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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처음보다 나중이 (요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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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처음보다 나중이
성경본문 : 요 2:1-11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요한복음 2:1-11)

요한복음 2장은 두 가지 기사를 취급하고 있습니다. 1∼11절은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사이고 12∼25절은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신 기사입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사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여러 가지 표적가운데 첫 번째 사건이었습니다.

오늘은 충신교회가 1957년 2월 첫 주일 청파동에서 시작 된지 47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제가 충신교회 부임한 것은 1977년 5월 첫 주일이었습니다. 부임한 첫 주일 예배출석 인원은 120명 정도였고 헌금은 18만원 정도였습니다. 하나님 은혜로 장족의 발전과 부흥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부임 첫 주일 설교 제목이 "처음보다 나중이"였고 본문은 요한복음 2:1이었습니다. 오늘 저는 같은 본문과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가나라는 마을에서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예수님과 그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제자들이 초대되었습니다. 물론 많은 동네 사람들도 초대되었습니다. 예상보다 손님이 많았던 탓으로 준비해둔 포도주가 떨어지게 되었고 이 사실을 알게된 마리아가 지혜롭게 중재 역할을 하게 되었고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결혼식 피로연을 흥겹게 해주었다는 것이 본문의 줄거리입니다. 저는 혼인 잔치 집과 교회를 대비시키면서 몇 가지 교훈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1. 잔치 집은 교회의 모습과 같습니다.
잔치 집은 세 가지가 넉넉해야 합니다. 사람, 음식, 기쁨입니다. 결혼식 피로연에 신랑과 신부만 앉아있다면, 냉수 두 컵밖에 다른 음식이 전혀 없다면, 그래서 한숨쉬고 탄식하며 앉아있다면 잔치 집 분위기는 아닐 것입니다.

잔치 집엔 사람이 북적거려야 하고 음식이 넉넉해야하고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야 하는 것처럼 교회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고 말씀양식이 넉넉해야하고 잔치 집 같은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자동차 세울 곳이 없고 앉을 자리가 모자라고 기쁨과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잔치 집과 내 영적 삶도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속에서 날마다 축제가 벌어져야 합니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고 늘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시대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많고 모자라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많습니다. 세계인구가 계속 불어나고 있습니다. 60억 인구가 21세기 말이 되면 100억으로 불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들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며 기록 계획 캠페인을 벌인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아이 안 낳기 운동이 번져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거기다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남녀성비가 맞지 않아 10년 후가 되면 여자 쟁탈전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분의 이야기이고 인구팽창은 막을 수 없는 추세가 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입니다.

자동차가 많고 지식도 많아지고 돈도 많아지고 공장도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만족이 없습니다. 이유는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언론인은 암 가운데 가장 무서운 암은 "욕심암"이라고 했습니다. 이 암에 걸리면 고칠 수도 없고 헤어날 길도 없고 방사선 치료도 안되고 항암제 치료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서 목말라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 속에 마실 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이 모자라고 석유가 모자라고, 식량이 모자라고, 돈이 모자랍니다. 가나 혼인잔치의 경우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모자란 것입니다.

슈바이처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 철학자, 의사로 명성을 날리던 사람이었습니다. 1913년 가난과 질병을 고치기 위해 아프리카로 들어간 그는 1965년 가봉의 랑바레네에서 죽기까지 아프리카를 떠나지 않고 줄 곧 의술과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1952년 그의 공로를 인정한 한림원이 그에게 노벨 평화상을 주기로 결정하고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시상식에 참석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한림원은 그가 시상식에서 감동적인 자신의 일을 연설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참석할 수 없다고 회답했습니다. 놀란 한림원은 설득했지만 허사였습니다.

이유는 간단하고 분명했습니다. "과분한 상을 저에게 준다니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상을 받기 위해 이곳을 떠나면 누가 환자들을 돌보겠습니까? 시상식보다 저에겐 환자 돌보는 일이 더 소중합니다."라는 것이 거절이유였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진 넉넉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만족은 소유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족은 자족하는 마음이 있을 때 이뤄집니다. 수천 억을 가졌으면서도 헐떡거리는 사람이 있고 가진 것이 적지만 넉넉한 사람이 있습니다. 후자가 행복한 사람입니다.

