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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기와 기회 (요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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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위기와 기회
성경본문 요한복음 2: 1-11

  지난 주간에 부산시민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부산시장이 사망을 하고 나니 마치 자기 집에 초상이 난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지만 그것은 사회성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행위로 끝나지 않습니다. 제가 어느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를 한 끼 해도 그것은 제가 식사한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만큼 우리들의 모든 행위는 다 남들과 관계가 있고 사회성이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개인적인 위기와 사회적인 위기를 경험합니다. 내 개인의 위기가 혼자의 위기로 끝나지 않고 사회적인 위기와 다른 사람과 관계되는 위기로 확산되기도 하고, 사회적인 위기가 내 개인적인 위기로 내안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본문에 가나 혼인잔치 집에 위기가 찾아 왔습니다. 그것은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유대인의 잔치는 한 주간 시행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 잔치의 주된 음식은 포도주입니다. 그런데 그 혼인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이것은 하나의 위기입니다. 잔치집의 위기입니다. 포도주가 없으면 잔치가 바로 형성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이런 부탁을 합니다. “포도주가 없다”고 보고를 했습니다. 그때 주님의 대답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 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대답은 매우 소극적입니다.

  어머니는 상당히 위기감을 가지고 예수께 보고를 했는데 예수님의 대답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여기 어머니를 ‘여자여’라고 부르는 호칭은 우리의 정서나 예법에는 맞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어머니를 향하여 ‘여자여’라고 부른다면 버릇없는 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앞에 아무리 아름다운 수식을 붙여도 맞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여자여’ 이렇게 해도 안 됩니다. 그런데 유대적인 호칭에는 여인이라는 개념이 존칭어 개념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자여’라고 하면서 “이 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즉 이 일에 내가 나설 그런 겨를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 집에 위기가 왔습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위기를 당합니다. 물질적, 경제적 위기가 제일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돈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는 위기가 많이 있습니다. 대인관계, 질병, 예기치 못한 사고, 사건... 온갖 위기들이 오늘 우리들의 현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위기가 있습니까? 위기는 극복하면 기회가 됩니다. 위기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위기를 당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때 위기입니다. 그 위기를 극복하면 또 다른 기회가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크고 작은 위기가 있습니다. 혼인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이 위기는 우리 가정사의 위기요 오늘 우리 사회의 위기요 내 개인적인 위기와 동일한 선상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혼인집은 가나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가나는 갈릴리 근방에 있습니다. 제가 오래 전에 가나에 한번 가 보았습니다. 그래서 포도주 맛도 보았습니다. 가나는 포도산업이 왕성한 도시입니다. 그런데 가나의 포도주는 우리나라에서 파는 포도주 보다 훨씬 순합니다. 그만큼 가나의 포도주는 유명합니다.

  가나 혼인잔치 당시는 농경사회이기 때문에 포도주를 사지 않습니다. 집집마다 포도주를 장만합니다. 특히 결혼을 할 계획이 있는 집에는 거기에 상응하는 포도주를 장만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포도주가 떨어지면 이것은 상당히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집은 포도주가 떨어진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그리고 잔치를 성공적으로 잘 마쳤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오늘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만약 “포도주가 떨어진지라”라고 성경이 끝났다면 이 사건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위기가 극복된 잔치 집의 축복은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큽니다.

