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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떻게 살아야 할까? / 삿 17:1~6 (살전 2:1~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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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어떻게 살아야 할까?" 
본문 : 사사기 17:1~6 (데살로니가전서 2:1~4 참조)
2004년02월15일 설교 
 
 
  봄 내음이 가까이 느껴지는 좋은 아침, 거룩한 주일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크신 사랑과 자비와 은혜의 단비가 여러분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가치있게 살고 싶어합니다.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존귀한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물질과 건강과 삶 전부를 소중하고 알차고 보람되고 가치있게 사용하고 싶어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가치있는 삶이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혼돈과 방황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치의 현실을 볼 때 위정자들이 막가파식의 정치 행태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불안을 야기합니다. 계속되는 경제의 침체로 일자리는 없는데도 물가는 치솟고 있습니다. 도덕과 윤리의 모습은 가치관의 혼돈으로 극심한 정신적 공황 상태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혼란과 방황의 극치를 보여 주는 현시대입니다.

  오늘 말씀을 읽은 구약 사사기 시대를 요약해서 말할 때 오늘날처럼 혼돈과 방황의 시대였습니다. 사사기 시대는 특별한 지도자들이 없었던 때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사명을 마치고 세상을 떠난 후에 사사들이 활동하게 된 때는 혼란과 방황이 극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12 명의 사사들을 사용하여 그 시대를 다스리시기는 했지만, 그 사사들은 모세와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백성들에게 탁월한 지도력을 행사한 인물들은 못되었습니다. 기드온, 삼손, 옷니엘 등과 같은 인물들은 주로 전쟁터에서 군사적인 지도자 역할은 했지만, 전 이스라엘을 신앙으로 이끌만한 지도력은 없었습니다. 사사기 시대는 오늘 우리 시대와 같이 지도자 부재를 경험하는 시대입니다. 한 사람의 훌륭한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모세가 그립고 여호수아가 그리운 것은 바로 그들의 지도력이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나 지도자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지도자는 한 시대를 책임지고, 수많은 백성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나가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사사기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을 인도할 마땅한 지도자가 없어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고 합니다. 사람들마다 자기 소견은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이 참 자유롭게 보이지만, 사실은 그런 삶은 혼돈과 방황을 만들 뿐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삶, 자기 입맛대로 사는 삶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다가 구덩이 빠지는 것과 같은 삶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지혜롭고 총명합니까?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자기 생각이 분명합니다. 자기 색깔이 분명한 아이들은 좋고 싫다는 말을 명확히 합니다. 개성이 뚜렷합니다. 귀거리를 몇 개씩 달고 사는 사람, 코거리를 하는 사람, 별난 머리 모양을 하는 사람, 자기의 특색을 제멋대로 살리고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개성과 특색이 많다는 말은 다양성은 있지만, 공통점이나 하나됨, 일치성은 어렵다는 말도 됩니다. 우리 사회는 수많은 목소리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컴퓨터 사이버 공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소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별의별 난잡하고 복잡한 소리들이 들립니다. 진리와 표준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대에 많은 백성들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정신적인 방황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혼돈과 방황의 시대를 지혜롭게 살아가는 비결을 알아야 합니다.

  사사기 시대 곧 혼돈과 방황의 시대에도 지혜롭게 살아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오미와 룻이 있고, 사무엘과 한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혼란과 방황의 시대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를 받았고 삶을 참으로 아름답게 살아간 것을 알게 됩니다. 사사기의 어려운 시대에 나오미와 룻은 처절하게 밑바닥의 삶을 체험한 여인들입니다. 그들은 가난과 싸워야 했고, 가족을 모두 잃고 외로움과 슬픔과 투쟁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긴 절망의 아픔 속에서 생각한 것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고향 유대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철저히 버림받고 아픔을 당하고 고통을 체험한 후에 희망은 오로지 하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고국 땅 유대로 돌아왔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의식주를 보장해 주셨습니다. 그들의 미래를 책임져 주셨습니다. 한나와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리지 않았던 흑암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한나는 자신의 소망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던 하나님의 딸이요, 사무엘은 성전에서 자라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시대와 나라를 지도했던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혼란의 시대일수록, 방황의 시대일수록 삶의 해결책은 바로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다간 결국 낭패와 실망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혼란과 방황의 시대에 희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 인생의 해답이 있습니다. 어두울수록 혼란이 올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목소리를 내게 됩니다. 아우성의 소리를 내게 됩니다. 혼란과 방황의 시대는 철저히 인본주의 사상이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세상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세상이 되다보면 혼란이 기승을 부립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이 사람의 입맛을 맞추는 행위가 아니라고 합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고난과 역경을 감수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복음전하는 일에 전력하겠다는 결연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사람 중심의 삶을 살아갈 때 쉽게 절망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연약하고 변하기 쉽고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은 진리가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해결책과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면, 삶의 방황이 끝나게 됩니다.

