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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계 20: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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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0:11-15)

로버트 니브 박사는 어릴 때에 꾸었던 꿈 이야기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면서 한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만큼 어릴 때 꾸었던 꿈이 그에게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평생을 그 이야기를 하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꿈은 이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늘 문 앞에 서서 그들의 이름이 불리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신과 아버지, 어머니, 누이와 또 동생도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들이 천사를 통하여서 불리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드디어 아버지의 이름이 불리어졌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불리어지니까 아버지는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하고 앞으로 나갑니다. 어린 소년 니브는 아버지의 손을 꽉 잡으며 “아버지, 같이 가요.”하니까 아버지가 대답하기를 “얘야. 내 이름으로는 네가 들어갈 수 없단다. 그러니 너의 이름이 불리어질 때까지 기다려라.”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천국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두 번째 어머니의 이름이 불리어졌습니다. 니브는 또 어머니에게 매달렸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도 역시 아버지와 같이 말씀하시고 천국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곧 이어서 두 누이도 불려갔고, 동생도 불려갔습니다. 니브 혼자만 남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빠졌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가슴을 조이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천사가 드디어 <로버트 니브!>하고 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니브는 너무 기쁘고 반갑고 감격해서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하고 소리를 쳤는데 너무 크게 소리를 치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니브 박사는 그때의 그 꿈 이야기를 만나는 사람에게 하면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는가.> 늘 자신을 점검하며 돌아보면서 살았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어서 주께서 이름 부르실 때 내 이름을 부르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까?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져서 천사가 내 이름을 부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했다고 하면, 내 이름이 세계 대통령의 여러 이름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성공적인 인생이 아닙니다.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했다고 하면, 세계 거부(巨富) 백 명 가운데 내 이름이 속해 있다고 할지라도 비참한 인생입니다.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했다고 하면 세계의 가장 명문대학을 나와서 가장 좋은 업적을 이루었다고 온 잡지들이 떠든다고 할지라도 행복한 인생이 될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 백보좌(白寶座에) 앞에 섰을 때에 천사가 “아무개!”하고 이름 부를 때에 내 이름이 생명책에 있어서 천국에 넉넉하게 들어가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흰 보좌와 심판

요한이 받은 계시는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심판자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류가 그 앞에서 심판을 받습니다. 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아서 영원한 천국이나 영원한 불못에 던지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크고 흰 보좌, 백보좌(白寶座)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흰 보좌라고 하는 말은 성결한 보좌, 깨끗한 보좌라는 말입니다. 의와 공평이 기초가 되는 보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적으로 순결하여서 조금도 부정이 없다는 것을 상징하는 보좌입니다.

이 세상의 재판은 부정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돈이 있어서 돈을 쓰면 무죄가 되고, 돈이 없어서 돈을 쓰지 못하면 유죄가 된다는 말 아닙니까?
같은 죄목이라도 정치적인 논리로 풀어서 어떤 때는 죄가 되어지고 어떤 때는 죄가 되지 아니하는 이런 경우를 우리는 흔하게 보고 있습니다. 서민들은 배가 고파서 몇 푼어치 안 되는 음식을 훔친 것으로 감옥에 가는데, 수천 억을 해먹어도 버젓이 자유롭게 다니는 사람들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재판은 공정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아주 공정하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재판은 불완전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재판관이 바르게 재판한다고 할지라도 자기의 능력에 한계가 있어서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어제 동아일보를 보니까 십대 소년이 전북 익산에서 발생한 택시기사 강도살인 혐의로 10년 형을 선고받고 지금까지 2년 10개월 째 복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건의 진범으로 생각되는 용의자가 경찰에 검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이 내가 그 사건의 범인이라고 자백까지 했습니다. 앞으로 더 두고 볼 일입니다만 이 세상에는 이런 잘못된 재판, 이런 억울한 재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는 죄 안 지었는데 10년 형을 받고 2년 10개월 동안 살았다고 하면 얼마나 그의 가슴이 답답하고 억울했겠습니까?
그러나 백보좌 앞에서는, 백보좌에서 내리는 선고는 부정이 없습니다. 오류가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의와 공평으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억울한 일들, 답답한 일들, 아직도 풀려지지 않았던 모든 미제(未濟)의 사건들이 그 보좌 앞에서 다 해결되게 될 날이 오고 있습니다.


