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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 딤후 1: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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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지도자의 네가지 모습
디모데후서 2:1~7

디모데후서는 로마의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던 시대에 바울이 삶의 마지막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면서 믿음으로 낳은 아들 디모데에게 쓴 편지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바람직한 목회 방법에 대해 말합니다. 그런데 다른 목회 서신들과 달리,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죽음을 앞두고 쓴 마지막 서신이라 그런지 목회적인 안내와 동시에 개인의 사적인 감정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두 주간에 걸쳐,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가 다시 한 번 불일 듯 일어나길 간구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두려워 말아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뿐만 아니라 구원으로 인한 영생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임도 알았습니다.


믿음과 사랑으로 복음을 지키십시오

오늘 사도 바울은 고난에 참예할 만한 가치가 있는 복음을 전파하고 지킬 것을 강권합니다. 그리고 복음은 아름답고 선하며 건전한 진리라고 증언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음 세 가지로 복음을 수호할 것을 권면합니다.
첫째, 주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복음을 지키라고 합니다. 13절 말씀을 봅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여기서 ‘바른 말’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전해 주었습니다. 그것을 디모데는 열심히 들었습니다.
복음은 듣는 데서 시작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들은 그 진리의 말씀을 지키는 일입니다. 특별히 바울은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복음을 지키라고 강조합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믿음은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랑이 성도와 성도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믿음은 하나님과 우리의 신뢰 관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흉악한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일입니다. 믿음은 구원의 유일한 길이 십자가임을 선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굳건한 믿음이 복음을 지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의 선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1장 15절에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이 세상에서 우리를 지키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도 지켜줄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여러 표어 가운데 ‘오직 믿음으로’라는 말을 굳건히 붙잡았습니다. 사람은 어떤 선한 행위, 지식, 권력 등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믿음뿐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믿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복음 왜곡 현상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복음 왜곡의 요소들 중에 하나가 바로 인간의 본능이고 행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높이 쌓으려는 인간의 바벨탑도 구원을 방해하는 한 요소입니다. 복음이란 곧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힘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과 믿음으로 복음을 지키라고 강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사랑입니다. 곧 십자가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사단은 사랑하지도, 사랑을 주지도, 사랑을 나누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이십니다. 이 사랑은 사람들을 변화시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치유하시고 변화시켜 주십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사랑했습니다. 바울의 사랑이 디모데를 변화시켰습니다. 바울의 사랑이 디모데에게 심어지고 디모데의 사랑은 에베소서에 있는 많은 성도들에게 옮겨집니다. 이 세상에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조건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사랑을 받은 믿음의 성도입니다. 성도는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이기풍이라는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깡패 출신이었습니다. 처음에 그 분은 ‘마포삼열’이라는 외국인 선교사에게 돌을 던지며,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마포삼열 선교사는 그 분을 용서하고 끝없이 사랑했습니다. 그런 사랑 속에서 그 분이 예수님을 믿게 되고 큰 변화를 받아 제주도로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치유시킵니다. 궁극적으로 믿음과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지키게 하는 유일한 길이 됩니다. 우리는 믿음을 굳건히 하고 서로 사랑을 나눠야 합니다.


성령으로 복음을 지키십시오

둘째,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복음을 지키라고 합니다. 14절 말씀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사도 바울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에 대해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성령으로 지키라고 권합니다. 여기서 아름다운 것이란 건전한 말씀, 바른 말 곧 복음을 가리킵니다.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는 말씀은 복음의 바른 교훈을 지키라는 의미입니다.
특별히 감옥에 갇혀 죽음을 눈앞에 둔 바울은 에베소에서 목회하는 디모데에게 유언과 같은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내가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성령의 능력으로 지킬 것을 부탁합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아니라면 우리는 믿음과 사랑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도 성령을 받기 전까지 로마의 군인들을 무서워했습니다. 자신들을 핍박하는 대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모였을 때 언제나 문을 잠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성도 120명과 함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성령을 받았을 때 닫힌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제자들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자, 그들은 모두 능력을 받고 주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주님의 부활을 증언했을 때 하루에 3천 명이 깨달음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강림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사랑은 성령의 임하심으로 증명되었습니다. 두려워한 나머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도 성령을 받고 변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 41절에 보면“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후 예수님 때문에 받는 박해를 감사하고 기뻐하며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 6절에서 베드로가 태어나면서 앉은뱅이가 된 사람에게“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고 죽은 자도 살려냅니다.
사도행전 8장 6~8절 말씀에 따르면,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여러 표적들을 행합니다.“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구하십시오
성령이 임할 때 능력이 나타나 주님의 증인이 되고, 진리의 말씀을 수호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임하면 우리로 하여금 말씀을 해석하고 분별하며 지키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남녀노소 누구나 성령을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임합니다.
중국에 있을 때 아내가 몸이 아팠습니다. 저희가 있던 곳은 열악한 환경으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중국으로 가기 전에 몸이 아팠는데, 다시 재발한 것이었습니다. 저희가 기도를 많이 했는데도, 아내의 몸은 계속 좋지 않았습니다.

