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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 생활의기초(주일성수) / 신 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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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신앙 생활의기초(주일성수)
본문 : 신명기 5:12-15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신명기 5:12-15)

일반적으로 국민 소득이 일인당 만불을 넘게 되면 그 이전과는 다른 특별한 현상들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교회들이 꾸준히 성장을 하다가 성장이 둔화되거나 또는 하강 곡선을 그리게 되어지고 사회적으로는 레져 산업이 굉장히 발전을 한다는 그런 통계가 있습니다. 우리한국교회에서도 90년대를 지나면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었고 7,80년대를 거치면서 계속 성장해 온 한국 교회가 이제는 그 성장을 멈추고 도리어 전체적인 교인수가 줄어 들어가는 그런 때를 맞이했습니다. 물론, 그러다가 IMF를 맞이하면서 교회가 다시 한번 그런 현상에서 벗어나기도 했습니다만, 이런 현상은 어쩌면 계속되어지리라 생각됩니다.

  1945년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를 하고 난 뒤에 독일의 남은 것은 폐허된 공장과 집들, 그리고 가난과 굶주림, 또 나라는 동서로 쪼개어져서 미국, 영국, 소련, 불란서가 점령군이 되어서 통치를 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독일 사람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다시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재건에 동참을 하게 되었고 모든 면에서 그들은 근검절약하는 그런 일들을 실천을 했습니다. 성냥개비 하나를 사용하는데도 대여섯 사람이 모였을 때에야 성냥개

비를 사용할 만큼 그렇게 절약을 하였습니다. 그 시기가 대략 1945년도 후반기부터 1960년대까지 약 20여년간 그런 재건의 노력을 계속 해 왔습니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은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게 되어졌고 이제 이런 20년 가까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 잘 살게 되어졌으니까 ‘우리도 이제 좀 편안해 지고 싶다, 이제 정말 여유있는 여가 시간을 좀 보내고 싶다’는 욕구가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습니다. 2차 대전의 패배위에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매달렸던 독일 교회가 그때부터 주일이 되면 빈자리가 보이기 시작을 했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던 사람들이 주일이 되면 자가용을 몰고 저 남쪽 지중해 바닷가나 아드리아해 해변가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시간의 여유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겨울이 되면 교회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기 보다는 알프스 산장에서 스키를 즐기는 이런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게 되어졌습니다. 

  이러한 것을 계기로 독일에는 3D 현상이 우리보다 몇십년 빨리 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궂은 일을 하기 싫다, 힘들고 위험하고 더러운 일은 외국 노동자들을 불러다가 일을 맡기자’는 분위기가 생겨남으로 말미암아 제일 먼저 터키 노동자들, 유고슬라비아 노동자들, 그리스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수입해서 그들에게 더럽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는 그들의 시간은 온통 여가 시간으로 즐기게 되어 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과 맞물려서 2차대전 후에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께 매달리고 열심을 내었던 그들의 신앙은 점점 식어져가고 그들은 점점 교회를 떠나가게 되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세계 각 국에서 노동자들을 불러드리기 시작합니다.

