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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삽시다. (창 12:1-5, 히 1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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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믿음으로 삽시다.
성경본문 : 창 12:1-5, 히 11:7-12
월 일  : 2월 1일


21세기 우리 사회의 특성중 하나인 정보화라는 화려한 포장속에 우리가 스스로 속임 당하는 함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머리를 써서 살아라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머리로만 살아갈려고 합니다. 머리로만 살면 제한된 지식의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게 되고 그래서 인격의 가치를 보지 아니하고 외모로 판단해서 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정이 메마르게 되고 이기적인 만족과 쾌락을 추구하게되고 결과적으로 도덕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머리보다 마음으로 살어야합니다. 잠언 4장 23절에 너의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마음을 지키는 것이 성을 지키는 것보다 더 어렵기 때문에 마음을 잘 다스려야합니다. 마음으로 사는 삶은 전인격적인 삶의 태도이고 양심을 좇아 사는 도덕적인 삶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믿음의 삶입니다. 양심은 타락 할 수 있기 때문에 바른 삶의 절대 기준이 될 수없고 믿음이 없이는 선한 양심을 가질수 없고 선한 양심은 믿음 없이는 지속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지혜를 넘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믿음으로 살어야 합니다.

아시는대로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입니다.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1절에 믿음에 대한 정의를 내린 다음에 믿음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철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아니하고 실제적이고 사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사실을 들어 증거하고 이것이 믿음이다라고 단적으로 아주 선명하게 말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는 노아, 아브라함, 사라 세 사람의 믿음에 대하여 기록되어있습니다. 먼저 노아의 믿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7절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노아 하면 홍수를 생각하게 됩니다. 노아 홍수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 문제를 놓고 진화론자와 창조론자의 주장이 판이하게 다릅니다. 우리나라에는 박사학위를 가진 소위 자연과학자들 가운데 성경의 창조론을 믿고 주장하는 창조과학회회원이 4백여 명이나 있습니다. 다 대학교 교수들입니다. 이분들은 진화론을 믿지 않습니다. 진화론은 허울 좋은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진화론은 맹랑한 것입니다. 사람의 몸을 만져보면 엉덩이뼈가 뾰족하게 조금 나와 있습니다. 이것을 두고 옛날에는 사람에게 꼬리가 붙어 있었다고 주장을 합니다. 또 사람 중에는 턱뼈가 좀 앞으로 삐죽 나온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옛날사람들은 해골을 보면 비교적 더 나온 편입니다. 그런걸 두고 옛날사람들은 풀을 뜯어 먹어서 턱이 나왔다고 주장합니다. 별의별 소리를 다 지어내서 주장합니다. 진화론은 사실은 이렇듯 맹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중.고등학교에서 진화론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그렇지 않고 진화론과 창조론을 같이 가르칩니다. 선택을 각자 마음대로 합니다. 둘 다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진화론은 과학적이고 성경은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철저하게 과학적이라는 것이 창조과학회의 주장입니다. 창조과학회의 주장이 옳고 바른 주장입니다. 창조과학회에서 제일 중요하게 취급하는 사건이 노아홍수입니다. 노아홍수사건으로 인하여 이 지구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 결과 성경을 보면 노아홍수 전에는 사람들이 6백년 7백년 이상 살고 9백년 이상도 살았는데 노아홍수 이후로는 오래 살아야 120여년입니다. 그 이유는 노아홍수 전에는 오존층이 아주 두꺼워서 이 지구 전체가 따뜻했고 나무도 무성하게 자라고 강도 깨끗하고 짐승도 많았고 지구는 참으로 좋은 낙원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도 오래 살수있었습니다. 그런데 노아홍수로 인하여 오존층이 얇아지고 나니까 햇볕이 강하게 내려쬐면서 북쪽과 남쪽은 추워지고 적도 지방은 뜨거워지는 현상이 생겨서 결국은 북극과 남극에는 사람이 살수없게 되고 적도지방에도 사람이 살기 어렵고 수명이 짧아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성경 상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됩니다. 노아홍수는 실제의 사건이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과학자들도 인정하는 실제 사건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못 듣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만한 마음의 귀가 있었습니다. 노아는 그 만큼 하나님 앞에 바른 자세로 의인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질때 노아는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죄를 범하고 있다 죄가 꽉찼다. 사람이 육체가 되었다 이대로 둘 수가 없다 진멸해야겠다고 말씀하실 때 아니요하고 말하지 아니하고 그렇게 하시지요 제가 보기에도 이건 안됩니다. 이 더러운 세상은 안됩니다. 이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한 사람이 아닙니다. 짐승입니다. 짐승보다 저 악한 동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려고 할 때 이의 없이 이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순응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멸하겠다. 그렇게 하십시요. 망할 것이다. 예 제가 보기에도 망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뜻을 같이 했습니다.

