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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먼저 합시다. [마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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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먼저 합시다. <마 7:12>


□ 먼저합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장 12절>

1. 인간은 무엇으로 행복해 지는가? 

배고플 때는 인간의 행복은 무엇인가를 갖추어야 행복한 줄 알았습니다.
70년대 초반만 해도 우선 겨우살이를 위하여 쌀과 연탄과 김장을 해 놓으면 행복을 느끼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여기라는 말씀처럼 그 때는 도리어 행복수치도 지금보다 높았습니다.
그러나 경제성장으로 인하여 외형적으로 갖추어야할 것을 다 갖추었어도 행복수치도가 낮아지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인간의 행복은 결코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인간의 행복은 관계성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② 사람과 물질과의 관계, ③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바른 관계가 성립되어야 행복을 느끼게 된다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옳은 말이라고 봅니다.

독일의 유태계 종교철학자요, 성서번역가요, 주석가이었던, 마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사랑하며 물질은 이용하는 것" 이것이 바른 관계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과 사람과 물질과의 관계를 바르게 함으로서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자기 중심>이 될 수밖에 없고, 하나님 없는 물질은 <향락>으로 빠지게 된다는 전제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고, 물질을 이용하면서 살 때, 혼란을 방지하게 되고, 타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된다는 말입니다.

인류 역사의 흥망성쇠를 가만히 들여다보기 바랍니다.
그처럼 강대국들이 결국 왜 망해 버리게 되었습니까?
모두 하나님과 이웃과 물질의 관계에서 올바른 관계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위의 관계가 바르게 이루어지지 못할 때 <사회>와 <가정>의 질서는 파괴되고, 가정과 사회의 질서가 무너질 때 결국 <타락>하게 되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오늘의 물질문명이 타락한 문명이란 말을 듣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2. 그러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교회의 금년 표어설정을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인사하기, 먼저 용서하기, 먼저 대접하기, 먼저 사랑하기...
이 모든 것은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가르쳐 준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황금률이라 불리는 말씀입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이 말씀 안에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정신이 다 포함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남이 너에게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거든, 네가 먼저 그렇게 해 주라는 뜻입니다.
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란다면 내가 먼저 그 사람을 알아주라는 것입니다.
남이 나를 칭찬해 주기를 바란다면, 내가 먼저 그를 칭찬해 주라는 것입니다.
남에게 대접받기를 원하면, 내가 먼저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무슨 이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잘 못합니다.
대접을 받기만 원했지 대접할 줄 모릅니다.
사랑 받기만을 원했지 사랑하지는 못합니다.
칭찬 듣기만 원했지 칭찬할 줄을 모릅니다.
인색하다는 것은 물질에서만 적용되는 말은 아닙니다.
왜 돈 안 드는 일을 먼저 못하는지...?
왜 돈 없이 할 수 있는 것을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인사하는 것, 그것 돈 없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먼저 해야할 것들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②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③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 지어다 하라.

이렇게 먼저 하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보면, 모두 자기는 빠지고 남이 그렇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말씀을 들으면서도 '저 소리는 아무개 집사가 들어야 하는데...' 그런 심정으로, 전혀 자기는 결부시키지 않으려고 합니다.

<말씀> 앞에 우리는 스스로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해야할 일이 무엇이겠는가를 살펴야 하겠습니다.
내가 먼저 고쳐야할 일이 무엇인지?
내가 먼저 남에게 베풀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살펴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과 사람과 물질 관계에서 먼저 해야할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진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야 하고, 이웃에게 진실해야 하고,
돈 앞에 진실해야 합니다.
이 관계가 바르게 형성되어야 행복해집니다.
공산주의와 기독교가 공통적으로 말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혁명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와 기독교가 말하는 혁명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공산주의자들은 그 혁명의 대상을 언제나 남에게 둡니다.
타도의 대상은 내가 아니라 너라고 합니다.
노동자 농민이 못살게 되는 것은 부르조아 계급들이 착취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타도해야 한다고 합니다.
타도해도 무자비하게 타도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혁명과업을 완수할 수 있다고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북한을 한번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혁명의 대상으로 삼았던 부르조아들을 타도하고 보니,
그보다 더 심한 계급사회를 이루어 놓았습니다.
당 간부들은 실제로 노동자 농민 위에 군림하고, 노동자 농민들 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리는 것은 당 고위층들입니다.
그래서 북한 공산주의 사회 기본철학을 세웠던 황장엽씨가 귀순하여 한 말이 있지 않습니까? 북한은 공산 사회주의가 아니라 교조주의요, 봉건주의라고 하였습니다. 일인독재, 노동자 농민을 위한다고 하면서 지주(地主) 이상의 봉건사회를 이루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다고 보십니까?
먼저 자기를 성찰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혁명은 남이 아니라 자기를 혁명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철저하게 자기가 먼저 깨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바로 이것이 안되다 보니,
오늘의 크리스천들이 맛을 잃은 소금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먼저 해야할 일은 나 자신이 혁명의 대상이 되어야합니다.
즉, 진실성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사람들이 가장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제일 불행한 일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믿음이 가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다면,
이제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장로님이 경영하는 회사에서 직원을 뽑는데, 응시하는 사람 중에는 교회의 목사님의 추천서를 붙이면 유리할까 하여 그렇게 하였더니, 도리어 서류에서 밀어놓았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신뢰할만한 능력이 없으면, 목사의 추천서를 첨부했을까 싶어서 빼버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장로님 사장이 왜 그렇게 했느냐 하면, 전에 한번 그렇게 했더니, 도리어 회사에 들어와서는 믿지 않는 직원보다 더 못하고, 불평은 제일 많이 하기에 그랬다는 말이었습니다.
물론 사람인고로 모두 완전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마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기대치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또 추천을 하는 우리 목사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추천해 달라는데, 추천 못하겠다고 할 수도 없고, 그러니 으레 형식적인 말들로 좋다고만 할 수밖에 없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신학교 추천할 때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제일 중요한 것은 진실성의 회복입니다.

하나님과 사람과 물질의 관계에서 먼저 내가 진실해져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하면, 사람 앞에서도 거짓을 버리게 되고, 사람 앞에 진실해지면, 이웃을 속이며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정치계에서만 부정한 돈 거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웃을 속여서 이익을 보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자기 집을 더 크게 늘리고,
이웃을 속여서 모은 돈으로 더 큰 회사를 설립한들, 그것이 자신에게 행복을 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온통 우리 사회에서 추방되어야 할 우선적인 일은 거짓과 부정직입니다.
내가 먼저 정직해지고, 진실해지는데 있습니다.
먼저 혁명의 대상이 나에게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나 물질 앞에서 진실해 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 없으면,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구조적으로 부정직해진 사회에서 그 틀을 깨는데는 먼저 크리스천들이 자기 혁명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겠습니다.
남들이 다 먹어도 나는 먹지 않아야 될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의 순교 정신입니다.
그것이 오늘의 그리스도인 됨의 길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였습니다.
소금의 맛은 짠맛입니다.
짠맛이 없어진 소금은 길바닥에 버려져서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무쪼록 먼저 인사하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먼저 대접하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먼저 용서하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그리하여 처음 사랑을 다시 찾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로부터 사랑 받는 우리 모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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