독일의 뤼브케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의 광부들과 간호원들을 독일로 초청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독일에서 그들에게 붙여진 이름이 Gastarbeiter이라 해서 초청노동자들이라는 용어를 만들어서 사용하고 그들은 이제 점점 더 편안해지고 즐거운 삶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대부분 6월말에서 9월말까지 3개월정도가 휴가 기간인데 휴가기간에는 교회에 아예 예배드릴 사람이 없어서 어떤 교회에는 ‘여름 휴가 기간동안에 예배를 쉽니다’라는 안내판이 게시판에 붙어있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 이하 교인들이 아드리아 어느 도시 해변에 머물게 됩니다’라고 붙어있기도 합니다. 교인들이 겨울이면 알프스 스키장으로 여름철이면 아드리해 바닷가로 다 빠져 가니까 독일에서는 묘안을 만들어 낸 것이 무엇인고 하니, ‘놀러간 사람들에게라도 예배를 드리게 해야 하지 않게느냐’ 하여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를 만들어 냈는데 목사님이나 신부님들이 벤츠 큰 대형 버스에다가 예배실처럼 꾸미고 운전석을 뒤로 돌리면 그곳에 강대상이 설치되도록 만들어서 목사님과 교회 직원들이 함께 아드리해 해변가로 가서 ‘몇시부터 몇 시까지 예배가 있습니다’하면 놀던 사람들이 예배 시간이 되면 그곳에 들어와서 예배를 드리고 예배를 마치면 다시 나가서 노는 그런 일 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스키장에서도 그렇게 하는 일들이 흔히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moblie church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독일 사람들 가운데는 평생에 교회에 세 번가는데도 평생 교회에다가 헌금을 합니다. 그들은 우리들처럼 헌금을 하는 것이 아니고  원천적으로 그들의 수입에서 종교세라 하여 세금이 떨어져 나갑니다. 그것이 교회에 배분이 되어지는데 태어나서 유아세례를 받을 때 교회에 한 번 가고 결혼식 때 한번 가고 나중에는 죽어서 장례식 때 교회에 가는 것으로 세 번 교회에 가면서 한 평생 교회에 헌금을 하는 그런 교인들이 엄청 늘어나게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만큼 교회가 많은 문제 속에 빠져 있다는 것을 흔히들 설명합니다.

  이제 민주노총에서 주 5일 근무제를 위해서 집회를 갖는다는 보도를 뉴스시간에 들었습니다. 이 주 5일 근무제는 하나의 시대적인 흐름이고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대세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지금 우리 한국 교회도 이 주5일 근무제와 함께 교회의 예배와 하나님 앞에서 주일을 성수하는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인 계획들이 수립되어져야 되지 않는가라는 생각들이 듭니다. 우리 교인들을 주일날 무엇보다도 먼저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려고 한다할찌라도 하나님 앞에 이 주일 성수에 대한 신앙이 바로 있지 않은 사람들은 주일날의 우선 순위를 낙시터를 간다든지, 등산을 간다든지, 아니면 드리이브를 가는 등등의 이유로 교회를 빠져 나가게 되어지리라 생각이 됩니다. 남북 통일이 되어지면 주말 휴가를, 특히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 금요일 오후에 휴가가 시작되니까 금강산에서 주말 휴가를 보낸다든지, 만주 어느 들판에서 보낸다든지,. 북한에 있는 동해안 명사십리에서 주일을 보낸다든지 하는 그런 현상들이 분명히 생겨나리라 생각이 되어집니다.

1.주일 성수란 무엇인가?

