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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벨릭스의 삶이 주는 교훈 / 행 24: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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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릭스의 삶이 주는 교훈
사도행전 24:24-27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부르리라 하고........." (사도행전 24:25)

''안토니오 벨릭스'' 라는 사람은 유대 11대 총독으로서 6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한 사람입니다. 그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율법파괴자로 성전을 더럽히고 대중을 선동하는 자로 고소되었을 때에 그 고소의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벨릭스는 본래 노예출신이었습니다. 그는 각고의 노력 속에 자유인이 되었고, 로마황실의 왕자의 친구였던 ''팔라스''의 도움으로 관리로 등용되었고, 거듭되는 성공으로 이스라엘 총독이 되어 AD 52년부터 58년까지 재직했습니다.
벨릭스는 성공을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는 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특히 재물을 탐닉했던 그는 재물을 모으기 위해서는 무엇과도 타협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총독 재직 시에는 총독의 공무보다는 재물을 모아 한밑천 잡아보려고 혈안이 되었던 것입니다.

벨릭스는 세 아내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세 번째 아내인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딸인 ''드루실라''는 당대에 보기 드문 절세 미모의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본래 에바사 왕인 ''아지주스''의 아내였습니다. 그녀의 미모에 반한 벨릭스는 그녀를 빼앗아 자신의 아내로 삼았던 것입니다. 당시 사학자인 ''타키투스''는 이러한 벨릭스를 평가하기를 "잔인하고 음탕하며 노예의 정신을 가지고 국왕의 정치권을 행사한 자"라고 기록했습니다.
탐욕과 야심을 채우는 것으로 총독의 생활을 지냈던 벨릭스는 결국 그의 부정과 부패함이 드러나 총독의 직위에서 파직되었습니다. 총독의 자리를 내놓은 벨릭스는 치부하여 모아드린 많은 재산과 함께 아내와 자녀를 거느리고 베스비우스(Vesvius)로 가서 정착했습니다. 그 아름답고 화려한 문화의 도시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AD 79년 베스비우스의 화산폭발로 말미암아 가족과 함께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노예에서 자유인으로, 자유인에서 총독으로 성공했고, 그리고 많은 재산과 절세 미모의 아내들과 자식들을 거느리고 행복하고자 했던 벨릭스, 그는 베스비우스 도시의 멸망과 함께 헛된 삶의 종말을 맞이한 것입니다.

벨릭스의 인생의 삶은 오늘 우리에게 참된 깨우침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고소사건을 다루었던 벨릭스의 모습에서 우리가 간직해야 할 영적 교훈의 깨우침을 찾게 됩니다. 이 교훈은 오늘 우리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럼 벨릭스의 부끄러운 삶이 전해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만드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1장 28절과 24장 5절에 보면 바울은 유대인들로부터 "나사렛 이단의 괴수"로서, "성전을 모욕하고 모든 사람을 미혹하여 소요를 일으키며 율법을 더럽히는 자로서", 그리고 "염병과 같은 자"로서 고소되었습니다.

벨릭스는 이미 바울이 전하는 기독교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구금된 후 그는 그의 아내 드루실라와 함께 바울을 은밀히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들었습니다.(행24:24) 바울은 그들에게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하여 강론했습니다. 이 강론을 듣고 벨릭스는 두려움의 찔림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습니다. 그럼에도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행24:25)고 그 기회를 미루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할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55:6)고 했습니다. 벨릭스는 하나님을 만날 만한 그 중요한 기회이며 가까이 계셔서 말씀을 주시는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을 찾지 않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 중요한 기회를 포기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벨릭스는 바울과의 만남의 기회, 바울을 만나서 들은 말씀이 주시는 감동의 기회, 성령께서 깨달음을 주시는 그 중요한 기회를 포기함으로 잃어버리는 자가 된 것입니다.

서양의 시 가운데 ''돌아오지 않는 것들''이란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그 시의 내용에 보면 이 세상에서는 되돌아오지 않는 것 세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화살''이라고 했습니다. 한 번 과녁을 향해서 겨누고 쏜 화살은 그 방향을 변하거나 정지하는 일 없이 곧장 날아가서 목표물을 명중시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급하게 뱉은 ''말'' 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급하게 말하고 자기 자신은 잊어버린다고 해도 이 뱉어진 말은 여러 사람의 마음속에 남아서 그 여운은 사람에게 좋은 일도 하고 나쁜 일도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황금과 같은 ''기회''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잊어버린 기회에 대하여 아무리 통곡하고 구하고 열망을 하여도 한 번 가버린 기회는 영원히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삶 속에서 많은 기회를 만들고 계십니다. 이 기회는 특별한 경우도 있지만 매 순간 순간이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 이 순간 내게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맞이하느냐는 것입니다. 벡릭스는 생명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의 기회이며, 그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삶을 간직할 수 있는 너무너무도 중요한 기회를 포기함으로 그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보면, 디메오의 아들 소경이며 거지인 ''바디매오''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거지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의 불행의 원인인 소경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여리고 도시를 떠나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붙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에서 "다윗의 자손이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외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을 때에 그는 더욱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님이 가던 길을 멈추어 부를 때에 그는 겉옷을 벗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님 앞에 나갔습니다.

