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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이 잘해야하는 이유 (창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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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그리스도인이 잘 해야 되는 이유
< 본 문 > 창20:1~8

오늘 성경 본문을 보면 얼른 수긍이 되지 않는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인데 이럴 수가 있나 하는 의구심이 생길 정도입니다. 본문을 보면 아브라함이 나옵니다. 그는 믿음의 조상 아닙니까? 그런데 그 행동을 보면 순 엉터리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를 용납하고 감싸주십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1절 보면,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 애굽 가까운 그랄 땅으로 이주합니다. 이것부터 틀렸습니다. 물론 어려워서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떠났겠지만 그 자체가 불신의 소치입니다. 어려워도 언약의 땅에 머물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지 않겠습니까? 더욱이 그랄 땅에서 신변에 위험을 느끼고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은 그것도 모르고 사라를 취합니다. 거짓말하다 마누라를 빼앗기다니! 세상에 이런 남편이 어디 있습니까?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창12:10 이하를 보면 맨 처음 가나안 땅에 들어온 직후에도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다가 바로 왕에게 빼앗긴 적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어언 25년 가까이 지났으니까 이젠 신앙이 꽤나 좋아진 줄 알았는데 여전히 같은 죄를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한심합니다. 게다가 이것은 우발적이 아니라 의도적인 범죄였다는 사실입니다. 13절 보면, 아예 미리부터 아내에게 요구를 했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괘씸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이라면 이런 사람은 혼 구멍을 내도 시원치 않을 겁니다. 아니, 아예 의절하고 잘라 버려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도와주십니다. 사라가 안전하게 풀려날 뿐 아니라 재물까지 엄청 얻어 나옵니다. 14절~16절 보면 양과 소, 노비, 땅, 그리고 은 천 개 등 굉장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정말 이상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아비멜렉 편에서 보면 애매하게 당하는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인 줄 모르고 그랬는데 말입니다. 3절 보면,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셔서 그를 책망합니다. 사라를 풀어주지 않으면 죽여버린다고 겁을 줍니다. 그뿐 아니죠? 18절에 보면 사라를 취한 후 아비멜렉의 집에 재앙(모든 태 문이 닫히는 재앙)이 임했습니다. 더구나 아브라함이 선지자이므로 그가 기도해 줘야 문제가 해결된다고까지 말씀합니다. 갈수록 태산이죠?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결코 잘못된 일을 행치 않으십니다. 인간의 짧은 안목으로 보니까 이상해 보이는 것이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중요한 교훈이 들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통해 인간이 과연 어떤 존재인가, 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런 점을 감안하시고 오늘 말씀 가운데 있는 중요한 교훈을 배우시고, 그로 인해 저와 여러분의 신앙이 더 성숙해지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의 특별은혜 - 그리스도인은 실수해도 용납하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과 인류를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종말까지 우주만물과 인류를 보존하시기 위해 보살펴주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를 가리켜 ‘일반 은혜’라고 부릅니다. 일반 은혜는 신자나 불신자나 골고루 받습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받습니다. 마5:45 “ ...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그런데 특별히 선택한 사람들에게는, 다시 말해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 이상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주시고 천국 갈 때까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이를 가리켜 ‘특별 은혜’라고 부릅니다. 엡1:3~7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 선택한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구속의 은총을 베푸십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영생을 얻은 것도, 장차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다 하나님의 특별 은혜입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조건이나 행위에 따른 것이 결코 아닙니다.(엡2:8~9 참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은 것은 그의 인간 조건이나 행위가 특별나서 그런 게 아닙니다. 본문에 나타난 모습이 인간 본연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연약합니다. 허물투성이입니다. 죄인입니다. 때로는 신앙 생활을 오래 해도 실수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아브라함만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뭐라고 말씀합니까? 고전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한편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을 끝까지 보호하시고 지켜주십니다. 연약하지만 붙들어 주시고, 범죄하지만 또 용서해주시고 천국까지 이끄십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과 언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불신자와 다른 점이 바로 이겁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잖습니까? 