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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배우고 확신하라 [딤후 3:14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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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배우고 확신하라
본문말씀 : 딤후3:14 - 17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기독교는 책의 종교입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런 것들을 기록하라” 하셨습니다. 요즘은 비디오와 녹음테이프로 기록을 남겨 놓을 수 있지만 말은 원래 그 자리에서 없어지는 것입니다. 귀로 들은 것은 일주일만 지나면 70%가 잊혀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일 들은 것이 전부 기억에 남는다면 큰일이겠지요.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불편하고 좋지 않은 것들은 잊어버리게 하시고 좋은 것들은 기억하도록 진리의 말씀을 책에 써주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성경을 읽고 배우고 암송하고 묵상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이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또한 기독교는 교육과 훈련의 종교입니다. “너는 배우고 확실한 일에 거하라” 하였습니다. 왜 배우라고 합니까? 모르는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것, 영적인 것, 영원한 것은 우리 인간이 머리로 만들어 낼 수도, 알아낼 수도 없습니다. 그런 지식은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해주시고 성령으로 조명해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절대로 깨달을 수 없어요. 인간은 영적으로 무지합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많이 읽었던 구절인데 어느 날 갑자기 살아나 나를 사로잡고 엎드리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하고 회개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습관적으로 교회에 다니며 성경을 읽을 때는 성령의 역사가 잘 일어나지 않아서 그저 하나의 지루한 책 같습니다. 그래서 카알라일은 ‘행복론’에서 ‘정말 잠이 오지 않으면 성경을 읽어라. 그러면 잠이 올 것이다’라고도 했지요. 성경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마음 편히 잠들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도다”(계1:3) 하였습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고 배우지 않으면 영적 지식과 지혜와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영원한 세계는 우리의 세계가 아니요,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의 것을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신과 자신의 뜻을 보여주셔야 됩니다. 이것을 “계시”라고 하는데, 계시의 원 의미는 ‘커튼을 들어서 뒤에 있는 것을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계시를 책에 기록하셨고, 그것을 우리에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데 게을렀다면 오늘 도전받고 달라지기 바랍니다. 분명히 성경은 읽어야 됩니다. 배워야 됩니다. 묵상하고 암송해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너희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14절) 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은 배워서 아는 정도가 아니라 늘 확신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내 영혼 속에서 확고해진 것입니다. 흔들림이 없는 상태입니다. 알쏭달쏭하고 의심이 많고 모르는 것이 많은 상태가 아닙니다. 왜 인생이 흔들립니까?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풍랑이 몰아쳐도 하나님과 영원한 세계와 자기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의 인생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본문에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14절)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신앙은 전통에 서있어야지 누구나 아무 데서나 만들어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대대로 전수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 이삭에게, 야곱에게, 유다와 요셉에게 전수되고, 다윗, 느헤미야, 다니엘을 거쳐 우리에게까지 전수된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에는 결코 변할 수 없는 내용이 있으며 이에 대해 하나님이 경고하셨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8-19).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대로 하나님의 진리를 가감할 것이 아니라 잘 배우고 깨달아서 확신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라”(고전11:23) 했습니다. 저도 제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제가 열심히 연구하여 그 원리를 알아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선포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저를 불러주신 이유입니다.

디모데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에게 배웠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디에 갔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찬송가도 있지요.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해어졌으나 어머니의 무릎위에 앉아서...” 왜 아버지의 무릎은 없는 것입니까? 성경에는 디모데에게 말씀을 가르쳐준 할머니 유니게와 어머니 루이스의 이름이 나와 있습니다. ‘유니게’라는 이름이 영어로는 ‘유니스’거든요. 우리 교회에도 유니스 선교회가 있지요. 제가 그 이름이 좋아서 둘째 딸의 이름을 유니스라고 지었어요. 여러분도 자녀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를 가르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이름이 할아버지로, 할머니로, 아버지 어머니로 하나님의 영원한 책에 기록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읽고 배우다 보면 세 가지 중요한 효과가 나타납니다.

첫째로, 구원의 지혜가 생깁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15절) 하였습니다. 우리가 죄와 지옥과 마귀와 세상에서 구원받아 영원한 하늘나라로 가는 길은 사람이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지금은 누구도 하나님께로 가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와 우리의 형제자매와 자녀들과 손자손녀들을 막론하고 사람은 누구나 구원의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노력으로 거룩해지고 자기의 노력으로 구원받아 하나님께 가라고 하는 것이 사람이 만든 종교입니다.