  위기의 현장에 계신 예수

  위기가 극복되는 세 가지 요소가 이 사건 속에 있습니다. 첫째는 포도주가 떨어진 이 잔치 집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이 집은 평소에 예수님과 친분이 있는 집으로 보입니다.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에 초대를 받았고, 예수와 제자들도 그 집에 초대 받은 것은 평소에 친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포도주가 떨어진 그 현장에 예수님이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가 그 위기의 현장에 함께 계셨습니다. 이것이 위기를 극복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오래 전에 제가 경부선 버스를 탄 적이 있습니다. 버스안의 할머니가 휴게소에서 내리다가 발을 잘못 디뎌 발목이 부러졌습니다. 휴게소에 응급실도 없고 상당히 난처했습니다. 그런데 차는 떠나야 하고 할머니는 고통스러워했습니다. 딸과 함께 서울 가는 길인데 할머니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행히 그 차안에 의사가 한명 있었습니다. 외과의사였습니다. 그분이 응급조치를 했습니다. 기사보고 가다가 더 심해지면 대구에 들러서 병원에 가든지 하자 해서 버스는 출발했습니다. 그 의사가 돌보면서 서울까지 왔습니다. 이런 일을 경험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사고 현장에 의사 한 분이 계시므로 수습이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위기 속에 예수님이 함께 계시면 그 위기가 극복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위기, 고통, 실패의 현장에 살아계신 주님이 함께 계시길 바랍니다. 이 가나 혼인잔치 집은 다행스럽게도 예수님을 초청했습니다. 주님이 우리 집에 초청되고, 예수님이 우리 집에 자연스럽게 오는 신앙생활을 평소에 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위기 현장에도 주님이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강남에서 목회하시다가 은퇴하신 유명한 목사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목회 중에 아주 씁쓸한 일을 경험한 글입니다. 한 성도가 큰 사업을 시작을 하고, 개업 축하연을 열었습니다. 아주 호화로운 큰 식당에 축하연을 했는데 가보니 상상을 초월을 하는 개업 축하식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굵직한 유명 인사들이 많이 초청되었고, 호화로운 많은 화환들과 무대에는 밴드가 초청되어 있고, 탁자에는 양주가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이 목사님이 예배를 인도하려고 앞의 의자에 앉아 있는데 사장이 와서 “목사님 예배는 간단히 드려주세요”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의 맥이 빠져버렸습니다. 그분은 이날 소감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날 개업식에 주님이 오시기 힘든 자리였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는 주님이 오시기에 힘든 장애물이 없습니까? 주님이 오시기에 힘든 장애물, 인간적인 화려함은 주님이 오시는 길을 가로막습니다. 인생들이 위기를 얼마나 당합니까? 그러나 그 위기의 자리에 살아계신 예수님이 계신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위기를 당했지만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음으로 우왕좌왕하고, 온갖 몸부림을 치다가 멸망으로 가지 않습니까? 이 혼인잔치 집에 계신 주님이 우리 가정, 직장, 점포, 삶의 현장에 늘 동행하시는 주님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순종의 자세로

  두 번째, 위기를 극복하는 비결은 순종입니다. 어머니가 하는 말을 잘 들어보십시오. 5절에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이 장면을 가만히 주목해 보면 처음에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다고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냉담했습니다. 포도주 떨어진 것과 예수님이 상관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어머니는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마침내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는 하인들에게 당부합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예수님은 드디어 하인들에게 명령을 합니다.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명령했습니다. 첫 번째 명령은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하인들이 가득 채웠습니다.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어라” 두 번째 명령이었습니다. 떠서 갖다 주었더니 물이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두 마디입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떠서 갖다 주어라”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부탁한 말은 “무슨 말이든지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성도의 순종에 나타납니다. 이 순종의 요건은 위기를 극복하는 중요한 요건입니다. 사람들이 위기를 당하면 하나님을 놓쳐 버리고, 잊어버리고, 등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위기를 극복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위기를 당할수록 여호와를 향하여 바라보아야 하고, 그 분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세로 그 위기를 극복해야 합니다. 이 말씀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무엇을 말씀하든지 그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인들에게 말씀을 하신 것이 쉬운 말씀 같지만 하인들 편에서는 상당히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입니다. 이 결례를 위한 항아리는 그냥 물을 부어 놓고 밖에서 들어오는 사람 손을 씻는 물입니다. 그런데 지금 포도주가 떨어져서 야단이 났는데 어디 가서 포도주를 구해 와야만 해결이 되는데 결례를 위해서 사용하는 항아리에 물을 부으라고 한 것은 헛된 것입니다. ‘아니, 여기에 물을 부어서 어떻게 포도주를 만듭니까? 이런 헛수고를 왜 합니까? 그리고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일은 손님들이 오기 전에 채워놓고 손님이 올 때 씻는 것인데 이미 손님들이 다 와 있는데 무슨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가?’라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예수님의 명령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명령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 사람이 무슨 헛된 행동을 하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당부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든지 그대로 행하라” 순종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자리에 개입하시는 길을 열게 합니다.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는 시간에 장로님 한 분이 지각을 했습니다. 미안해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장로님을 향하여 목사님께서 호통을 치셨습니다. “장로님, 그 자리에 서십시오. 예배 끝날 때까지 거기 서 계십시오.” 이 장로님께서 목사님의 말씀대로 그 자리에 서서 끝까지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일화로 전해옵니다. 그 장로님은 주의 종의 말을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후에 전해지기로는 그 시간에 예배를 인도한 목사님은 이야기 속에서는 목사로 전해오는데 실제로는 전도사라고 합니다. 그 전도사님의 말 앞에서 장로님이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요사이 어느 교회 같은 분위기라면 장로님이 교회를 떠나든지, 목사가 교회를 떠나든지 둘 중에 하나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순종이라는 것은 위기의 때에 값진 능력을 불러옵니다. 우리는 위기를 당하면, 고난을 당하면 순종하는 일을 핑계합니다. 순종하는 일이 면제되기를 바라는 심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행하는 순종이 따라야 합니다. 이 혼인잔치에 위기를 극복하는 중요한 요건중의 하나가 하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해야 하는 것인데 하인들은 지금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고 있으니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위기의 때에 본색이 다 드러납니다. 위기의 때에 자신을 위하느냐? 남을 위하느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느냐? 하는 본색이 드러납니다.

