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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백성이 잊지 말 것] 신 25: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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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이 잊지 말 것> 신25:17-19


오늘 본문의 첫 절에서는 "기억하라" 했고 마지막 절에서는 "잊지 말지니라" 했습니다. 같은 말을 앞뒤로 한 것입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까? 첫째는 17절에 있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19절에서 보는 대로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는 명령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는 명령의 뜻은 무엇입니까? 18절에서 말하는 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말렉 족속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악영향을 미칠 소지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하여 그 족속을 진멸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진멸하라"는 말을 들으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냉혹하실 수 있는가?" 하는 물음과 함께 섬뜩한 느낌을 가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단호한 명령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키시려는 하나님의 확고한 사랑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 아말렉이 두고두고 이스라엘에게는 골칫거리가 되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며 실족시키고 위협이 될 것임을 알고 계셨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몇 가지 역사적 사실을 더듬어 보는 것은 아말렉을 진멸하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공동체를 군사적으로 공격하여 괴롭힌 첫 번 째 족속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모세의 영도 하에 애굽으로부터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르비딤에서첫 전투를 벌여야 했던 상대였습니다. 비록 여호수아가 앞장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기는 했으나, 그 때 모세는 하나님의 깃발처럼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서 두 팔이 내려오지 않도록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붙들어 올린 채 해가 지도록 전투를 독려해야 했었습니다. 그만큼 아말렉은 싸움을 잘 하는 족속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8절에서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한 것처럼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할 때 늘 배고프고 목마르며 지쳐 뒤로 처진 사람들을 예고 없이 후방에서 공격할 만큼 교활하고 전술에 능하고 기민한 전사들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족속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전투가 끝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하게 하리라"(출17:14) 하셨으며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실 것을 맹세하셨던 것입니다(출17:16)