롯은 믿음이 시원치 아니했으나 한 가지 좋은점은 소돔 고모라성이 망한다고 할 때 그것을 인정하고 믿고 소돔성을 떠나라고 할 때 알겠습니다하고 떠났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망한다고 할 때 안 망하게 해주세요. 하는 것만이 믿음이 아닙니다. 그 만큼 죄가 있는 것을 알고 있고 당연히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보시는 의의 시작과 초점을 같이 하고 방향을 같이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동의했습니다. 무작정 잘되기만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에 대해서 그 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구원하리라 구원의 길을 줄터이니 방주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노아는 심판을 믿고 동시에 구원을 믿었으므로 감사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노아는 자기키보다 더 큰 나무에 종을 매달아 놓고 하루에 3번씩 종을 쳤다고 합니다. 종을 치면 사람들은 시끄럽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서 심판 하십니다하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종을 울리면서 요새 말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심판을 예고 하고 경고했습니다. 120년이라는 기간은 전도기간이었습니다. 120년 동안 전도했지만 그 사람들은 회개하지 아니하고 결국은 심판을 받아 다 죽었습니다.

노아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거룩히 구별된 삶을 살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죄를 지을 때 죄를 짓지 아니하였고 다른 사람들이 타락할 때 타락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리고 노아는 많은 비방을 참았습니다. 전설에는 많은 사람들이 돌을 던지면서 비방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정신 나간 할아버지라고 했을 것이고, 홍수는 무슨 홍수 그리고 산꼭대기에다가 배를 만들다니 실성한 할아버지라고 이런저런 비방을 다했지만 노아는 그런 비방에 흔들리지 아니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 그중에서 누구의 말을 들어야 옳은 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의 모든 비방을 일축해 버렸습니다. 그것이 노아의 믿음이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말에 너무 귀 기울이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우리십시요.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가에 마음을 두어야합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나 눈치보고 이리 저리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지만 세상을 본받아서는 안 되고 세상가치관을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잘못되더라도 나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요. 모든 사람이 잘못될 때 노아는 바로 섰습니다. 고독하게 독실하게 바로 섰습니다. 믿는 사람은 비방을 받을 때 이상하게 생각 할 것이 없습니다. 악한 사람으로부터 칭찬 받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노아는 120년을 참고 기다렸습니다. 당장 사흘 후에 비가 온다고 하면 믿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120년 후에 비가 온다고 했습니다. 상상을 해 보십시요. 한 60년쯤 갔을 때 내가 제대로 들었나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들은 건가 정말 비가 올 것인가 의심하자면 한이 없습니다. 그런데 120년 동안을 흔들림이 없이 변함없이 믿음으로 120년 후에 있을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방주를 예비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조급합니다. 참고 기다리지를 못합니다. 120년 동안을 참고 기다린 노아의 믿음을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다음에 아브라함의 믿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관하여 8절부터 10절에 짧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고향을 떠나라고 말씀하시고 동쪽으로 가라 서쪽으로 가라 애굽으로 가라 어디로 가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갔는데 나중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땅을 너와 너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순종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순종 없는 믿음은 기독교적 믿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대하여 말없이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아무 말이 없이 순종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예하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는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순종이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질문 없이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왜 고향을 떠나야 합니까? 어디로 가야합니까? 어떻게 가야합니까? 하고 묻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이해가 되든 안되든 나를 위한 사랑의 계획이 담긴 것을 믿고 질문 없이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대하여 따지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무조건 떠났다가 나중에 일이 잘못되면 책임지시겠습니까? 낯선 땅에 가서 살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어떻게 해주실 생각이십니까? 이렇게 따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대하여 조건이 없이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아무 조건도 보상도 내 걸지 아니하였고 대가도 요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것이 참된 순종이고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이면 안 되겠습니까? 저 사람이 나보다 더 여건이나 조건이 나은데 그 사람이 가면 좋지 않을까요 이러지 않고 자기가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번만 순종하겠다든지 언제까지만 순종하겠다든지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끝까지 순종했고 더 어려운 일도 순종 했습니다 .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여 고향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떠나라고 하니까 가야 할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떠났습니다. 가야 할 곳이 어딘지 모르면서도 묻지 아니하고 가면 어떻게 되냐고 묻지도 아니하고 하나님이 떠나라고 하니까 예하고 그냥 떠났습니다. 참으로 단순하고 순수하고 전적인 순종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성적이거나 추상적인 믿음이 아니고 행동적인 믿음이었습니다. 입으로만 순종한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순종하는 믿음이었습니다. 9절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현대인의 성경에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약속받은 낯선 땅으로 가서 같은 약속을 받은 이삭과 야곱과 함께 나그네처럼 천막생활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떠나라고 할 때 아브라함은 낯선 땅에 가서 나그네처럼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날 때가 75세였습니다. 나이 들어 낯선 땅에 가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런 고통과 고독을 마다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 전적으로 순종하였습니다.

