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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산상수훈(4) / 마 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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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산상수훈(4)
본문 : 마 5:6-7

 
  마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복 있는 자란 누구인가 그것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다. 이 말씀 역시 굉장히 역설적으로 들리는 말씀입니다. 굶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는 매우 역설로 들리는 말씀입니다.
그럼 의라는 게 뭐냐? 한자로 의는 양 밑에 내가 있는 것이 의롭다라고 하고 영어에서는 영어에서는 Righteousness, Justice 칭의라는 말이 무엇인가 justification 의롭다 함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신칭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 자 그럼 여기서 의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하자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사30:18]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저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기서 공의를 영어 성경에 보면 justice 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공의가 넘치는 나라, 의의 나라 입니다.

지금까지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한자, 온유한 자들이 이루어 가는 세계가 하나님 나라라고 했습니다. 겸손이 있고, 사랑이 있는.. 그런 온유와 겸손과 사랑이 있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런 하나님 나라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자. 정말 그 나라를 기다리고 그리움 가지고 찾았던 자가 그 나라 주인 되기 합당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우리 안에 얼마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까?

일제치하에 있을 때의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가슴이 너무 뜨거워질 때가 많습니다. 한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가족과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나라를 위해서 살았던 이야기들입니다. 이들이 얼마나 그 열망이 강했냐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대한 독립만세 를 외칠 정도였다고 합니다. 옆에서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대한독립만세.

요즘의 시대에 주린다는 것을 말해도 그것이 뭔지 잘 와닿지 않습니다.
아버님 세대에서 자식들에게 우리는 먹을 쌀이 없어서 굶었다고 하면 자식들이 말합니다.
쌀이 없으면 빵이나 라면을 드시지 왜 굶으셨어요?
정말로 굶주려 본 사람이 그 굶주림을 알고 목말라 본 자만이 목마름을 아는 것입니다.
금식해보면 그래도 조금은 실감이 납니다. 한 3일 금식하면 정말 굶주림이 어떤 건지 그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도 굶주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먹을 밥이 먹어서 굶어 죽는 자 많습니다. 하나님은 이 지구에 모든 인류가 먹고도 남을 만한 식량을 허락하셨지만 이 죄악된 세계는 어떻습니까? 어떤 곳은 먹을 게 남아돌고 또 보리고 어떤 이는 먹을 것이 없습니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이런 굶주림에 대한 감이 멀다라는 것입니다.
정말 사랑의 세계, 하나님 나라. 온유와 겸손한 자들이 어울려서 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갈망함이 있는가? 뭔가를 바라고 갈망해본 적 있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갈망 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말 갈망합니까? 사실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합니까? 어디서 읽었는데 당장 내일이라도 이 세계에 종말이 오고 하나님의 나라가 오길 바라냐고 물었더니 좀 더 인생을 즐기고 이것저것 못 가본 곳도 좀 가보고 내 인생 마지막 즈음에 되면 좋겠다 라고 합니다. 문제는 이겁니다.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의 영혼 안에 정말 하나님에 대한 갈망함이 있습니까?
정말 만나고 싶고, 그분에 대한 그리움과 소원함이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갈망함이 … 그 분이 너무 그립고, 너무 보고 싶은 그런 갈망함이 있습니까?
그립기는커녕 조금의 환란과 고난으로 인하여 오히려 서운함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의 길을 가다 보면 외롭고 힘들 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응답하지 않을 것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같은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버림의 자리에서도 하나님 찾는 걸 포기하면 안 됩니다. 절망하고 좌절하면 안 됩니다.
이런 역경과 고통 가운데 아파하는 나를 더 아파하시면서 바라보시는 하나님 알아야 됩니다.
어려움과 아픔이 있을 때 그 때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때 그 고통의 한복판에서 우리보다 더 신음하고 계시는 그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라고 있습니다. 살아서 나올 수 없는 수용소입니다.
굉장히 잔인하게 유대인들을 학살했던 곳입니다.
한 가족이 같이 사형을 당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는 이미 죽었는데 아이는 숨이 아직 안 끊어져서 너무 고통스러워 괴로워하면서 매달려 있는 그런 너무 처참한 장면.
그 어린 생명이 숨이 안 끊어져서 고통스러워하는 그 잔혹한 현장, 그것을 바라보는 많은 유대인들 안에 절망이 다가왔습니다. 왜?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이 때 어떤 한 사람이 외쳤습니다. "하나님은 계시지 않다." 많은 이들이 그 말에 동조했습니다. 그 말이 맞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
그런데 그때 어떤 다른 한 청년이 말했습니다.
"저 고통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저 어린 아이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모습이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을 것 같은 너무나 절망적인 상황이 닥칠 수 있습니다.
버림이라고 표현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자리가 그런 버림의 자리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그런데 그 분께서 걸어가신 자리가 어떤 자린가?
혼자 밖에 없다고 할 정도의 그런 버림의 자리였습니다.
십자가는 가장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죽이는 처형의 방법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의 그 자리란 건 버림의 자리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내려와 보라고 조롱하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현장의 자리가 그랬습니다. 닥쳐오는 현실이란 정말 어둠 밖에 없고, 모든 것을 승리한 후라면 또 몰라도 그 때의 현장이란 정말 고통, 절망 뿐인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소망으로 그 모든 것을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 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자리에서도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정말 믿을 수 없을 때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정말 사랑할 수 없을 때 사랑하는 것이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우리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습니다. 내가 봐도 나를 믿을 수가 없는데, 내가 나를 봐도 정말 사랑하기 힘든 모습이 너무나 많은데 정말로 사랑할 수 없는 자가 바로 나인데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이것을 믿을 수 있으십니까? 나도 날 믿을 수 없는 데 하나님은 믿으십니다.
믿을 만한 걸 믿는 거야 누구나 다 합니다.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건 사랑스런 사람을 사랑하는 건 누구나 다 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사랑은 조건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도 그런 사랑 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복을 주니 축복을 해주니 사랑하고 믿는 그런 게 아니라 믿을 수 없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 그것을 보고 싶어하십니다. 버림이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 그런 자리에 우리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꺾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믿는 자에게 왜 시험이 있는가? 그런 믿음과 사랑을 위해서 그런 과정을 거쳐갈 수밖에 없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먼저 버리고 떠난 것입니다. 배반하고 떠났습니다 이게 타락입니다.
이걸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그런 시험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과정을 거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아프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것이 원래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현실이 어려울수록,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더 큰 갈망을 가지고 정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을 가지고 더욱더 하나님을 구하는 그런 모습이어야 합니다. 어려운 현실가운데 포기하거나 절망하면 안 됩니다.