이렇게 아말렉을 진멸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확고하고 단호한 뜻이었기에 그 뜻을 따르지 않는 것은 심각한 경과를 초래하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 예를 훗날 사울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후 사무엘을 그에게 보내셔서 르비딤에서 아말렉을 이긴 후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천명하셨던 아말렉 진멸의 뜻을 다시 전하게 하셨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삼상15:2-3). 그러자 사울은 백성을 소집하고 병사들을 계수한 후 아말렉 사람들이 살고 있던 전 지역성에 걸쳐 공격을 감행했습니다(삼상15:4-7). 사울과 그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거의 모든 아말렉인들을 칼로 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말렉 왕 아각과 그의 가축의 가장 좋은 것들과 모든 좋은 것은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않았으며 가치 없고 하찮은 것들만 진멸했습니다(삼상15:9).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삼상15:11) 하셨고 사무엘은 다시 사울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그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말하기를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삼상15:15) 하며 둘러댔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삼상15:18-19) 하며 질책했습니다. 사울은 또 다시 사무엘에게 변명하기를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삼상15:20-21) 했습니다. 그 때에 사무엘이 답한 말이 이러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15:22-23). 사울은 그제야 사안의 중함을 깨닫고 사무엘에게 그의 겉옷자락이 찢어도록 매달려 사태를 돌이켜보려 하였으나(삼상15:24-27) 사무엘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그를 뿌리치고 말았습니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삼상15:26). 하나님께서는 친히 왕으로 세우신 사울이었지만 그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어기자 돌이키지 아니하시고 그를 버리셨습니다. 그만큼 아말렉을 진멸하는 것은 하나님에게는 양보할 수 없이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백성이 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페르시아 왕 다리오 1세의 아들인 아하수에로 왕 때에 왕궁이 있는 도성 수산에 모르드게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모르드게는 유다왕국을 멸망시킨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의 왕을 비롯하여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함께 사로잡혀간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 모르드게에게는 그의 삼촌의 딸인 에스더가 딸려있었는데 에스더는 그의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 같이 양육한 용모가 곱고 아름다운 처녀였습니다. 에스더는 그 미모와 착한 마음씨가 왕의 눈에 띄어 그의 새 왕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바벨론 땅에 남아 살던 유다 백성들이 모두 말살을 당할 위기에 처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것은 아하수에로 왕이 하만이라고 하는 자를 높이 등용하여 모든 대신 위에 세웠을 때의 일이었습니다(에3:1). 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왕의 명령대로 그 하만에게 꿇어 절하였지만 모르드개만은 자기가 유다인임을 밝히며 하만에게 무릎을 꿇지도 절하지도 않았습니다(에3:2-4). 이 사실을 전해 듣고 화가 난 하만은 모르드개 하나만 죽이는 것으로 성이 차지 않아 페르시아 제국 내의 모든 유다인을 다 멸하고자 음모를 꾸몄던 것입니다. 모르드게의 지혜와 동족을 살리기 위하여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께 나아간 에스더의 용기로 유다인들은 극적으로 위기를 넘기고 하만이 모르드게를 매달려고 준비했던 나무에 오히려 하만 자신이 매달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르드게는 사울 왕과 같은 베냐민 자손이었고(에2:5), 그와 함께 온 유다인을 멸절시키려 했던 하만은 "유다인의 대적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에3:1)이었다고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아각이 누구입니까? 바로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서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그 아말렉 왕입니다. 이렇게 아말렉 족속은 두고두고 이스라엘에게는 위험스러운 족속이었으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을 지키시기 위하여 아말렉을 진멸하라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지킬 각종 규례들을 주시던 끝에 불쑥 나오고 있습니다. 왜 이런 저런 하나님의 규례들을 설명하던 자리에서 느닷없이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상기시키며 잊지 말라 했겠습니까? 모든 규례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 살 때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을 누리며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규례를 따르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백성답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화를 당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아말렉을 완전히 제거해버리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9절에서도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누리기 위하여 아말렉은 깨끗이 사라져 그 흔적조차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복된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하여 주신 아말렉 진멸의 명령이 오늘날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에게도 아말렉과 같이 진멸해야 할 대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광야와도 같은 우리의 인생행로 가운데서 힘들고 지치고 배고프고 목말라 할 때 사탄은 어김없이 아말렉처럼 뒤로부터 우리에게 달려들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죽여야 했던 아말렉 왕 아각의 그 좋은 재물들처럼 사탄이 하는 일에는 언제나 좋아 보이는 것들이 넘칩니다. 그것들이 너무나 아깝고 미련을 떨쳐버리기가 어려워 우리 가운데 남겨두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남겨두는 세상적 탐욕의 대상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버리고 죽여야 할 것이 많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5:24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했으며, 에베소서 4장에서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22절) 했고,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25-31절) 했습니다. 또 엡5:3-5에서는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골3:5-9에서는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라" 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서 진멸시켜야 할 우리의 영적 아말렉의 졸병들입니다. 이것들을 우리에게서 진멸시키지 않으면 이것들로 인하여 우리가 멸망할 것입니다. 이것들을 버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것이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실 것입니다.

아말렉이 간교하고 싸움에 능하며 끈질겼던 것보다 훨씬 더 사탄은 강하고 악랄하고 집요합니다. 그 사탄의 유혹과 공격이 어떤 것이며 이에 맞서기 위한 우리의 무장이 어떠해야 할지는 사도 바울이 엡6:10-18에서 잘 보여줍니다: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이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택하심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을 오래오래 누리기 위하여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특히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15:22-23) 한 사무엘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의 재미와 즐거움, 부귀와 영화, 명예와 권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우리의 마음과 삶 속에 살려놓았다가는 사울처럼 버림 받을 수 있으며 모르드게와 에스더 때처럼 온 민족이 멸망할 위기를 자초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일날도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어 교회에 헌금을 더 많이 바치면 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겠느냐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지 말아야 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했듯이 그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에 불과하다는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가 행복해지는 가장 확실한 길임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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