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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반드시 너를 복 주고 / 히 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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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너를 복 주고 히브리서 6장11~15

이 세상은 두 종류의 복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절대적으로 복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가정이 좋습니다. 건강합니다. 갖출 것은 다 갖추었습니다. 아마도 이 곳에서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 가운데 극소수의 사람들은 이렇게 아무 걱정 없이 공부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가정 사정이 어렵습니다. 능력도 부족합니다. 취직도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게 여의치 않는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복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늘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진 것 때문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아직 가지지 못한 것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삶에 대하여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채소를 내는 삶과 가시를 내는 삶에 대하여 묵상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사람 중에는 철저히 자기를 생각하는 가시를 내는 성숙하지 못한 인생이 있는가 하면 이웃을 위하여 사는 채소를 내는 성숙한 인생이 있다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배운 것은 채소를 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도 구원을 받은 것이요 가시를 내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람일 뿐 그리스도 터 위에 세워진 인생이기에 구원받은 인생이라는 확신을 나누었습니다.

저는 오늘 예배드리는 여러분 모두가 이런 인생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철저히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가시 같은 인생이어도 좋습니다. 그 인생이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이렇게 가시를 내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성령 충만해서 성화하면 가시 내는 인생을 청산하고 채소를 내는 인생으로 전환 될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인생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숙한 인생 성화 된 삶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훈련이 요구 됩니다. 믿음으로 인내하는 삶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때문에 본문 12절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게으르지 않을 것을 요구합니다. 참는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기초는 믿음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 없는 참음은 내 안에 한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한이 베인 부지런함과 한이 베인 출세는 내 안에 더 예리한 가시로 말미암아 남에게 해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에 기초한 인내 믿음에 기초한 부지런함은 소망이 있고 남에게 덕을 끼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믿음 안에서 가시 내는 인생을 살다가 채소를 내는 인생으로 성숙하게 된 한 인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저는 아브라함이 가시를 내는 인생과 채소를 내는 인생의 기점은 아브라함의 이름이 바뀔 때부터라고 규정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은 아브람이었습니다. 이때 아브람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만의 삶을 살고 있던 아브람을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에 순종한 아브람을 하나님은 믿음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이란 이름이 아브라함으로 바뀔 때까지는 무려 24년이 걸립니다. 99세 때 하나님은 아브람이란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이 사건을 정점으로 아브라함은 신앙의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사건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려보면 아브라함이 아브람이란 이름을 가지고 믿음 생활 할 때에는 자기를 버리는 삶이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남을 도와주고 재산을 포기하는 삶은 있었지만 자신과 같은 자식을 포기하는 삶은 없었습니다. 하갈은 버려도 이스마엘을 버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제부터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이후부터 아브라함은 자신을 포기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헌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에게 할례를 주면서 자기도 자기 몸의 쓸뗴 없는 부분을 잘라내는 할례에 참여 합니다. 이전까지 기질대로 살았던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기질을 잘라버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헌신이란 단어를 많이 듣고 사용하는데 진정한 헌신은 어디서부터 시작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나의 이름이 바뀌어지는 때부터 시작합니다. 나의 옛 이름을 그대로 지닌 채 사는 삶은 나의 기질로 사는 삶입니다. 그러나 나의 이름이 바뀌어 진다는 것은 내 기질로 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 기질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인생이 복 있는 인생으로 바뀌어 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인생이고 헌신하는 삶입니다. 한번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우를 한 사람 데려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이렇게 질문합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 앞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이 사람의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그러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이 사람의 죄도 아니요 부모의 죄도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 고 하셨습니다.