2. 해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가나 혼인잔치의 문제는 마리아의 긍정적 접근과 예수님의 능력이 해결했습니다.

1) 마리아의 긍정적 접근
손님 가운데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맨 먼저 안 것은 마리아였습니다. 마리아는 그 사실을 그대로 예수님에게 알렸습니다. 3절을 보면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포도주 떨어진 것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5절을 보면 마리아는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다?" 이 한마디 속에 마리아의 신앙이 들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26 이하를 보면 어느 날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왔습니다. 그 당시 마리아는 목수 요셉과 정혼만 했을 뿐 처녀였습니다.

가브리엘은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 할 지어다."라는 인사와 함께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는 청천벽력 같은 예언을 했습니다. 마리아 본인의 의사는 묻지도 않은 채 처녀인 그에게 아들을 낳으라며 작명까지 해준 것입니다.

그 당시 정혼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여 아이를 낳게 되면 성밖으로 끌어내 돌로 치는 법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였기에 34절을 보면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며 펄쩍 뛴 것입니다. 그러자 천사는 35절에서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라며 남녀의 만남으로 아들을 낳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시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38절을 보면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45절을 보면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고 했고 55절에서 마리아는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된다는 것이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신앙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본문에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말과 같은 맥락인 것입니다.
그대로 하라. 그대로 되리라 믿는다는 신앙이 말씀신앙인 것입니다. 그 믿음이 문제를 푼 것입니다. 말씀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습니다. 형이상학적 개념이어서 이해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으면 신앙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문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5장을 보면 베드로가 갈릴리바다에서 고기를 잡고있었습니다. 밤새도록 헛 그물만 던졌을 뿐 한 마리도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어부인 그로서는 불가사의한 일이었고 치욕스런 실패였습니다. 헛수고의 밤이 지나고 동이 터오자 그는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거기 찾아 오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한마디에 베드로가 선뜻 순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몇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지난밤의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지난밤이 새도록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실패가 겁나는 사람입니다. 둘째 갈릴리 바다의 고기잡이는 밤에 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낮이 되면 고기떼가 깊은 데로 몰려가 버립니다. 셋째 깊은 데로 가려면 새로운 장비가 필요합니다. 베드로가 가지고 있던 장비는 투망입니다. 그러나 깊은 데로 가려면 예인망이라야 합니다. 그런데 그 장비가 그에겐 없었습니다. 넷째 깊은 데로 가라는 그 분의 직업이 신통치 않기 때문입니다. 수산대학 총장도 아니고 원양어선 선장도 아닙니다. 단 한번도 바다에서 그물을 던져본 일이 없는 목수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누가복음 5:5입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대답하고 씻고 있던 그물을 다시 들고 나가 던졌습니다. 6절을 보면 "그물일 찢어지는지라"고 했습니다. 해법은 간단합니다. 그대로 하면 됩니다. "갖다 주라"는 주님 말씀을 듣고 하인들은 그대로 했습니다.

언제 어떻게 누가 왜 라고 따지거나 묻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했을 때, 물은 포도주로 변해있었습니다.

2) 해결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누가 하라고 하느냐, 누가 갖다가 주라고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없는 것을 있게 못합니다.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지 못합니다. 불행을 행복으로 되돌려 놓지 못합니다. 누가 물을 포도주로 만들 수 있습니까?

어느 날 마술 하는 사람을 만나 얘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수건이 장미꽃이 되고, 손수건 속에서 비둘기가 날고 통속에 있는 사람을 톱으로 자르고 도대체 그런 신통력이 어디서 나오느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마술의 거의 대부분은 속임수라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은 마술이 아닙니다. 눈속임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것은 예수님만 하신 일이었습니다.

잔치를 책임졌던 연회장이 한 말을 주목합시다. 신랑에게 연회장이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처음 마시던 것보다 나중 것이 더 좋다는 뜻입니다. 처음은 좋고 나중은 나쁜 것보다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은 교회, 가정,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사업도 그래야 하고 수입도 그래야 하고 인생도 그래야 합니다. 예수님은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게 하시는 분입니다. 내가 그 증인이고 우리교회가 그 증거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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