  20 세기 후반에 들면서 세상을 사로잡는 것 가운데 하나가 혼합주의 사상이라고 봅니다. 혼합주의란 절대 진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봅니다. 부처와 예수님이 함께 할 수 있고, 철학과 종교가 만날 수 있고, 모든 사상 가운데 좋은 것만 골라서 이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혼합주의는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율법주의는 율법과 복음의 혼합주의입니다. 영지주의는 지식과 복음의 혼합주의입니다. 오늘날 뉴에이지 운동은 현대 지식과 복음의 혼합주의입니다. 좋은 것이 좋다는 말처럼 절대 진리를 인정하지 않게 되면,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의 구세주가 되실 필요가 없게 됩니다. 혼합주의은 철저히 이단 사상입니다. 하나님은 혼합주의를 미워하십니다. 철저히 미워하십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우상과 혼합되었을 때 가차없이 벌을 내리시는 분입니다. 우리 안에 혼합주의 물결이 있다면 그것을 물리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내 안에 세상의 흙탕물을 씻어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맑은 영성이 자리잡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혼란과 방황이 끝이 나고, 새 힘으로 가득 찬 나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시편 27:1에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무장하는 사람은 무서움과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혼란과 방황이 끝나고 새로운 빛과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혼돈의 시대에 우리들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요? 사람들의 소리에 좌지우지하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품 안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들으며, 그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옳은 일이겠습니까? 어둠의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희망이 있습니다. 정치에 희망이 없고 경제를 낙관하지 못하고, 오늘 이 시대의 윤리와 도덕이 꿈을 잃어버렸다면 우리는 더욱 하나님께 나아가야만 합니다. 사람을 의지하다가는 여지없이 절망의 나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불행을 맞게 됩니다. 절망의 시대에 뒤를 돌아보며 방황하던 롯의 아내를 기억해야 합니다. 소금 기둥이 되었던 롯의 아내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세상을 바라보았기에 불행한 삶으로 마감하였습니다. 

  한 여행자가 그랜드캐년에서 벼랑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굴러가다가 가까스로 나뭇가지 하나를 붙들고 간신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러나 살아나갈 방도가 막연했습니다. 그는 겁에 잔뜩 질려서 고함을 질렀습니다. “거기 위에 누구 없소? 나를 살려 주시오!” 그러나 어떤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내가 구해주마. 그런데 한 가지 물어 보겠다. 너는 나를 믿느냐?” 매달린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예, 확실히 믿습니다. 주님, 저는 매 주일 교회에 나갈 뿐 아니라 새벽기도도 나갑니다. 헌금도 20 달라나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물었습니다. “네가 정말로 나를 믿느냐?” 그 사람은 숨을 몰아쉬면서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얼마나 하나님을 믿는지 하나님을 모르실거에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좋다. 네가 붙들고 있는 그 나뭇가지에서 손을 놓아라” 그러자 한참 동안 소리가 없던 그 사람이 말합니다. “거기 위에 다른 사람 없소?”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마음이 혼란스러울수록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어둠이 짖게 깔릴수록 빛을 찾아야 합니다. 산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은 산등성에 올라 방향을 찾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중심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좌표는 하나님께서 표준이 되십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이 인생의 궁극적인 승리가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광야의 모든 믿음의 식구들이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고, 하나님께만 의지하며,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사람들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그래서 혼란과 방황의 시대에 참된 길을 바르게 걸어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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