남의 자식 아무리 잘 났어도 내 자식만 합니까? 미우나 고우나, 잘났든 못났든 내 자식이 최고입니다. 내 자식이기 때문에 더 사랑하고 더 은혜를 베푸는 것은 편애가 아닙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특별 은혜가 그런 겁니다. 그리고 특별 은혜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특혜’인데, 자기 자식에게 베푸는 것은 불공정한 특혜가 아닙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베푸는 하나님의 특별 은혜는 그 기초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입니다. 피 흘리심의 대가로 그리스도인들이 특별 은혜를 받는 겁니다. 그러므로 당연합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감싸주고 아비멜렉을 혼내주는 것도 그런 차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기억할 것은 아비멜렉을 무조건 억울하게 한 것은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아베멜렉에게도 잘못이 많습니다. 자기 부인이 있는데도 다른 여자를 데려간 것부터가 죄악입니다. 게다가 사라가 좋다고 순순히 따라갔겠습니까? 아마 거부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위협을 하면서 데려갔겠죠. 큰 범죄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라가 하나님의 언약의 자손인 이삭을 낳을 여인이라는 점입니다. 그 후손 가운데 메시야 그리스도가 나셔야 됩니다. 아베멜렉이 그 사실을 알고 범죄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훼방하는 큰 잘못을 저지를 찰나에 막아주신 겁니다. 그러니까 혼을 내줬다지만 한편으로는 아비멜렉의 더 큰 범죄를 사전에 막아주신 셈입니다. 그로서도 천만다행이죠. 그러니까 나중에 사라를 풀어주면서 선물까지 주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아마 아브라함이 회개했을 겁니다. 본문에는 자세한 내용이 나와 있지 않지만 문맥으로 보건대 아브라함이 그냥 맥 놓고 앉아 있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여러분,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가 바로 이런 겁니다. 누구나 다 범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자는 하나님 앞에 돌이키고 회개합니다. 반면에 불신자는 그냥 후회만 하고 지나치거나 오히려 강퍅해집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비록 범죄할지라도 돌이키기 때문에 다시 회복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서든 그리스도인을 이끌어 천국까지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비록 실수하고 넘어질 때가 있더라도 속히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시고 꼭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보장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변치 않는 약속입니다. 빌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요10:28~29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2] 그리스도인의 책임 -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잘못하면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끝까지 책임져 주시지만, 그렇다고 방심하고 함부로 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합당하게 살려고 애를 써야 마땅한 도리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신앙 생활을 잘못하면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되기 때문에 근신하고 조심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신앙 생활을 잘못할 때 과연 어떤 문제가 야기될까요?

① 그리스도인의 잘못 때문에 자신도 고통을 당하고 남에게까지 해를 끼칩니다. 본문 보면, 아브라함이 잘못했는데 아비멜렉과 그 가족들이 고통을 당하지 않습니까? 물론 본인들도 일부 잘못이 있지만,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어디까지나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의 범죄로 인하여 다른 사람까지 피해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공동체로 모여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좋든 나쁘든 서로 영향을 끼치며 삽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아비멜렉과 달리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영적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영향력이 더 큰 것입니다. 그의 영적 지위는 7절에 나와 있죠.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제사장 지위와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남을 위해 축복을 빌어주는 사람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인간적으로 실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선지자와 제사장의 영적 지위를 갖고 있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창12:3 보면 아브라함에게 이런 영적 지위가 주어졌음을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를 가리켜 ‘복의 근원’이라 부릅니다. 복의 근원이란 복의 통로입니다. 아브라함이 개인적으로 복을 받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복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그로 인해 복을 받을 수도 있고 저주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잘났단 못났든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이런 놀라운 영적 지위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벧전2:9 보면 ‘왕 같은 제사장’이라 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고, 하나님께 인도할 사명자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명을 감당치 못하면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게 됩니다.