그해 여름을 맞아 젊은 형제들이 캐나다 밴쿠버에서 천진어학원에 왔다가 저희가 있는 농장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서울에서 인천쯤 되는 거리인데, 제가 차를 몰고 가서 데리고 왔습니다. 그들은 중국 사람들에게 영어 공부를 통해 복음을 전하려는 신실한 형제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농장을 둘러보며 사진도 찍고 땅밟기 기도도 하며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들이 천진으로 돌아가겠다고 해서 기차역에 데려다 주고 승차권을 구해 배웅했습니다. 그때 그들이 선물을 달리 준비하지 못했다며, 저희 부부를 작은 역전에 앉혀 두고 축복송을 불러주었습니다. 한국말로 크게 부르니까, 지나가던 중국인들이 모두 쳐다보고 해서 저희는 무척 쑥스러웠습니다. 축복송을 부르는 그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젊은 형제들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내가 몸에 변화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하룻밤 자고 나니, 아내가 앓던 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것은 저희 가정에 큰 위로였고 복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는데, 성령의 능력은 이상한 현상뿐 아니라 사랑을 담은 축복송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성령의 능력이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지킬 수 있도록 하시기에 가능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우리는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를 간증할 뿐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사모하고 그 은혜와 능력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이 소멸되지 않도록 자신을 다스리며 성령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진실과 충성으로 지키십시오

셋째, 진실과 충성으로 복음을 지키십시오. 사도 바울은 사적인 내용도 편지에 썼습니다. 자신을 떠났던 사람과 떠나지 않았던 사람들에 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끝까지 충성하는 자들에 의해 지켜지는 것입니다. 15절에서 18절까지 말씀을 읽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 (원컨대 주께서 저로 하여금 그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또 저가 에베소에서 얼마큼 나를 섬긴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사도 바울이 두 번째로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울을 배신하고 떠나버렸습니다. 당시에 바울을 싫어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아시아는 에베소를 중심으로 하는 버가모 왕국으로 로마의 식민지를 말합니다. 대개 소아시아로 구별해 말하며, 지금의 터키 남동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로마 감옥에 있던 바울에 대해 오해하고 시기하며 미워했던 사람들이 떠난 것입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울을 버린 사실에 대해 디모데는 알고 있다고 합니다. 동역자가 감옥에 갇혔을 때 더 많은 사랑으로 돌봐줘야 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열심, 타협하지 않는 성격 등 때문에 적을 많이 두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라는 이름이 거론된 것을 보면, 그들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 교회의 중요 인물이며 바울을 반대했던 대표적인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바울을 져버리고 떠났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신, 능력, 권세도 없으며 감옥에 갇혀 버려 모든 것이 끝났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네시보로라는 사람은 부겔로와 허모게네와 달리 감옥에 있는 바울을 자주 찾아주었습니다. 그는 바울을 유쾌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유쾌하다는 말은 용기를 북돋워주었다는 뜻입니다. 오네시보로는 에베소에서 많은 봉사를 하고, 로마로 와서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주 찾았습니다.

사람들은 어려움과 고난이 닥치면 주님을 떠나 버릴 때가 많습니다. 형편이나 사정에 따라 자주 변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르며 축복받기를 원하지만, 주님으로 인해 받아야 할 고난과 박해 그리고 십자가의 길을 가기는 거부할 때가 많습니다. 오네시보로의 믿음은 우리에게 신실함과 충성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개인적으로 오네시보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고난을 받으며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중에 오네시보로와 같은 사람을 찾으십니다. 어려운 환경, 박해, 고난, 핍박 중에도 흔들지 않는 믿음으로 항상 주님을 향한 신실함과 충성됨을 가진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상황과 형편에 따라 변하는 부겔로와 허모게네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믿음과 충성을 가진 사람을 찾으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향해 신실하고 충성돼야 하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신실하심과 충성됨이 변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복음을 위협 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를 핍박하고 환난으로 몰고 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은 복음을 변질시키고 왜곡시키며 첨삭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 성령의 능력,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실함과 충성됨으로 끝까지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 부탁하신
아름다운 복음을 지킬 수 있도록
믿음과 사랑을 더하여 주옵소서.
성령의 능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향한 우리의 신실함과 충성됨을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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