  그래서, 우리가 이제 주일성수에 대한 성경적인 원리가 무엇이고 우리 신앙인들이 이 주일을 어떻게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들 주일 성수라는 말을 쓸 때 좀 생소하게 들리기도 합니다마는, 주일 성수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우리 믿는 자들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을 주일성수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교회에서는 이 주일성수라고 하면 율법주의적인 사고에 익숙해져 있어서 뭣하면 안되고 뭣하면 안되고, 안되고, 안되고 하는 하지말라 하지말라, 하지말라는 식의 주일 성수에 고착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 복음적인 주일 성수는 우리가 해야 될 것을 우리가 바로 할 때 온전한 주일성수가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주일성수란 무엇인가? 제가 우리 대한예수교 장로회 헌법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지금 신앙생활의 기초에 대한 것을 말씀드리고 있기 때문에 이 헌법책에 보면 예배 지침이라는 부분이 있는데 예배 지침 제 2장에 주일성수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3조에서 6조에 거쳐서 주일성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주일성수의 의무에서 3조에 ‘주일성수는 인류의 당연한 의무이다 이날은 일체의 육신적인 사업을 정리하고 성경의 교훈에 따라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제4조 주일 공동회집, 주일은 공동회집으로 모여 예배하는 것이 신자의 기본적인 의무이며 이 날은 일체의 사사로운 일이나 쾌락행위를 중지하고 세상 염려나 저속한 언동을 삼가야 한다, 제 5조 주일 준비,주일성수는 제 4계명이 가르치는 대로 거룩히 지키되 사전에 성실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충분히 준비하여 공동예배에 하나님과 교제함이 있도록 해야 한다. 일용할 음식물까지라도 미리 준비하여 공식예배와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일에 일체의 거리낌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제 6조 주일에 할 수 있는 일, 주일에는 기도 묵상 찬송 성경연구 공식예배 참석 기타 전도 구제 등의 선한 사업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성도간에 교제에 힘써야 한다’.이렇게 예배 지침에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율법적인 의미에서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이 안식일 규례라는 것이 매우 까다롭게 규정이 되어있습니다. 심지어 바리새인들에게는 39가지의 안식일에 금해야 할 금지 규정이 있었는데, 그 금지 규정은 사실 우리가 다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것이었습니다. 이 규례가 얼마나 까다로운 것이었는 지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 쉽게 그 예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안식인날 예수님께서 밀밭 사이로 제자들을 데리고 지나가시다가 제자들이 시장하므로 밀이삭을 따서 손으로 비벼서 먹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보고 ‘당신의 제자들이 지금 안식일을 범하였다’고 비난을 하는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뒷부분에 그 문제에 따르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지만  어쨋던, 안식일에 대한 규례는 당시 상당히 복잡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우리 자신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에서 안식일 규정에 대해서, 주일성수의 개념에 대해서 많은 설교를 듣고 성경공부 시간에도 배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마다 좀더 이것에 대해서 정확하고 본질적인 면에서 바로 알고 있다라기 보다는 오히려 금지 조항이나 규례들을 많이 알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지키는 규례들과 다른 사람들이 지키는 금지 규례들을 비교하면서 내가 이런이런 금지 규례를 지키면서 다른 것을 지키지 않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다른 금지규례를 지키면서 이런 것을 지키지 않는 그런 일들이 교회 성도들간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들이 생기는가 하면 우리도 모르게 우리 자신들이 이 주일 성수와 관련해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다른 사람들을 영적으로 정죄하는 일들이 흔하게 발생하게 되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도 또 이방송을 듣는 청취자 분들도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분들이 분명히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나는 이렇게 이렇게 주일을 지키고 성수를 하는데 저 사람은 주일 성수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라고 했을 떄 내가 가지고 있는 안식일 준수의 규례를 가지고 그것을 죄인과 의인을 가르는 잣대로 활용한다든지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고 하면 우리 자신은 안식일 규례나 또는 주일 성수의 개념에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될 줄을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이 이 주일 성수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를 바로 알고 내 자신이 힘써 주님의 날을 거룩하게 하나님 앞에 지키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안식일 규례로서 주일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다 안식일 규례로 주일을 지킨다고 한다면 우리는 주일을 범하면서 이 자리에 와 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최소한도로 여러분들의 가정과 우리 교회 사이의 거리가 912M이상 되는 거리에서 이 교회에 나왔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안식일 규례를 범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200규빗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미터로계산하면 912M입니다. 즉 912M이상의 거리를 이동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안식일 규례는 우리가 기억할 수도 없고 기억하기에도 복잡한 내용들을 바리새인들이 만들어서 정해 놓았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나오는 안식일 규례들을 확대 해석하고 정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바로 안식일 규례가 자기자신들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올무가 되도록 하는 그런 실수를 범하게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주일성수와 관련해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이 안식일 규례, 주일성수에 대해서 바른 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지키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살아야 되겠지만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 수단으로 삼아서는 결코 안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2.주일은 어떤 날인가?