세상의 무수한 종교들은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하나는 ‘네 노력으로 하늘나라에 가라. 노력하다 안 되면 지옥에 갔다 돌아와서 다시 시작하라’는 종교입니다. 지옥에 가서 덜 된 부분만큼 고생하고 돌아와서 다시 시작하고 또 시작하고 억겁을 거쳐서 고생하면 마지막에는 정도에 갈 것인데 그나마 보장은 할 수 없다는 거지요. 대부분의 종교가 그렇게 우리의 노력에 달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죄성이 있는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 정도에 갈 수가 있습니까? 예레미야는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렘13:23) 하면서 악에 익숙한 우리가 스스로는 죄성을 고칠 수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을 위하여 자기 아들을 대신 십자가에서 희생시키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덮어주신 종교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에게 영생의 희망과 평화와 확신을 주십니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하고 암송할수록 구원의 확신이 생겨납니다. ‘나는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누구든지 그분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지혜가 아닙니다. 사람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 구원받은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남쪽 끝의 작은 섬에 우유배달 하는 여자 분이 계신데 자기 말로 공부를 별로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유배달을 하면서 몇 년 동안 평목원 테이프를 들었더니 그 말씀이 살과 피가 되어 자기가 너무 변했답니다. 전에는 매일 앉아서 TV만 보던 남편이 교회에 나가게 되었으며, 남편을 떠보느라고 TV를 보자 하면 볼 것 없다고 성경공부 해야 한다고 한답니다. 20년 동안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한 인생을 살아왔는데 남편이 드디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고 나니까 그 속에 생명이 생겨서 지금처럼 행복한 시절이 없었다고 하는 겁니다. 전에는 혼자서 말씀을 배우고 성장했지만 이제는 남편도 교회 성경공부 그룹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남편의 삶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구역장이 되어서 구역식구들과 성경말씀을 나누는데 구역식구들이 너무 좋아하는 것입니다. 구역장으로 차타고 다니면서 전도하고 상담해주고, 얼마 전에도 4명을 전도해 왔는데, 그 말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공부했다는 사람들이 공부 못했다는 이 분의 말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고 한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배우고 확실한 일에 거하여 삶의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세상의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식이요, 영적인 지식이요, 성령의 지식이요, 보편적 진리입니다.

둘째로, 성화된 인격이 나타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16절) 하였습니다. 어떤 유익입니까? 성경을 접할수록 인격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 신학교에서 야간에 가르칠 때 평신도들이 많이 와서 공부했습니다. 한 학기에 한 과목씩 하는데 그렇게 재미있다고 하였습니다. 조직적으로 성경공부를 하다보면 위험한 게(?) 있어요. 도무지 성경공부를 그만두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한 과목씩 하다가 나중에는 푹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맛을 알기 시작하면 그냥 빠져버립니다. 먹어보지 않고, 씹어보지 않기 때문에 그 맛을 모르지요. 그 학교의 총장이 84세 되셨을 때 총장을 오래 했다고 레이건 대통령에게 표창장을 받더군요. 하루는 그 할아버지가 채플에 오셔서 “오늘 아침에 성경을 읽었는데 얼마나 은혜가 되던지” 하시는 것입니다. 일평생 성경을 읽고도 또 은혜가 된다는 것입니다. 대충 읽은 것도 아니고 신학교의 총장으로 평생 성경공부를 했는데 이제 와서 또 새롭게 감격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런 책입니다.

성경은 ‘교훈,’ 즉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책망,’ 즉 잘못하면 야단을 칩니다. ‘바르게 함,’ 즉 잘못 가면 제자리로 가게 합니다. 우리를 의로 교육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인격으로 만들어줍니다. 세상의 교육과 하나님의 교육은 다릅니다. 세상의 교육은 인포메이션(information), 즉 지식을 제공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교육은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 즉 변화를 일으킵니다. 우리가 들은 말을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새겨주시고 피와 살이 되게 하셔서 우리의 삶 자체를 인격적으로 변화시킵니다. 이것이 성경의 교육이요 훈련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함으로써 삶에 변화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어떤 변화가 나타납니까?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17절)라고 하였습니다. ‘온전케 한다’는 말은 영어성경에 보면 ‘complete’입니다. 이는 ‘꽉 찼다’라는 말입니다. 사람의 영과 혼과 육이 골고루 개발되어 전인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어떻게 파괴되었습니까? 영적으로 파괴되어 하나님을 멀리 했습니다. 지적, 이성적으로 파괴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완벽한 창조물인 자신의 몸을 보고 부끄러워했습니다. 정서적으로 파괴되어 하나님을 보고 겁을 냈습니다. 대인관계가 파괴되어 하나님 앞에서 죄지은 핑계를 자기 아내에게 댔습니다. 육체가 파괴되어 병들어 죽었습니다. 환경이 파괴되어 가시와 엉겅퀴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성과 이성을 회복시켜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게 합니다. 정서적으로 평화롭게 하고, 사회적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게 하고, 육신적으로 건강하게 하고, 환경을 보호하게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우리의 인격을 성화시킵니다.