2. 흰 보좌에서 심판하시는 분

보좌에 앉으신 분이 누구십니까? 성경을 보면 보좌에 앉아서 심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 하기도 하시고, 때로는 예수님이라 하기도 하십니다. 로마서 14장 10절에 보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고 했고,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행한 대로 심판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도, 요한복음 5장 22절에도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에 보면 <예수님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다 종합해 보면 심판주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심판의 집행을 예수님을 통해서 하신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온 천지 만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는데, 누구를 통해서 창조하셨느냐?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창조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심판주가 되시는데 예수님을 통하여서 심판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해서 목숨까지 버리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께서 재판장에 앉아서 우리를 재판하시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까?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재판하시면 그 앞에 모든 인류가 다 벌벌 떨 것입니다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재판석에 앉아서 재판하신다고 상상해보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 곳은 우리에게 재판석이 아니라, 우리에게 상급주시고,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를 축복하시는 곳이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의 변화가 있습니다.

영생을 얻을 것이 아니고 이미 우리는 영생을 얻었습니다. 심판 받을 것이 아니고 우리는 심판에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이 아니고 이미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형벌 받는 심판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백보좌 앞에 설 것이지만 그곳은 상급 받는 곳이지, 세상 사람들이 받는 형벌을 받기 위해서 심판대 앞에 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때 우리에게는 상급받는 상급대와 같은 곳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올림픽에서 선수가 1등, 2등, 3등상을 받게 되면 거기에서 상 받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그 백보좌는 상급을 받는 곳이요, 할렐루야로 하나님 앞에 찬송이 드려지고 온 천군천사가 축복의 박수를 보내게 될 그 날이 우리를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3. 흰 보좌 앞에서 심판받을 자

누가 백 보좌 앞에 설 것입니까? 12절에 보면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13절에 보면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를 내어준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무슨 말입니까? 매장되지 않은 사람들의 죽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죽은 자, 강에서 죽은 자, 비행기타고 가다가 공중에서 산화된 자, 홍수에 휘말려 죽은 자, 화장해서 공중이나 강에 뿌려진 자들이 다 그 날에 살아난다고 했습니다.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를 내어준다고 했습니다. 전쟁에서 죽고, 기근에 죽고, 맹수에게 찢겨 죽은 자, 음부에 있는 자들, 하여튼 이 세상에 살다가 죽었던 자들이 다 살아납니다.
그리고 백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습니다. 로마서 4장 10절에 있는 것처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고 했습니다.


4. 흰 보좌에서 받을 심판의 근거

그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는데, 심판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책입니다. 법정에 가서 보면 판사가 판결을 내리는데 즉흥적으로 자기 마음대로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경찰과 검사가 올린 조서나 또 변호사의 그 기록을 근거로 해서 판결을 내립니다. 우리 주님도 백보좌에서 모든 인류를 심판하실 때 근거없이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책에 따라서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오늘 이 짧은 본문 말씀 가운데 책이라는 말이 몇 번 나옵니까? 12절 한 절만 해도 네 번이나 나옵니다.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아>, 15절에 보면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다섯 번이나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같은 책이 아닙니다. 두 가지의 책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책이요, 또 하나는 사람의 행위를 기록한 행위의 책들입니다.

행위를 기록한 책은 모든 인류의 출생에서 죽을 때까지 모든 생각을 다 기록합니다. 그리고 모든 말들을 다 기록합니다.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생각뿐만 아니라 우리의 말과 행동도 다 기록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5장 10절의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야기합니다. ‘인류 역사상 지금 살고 있고, 이전에 죽은 사람들까지 다 계산하면 6백 억이 될 것인데, 무슨 재주로 이 사람들의 이름을 알고 그 생각과 행동과 말들을 다 기록할 수 있는가?’ 그렇게들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를 가지고 인간의 말을 녹음하고 또 촬영해 놓을 수도 있습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자기가 발명한 축음기 음반에서 자기의 음성이 울려나오자 ‘사람도 사람의 목소리를 녹음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나의 말한 것을 다 녹음했을 것 아닌가?’하고 생각하니까 너무 충격되어서 그는 졸도하기까지 했습니다.