어느 교수님께서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그리움으로 베개를 적셔본 적이 있는가? 너무나 충격적이면서도 도전이 되는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큰 그리움, 그런 갈망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천국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가운데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홀연히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를 바라는 그런 종교적 열광주의, 어느 날 갑자기 확 변하는 세계에 대한 소망. 이런 것들이 고통을 이겨내는, 해결할 수 있는 진정한 방법은 아닙니다.
현실이 어려워도 가야 할 길을 소망으로 묵묵히 걷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자.. 굶주림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목마름 역시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갈망한다는 것. 그런 쓰라림이 있는 자, 그런 목마름이 있는 자가 진정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잠21:21 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의와 영광을 얻느니라
구하는 자는 반드시 얻는다는 것입니다.
[시42:1]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사41:17]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안에 진정 그런 목마름이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정말 하나님을, 하나님 나라를 정말로 원하느냐? 이걸 확인하길 원하십니다. 왜냐면 정말 원하는 자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형을 만나러 고향으로 돌아갈 때 이야기를 보면 그 형이 동생을 죽이려고 했었습니다.
야곱이 그의 형과 화해의 관계를 맺기 위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이 막으십니다.
형제가 화해하는 것을 하나님도 원하시는 것인데 막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진정 원합니다. 그건 하나님도 진정 원하시는 것 아닙니까? 근데 귀한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습니다 왜냐면 쉽게 얻으면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담이 그러했던 것 처럼 말입니다.

야곱아 네가 정말 형과 화해하길 원하느냐? 야곱아 네가 정말 고향으로 가기를 원하느냐?

우리 심령 안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습니다. 굉장히 강렬합니다.
연어라는 물고기는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폭포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정말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배고픔과 갈망이 있는 자는 복이 있이 있습니다. 배부른 자, 이미 모든 걸 가진 자에게는 더 큰 세계가 열릴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네가 정말 천국을 원하느냐? 나를 만나길 원하느냐?
정말 이 세계를 원하느냐? 정말 그렇습니다! 하는 그런 간절함, 하나님 나라를 향한 타는 목마름. 이런 목마름이 있을 때 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너무너무 목말랐습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예수님께 그 물을 달라 했습니다.
세상의 물은 먹으면 또 목 마릅니다. 세상의 사랑은 또 비워집니다. 영원하지 않으니까 항상 물을 길러먹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나마 살아가는 겁니다. 고생입니다.

근데 주께서 주신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이 영원한 물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가? 정말 하나님 말씀 얻기를 원하느냐? 그냥 들으면 좋고, 안 들으면 말고.. 그런 게 아니라 정말 간절함을 원하십니다. 우리 안에 정말 그런 주리고 목마른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목마른 자는 진정한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귀한 주일 주의 전에 나아와 주의 말씀을 듣게 하심에 진실로 감사를 드립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오늘 우리가 깊이 묵상하길 원합니다.
진정 저희 안에 하나님을 향한 갈망 하나님의 나라 그 의의 나라를 향한 타는 목마름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영원히 배부르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갈증을 영원히 사라지게 할 수 없음을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고백하오니 주여 우리를 긍휼이 여기셔서 진정 오직 하나님만 바라며 그의 나라만 갈망하며 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진정 버림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소망을 버리지 아니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가 닮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기쁠 때만이 아니라 우리 삶 가운데 환란이 온다 하더라도 때로는 유한한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온다 할 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 그의 나라를 향한 소망의 불길을 끄지 아니하고 사는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천국의 백성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귀한 주일 귀한 말씀으로 우리를 먹이심에 진실로 감사를 드리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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