10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고 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는 그것은 하나님께서 설계하여 세우신 견고한 하늘의 도성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 땅에만 머물지 아니하고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대한 영원한 약속을 생각하고 믿었기 때문에 이 땅에 대한 것에만 집착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그네입니다. 잠깐 있다가 떠나야 하는 나그네입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 인 것을 깨닫고 세상에 살면서 나의 영원한 고향을 여기가 아니다 내가 살 곳은 여기가 아니다 영원한 본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믿었습니다. 참으로 귀중한 믿음이었습니다.

다음에 사라의 믿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11절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고 했습니다. 사라는 나이가 많아 아이를 못 낳게 되었습니다. 단산이라는 말을 새번역성경에는 수태할 수 없는 몸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창세기 18장 11절에 보면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다고 했습니다. 경수 즉 월경 생리가 끊어졌다고 했습니다. 단산해서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여자들이 아이를 못 낳게 되면 생리적으로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사라는 단산한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가 말하기를 내년에 아들을 낳으리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사라가 천막 뒤에서 피식 웃었습니다. 웃기는구만 단산한지가 언젠데 그런 내가 아이를 낳아 아이구 참 천사도 참 하나님도 참으로 너무 하시다 하고 웃었습니다. 천사가 그것을 알고 책망하기를 아브라함아 너의 아내가 왜 웃느냐 그 말을 듣고 사라가 겁이 나서 아닙니다. 안 웃었습니다. 천사가 웃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안 웃었다고 하는데 네가 웃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천사였다면 사라야 너 믿음이 없구나 감히 웃다니 약속 취소한다 했을 것 같은데 그러지 아니하였습니다. 사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처음에는 믿지 아니하였으나 즉시 마음을 고쳐먹고 천사가 내년에 아들을 낳으리라고 했을 때 사라가 믿었습니다. 잉태하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단산했으니 소용없다 이미 늦었으니 소용없다. 아들을 주시려면 진작 주실거지 왜 이제 와서 주시나 나는 이미 끝났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안돼 다른 것은 몰라도 아이 낳는 것은 안돼 단산되어 버렸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신다고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냐 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사라는 입 꾹 다물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아들을 낳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믿기만 한 것이 아니고 그날 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신방을 꾸몄습니다. 다시 부부생활을 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냥 감상적으로 하나님 믿습니다 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다시 부부사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이 위대한 것입니다. 사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실수나 잘못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옳습니다. 믿구 말구요 하고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리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들이름이 이삭입니다. 이삭이란 말이 웃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웃기셨다는 뜻입니다. 사람으로는 불가능 하다고 여겨지고 너무나 늦은 것을 알면서도 그 모든 생각 다 저버리고 내년에 아들을 낳으리라고 하시니까 예하고 믿었습니다. 거기서 불가능 한 일이 가능케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라의 믿음입니다.

12절 이러므로 죽은 사람과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아마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은총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이삭을 모리아 산에 데리고 가서 번제로 바치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하나님께서 이삭을 모리아 산에 데리고 가서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바쳐야지요 하고 순순히 동의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갔습니다. 갔다가 다시 오기까지 1주일간 참으로 참으로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생각 할수록 참으로 어려운 순종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다시 데리고 왔을 때 너무 너무 기뻐했을 것이고 참으로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노아와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을 기억하고 언제나 어디서나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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