  그러면 이제 주일이 어떤 날인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주일에 대해서 바로 알기 위해서는 주일과 안식일을 비교해서 알아야 합니다. 흔히들 우리 한국 교회에서 안식일과 주일을 같은 날로 사용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안식일과 주일은 다른 의미의 날입니다. 그런데 교회 역사 속에서 안식일의 개념이 오늘 우리가 지키는 주일의 의미에 용해되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우리 자신이 입으로는 주일을 말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을 할 때는 안식일의 규례를 말하는데,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주일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디.

  여러분 안식일은 한주일의 일곱 날가운데 제일 마지막 날입니다, 그런데 주일은 일곱 날 가운데 제일 첫번째 날입니다. 안식일의 유래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엿새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신 것에서 안식일의 유래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해서 지키고 그들로 하여금 평안히 쉴 수 있도록 율법을 주신 것에서 안식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주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날이 바로 로마 사람들이 지키는 달력으로 보았을 때 일요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요일은 한주간의 마지막 날이 아니고 한 주간의 첫째날이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일, 월, 화, 수, 목, 금, 토 로마 사람들은 기독교가 들어가기 전까지 태양신을 섬겼기 때문에 일요일은 태양의 날이고, 월요일은 달의 날이고 그다음 다섯 개 별을 더해서 일곱 개 날을 정해서 그것이 돌도록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로마를 사랑으로 점령하고 난 뒤에 로마에서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고 기독교를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에서 지키는 주님의 부활의 기념일인 주님의 날을 로마의 일요일에 일치해서 지키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유대인들의 달력으로 보아서는 안식후 첫날이었고 로마 사람들의 달력으로 보아서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처럼 일요일 새벽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의 개념과 주일의 개념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차이가 있었던 안식일과 주일이 초대 교회 당시에는 많은 개종한 유대인들이 안식일은 안식일 대로 지켰고 주일은 주일대로 지켰습니다.  안식일의 정확한 시간 개념은 금요일날 해가 지는 시간부터 토요일날 해가 지는 시간까지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시간 개념은 새벽 0시를 기점으로 하여 바뀌지만 그 당시 사람들의 날짜 개념은 해가 지면서부터 그 다음 날 해가 지는 것까지를 하루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안식 후 첫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건이나 다른 사건들이 주일이라는 단어로 표현되어 있지 않고 안식후 첫날이라는 표현으로 기록이 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제 초대교회 당시에 기독교인들이 안식일은 안식일 대로 지키고 주일은 주일대로 지키던 것들이 로마제국에서 321년 콘스탄틴 황제가 칙령을 내려서 모든 기독교인들과 로마에 있는 사람들은 일요일을 주의 날로 지키도록 칙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364년 라오디게아 종교회의를 통하여 주일을 일요일로 지킬 것을 선포하고 공인하면서 오늘 날까지 이렇게 쭉 전개되어져 내려오게 되었습니다.그리고 17세기 영국의 청교도들이 주일의 개념을 십계명의 제 4계명의 내용과 동일시 하면서 이것을 매우 엄격히 지키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장로교 헌법 예배 지침에도 제 5조에 보면 ‘주일 준비는 제 4계명이 가르치는 대로 거룩히 지키되’ 하면서 안식일의 규례를 이 주일의 개념속에 포함을 시키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3.주일을 어떻게 거룩히 지킬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이 주일을 어떻게 지키는 것이 거룩하게 지키는 것인가?
  그것에는 율법적인 준수방법이 있고 복음적인 준수방법이 있습니다. 율법적인 준수방법은 부정적인 의미로 ‘하지마라, 하지마라, 하면 안 된다’라는 의미로서의 주일 성수가 되는 것으로, 노동은 안된다, 매매는 금지한다, 과도한 이동을 금지한다, 전쟁 중에라도 안식일에는 일방적인 휴전을 선포한다, 말을 금한다, 오락을 행치 않는다 등등 여러가지로 율법적인 의미에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을 성경에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부분 구약의 안식일 준수에 대한 개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것을 다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고 힘써 규약의 안식일의 규례를 지키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개념보다도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개념으로서 복음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주일을 하지말라는 의미보다 무엇을 하라는 의미로 지키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구분해서 지키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 드리고 성도들과 교제를 하는 날로 또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날로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 예배 지침의 제 6조를 보면 주일에 할 수 있는 일로 기도와 묵상과 찬송과 성경연구와 공식예배 참석과 전도와 구제와 선한 사업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성도간의 교제에 힘쓰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말라 하지말라’ 가 아니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런 일을 바로 주일날 하게 될 때 우리가 온전한 주일 성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적인 의미로서 주일을 지키는 것 즉, ‘하지말고 하지말고, 해서는 안되고 해서는 안되고’ 식이 아니라 복음적인 주일 성수는 해야 될 것을 바로 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특별히 주일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주일 성수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성경 말씀을 배우고 성도간에 교제하고 찬양하고 전도하는 이런 해야 할 것은 안 하면서 하지 말아야 될 것만 생각하고 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우리의 삶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는 이것은 분명 주일 성수가 아니라 안식일 성수로 우리의 신앙을 전락시켜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상담을 하면서 이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사실 아주 안타깝고 힘든 상담 가운데 하나가 원칙과 현실 사이에 상당한 차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질문들입니다.
  어느 공업고등학교 졸업생이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자격증을 따야 하는데 한국의 모든 자격증 시험은 대부분 주일날 시행됩니다. 공무원 시험이나 국가의 대부분의 고시가 주일에 시행되는데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시험을 치루어야 하는데 이 시험날짜가 주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담임 목사님께서 주일날엔 시험을 치루러 가면 안된다라고 하셔서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고민고민하다가 갈등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아무 양심의 가책도 없이 당연히 시험을 치르러 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양심에 거리낌을 느끼지만 가는 사람도 있고 아예 시험을 포기하는 순교자적인 신앙의 사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신앙적으로 사실 잘못 이해시킴으로 말미암아서 그 신앙에 죄책감과 갈등을 만드는 경우가 없지 않아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분명히 성경적인 원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해 준수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신앙수준만큼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율법적인 의미로서 안식일 준수를 너무 강조하였기 때문에 복음적인 의미에서의 주일 성수가 약화되어진 것을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매우 많이 발견합니다.