  만득이와 용득이가 등산을 갔습니다. 골짜기에서 늑대를 만났습니다. 겁쟁이 만득이가 그만 가방에서 운동화를 꺼내어 등산화를 벗고 운동화를 신었습니다. 용득이가 말합니다. “야, 너 왜 운동화를 신어? 도망가야지. 네가 아무리 빨리 뛰어 봐야 늑대보다 빨리 뛸 수 없어.” “걱정 마. 누가 늑대보다 빨리 뛴다고 했어. 나는 너 보다 빨리 뛰면 되는 거야.” 본색이 드러납니다. 친구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위기의 때, 고난의 때에 우리 신앙의 본색이 드러납니다. 고난 중에 우리가 연단이 되고, 위기를 수습하는 중요한 요건은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믿음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진정으로 우리 되도록 만드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입니다. 위기를 당했을 때 신자다운 본색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모습입니다.

  최선의 자세로

  세 번째,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최선입니다. 본문에 보면 아름다운 최선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예수님께 요청했을 때 예수님의 대답은 냉담했습니다. “나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내가 나설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어머니는 인내를 가지고 예수님이 해결해 주실 것을 기다렸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인들에게 당부했습니다. 하인들이 어머니의 당부를 받은 그대로 끝까지 순종을 완료했습니다. 연회장에게 떠서 갖다 주라는 명령은 매우 순종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연회장은 포도주를 가져오라고 호통을 치고 있는데 물을 떠서 갖다 주는 것은 야단맞을 일입니다. 큰일입니다. 그러나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연회장에게 맹물을 떠다 주는 일은 꾸중들을 일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이므로 순종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거기에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엘리야가 허기진 배를 안고 사르밧 과부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먹을 것이 없느냐?” “예, 가루 한 웅큼과 기름 조금 뿐입니다.” “그것으로 떡을 구워 내게 가져오라.” 마지막 식사를 이 여인은 떡을 구워 선지자 엘리야에게 갖다 드렸습니다. 그것을 먹고 축복한 엘리야의 그 손길 때문에 그 통에는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에는 기름이 떨어지지 아니하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도다.” 최선입니다. 최선은 참 아름다운 일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위기의 때에 일어나는 불신앙은 최선을 다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 다른 불신앙, 죄입니다. 이 하인들의 상식에 맞지 않는 명령이지만 마지막까지 순종하고 있는 최선의 걸음이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있어야 합니다. 이 걸음 속에, 순종 속에, 최선 속에 여호와의 능력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하시는 일에 과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책을 한권 읽어도 최선을 다해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한 장 읽어도 마음을 모아서 최선을 다해서 읽어야 합니다. 헬렌 켈러는 기적의 사람입니다. 헬렌 켈러의 생애는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입니다. 이 여인은 3중장애를 가졌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누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헬렌 켈러,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삼일 동안 건강을 주신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첫째 날에는 나와 친한 사람들을 초청해서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겠습니다. 둘째 날에는 낮과 밤이 바뀌는 것을 한번 경험해 보겠습니다. 셋째 날에는 태양이 떠오르는 광경을 보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내일 벙어리가 될 것처럼 말하십시오. 내일 소경이 될 것처럼 많이 보십시오. 내일 귀머거리가 될 것처럼 많이 들으십시오.” 이 교훈은 당신이 볼 수 있을 때, 들을 수 있을 때, 말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헬렌 켈러는 3중장애를 안고 막연하게 여호와의 도움과 기적만 바라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은 말을 하기 위해서 피눈물 나는 훈련을 했습니다. 이 여인의 기적 속에는 최선의 땀방울이 묻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섬길 때 최선을 하지 않는 죄를 범치 않기 바랍니다. 성전건축, 우리 각자가 최선을 다할 때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 아무리 교인이 많아도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30명의 믿음의 청년들이 최선을 다하여 기도했던 옥스퍼드의 기도회가 영국을 변화시켰습니다. 세계를 변화시켰습니다. 숫자, 분량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몇 사람 있느냐에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맺는 말

  가나 혼인잔치의 기적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과 예수님의 말씀과 마리아의 순종과 하인들의 최선이 묶어져서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 어머니와 하인의 역할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어머니와 하인이 없으면 그 잔치 집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계셨다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분명히 믿으십니까? 거기에 어머니와 하인들이 있다면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킵니다. 위기를 극복하게 합니다. 이 위대한 진리를 새기면서 여러분의 개인적인 위기를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 국가와 사회가 안고 있는 위기도 이 원리 안에서 극복될 수 있음을 믿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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