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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넉넉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라 (벧후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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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넉넉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라
본문 : 베드로후서 1:1-11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말 가운데 철면피라는 말이 있습니다.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유래를 보면 중국에 '왕광원'이라는 출세주의자가 있었는데, 그는 출세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특히 윗사람들에게 아첨을 하는 데에는 낯간지럽게 행동하는 것이 정도가 지나쳐 오히려 보는 사람이 얼굴을 붉힐 정도였습니다. 가령 높은 사람이 시를 읊으면 그 시가 아무리 형편없는 것일지라도 '이태백이도 따를 수 없는 시'라고 아첨을 했습니다. 이렇게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못하는 왕광원의 뻔뻔한 얼굴을 향하여 '철판을 깐 것 같다'고 한 데서 철면피하는 말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느끼지 못하는 데, 인간 철면피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철면피와 같아서는 아니 됩니다. 신앙의 사람은 잘못되었으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기에 회개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문제는 무엇을 부끄러워하느냐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뒤 벌거벗은 것이 부끄러워 무화과 잎으로 그들의 하체를 가리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참된 부끄러움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지, 벌거벗은 것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전혀 부끄러워 할 것이 없는 일에 부끄러워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현상인 것입니다.

가난을 부끄러워합니까? 학벌이 없어서 부끄러워합니까? 유명하지 못해서 부끄러워합니까? 못생겼다고 해서 부끄러워합니까?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이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인정하심에 넉넉한 대상이 되지 못함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혹시나 세상적인 평가에 넉넉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평가에 넉넉하지 못하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평가에 넉넉하지 못한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철면피와 같은 사람인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한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가기에 넉넉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랬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에 넉넉한 자격자들이 될 것을 원한 것입니다.
우리는 2004년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넉넉한 자격을 갖춘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하나님께 인정받기에 넉넉지 못함을 부끄러움으로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보다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넉넉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럼, 영원한 나라,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넉넉한 자로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넉넉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확신 있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 믿음이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귀하여 보배로운 것임을 확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넉넉한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용납하시며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용서와 용납과 사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이 십자가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용납하시며 사랑을 주십니다. 이 십자가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이 은혜를 확신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나의 구원 주이신 그리스도로 확신하고 받아드리는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 확신하는 믿음을 가졌기에 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평강을 누리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의 인정하심에 넉넉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우리 그리스도인을 칭하기를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1절)이라고 했고, "하나님과 우리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많은 자들"(2절)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확신하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비밀을 알고 깨달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3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확신하는 믿음가운데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 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란 예수 그리스도께 완전히 예속되어 그 분의 말씀을 지키며 그 분을 증거 하도록 부르심을 받아 충성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확신은 증거 하는 증인의 삶으로 그 믿음을 표현합니다. 확신을 가진 믿음은 증거 하는 사람이 되게 하고 증거 한다는 것은 그사람의 믿음이 확신 있는 믿음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04년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사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았다는 확신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으며, 새 생명과 경건의 능력을 가지고 살며, 그 믿음을 증거 하는 그리스도의 증인의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넉넉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

확신 있는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 속에 있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그 믿음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 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1:4)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 하는 그리스도인 되어야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기독교와 달리 일반 종교에서는 인간의 내면에는 본래부터 신과 같은 거룩한 성품이 있으므로 이 것을 잘 계발하면 성인이 되고 거스리게 되면 악인이 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인간이 죄 가운데 있어 거룩한 성품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찾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야 함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어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신이시며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성품을 만드십니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의 품성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면서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3-14)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확신 있는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참된 영적 교제를 나눔으로 장차 나타날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의 성품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내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성품을 내가 만드는 것은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서 만드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성품을 만드시는 성령께 순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성품을 가질 때 우리들은 더 큰 신앙의 삶의 과정을 이루어 가게 됩니다. 그것을 베드로는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5-7)"고 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의 구체적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들어 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품을 충분히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우리는 성령과의 교제 안에서 더욱 노력하고 힘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족할 만큼 열매맺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성령의 열매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16-23)
이 성령의 열매는 내적 그리스도의 모습을 성취하는 그리스도인의 성숙함임과 동시에 이 모습으로 믿지 않는 자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성품이기도 합니다.

죤 웨슬리는 영국의 데번셔와 콘월과 랭커셔 같은 멀고도 험한 지역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한 곳에는 복음에 대한 열기가 절정을 이루지 않는 곳은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죤 웨슬리가 다녀 간곳은 그의 초상화가 걸려있었고, 그의 이름은 수십만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곤 했습니다. 한번은 길을 지나가던 여행객이 물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매우 온화해 보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질문을 받은 콘월의 광부는 경건하게 모자를 벗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느날 한 사람이 우리 가운데 오셨죠. 그 분의 이름은 죤 웨슬리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낸 죤 웨슬리의 모습은 그가 복음을 전한 지역의 사람들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강한 영향을 준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비난을 받는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되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들이 적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2004년을 맞이해서 하나님의 성품, 곧 그리스도의 인격이 내게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성품, 곧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사람이 됨으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넉넉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열매 있는 사람

열매를 맺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가는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10절)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의 목적을 이루는 사람이 열매맺는 사람입니다.

열매맺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8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또한 열매 없는 포도나무를 찍어 버리라고 하셨습니다.(마21:19, 눅13:7)
또한,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에서 하나님께서는 열매를 요구하시는 분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15:8)

그리고, 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철저히 그리스도와의 연합됨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어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15:5-7)

하나님은 우리가 열매맺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열매맺는 그리스도인은 알곡과 같이 천국창고에 쌓여지는 넉넉한 곡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미얀마에서 일하던 선교사 저드슨은 6년간이나 전도를 했으나 한 사람도 결신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르 보내신 이상 반드시 나에게 큰 일을 맡기셨을 것이다" 라며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계속해서 전도하여 마침내 세례교인 한사람을 얻었습니다. 6년만에 얻은 열매였습니다. 그 후 1세기도 안되어 그 한사람으로 시작된 역사가 세례교인이 몇만 명이 되는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르심에 합당하고 택하심에 넉넉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책임을 다하여 열매맺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넉넉한 그리스도인의 자격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바울은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롬1:6)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부르신 하나님의 뜻, 택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최선을 다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말씀에서, 배의 이익을 남긴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맡았던 청지기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더욱 굳게 하는 열매맺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증인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충성하여 열매맺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넉넉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바랍니다.

노년기의 노벨이 어느 날 신문을 펼쳐들고 깜짝 놀랐습니다. 조간 신문의 일면에 '알드레드 노벨이 사망하다' 라고 쓴 큰 기사가 나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기사의 내용인즉 "죽음의 사업가, 파괴의 발명가, 다이나마이트의 왕이 죽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보도는 불란서의 한기자가 동명이인의 죽음을 잘못 알고 보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노벨은 이 기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평가할 것인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죽음의 사업가, 파괴의 발명가"로 자신의 일생을 끝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거대한 재산을 바쳐 평화와 번영을 목적으로 하는 '노벨상'을 마련했습니다.

강해 설교자인 '스미스 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선악간에 그대로 심판을 당한다. 우리는 가야 할 길이 분명하다. 하나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2004년을 맞이해서 우리가 죽은 후 사람들과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겠습니다. 금년 한해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넉넉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만들어 가는 승리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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