바디매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부르짖었습니다. 시끄럽다고 꾸짖는 사람들 에 상관하지 않고 기회를 잡으려고 더욱 적극적으로 소리지르는 열심을 가졌습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의 소유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겉옷까지도 벗어버리는 희생을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바디매오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칭찬하시면서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는 믿음을 ''큰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리고 도성의 세무서장인 난쟁이 ''삭개오''도 예수님이 지나가시던 여리고 거리에서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삭개오는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세무서장의 체면 버리고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이런 삭개오를 보고 예수님은 그의 집에 머무르셨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 앞에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사오며 남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습니다"고 회개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삭개오에게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임했다"고 하셨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날 기회에 만나고 회개해야 할 기회에 회개한 삭개오는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를 죄인이라고 비난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게서 붙들어야 할 모든 은총과 축복의 기회를 포기함으로 ''독사의 자식들'', ''지옥의 심판을 받을 자들''이라는 책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벨릭스는 바울과의 만남에서 반드시 가져야 할 기회를 포기함으로 베스비우스의 멸망 속에서 비참한 인생을 마쳐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가운데 만드시는 축복의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고 붙드는 축복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역사에 돌이킬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벨릭스는 바울이 강론을 듣고 두려움을 가졌습니다. 그는 마음에 찔림을 받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바울에게 뇌물을 받으려는 목적을 가졌습니다. 말씀보다는 돈에 목적을 두고, 돈을 받을까 하여 바울을 더 자주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바울에게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이야기하더라"(25절)고 했습니다.

벨릭스는 그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강도들의 힘을 이용하여 제사장 요나단을 죽인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유대인에게 미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벨릭스는 바울에게서 뇌물을 받을 수 없음을 알자 유대인들이 미워하는 바울을 잡아가둠으로 환심이라도 사고자 뚜렷한 명분 없이 바울을 2년간이나 구류시켰습니다. 이것을 성서기자는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27절)고 기록했습니다.

벨릭스는 에바사왕 아지주스의 아내의 드루실라의 미모에 반하여 남의 아내를 빼앗은 도덕적으로 문란한 자였습니다. 그는 정치적 정략과 많은 재물을 축적하는데 있어, 그 목적에 방해되는 사람을 서슴없이 살해하기까지 하는 악독한 자입니다. 그래도 그에게는 회개와 구원의 새 삶의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바울은 벨릭스를 돌이키게 하기 위하여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그는 두려움을 깨닫는 은혜를 받았음에도 결코 돌이키지 않고 오히려 바울에게 돈을 요구했고 바울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했습니다.
잘못됨에서의 돌이킴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며 아름답고 축복되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은 그의 사역시작과 함께 우리 인간들에게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돌이키는 우리의 삶을 귀중히 여기십니다. 그럼으로 나단의 책망에 침상이 눈물로 적시어 썩을 정도로 회개하며 돌이킨 다윗을 향하여 하나님은 "내 사랑하는 종 다윗"이라고 했고, "내 마음에 꼭 드는 자였다" 고 하셨습니다.
돌이키는 삶을 잃어버리면 영혼이 병들어 무서운 파멸로 향하는 인생이 됩니다. 지금 돌이킨다면 내일의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돌이키는 지혜와 용기를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부르심을 향하여, 주님의 말씀을 향하여, 진리의 삶을 향하여 돌이키는 삶을 사십시오.

거룩한 결단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벨릭스는 바울의 강론을 듣고 찔림을 받고서도 그 시간 반드시 해야 할 결단을 하지 못했습니다.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면서 결단을 미루었습니다. 오히려 결단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결단의 기회를 역행하여 자신의 듯을 관철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돈을 요구하고 바울을 2년간이나 구류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에 결단하지 못한 벨릭스는 의롭게 살기보다는 권력을 이용하여 불의를 행했습니다. 절제하기보다는 탐욕의 종이 되어 계속 치부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무시하고 잘살겠다고 화려한 도시 베스비우스로 향했다가 불덩이의 용암 속에 묻히는 비참한 멸망을 맞이한 것입니다.

