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주를 본받으라 (벧전 2:18-25)

  • 잡초 잡초
  • 519
  • 0

첨부 1



주를 본받으라
You Should Follow in His Steps
벧전 2:18~25


18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 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
우나
20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
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23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
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 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 2:18~25)




서론
이 세상에서 모범으로 삼고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모범으로 삼을만한 사람이 그리 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실망합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삶을 재현하였기에 사도시대로부터 이제까지 그들을 흠모하고 모범으로 삼으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사도들도 역시 인간이었기에 완전한 모범자는 될 수 없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모범으로 삼았기에 예수님의 삶을 재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면에 있어서 성도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위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최종목표는 예수님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아무리 많이 봉사하여도 말릴 사람이 없으며, 아무리 희생하여도 말릴 사람이 없게 되었으니, 예수님을 모를 때 마음대로 살고 마음대로 죄를 짓던 방향을 바꾸어서 아무리 거룩한 생활을 하여도 말릴 사람이 전혀 없으니 감사하면서 기쁨으로 주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주님을 본받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본문에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이셨던 모범이 나와 있습니다. 본문에 나온 말씀 하나하나를 살펴보면서 주님을 본받는 비결을 찾아봅시다.

1.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본받읍시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을 본받으려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고난의 종류에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죄로 인한 고난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에 당신의 자녀들이 계속해서 죄가운데 머물러 있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을 때는 죄를 지어도 때리시지 않으셨던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된 후에는 죄를 지을 때 그대로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신앙생활이 깊어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징계의 방법도 더욱 심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죄는 하나님의 미움을 사게 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마음과 육체와 영혼을 더럽히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성도는 고난을 통하여 회개하고 정결케되므로 하나님은 죄인이 회개할 때까지 고난이라는 도구를 통하여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성군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은 사람이요,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왕으로 인정을 받은 유일한 사람이었습
니다. 이스라엘의 국가조직이 튼튼해지고 전쟁에서는 승승장구하며 강성한 나라요, 모든 면에서 안정을 찾았을 때 그는 기도를 게을리 하였고 방심하다가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 죄의 문제를 해결받기까지 고난을 당해야 했습니다. 육체적인 고난보다도 더 힘든 것은 정신적인 고난일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회개하고난 후에 그 고난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2) 애매한 고난이 있습니다.
성도에게도 애매한 고난이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고난을 참으면 이는 틘㎢芽鳴?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고난의 이유도 알지 못하고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대처해야 하겠습니까? 성경이 가르치는 방법은 인내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간의 인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애매한 고난을 당할 때 인간의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얻어 인내하여 마지막에 아름다운 결말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욥의 인내를 들어 우리의 모범을 삼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10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
으라
11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약 5:10~11) 
애매한 고난은 당할 때에는 견디기 어려운 고난입니다. 죄로 인한 고난이라면 자기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면서도 이정도의 고난도 "싸다 싸!" 하면서 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을 위한 고난은 목적을 가지고 당하는 고난이며, 자기가 자원하는 고난이기에 아무리 힘들고 괴로와도 이길 수 있는 정신력이 있고 기쁨과 보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애매한 고난은 어디서 무엇때문에 그리고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 끝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괴롭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자기자신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되어지는데 다른 사람을 인하여 연대책임을 져야하는 경우 혹은 짐작하기조차 어려운 종류의 고난이 다가올 때에 실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내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담은 어떤 의미에서는 애매한 고난을 당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 주므로 받아 먹었습니다. 물론 여자의 머리로서 여자를 잘 보호하고 간수하지 못한 책임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와가 주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아담은 일심동체로 주신 하와를 버리느냐 함께 운명을 같이 하느냐 고민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애매한 고난을 당한 사람입니다.

(3) 선을 위한 고난이 있습니다.
선을 위한 고난은 예수님처럼 당하는 고난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당하는 고난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거나 돕기 위하여 당하는 고난을 말합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우니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선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면서도 끝까지 인내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선을 이루기 위하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끝까지 인내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선을 위한 고난은 적극적으로 받으라고 권하셨습니다. 또 선을 위하여 고난과 핍박을 당할 때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고난을 당할 때 이길 힘을 주시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엔 업고 가 주시든지 고난을 피할 길을 준비하사 반드시 고난을 이기게 하십니다.
죄로 인한 고난은 회개하면 사라집니다. 애매한 고난은 인내하면 반드시 아름다운 결말을 볼 수 있습니다. 선을 위한 고난은 적극적으로 취해야 할 고난입니다.
이러한 고난은 성도를 순수하게 만들며 열매를 맺게 하며 하늘의 상을 얻
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회개하고 인내하며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을 위해서 고난을 받는 자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보상이 있습니다.