과학자들은 말합니다. 사람이 한 말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람이 말하는 것이 공기의 진동과 파장때문에 귀에 들려지게 되어지는데, 이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래 전의 말을 녹음하는 기술까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도 녹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기술로 손바닥만한 디스크 한 장에 수백 만 명의 인적사항을 다 입력하고 언제든지 필요할 때마다 자료를 끄집어 내어서 뽑아 쓸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지혜입니다. 그런데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못하시겠습니까? 인간이 만든 엑스레이가 인간의 몸속에 있는 질병도 찾아내는데, 불꽃같으신 하나님의 눈이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알지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생각과 모든 말과 모든 행동과 모든 은밀한 것까지 다 아시고, 기록하시고, 촬영해 놓으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 교인들이 너무 불평을 많이 해서 목사님은 <교인 불평록>이라고 하는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불평을 하면 불평록을 내어 놓고 “집사님, 그 불평을 이 책에다 기록해 주세요. 그러면 내가 두고두고 길이길이 보존하고자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집사님이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 “목사님, 그렇게 기록할 것까지 뭐 있습니까?”라며 얼버무리면서 나갔습니다. 이런 일들이 몇 번 있고 나면서 그 교회는 차츰 불평하는 버릇이 고쳐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기록만 남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모든 말들, 생각들, 행동들이 다 하나님 앞에 기록으로 남는다고 하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행위의 책에는 우리의 생각, 말한 것, 행동하는 것 다 기록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따라서 심판하면 누구도 핑계할 수가 없습니다. “아, 나는 그런 짓을 아니 하였습니다.” 라고 말하면 “몇 월 몇 일날, 어디에서 누구와 이런 죄를 짓지 않았느냐?”고 하나님께서 그 모든 행위의 책을 내어 놓으시면 아무도 아니라고 할 수 없는, 부정(否定)할 수 없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때 이 세상의 모든 사건들이 드러나고, 우리의 생각, 우리의 말, 우리의 행동까지 다 드러나고, 억울한 일들까지 다 밝혀질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행위도 거기에 기록되어 졌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예수님의 피가 모든 허물과 죄악을 깨끗이 다 도말해 버린다고 했습니다. 다 씻어버린다고 했습니다. 다 지워버린다고 했습니다. 도말(塗抹)이 뭡니까? 바를 도(塗)자입니다. 벽이 더러우면 새 벽지로 발라버리는 것처럼 바른다는 것입니다.

말(抹)이 뭡니까? 지워버린다는 말(抹)입니다. 털어버린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 우리의 모든 행동, 우리의 잘잘못이 다 기록되어 졌지만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발라버립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다 지워서 털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다시 기억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죄와 모든 행위는 다 기록되어 집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우리 모든 허물을 행위의 책에서 다 지워버리신 주님의 놀라운 은총을 찬송하며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행위가 다 기록되었지만, 우리의 죄된 행위는 십자가의 보혈로 다 지워버리시고 좋은 것만 다 기록되어 그 날에 우리에게 상급으로 갚아주실 것인데, 이 땅에 살아가면서 선한 일, 좋은 일 많이 하고, 믿음생활 잘 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섰을 때에 그 백 보좌 앞에서 상급받는 성도들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생명책

그런데 또 하나의 책이 있습니다. 무슨 책입니까? 생명책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명단들이 기록된 책입니다. 이 책에 기록된 자는 천국에 들어갑니다. 이 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어떻게 된다고요? 15절에 보면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우리가 어느 나라에, 어느 단체에 소속되어 권리를 행사하고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이름이 거기에 기록되어져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본에 밀항했다가 강제송환 되는 사람들을 한번씩 보게 되는데 그들이 왜 추방됩니까? 그들의 이름이 일본에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처럼 한 나라에서 평안하게 살려고 하면 국적이 있어야 합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려고 하면 학적부에 이름이 있어야 합니다. 가족에는 호적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교적부에 교적이 있어야 우리교인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호적이 있습니다. 그 호적 책이 바로 생명의 책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새 생명을 얻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 생명책입니다. 입학할 때 입학시험발표가 나면 자기 이름이 있는 사람들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하며 날뜁니다. 자기 이름이 없는 사람은 눈물을 흘리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가지고 돌아갑니다. 장차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심판하시는 날에는 이것과 비교할 수 없는 희비가 엇갈리게 될 것입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슬피 울며 이를 갈며 불못에 던지울 것입니다. 거기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영원한 천국에서 구원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이름, 나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어져 있습니까? 정말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져서 천사가 이름 부를 때에 내 이름 불러서 천국에 들어갈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런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70명을 둘씩 짝지어서 전도를 보냈습니다. 그들이 돌아와서 선교 보고를 합니다. 기뻐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예수님, 우리가 나가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명했더니 귀신이 벌벌 떨고 굴복하면서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제일 기뻐해야 할 것이 나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져서 이 세상의 장막이 무너지는 날, 이 세상에서 눈을 감는 날, 저 하늘나라에서 눈을 뜰 수 있다는 보장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것이 최고의 기쁨이 되어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프고 비참한 사람은 세상을 빨리 떠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신체적으로 부자유한 사람이 아닙니다.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위가 낮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이 가장 불행하고 가장 비참한 인생임을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똑똑하게 기록되어졌기 때문에, 이것 때문에 정말 기뻐하고 기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기쁨이 되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내 가족이, 내 이웃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것 때문에 정말 가슴아파하고 눈물 흘리며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본 적이 있습니까?