여러분이 자녀를 잘 키웠다면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성경을 펴고 그것을 읽고 묵상하고 배우고 책망을 받아 고치고 훈련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그 말씀대로 살겠다고 노력하고 있다면 자녀를 다 키운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성경과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없고 성경을 통해서 진리를 배워 살아가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으면 아직 다 키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눈물과 기도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미리미리 노력해서 여러분의 자녀들이 말씀 속에서 구원의 지혜를 얻고 성화된 인격을 얻어 온전해지는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셋째로, 선한 일을 하도록 훈련시켜줍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17절) 하였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와 경건한 인격을 얻은 사람은 늘 유익한 생각을 하고, 선한 말을 하고, 느낌과 태도와 행동과 습관이 좋아져서 그 삶 속에서 많은 선을 일으킵니다. 하는 일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이웃에게 유익을 끼칩니다.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지요? 남에게 늘 부담이 되는 사람, 부담도 도움도 되지 않는 사람, 언제나 유익하고 선을 베풀며 남에게 축복이 되는 사람 . . . 하나님은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선한 일이 쏟아져 나와 어두운 세상을 밝히기 원하십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섬에 사는 그 분도 남편에게 유익해졌습니다. 눈물로 남편을 위해서 기도한지 20여년 만에 남편에게 변화가 나타나 이제는 말이 통한답니다. 두 분이 선을 위해 살기로 결단하였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격의 변화를 일으키고 선한 일을 하게 합니다. 기독교는 그동안 복음만 전한 것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를 긍정적으로 변화시켜왔습니다.

제가 아는 인도인 순드라지 목사님은 아시아 복음주의 협회의 총무를 10년 정도 하시고 은퇴하셨습니다. 그 분의 자서전을 제가 지난주에 읽었는데 인도의 이야기였습니다. 인도에는 카스트제도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계급이 있습니다. 브라만이 있고, 크샤트리아가 있고, 바이샤가 있고, 수드라가 있고, 달리트가 있습니다. 그들의 인생은 어느 집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결정이 납니다. 어느 부모에게서 태어났는지에 따라 사회적인 계급이 정해집니다. 수드라는 종의 신분입니다. 그리고 이 네 그룹에 속하지 않은 부류를 달리트라고 하는데 이는 ‘언터처블’(untouchable), 즉 건드리지도 말고 쳐다보지도 말아야 할 저주받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인도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유대인과 헬라인이 따로 없고 남자와 여자가 따로 없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요, 자유인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날 인도에서 필요한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입니다. 그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인도의 교회가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층계급의 사람들과 여자들의 지위향상을 위해 인도 교회는 전력을 다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차별해서는 안된다. 인간은 우주보다도 더 귀하다. 물질세계의 어떤 것보다도 한 영혼이 더 소중하다” 하면서 인도인들의 사고를 변화시키려 애쓰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착취당하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중국동포를 위해 앞장 선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목사님들이요, 기독교인들입니다. 고아원과 양로원, 청소년보호소, 장애인 사역, 헌혈운동, 장기운동, 윤리실천, 공정선거, 환경운동, 경제실천, 상업전도, 인권운동, 재난구조, 사랑의 집짓기, 학사운동, 사회운동, YWCA, YMCA, 소비자운동, 호스피스, 나눔 등 이런 일들에 누가 앞장을 서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시민운동에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앞장서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구원의 지혜를 얻고 인격적 변화를 체험하여 사회와 국가와 이웃에게 유익을 끼치는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러려면 구원받아서 지혜가 있어야 됩니다. 말씀을 통하여 인격적인 변화가 나타나야 됩니다. 여러분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든지 그곳이 여러분 때문에 축복의 장소가 되길 원합니다.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하신 말씀대로 성경을 배워 구원의 확신을 얻고 인격적 성화를 체험하여 섬김의 기쁨이 충만한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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