지금이라는 시간에서 피할 수 없는 과제 중 하나는 무엇을 어떻게 결단하느냐 입니다. 지금 새롭게 결단하는 것은 내일의 새로운 삶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지금이라는 시간에서 해야 할 결단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결단해야 합니다. 결단은 잘못된 과거의 습관과 행동으로부터 끊는 것입니다. 돌아서는 것입니다. 기회를 붙드는 것입니다. 새롭게 시작하며 달려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아비 친척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결단했습니다. 그는 미루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없는 과거로부터 끊고 하나님의 지시하시는 곳을 향하여 시작했고 달려갔습니다. 아브라함의 분명한 결단은 그를 믿음의 조상이며 약속과 축복의 조상이 되게 했습니다. 지금의 결단은 내일을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악의 길에 서 있다면 멈추도록 결단해야 합니다. 불분명하고 확신 없는 신앙의 삶에 있다면 지금 분명하고 확신 있는 믿음의 자리로 돌아서도록 결단해야 합니다. 잘못된 믿음의 생활을 하고 있다면 바른 믿음의 삶으로 향하도록 결단하십시오.

중국에 어떤 그리스도인이 광산 발전소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산은 400명이 땅속 깊은 곳에서 일하는 곳이었는데, 이 사람은 이 광산에서 전기관리와 함께 위험시에 비상벨을 울리는 일을 하는 책임자였습니다. 어느 날 이 그리스도인은 위험을 알리는 비상 스위치를 잡아당기라는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스위치를 당기면 광산 전체의 일은 멈추게 되고 모든 광부들은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자연적으로 그는 이 느낌을 거부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스위치를 잡아당겨야 할 다급한 이유가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무런 이유도 없으면서 스위치를 내린다면 작업이 중지되어 회사는 큰 손실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스위치를 내려 비상벨을 울리라는 강한 그 느낌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스위치에 손을 얹고 스위치를 내렸습니다. 깊은 광산 속까지 벨소리가 울려 퍼지고 위험을 알리고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400명의 광부들은 급히 갱 밖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현장 소장과 간부들은 그 그리스도인을 둘러싸고 왜 이런 일을 했느냐고 질책했습니다. 바로 그때에,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광산 전체가 꺼져버렸습니다. 모두가 큰 충격에서 깨어나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광산이 무너져 내릴 것을 알았습니까?"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하나님께서 스위치를 잡아당기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당신의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수 있다면 그 분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 후 이 사람은 400명의 교우를 가진 당시 중국의 지하교회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시 때때로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이 결단을 포기하거나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결단은 요구하는 감동과 깨달음을 주실 때에 결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청년 지도자로서 잘 알려진 ''토리 죤슨''박사가 시카고에서 오클라호마 ''털사''로 가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는 그날 아침 주님께 간구 하기를 밤에 잠자리에 들기까지 한 심령이라도 구원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것을 기억하면서, 비행기 안에서 누구에게 전도할 수 없을까 하여 주위를 돌아보았습니다. 죤슨 박사는 어여쁘게 생긴 한 스튜어디스가 조금은 한가한 것을 발견하고는 그녀를 불러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죤슨 박사는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움 마음과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껏 복음을 전했습니다. 스튜어디스는 기쁨으로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비행기가 털사에 도착하여 죤슨 박사가 비행기출구로 내릴 때에 그 스튜어디스는 미소로 인사하며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면서 "이 비행기에서 다시 못 뵙는다면 저 위에서(천국에서) 뵙겠습니다"며 작별을 해 주었습니다. 이튿날 죤슨 박사는 무심코 조간 신문을 펴자 신문 전면에 큰 기사를 보았는데, 어제저녁에 털사를 출발해서 텍사스의 포트워즈로 향했던 비행기가 추락하여 승객과 승무원이 전원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놀란 죤슨 박사는 사망자의 명단을 살펴보니 어제 비행기에서 주님을 기쁨으로 영접했던 그 스튜어디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기회는 미래가 아니고 지금 이 시간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회를 붙들고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만드시는 중요한 기회들을 결코 포기하거나 잃어버려서는 아니 됩니다. 돌이키십시오 그리고 결단하십시오. 그러므로 그 기회를 나의 삶의 축복이 되게 하십시오.

벨릭스의 실패는 결코 우리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벨릭스의 교훈으로 바로 서십시오. 우리로 승리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돌이켜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의 기회를 잡으십시오. 지금 결단함으로 하나님께서 내일을 우리에게 축복으로 주시는 영광스러운 삶을 간직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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