내 가족이, 내 이웃이 비참한 것은 없어서가 아닙니다. 못 배워서가 아닙니다. 못나서가 아닙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그것이 가장 비참한 인생임을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져서 천국에 넉넉하게 들어가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생명책이라는 말이 신구약성경에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의 모형이 어딘가 하면 바로 마태복음 1장에 나와 있는 예수님의 족보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이렇게 내려오는데, 그 족보 안에 들지 말아야 될 인물들이 몇 명 나옵니다. 유대인들은 얼마나 족보를 귀하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여자의 이름을 족보에 넣는 법도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보면 <다말>이라는 여자의 이름이 나옵니다. 다말은 어떤 여자인가 하면 자기 시아버지 야곱과 관계해서 아기를 낳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망칙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여자입니다. <라합>은 어떤 여자입니까? 여리고성의 기생입니다. 그런 여자의 이름이 족보에 들어있습니다.

<룻>은 어떤 여자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라볼 때는 개와 같은 이방 여자입니다. 이런 여자의 이름이 들어있는 것을 보면 이것은 보통 족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늘에 있는 생명책의 표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 들어있는 이 여자들의 공통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윤리적으로 좀 부족합니다. 또 신분적으로 좀 천합니다. 그래도 동일하게 있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그것때문에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좀 부족합니다. 좀 연약합니다.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기만 하면 우리의 이름도 생명책에 똑똑하게 기록되어져서 예수님의 족보에 지금도 다 기록되어 있을 줄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이 하나님의 자녀요, 가족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이 구원얻을 자요, 혼인잔치에 참여할 자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이 될 자들입니다. 나는 이 축복을 받고 있는지,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날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믿어서 머리로써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가슴으로 믿어서 영생에 대한 축복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여러분의 이름을 생명책에 흐리지 아니하고 똑똑하게 기록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나는 이런 축복을 받고 있지만 내 주변에 이 축복에서 제외된 내 가족, 내 친척들은 없습니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면 영원한 불못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들인데, 이런 비참한 자들이 우리 주변에는 없습니까?


6. 지옥 갈 다섯 명을 찾읍시다.

지난 주일에 생각했던 것처럼 지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한번 들어보세요. “내 형제 다섯이 세상에 있습니다. 저들에게 가서 지옥이 있음을, 천국이 있음을 가르쳐서 이곳에 오지 않도록 해주세요.” 다섯 명의 형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 다섯 명을 한번 찾아보세요.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수 없고 마지막 심판 날에 영원한 불못에 던지울 수밖에 없는 다섯 명을 이번 한 주간에 찾아봅시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을 위해서 금식하고, 그들을 위해서 눈물 흘리고, 그들에게 찾아가서 티켓을 내어 놓고, <천국문과 지옥의 불 드라마>에 대한 전단을 내어 놓고 이번에 한번 참석하자고 눈물로 권면하고 애걸하고 복걸해서라도 권면해서 주님 앞에 데려와서 이 진한 복음을 드라마를 통해서 보게 한다고 하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가 변명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회에도 한번 초대하지 못하고 복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해서 그들이 예수 믿지 못하고 간다면 그 피 값을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찾겠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한 주간동안 우리 정말 한번 찾아보십시다. 다섯 명의 영혼들을. 그리고 내 주변에서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불못에 던지울 사람들을 찾아가서 기도하고, 금식하고, 전도해서 꼭 오자고 약속해서 그들에게 티켓을 주어서 15일, 16일, 17일 날 3일 간에 그들이 한번 나와서 복음을 접하고, 천국이 있음을 알고 결단해서 정말 주님 앞에 새 생명을 얻는 귀한 사람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한번 죽습니다. 백보좌 앞에 심판이 있습니다. 주님 앞에 심판 받습니다. 책에 쓰여진 대로 심판받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어서 행위의 책에 좋은 것만, 잘한 것만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정말 여러분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똑똑하게 기록되어 있음을 확실히 믿고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내 가족들 다섯 명, 이들의 비참한 운명을 바라보면서 눈물 흘리며 복음을 전하여서 이들의 생명을 인도하여서 예수 믿어서 그들의 이름도 생명책에 똑똑하게 기록됨으로 하나님 나라에 섰을 때에 온 가족이, 온 이웃이 다 구원받아서 생명의 축복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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