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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를 걷어찬 사람들 (눅 4: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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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걷어찬 사람들
눅4:14-30


은혜는 아무나 받나? 그럴 것 같지만 그러지 않습니다. 은혜는 받을 자가 받습니다. 셈을 옆에 두고도 목이마른 인생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뭄이 오고 메말라도 목이마르지 않는 인생이 있습니다. 누구인가요. 은혜 받은 자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은혜 받은 자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은혜 받기를 축복합니다. 은혜 받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분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가 넘칩니다. 다윗이 그러지 않아요. 내 잔이 넘치나이다. 여러분의 잔이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옛날 코미디안중에 서영춘이라는 분이 있었지요. 그분 레파트리중에 그런 것이 있었어요. 산에 가야 범을 잡고 바다가야 고기잡고 인천앞바다가 사이다라 할찌라도 고푸 없이는 못 먹어요. 이게 맞나 모르지만 그런 식입니다. 인천앞바다가 사이다라 하더라도 고푸 없이는 못 먹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바다같이 강같이 넘쳐도 믿음 없는 사람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 가득하리라.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물이 바다덮음 같이 물이 바다 덮음같이 ♬그래도 믿음 없이는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홍수 가운데 가뭄이 들은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집에는 강아지가 많았습니다. 과수원을 하고 가축들을 많이 길렀기 때문입니다. 논산 훈련소에서 나오는 쨤밥을 얻어다가 돼지도 먹이고 개들도 먹이는데 꼭 문제를 일으키는 놈이 있어요. 찌그러진 냄비나 투 가리에 밥을 주면 가만히 쳐 먹으면 괜찮은데 잘 먹다가 밥그릇을 홀딱 엎어 버리는 거예요. 그리고는 다른 놈 먹는데 가서는 어리대다가  물리기나 하고요. 주인한테 이놈의개새끼 하고 두들겨 맞기나 하고요. 밥못먹지, 두들겨 맞지 동료들 눈치나 봐야지. 꼴이 말이 아니지요. 은혜를 걷어차는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성경에 은혜를 걷어찬 사람들이 있어요.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이지요. 저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어릴 때부터 알던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을 잘 아는 그것이 저들에게 복이 되어야 할 터인데 복을 걷어차는 도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알되 잘못 알았습니다. 잘못된 지식이 저들의 눈을 가리고 저들의 영혼을 가렸습니다. 메시야로 오신 예수를 목수의아들로 밖에 보지 못하는 선입견이 예수를 밖으로 몰아내고 만 것입니다.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을 수 있던 저희가  단 한가지의은혜도 받지 못하는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들은 은혜를 걷어찬 사람들이지요. 은혜는 누가 받습니까?

1.은혜는 예수님을 바로알고 바로 보아야 은혜를 받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나사렛에 이르러 회당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사야서를 펼치고 성경을 읽습니다. 18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이 누구신가요. 포로 된 자를 자유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영안이 멀어서 보지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죄에 눌려 자유함이없는 자들을 자유케 하시는 분이시지요.

그래서 주의 은혜가 너희에게 왔다고 말씀 합니다. 지금 너희가 은혜 받을 때라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이 은혜의 셈이시기 때문입니다. (눅 4:21)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말씀 이 임재 했어요. 지금 저희와 함께 하고 있어요. 쉽게 말하면 지금 복이 굴러왔어요. 붙들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저들이 모르고 있는 거예요.

우리 속담에 손에 쥐어 주어도 모른다는 말이 있지요. 지금 그 꼴이 난거예요. . 그런데 겨우 한다는 소리가 이 사람이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아무나 다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알아야 면장을 하는 것이지요. 예수가 누구입니까?  나에게 누구입니까? 그분이 여러분을 자유케 하고 영안을 뜨게 하고 구원하신 구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알고 깨달으면 은혜를 받습니다.