예> 요나 -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가 폭풍을 만나 애매한 승객들이 죽을 뻔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명심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 수천 수만보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과 상대하면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나 한 사람이 제사장적인 사명을 잘 감당하면 내 가정이, 내 직장이, 내 교회가, 내 민족이 삽니다. 반대로 나 한 사람이 신앙 생활 똑바로 하지 못하면 자기도 못 살고 남까지 못살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이와 같은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남에게 축복 기도를 해주고 은혜를 끼치는 사람이 될지언정 해를 끼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②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전도의 문을 막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로 위기는 겨우 모면했지만 얼마나 톡톡히 수치를 당합니까? 9절~10절. 아비멜렉이 점잖게 책망했지만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불신자에게 신자가, 그것도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그렇게 당했으니 정말 한심합니다. 자기만 수치를 당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도 함께 수치를 당한 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 됩니다.(마5:13~16) 타락하고 범죄한 세상을 지적하고 바꾸어야 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다니 말이 됩니까? 바울이 유대인들을 책망하며 한탄했던 게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롬2:24 “ ...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우리는 예수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이미 개인이 아닙니다. 공인입니다. 더욱이 직분을 받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꼬리가 붙는 겁니다. 아무 교회 목사, 장로, 집사, 집사 등 ...
예> 그리스도인이 잘못하면 개인을 지적하지 않고 직분이나 교회를 들먹거립니다. 똑같은 범죄라 하더라도 신문에 날 때 보면 활자가 대문짝만하게 납니다. 이름만 나는 게 아니라 꼬리가 붙은 채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잘못하면 나 자신은 물론이고, 교회 망신, 하나님 망신 ‘공동 망신’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안타까운 것은 전도의 문이 막힌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잘하면 나만 올라가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교회 이름이 나고 전도의 문이 열립니다.
예> 몇 년 전 고급 옷 로비 사건 - 전국에 생중계 ... 직분별로 총출동 ...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 서로 잘했다고 주장하니 ... 그런 난리 소동이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이름이 얼마나 욕을 당하시고 전도의 문이 꽉꽉 닫혔는지 모릅니다.
예> 지난 해 월드컵 축구 선수들 중에 그리스도인이 많았습니다. 어린 선수들이 기도 세리모니를 통해서, 간증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그들 때
문에 전도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제 우리는 대표선수라는 의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내가 똑바로 신앙 생활 하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내가 잘못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어집니다. 전도의 문이 열리고 닫힙니다.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3] 바른 신앙의 회복 -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잘 해야 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결코 미미한 존재가 아닙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합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앙 생활을 잘해야 됩니다. 그것이 곧 나 자신이 잘 사는 길이요, 더 나아가 내 가정과 내 교회가 잘 되는 길이요, 우리 민족과 나라가 잘 되는 길입니다.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가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멸망한 사실을 기억하시죠? 아무리 소돔과 고모라에 악인들이 득실거려도 의인 열 사람만 있었다면 그들로 인하여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하면 우리가 신앙 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아브라함은 그런 마음 없었을까요? 당연히 있었겠죠. 잘 해보고 싶었는데 잘 안된 겁니다.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약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어 기도해야 됩니다.(마26:41) 말씀의 끈을 꼭 붙들어야 합니다. 늘 영적으로 깨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담대한 신앙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하면 세상 사람, 세상 문제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만 바라보고 사람만 바라보면 두려워집니다. 그래서 실족하고 맙니다. 잠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아무쪼록 이런 원리를 꼭 명심하시고 저와 여러분은 더욱 분발하여 신앙 생활에 힘쓰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말씀대로 순종하는 정직한 삶, 사랑을 베푸는 삶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그로 인하여 나 자신도 잘 되고, 이웃 사람들과 이 나라가 잘 되게 하는 귀한 축복의 역사가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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