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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한 사람의 조건 / 신 33: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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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행복한 사람의 조건
성경말씀 : 신명기 33:26-29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치고 행복해 지고자 하는 욕망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고도 마다하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토록 행복을 갈망하고 얻고자 하는 데도 정작 “나는 정말 행복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는 불행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행복하지도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거나 “보다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살아갑니다.

또 사람들은 무언가 원하는 것을 소유하면 행복해 질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넌센스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한이 없고,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갖고 싶고, 둘을 가지면 열을 갖고 싶어 하기 때문에 아무리 많이 가져도 결코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현대인들은 자기와 남을 비교하기 때문에 진정한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소위 상대적인 빈곤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남과 비교하는 마음을 가지면 행복하게 살기 어렵습니다.

날씨에 따라 기분이 바뀌듯이 세상이 주는 행복은 환경과 여건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행복은 마치 무지개를 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또 그만큼 나에게서 뒤로 물러나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방법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몸과 마음을 피곤하게 만들 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상대적인 행복이 아닌 절대적인 행복에 대하여 말씀해 줍니다. 이 행복은 우리가 처한 환경이나 여건에 영향을 받지 않는 행복입니다. 나이나 경제적인 형편에 상관없고, 사회적인 성공․실패와도 상관없고, 건강하든 병약하든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는 행복입니다. 이 행복은 누가 빼앗아 갈 수도 없습니다. 오늘은 신명기 33장 26절로 29절에 근거하여 행복한 사람의 조건이 무엇인지 말씀해 드림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첫번째로,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는 사람이 행복자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종살이할 적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셔서 바로의 압제에서 그들을 구출해 내셨습니다. 완악하던 바로는 장자가 죽임을 당하는 재앙에 굴복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놓아 보냈습니다. 그러나 고센땅을 출발한 이스라엘 자손이 홍해 앞에 이르러 광야에 갇혔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바로는 마음이 변해서 애굽의 특별 병거와 모든 마병을 거느리고 추격해 왔습니다. 앞에는 넘실대는 홍해요 주위는 끝없는 광야입니다. 이 진퇴양난의 위기에서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갈라서 이스라엘 자손을 무사히 건너게 하시고 뒤쫓아 오던 애굽의 병거와 마병을 홍해에 수장시키셨습니다.

또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할 때에도 농사도 지을 수 없고 길쌈도 할 수 없었지만,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이셨고 그들이 입은 의복이 헤어지지 않도록 해 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뜨거운 햇빛을 가려 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광야의 추위를 막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체험한 기적들을 다 열거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은 이와 같으신 하나님을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섬겼으니 어찌 행복자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봉독한 신명기 말씀은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고별사의 맨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라고 하는가 하면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라고 함으로써 그들이 누리는 행복의 근거가 무엇인지 일깨워 주고자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같은 분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 당시 이방인들이 섬기던 신들은 다 사람들이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 신들은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우상들로서 섬기는 자들의 기도를 듣지도 못하며 그들을 위기에서 구원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영원히 살아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으니 행복한 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은 다 사람들이 지어낸 헛된 것에 불과합니다. 또한 그 배후에는 귀신들이 역사하고 있어서 그것들을 섬기는 자들을 멸망에 떨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저와 성도님들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이니 행복한 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죄 사함의 은총을 받았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인생의 불행은 그 원인이 죄에 있습니다. 본디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곳은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는 낙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간교한 뱀이 하와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 질문을 보면 뱀이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들려는 악한 의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인류의 어머니인 하와는 뱀의 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뱀과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그러자 뱀이 하와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에 하와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그만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땀 흘려 수고해야 식물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며,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자들은 타락한 본성을 지니고 태어나며, 한 평생 죄를 지으며 살다가 죽어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죄인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서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 있습니다. 그리하여 언제나 고아와 같은 버림받은 심정을 가지고 죄책에 눌려서 고단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향수병에 빠져죽은 파리 한 마리가 한 병 가득 찬 향수를 못 쓰게 만들 듯이 죄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우리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행복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자기의 죄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죄 사함의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죄 있는 사람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보내셨으며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주홍같이 붉고, 먹같이 검은 죄를 다 용서해 주셨으므로 우리의 영혼은 흰눈같이, 양털같이 희고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는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 믿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과거에는 하나님과 원수지간이었는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세력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을 넘볼 수 없습니다.

