는 다시 상기시켜 줍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묻겠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먼저 느껴지십니까? 아니면, 은혜의 기쁨이 다가오십니까?

아직도 하나님을 생각하면 나의 심령이 오그라들고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먼저 떠 오르신다면, 내가 정말 하나님과 화목했는가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확인합니까? 내가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 확인해 보십시오. 이것은 어떻게 확인했는가? 당신의 삶의 주인은 당신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이십니까?

정말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만큼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으십시오. 당신의 정직한 회심에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 주셔서 죄사함을 확증하시며 당신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를 더욱 앎게 함으로 당신이 잔치 가운데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나의 심령은 여전히 두려움이 지배하는데, 우리가 이른 곳은 은혜의 잔치자리다 우겨서 주장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겨서, 척해서 신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도리어 여전히 나의 마음은 하나님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지배적이라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의 멧세지 앞에 다시 서 보십시오. 예수님을 정말로 내 인생의, 나의 마음의 주님으로 모시고 그 분을 인정하고 따르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이 두려움이 아니라 은혜의 잔치가 되는 것은 우리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의 능력입니다. 그 은혜의 능력을 누리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내 마음에 정말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당신은 정말로 예수님의 뜻을 따르며 살기 원하십니까? 당신이 여전히 당신의 판단과 기분과 고집하는 한, 당신의 심령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주님으로서 정말로 온전히 맡겼을 때, 성령께서 은혜의 기쁨을, 문자 그대로, 부어주십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시내산 아래 있는 자들이 아니라, 시온산 가운데 있는 자들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시내산과 시온산으로 대표되는 이 선명한 대조를 한 후에 무엇을 말합니까? <18-21절>은 믿는 자들과는 이제는 상관없는 옛 언약의 시내산을 설명한 것이고 <22-24절>은 믿는 자들의 현 주소, 은혜의 잔치, 시온산에 대하여 설명한 것이고 그리고 그 다음에 히브리서 기자는 무슨 멧세지를 줍니까?

<25절>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분을 거역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 사람들이 땅에서 경고하는 사람을 거역하였을 때에, 그 벌을 피할 수 없었거든, 하물며 우리가 하늘로부터 경고하시는 분을 배척하면, 더욱더 피할 길이 없지 않겠습니까?"

옛 언약의 사람들이 땅에서 경고하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거역했을 때, 엄중한 벌을 받고야 말았는데 하물며 오늘 우리가 하늘로부터 경고하시는 하나님을 거부한다면 더 엄중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아이들의 유익을 위하여 맨날 이것 해라, 저것 하지 말라 공포 분위기에서 양육시킨 고아원 보모의 말을 안들어도 혼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애지중지 사랑과 은혜로 키워준 어머니의 말을 안들으면 이 아이가 혼나는 것은 더 핑계거리가 없지 않습니까?

인간 사회에서도 못된 인간의 대표적인 부류의 사람으로 누구를 꼽습니까? "배은망덕한 사람"이지요. 은혜를 모르는 사람. 오늘 우리가 이른 곳, 이처럼 놀라운 사랑과 은혜의 자리인데 그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경고를 무시한다면, 우습게 여긴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환하지 않습니까? 아니 어떻게 그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할 수가 있겠습니까? 깨우칩니다. 권계합니다.

시내산에서 들려진 말씀이 땅을 진동하였지만, 그러나 장차 하나님께서 땅과 하늘을 모두 뒤흔드시는 일을 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뒤흔드심으로써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깨끗하게 없애 버릴 수 있는, 완전하게 심판하시는 소멸하는 불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온 땅과 하늘을 다 뒤흔드셔도 "흔들리지 않는 나라", 하나님의 나라 가운데 있으니 이 은혜가 얼마나 놀랍고 큰 은혜입니까?

오늘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의 잔치 복판에서 살고 있는 심령이라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늘과 땅 모든 것이 심판을 받아 다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은혜로 받았다면, 그 은혜와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거나 가볍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 하나님께 감사하며, 마음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그 하나님을 높여 드림이, 경건과 두려움으로 예배드림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응답하심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28절> 이 멧세지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개역한글판 <28절> "그러므로... " '은혜를 받자'는 '감사를 드립시다'는 의미입니다. 감사는 헬라어로 '유카리토스'라고 하고 하는데 이 단어는 '카리스', 은혜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은혜에 대한 응답이 감사라는 뜻이지요? 하나님의 은혜를 깨우쳐 아는 마음의 응답이 감사입니다.

감사하며 그 다음에 뭐라고 합니까?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예배할찌니)" 하나님을 섬긴다, 하나님을 예배한다 의미상으로는 같은 뜻입니다.

예배, 영어로 worship이라고 하지요? 이 단어는 worth + ship 가치를 인정하다, 가치를 존중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그 가치를 높여드리며 인정해 드리겠습니까?

현대의 한 신학자가 성경의 모습과 너무 많이 동 떨어진 서구 교회의 모습,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취미나 사교 모임 정도로 밖에 생각지 않는 서구 교회를 향하여 고심을 하며 애타하던 중 한 마디의 멧세지를 이렇게 던졌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

여러분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십니까?

오늘날 사람들이 하나님을 부자 도깨비 방망이처럼 여기거나 심지어는 하나님을 핫바지로 여기는 배은망덕한 모습을 종종 보입니다.


예) 부자 도깨비 방망이 :

예) 핫바지 : 내 편의대로, 내 취향대로...