2. 겸손과 희생과 봉사의 모범을 보이신 예수님을 본받읍시다.
(1) 그의 행위에서:그는 죄를 짓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면서도 죄를 짓지 아니하셨습니다. 일평생 죄를 짓지 않으시고 선을 행하신 예수님은 성도의 삶의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일평생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사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셨기에 죄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2) 그의 증언에서: 그 입에 궤사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거짓이 없는 삶을 사심으로 우리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인간은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 속임을 받아 타락한 이후 거짓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실만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진실만을 말씀하셨고 진실한 삶을 사셨습다.
인간은 자기를 잘 보이려고 거짓을 말하기도 하며 거짓을 일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의 혀 밑에는 거짓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재갈먹이고 할례를 받아 새롭게 지음을 받아야 참말을 하며 참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거짓의 아비 마귀는 어찌하든지 사람들의 마음 속에 거짓을 불어넣어 참이신 하나님을 반역하고 거짓된 삶을 살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이 아닌 이 세상을 사랑하게 하고 안주하게 하려는 거짓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그의 태도에서: 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23절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역사는 보복정치의 연속이었고 오늘날까지 보복정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역사는 반드시 반복하므로 보복은 보복을 낳습니다. 예수님은 보복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며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고난당하시는 것이 삶의 목표였고, 낮아지시는 것이 목표였고, 희생하시고 봉사하시는 것이 목표였으며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이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4) 그의 호소에서: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호소하셨습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호소하셨다 함은 하나님께 기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무엇이 부족하여서 그렇게 눈물을 흘리시는 삶을 사셨겠습니까? 예수님이 힘이 없어서 하나님께 호소하셨겠습니까? 겸손한 삶을 사신 예수님은 모든 것을 공의로 판단하시는 하나님께 호소하며 맡기는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언행심사에서 아무도 거짓이나 잘못을 찾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원수들조차도 예수님에게서 죄와 실책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거짓 증인을 세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정신과 마음을 본받고 예수님의 행동을 본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희생과 봉사와 겸손을 본받아 예수님을 좇아사는 사람만이 행복한  사람이요, 보람있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목표를 삼고 따라갈 수 있는 예수님이 계시니 얼마나 행복한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를 잘 보이고 옳게 보이려고 또는 잘난척 하려고 남을 욕하고, 힘이 있으면 남을 위협하여 자기의 수하에 두고 다스리려고 하며, 기회만 주어지면 보복하려고
하며, 이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안간 힘을 씁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방법과 정반대의 방법대로 살려고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대로 살 때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봉사하며 살고자 할 때 기쁨이 넘치고, 겸손할 때 마음이 평안하며, 죽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희생할 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며, 나누어 줄 때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순종의 모범을 보이신 예수님을 본받읍시다.
(1) 예수님의 전적 순종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땅 위에서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의 그리스도는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를 낫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이는 우리로하여금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없게 되었고 하나님의 의를 따라서 한 사
람도 살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무조
건 죄를 용서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죄로 삼으시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사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의로 살 수 있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채찍에 맞으사 우리를 낫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순종의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었으나 이제는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영광의 회복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을 다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회복시키사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은 회복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그의 능력으로 잃은 양을 찾고 계십니다. 자녀를 잃어버린 아버지의 마음이 편치 않으면 영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서라도 잃어버린 자녀를 찾으시는 모습이 더욱 영광스러운 모습일 것입니다. 잃어버린 자녀를 찾은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기쁨이 크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은 완전무결하며 영원불변하나 잃어버린 자녀들이 돌아
올 때 더욱 기뻐하실 것입니다. 

(2) 우리도 예수님처럼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계획의 완성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순종의 삶이 얼마나 중요하던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예배의 형식보다 낫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바르게 예배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됩니다.
자녀를 키워가면서 순종 잘 하는 자녀를 볼 때 부모의 마음의 기쁩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인류의 구원이 이루어졌고 하나님께서 만족하시고 그리스도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습니다.

결론
주님을 본받아 예수님의 발차취를 따라가는 것이 우리의 생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완전한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본받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발자취가 천국을 향하여 가는 발자취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요, 이 세상 나그네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이정표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발자취를 찾아 그 뒤를 따르는 각오와 결심이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목표인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내일도 예수님을 본받는 성도가 되십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