2.하나님 편에 서야 은혜를 받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만족시키려 오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오신 분입니다. 우리가 착각하고 사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세상욕심들을 채워 만족하게 하리라는 생각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편에 가서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편에 가서야 예수님의 이적과 능력이 내 것이 됩니다.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기대한 것이 무엇입니까? 기적입니다. 기적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갈릴리에서 행했던 기적, 병 고치는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라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메시야 됨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보이는 것이 세상적인 욕심입니다. 이러한 그들에게 예수님의 대답은 너희들이 잘못 알았다는 것이지요. 내가 온 것은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눅 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시는 것입니다.

요6장에 오병이어의 기적이 난 이후에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 듭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들이 내게 오는 것은 나를 믿기 위함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는 것을 위하여 하라. 그리고 하신 말씀이 나는 생명의 떡이니라 하셨습니다. (요 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세상에 머물러 서있으면서 세상의 욕심을 다 채워 주리라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편에 서야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편에 서야 은혜를 받습니다.

3.믿고 순종해야 은혜를 받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은혜 받은 두 사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사렙다 과부의 이야기이고 하나는 수리아 군대장관 나아만의 이야기입니다. 이들 두 사람은 절망적인 상황아래서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오늘 성경에서 오직이라는 단어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많은 과부가운데서 오직입니다. 수많은 나병 환자가운데서 오직 나아만입니다. 오직 사렙다 과부만 오직 나아만 만이 은혜를 입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들의 믿음입니다. 그들의 순종입니다. 믿고 순종했더니 은혜가 넘쳤습니다. 무엇을 바라고 있습니까? 은혜 받는 길은 믿고 순종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가난한자가 많았지만 , 고통 받는 자가  많았지만 은혜 받는 자가 따로 있습니다. 은혜 받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렙다 과부를 보세요. 흉년이 3년 반이나 들었어요. 먹을 것도 다 떨어지고 견디다 못해 마지막으로 남은 가루를 다 털어 전을 부쳐 먹고 죽을 때를 기다리기 위하여 나뭇가지를 줍고 있는 그 기구한 때 왠 나그네가 와서 구걸을 하는 것이지요. 거기다 한수 더 떠서 먼저 나에게 먹을 것을 주고그다음에 너희들이 먹으라는 거예요. 그러면 네 통의 가루가 가뭄이다 지나갈 때가지 떨어지지 않으리라고 하나님이 말씀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믿습니까? 맨 도둑놈 천지인데. 그때라고 사기꾼 이 없었겠습니까? 도둑놈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믿었어요. 그대로 순종했어요. 자기 생명을 담보로 한 모험입니다. 자기 것을 다 내어놓은 믿음입니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 과부는 기근 중에 배부른 사람입니다. 과부가 많았지만 다는 아닙니다. 사렙다 과부만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나아만은 어떠합니까? 자기 집 어린 계집아이의 말을 듣고 병을 고치겠다고 이스라엘 땅까지 찾아옵니다. 병을 고칠 수 있으리라고  찾아간 엘리사는 저를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겨우 들려주는 소리가 요단강물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는 것입니다.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자기지위가 높고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자존심은 더 상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이 벌벌 떠는 장수 입니다.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겠습니까? 얼마나 마음이 상했으면 당장 돌아가자 하고 말을 돌렸는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충신들의 말을 수용했습니다. 자존심을 꺽고 믿음을 가지고 요단강물에 7번 씻었습니다. 수리아에는 강물이 없어서 요단강물에서 몸을 씻습니까? 요단강물이라야 조그마한 냇가입니다. 더욱이 강물에 씻는다고 문둥병이 낳으면 병에 걸려 죽을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가능성이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가능성이 없는 그 일을 믿었습니다. 순종했습니다. 은혜를 입었습니다. 문둥병자가 많았는데 은혜 입은 자는 나아만입니다.

결론을 짓습니다. 은혜가 임했습니다. 나사렛에 예수님이 은혜 의 샘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은혜를 걷어찼습니다. 사렙다 과부에게 은혜가 임했습니다. 엘리야가 그를 찾아온 것이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그는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나아만에게 은혜가 임했습니다. 요단강물에 가서 씻으라 하는 말씀 속에 이미 치유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는 믿고 순종함으로 은혜를 입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의은혜가 임했습니다. 주께서 질고를 지심으로 너희는 낳음을 얻었도다.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은혜가 넘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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