저는 우리 한국 교회가 이런 문제에 있어서 대 사회적으로 정부와 협상을 벌이고 노력을 해서 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앞으로 주 5일 근무제가 되고 학교에서 5일 수업제가 실시되면 주일날 국가고시를 치룬다든지 자격 시험을 치루는 일은 없어질 것입니다. 주일날 시험을 치루는 제일 큰 이유는 주중에는 그 많은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같은 장소에서 시험을 치룰 공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기독교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주일날 시험을 치루어 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국회의원이나 정책입안자가 되어 있는 고위 공무원들이 만약 있다면 그런 고뇌 속에 빠져들었던 그런 사람들이 서로 협력해서 이러한 국가의 제도적인 것을 근원적으로 바꿈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을 죄책감에서 해방되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대한 민국의 국회에 기독교인이 1/3정도 있으면서도 여기에 대해서 아무런 대응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들도 그렇게 해 왔으면서도 지금 여기에 대해서 대책을 세우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고 우리 한국 교회에서도 개인개인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기 보다는 조직적으로 우리 기독교 전체적인 노력으로 말미암아 이런 것을 극복해 나가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일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히 지켜야 되고 주일은 우리가 평안히 쉬는 안식의 날로 지켜야 합니다. 또 주일은 복되고 거룩한 날로 비켜야 합니다. 주일은 엿새동안 힘써서 일했던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복된 날이라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고 이 주일은 나의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가 드리는 날로 우리 자신들이 지킬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되리라 생각이 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는 삶의 자세가 되어질 때 우리는 이 주일 성수도 온전하게 하나님 앞에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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