이제 성도들은 무슨 일을 만났든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응답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살아 계시면서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되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하신 시편 34:8 말씀과 같이,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복스런 약속을 우리 생활 가운데서 체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좋고 재미나는지 알게 되어서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 라고 하였습니다. 가진 재물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고, 사회적으로 명예가 있고 없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섬기게 된 이 사실로 인해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이 참 행복자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켰으며 40년 간의 광야생활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는 그 모든 이스라엘 역사의 한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마지막 말은 천금의 무게가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온 것과 40년 광야생활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의 문턱에 이르게 된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선포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공로를 조금도 내세우지 아니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26)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27)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28)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29)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넘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자손이 무슨 수로 바로를 굴복시키고 출애굽 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강하신 팔을 펴셔서 대적을 멸하시고 선민을 구원하신 결과입니다. 황량한 광야에서 40년 동안 굶지 않고 매일같이 양식을 먹을 수 있었던 것 역시 하나님께서 하늘로서 매일같이 만나를 내려주셨기 때문입니다. 물을 구할 수 없는 광야길에서 목말라 죽지 않은 것 역시 하나님께서 반석을 통해 생수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기적 아닌 것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그토록 큰일을 행하시다니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도 이스라엘 자손은 마음이 둔해서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도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광야생활을 하다보면 때때로 불편하고 힘든 일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 광야를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사소한 불편은 기꺼이 감내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행복한 인생을 살기 원하시거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바랍니다. 영원히 멸망 받아 마땅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은혜 생각하면서 감사하십시오.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생명을 버리셨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아무리 감정이 무딘 사람이라도 감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남보다 가진 것이 적어서, 명예가 없어서, 몸이 병약해서 마음이 우울해 지거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바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오늘까지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과 편히 쉴 수 있는 거처를 주신 데 대하여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감사의 제사입니다. 아무리 많은 제물을 바칠지라도 감사가 없는 제사라면 절대로 하나님께 열납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아무리 많은 헌신을 할지라도 감사가 없이 한 것이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작은 봉사라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행한다면 하나님께 열납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감사는 우리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무엇을 하든지,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간에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해 보세요. 그러면 기쁜 일은 더욱 기쁨이 넘치게 되고, 슬픈 일은 너끈히 이겨내게 될 것입니다. 혹 어려운 일을 만났을지라도 감당할 힘과 지혜를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가족이나 이웃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십시오. 이전보다 원만하고 친밀한 인간관계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진수성찬을 앞에 놓고서도 트집을 잡고 불평을 내뺃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된장찌개 하나를 놓고서도 감사합니다. 과연, 둘 중에 누가 더 행복할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이야말로 행복의 비결로서 만약에 우리가 이 말씀을 그대로 실천한다면 날마다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하신 말씀이 이를 말해 줍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의 첫 번째 질문이 “사람의 첫째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사람의 첫째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당면한 삶의 위기 가운데 첫 번째는 삶의 목적이 잘못된 것입니다. 왜? 무엇 때문에 사는지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게 지내면서도 정작 인생의 목적을 모르고 삽니다. 저마다 사는 목적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인생의 목적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일상에 몰두해 살다가 어느 날 귀밑에서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발견하고는 놀랍니다. 비로소 자신이 나이가 들어감을 깨닫습니다.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살아왔는가?” 자문자답해 봅니다. 무엇을 성취하였고 무엇을 성취하지 못했는지, 또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봅니다. 과연, 내가 잘 살아온 것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고 성공적인 인생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보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먹고 마시는 일 조차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비록 역사에 기록될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 못하고 평범한 인생을 살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되고 가장 성공적인 삶이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제 아무리 위대한 일을 달성했을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그 사람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 불행한 인생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니므롯과 그의 추종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탑을 쌓으려고 시도했습니다. 그 탑을 세워서 모든 사람들이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고 자기들의 이름을 내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탑을 쌓아갔습니다. 그러나 바벨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 아니라 인간들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기에 언어의 혼잡으로 인해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바벨탑은 실패한 인본주의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인간의 영광을 추구하는 사업은 결국 망하고 맙니다.

솔로몬을 보십시오. 그는 전무후무한 지혜와 부귀공명을 다 누렸지만 노년에 이르러 그가 한 고백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 1:2-3)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했지만 곧 이방 왕비들의 꾐에 빠져서 우상을 숭배하고 타락한 생활로 일관했습니다. 그 결과 세상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허무하고 실패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7절로 8절에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감으로 후회 없는 행복한 인생을 가꾸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세번째로, 복음을 전하면서 사는 사람이 참 행복자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행복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만방에 선포할 사명을 부여받은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이유는 그들만 구원 받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인류 구원을 위한 뜻을 널리 전파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로 인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신약시대의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만 구원을 얻게 하심이 아니고 우리를 통해서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승천하시기에 앞서 감람산에 모인 오백여 제자들에게 분부하시기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신 주님의 지상 명령이기도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왜 행복이냐 하면, 첫째로,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자식들은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때 행복을 느낍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복음을 전해서 많은 불신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함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 드릴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 복음을 전하는 것이 행복한 이유는, 그것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이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공부를 많이 했고 돈을 많이 벌기 때문이 아니고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종사하기 때문입니다. 병든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은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귀한 일은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불신 영혼들을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타국에 선교사로 가지 않더라도 가까운 이웃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한 영혼을 전도해서 주님께로 인도할 때 그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 기쁨을 맛본 사람은 핍박과 비난을 받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나중에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아마도 전도의 상이 가장 클 것입니다. 다니엘서 12장 3절에 보니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성도님들이 초신자들을 돌보느라 수고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흐뭇합니다. 누가 시켜서 그 일을 하겠습니까? 아니면 돈을 준다면 하겠습니까? 다만 주님의 명령이요, 또 영혼을 구원하는 고귀한 일이므로 그 모든 수고를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께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심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행복은 하나님께로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복된 관계가 그들이 행복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이는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들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즉 언제든지 하나님을 섬기고 범사에 감사하며 생명의 복음을 전하심으로 진정 행복자로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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