이 안타까운 현실 앞에서,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하나님의 더 엄중한 심판이 있는 무서운 미래 앞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사람들을 사랑하여 던진 멧세지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하나님의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 나를 존귀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귀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삼상2:30>

소멸하시는 불, 은혜를 모르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를 모두 다 없애 버리시는 하나님, 소멸하시는 불같은 하나님이시라면, 역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여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자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하시겠습니까?

책임져 주시지 않겠습니까? 넉넉히 인도하시지 않겠습니까?

예) 옥수수 박사, 김순권 - <신28: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청소년기에 이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삶을 드려왔습니다.

아침이면 일어나 성경읽고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교회의 모임에 정성으로 참여하고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는 마음, 그 마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신28:1>처럼 자신을 존귀하게 세워 주셨음을 그는 간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존귀히 여기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역사하십니다.

서양 속담에 "어중간한 진리가 거짓보다 더 나쁘다"고 합니다. 하나님 알아가는 마음과 삶에서 제발 어중간한 태도를 벗으십시오. 소멸하는 불이신 하나님이 당신에게도 임할 수 있습니다.

도리어 우리에게 내려주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높여 드립시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여, 온 맘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심깁시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놀라우신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기대하며 하나님을 존귀히 여깁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제가 간곡히 권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그 가치를 높여드리며 인정해 드리겠습니까?

먼저 여러분, 예배가 무엇입니까? 무엇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까? 저희 교회에서 교육받은 형제, 자매 여러분, 주일날 오전에 한 두시간 찬양하고 기도하고 설교듣고 하는 것이 진정한 예배가 아니라는 것 아시지요?

뭐가 진정한 예배입니까? <롬12:1> 나의 일생을 하나님의 뜻에 바치는 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또 무엇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까? 일주일 중에 하루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셨지요?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요12:26> 친히 땅에 떨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되셔서 죽어 많은 열매를 맺게 하셨듯이,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의를 세우기 위하여 사랑과 희생의 예수님을 배우고 본받고 따르는 일생 전체가 예수님을 섬기는 삶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의 직접적인 멧세지, <25절>의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말라, 잘 들어 순종하십시오와 <28절>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섬길찌니는 의미상 같은 멧세지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곧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예배하십시오,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그 가치를 인정하십시오 이지요.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또 무엇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예배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몇 가지만 지적하겠습니다.

먼저 기억하고 싶은 말씀은 "제일 큰 계명"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하였듯이 두 계명이 성경 전체의 멧세지입니다. 조금 더 이 제일 큰 계명을 구체적으로 해석하면, 먼저, 신앙은 우선순위가 반듯한 마음과 삶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선순위입니다.

마음과 시간과 돈과 정열을 무엇에 먼저 드리느냐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제일 많이 생각하는 것이 당신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제일 우선적으로 시간을 드리는 것이 제일 사랑하는 것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둘째, 셋째로 미루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우습게 아는 것입니다. 당신의 시간사용, 재물의 사용에서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첫째, 둘째 서수로 말씀하신 것은 우선순위를 명확히 밝혀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일 큰 계명에 나타난 가르침의 진수는, 단연 사랑입니다. 당신이 살아가는 삶의 마음을 사랑으로 물들이십시오. 욕망이나 미움이나 내 생각이 내 판단이 낫다고 주장하고 싶은 경쟁에서 이기고 싶어하는 마음을 벗고서 사랑으로 물들이십시오. 당신의 삶의 동기를, 삶의 소망을 사랑으로 바로 세우십시오. 우리의 배움은 마음에 사랑을 배우는 것입니다. 사랑하며 사는 삶을 드려가십시오.

그리고 무엇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의를 세워감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미6:8>.

<잠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렘9:23,2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요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당신의 삶에 관계된 모든 영역이 올바른 관계가 되도록, 바른 규모를 잡아가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 사랑에 대하여는, 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문자 그대로 다른 사람이 내 몸이라 여기고 사랑하며 살아가 보십시오.

무엇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존귀하게 대하는 것입니까? 무엇이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는 것입니까? 구체적으로, 제일 큰 계명으로 당신의 마음과 삶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당신의 인생의 좌표로 삼으십시오<마28:19,20>.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은혜의 잔치에 함께 참여하게 하고, 예수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그럼으로서 이 땅에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되고 예수님을 닮은 사람, 예수님의 제자를 세워가는 그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십시오.

유언을 무시하고 아버지를 경외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유언을 적당히 밀쳐 두고 예수님 잘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삶과 사랑을 배워가며 또 예수님의 삶과 사랑을 전하고 가르치라는 이 말씀에 내 인생의 의미를 두고, 목적을 두고 살아가십시오.

교회생활을 하는 이유와 소망이 이것입니다. 제일 큰 계명의 정신을 배움이며 지상명령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제일 큰 계명의 정신으로 지상명령에 따르는 삶,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높이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삶입니다.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십시오. 경건함, 여기서는 존경심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주신, 친히 희생을 당하여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은혜의 잔치 자리에 초대하신 이 놀라운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예수님을 기억한다면 존경심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 존경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십시오.

또 두려움으로 섬기십시오. 그 옛 언약을 무시한 사람도 엄중한 심판을 받았거늘, 새 언약, 막중한 은혜를 무시하고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소멸하는 불로써 철저하게 심판하심을 기억하고 경각심을 가지고 섬기십시오.

우리에게 주신 막대한 구원의 은혜를 무시하지 말고, 장차 세상에 임하여 모든 것을 뒤흔드실 때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세상에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예배드리며 그 분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드려가 봅시다.

우리 마음에 제일 큰 계명의 정신으로 지상명령에 순종하여 드리는 믿음의 삶을 정성스럽게, 아름답게 드려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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