어떤 책을 읽어보니 다음과 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 분은 어렸을 때 너무나 가난하게 자랐고 고생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성실하게 일해서 자수성가한 분입니다.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이 분은 자동차가 필요해서 자동차 하나를 계약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어서 고급 승용차를 계약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차가 출고되면서부터 이 사람은 걱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불안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지금까지 고생만 했던 사람이라서 자기는 이런 고급차를 타서는 안 된다는 불안감이 이 사람을 누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데..나는 늘 어려워야 하는데 내가 이렇게 좋은 차를 타면 혹시 잘 못 되는 것은 아닌가? 라는 눌림이 있었습니다. 결국 이 사람은 그 차를 포기하고 그 차보다 못한 차를 구입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구원은 받았지만 구원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구원의 확신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이란 말이 무엇입니까? 구원의 확신이란 나의 이름이 바뀌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라는 이름을 갖도록 하나님으로 허락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로 인하여 어긋난 것들이 회복된 것을 경험하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형상 가운데에는 많은 것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무너진 자존감을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예전에 우리는 나는 못난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구원 이후의 삶은 내가 못난이가 아니구나 는 존귀한 존재구나 하는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나만 잘 난 줄 알았더니 나보다 잘난 사람이 참으로 많이 있구나 라고 겸손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삶입니다.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절대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습니다.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면 서 자신의 삶을 해석합니다. 자신이 고아로 태어난 것에 대해서 비관하던 사람이 믿음을 소유하고 구원의 확신을 가질 때 자신의 인생을 해석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구원받은 사람은 책임적인 존재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부모를 잘 못 만나서 내 인생이 이렇게 되었어! 그래서 나는 이렇게 못사는 거야 라고 말하던 사람이 구원을 받은 이후로 일어나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자신이 책임을 지는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삶이 믿음 가운데에서 해석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책임적인 존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해석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은 무엇입니까? 한번 비교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창12:1-3// 창22:16이하 창12장은 아직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기 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서 갈대아 우르 땅을 나온 아브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름도 아브람입니다. 그러나 창22은 아들 이삭을 바친 후입니다. 그리고 이름도 아브라함이라고 불리 울 때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처한 상황은 다른 상황입니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창12장의 복도 그리고 22장의 복도 다른 것이 아니라 똑 같은 복입니다.

다시 말하면 12장에서 행동하는 아브라함과 22장에서 행동하는 아브라함의 행동은 하늘과 땅 차이의 헌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가시를 내는 사람이나 채소를 내는 사람이나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똑 같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 복은 생명입니다. 지난 주 일천 독서실에서 성경 공부를 하다가 이와 같은 질문을 받고 서로 나누었습니다. 천국에 가면 어떨까?

어떤 사람이 하는 간증을 들어보니 이 세상의 삶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집들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저도 들은 이야기가 생각이 나요. 어느 교회 성도님이 천국에 갔더라 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와서 영접해 주면서 오느라 수고했으니 식사부터 하라고 중국집을 데려가더라는 것입니다. 중국집에 가보니 낯익은 얼굴이 열심히 홀에서 서빙 하고 있어서 보니 자기 교회 장로님이셨다.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천국 중국 집 홀에서 서빙 하고 있었다. 순간 이 성도님이 장로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목사님은 어디 계실까 궁금해져서 장로님에게 물어 보았다는 것입니다. 장로님! 우리 목사님 어디 계세요? 네. 우리 목사님은 지금 오토바이 타고 배달 나가셨어요. 아주 그럴 듯한 이야기지요? 그리면서 우리로 하여금 헌신된 삶을 살도록 도전하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14절을 보십시오. --14절 여러분 보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복 주고 복 준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12정에서 복 주신다고 하신 약속을 하나님은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가시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을 기억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자기가 살기 위하여 아내를 누이라 속였습니다. 가시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주시는 은혜의 복입니다. 만약 천국이 이렇게 공로로 서로 자리 매김을 하는 곳이라면 사도 바울이 하신 말씀에 심각한 오류가 나오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3:29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 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히브리서를 읽어야 할 독자들의 상황이 무엇입니까? 지금 이들은 세상 가운데 무너지는 것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세상이 너무나 무서워서 목숨 걸고 신앙 생활하는 자신들은 너무나 역부족인 것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아브라함이 25년을 참았듯이 참으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는 3일의 여정처럼 조금만 참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의 25년은 우리도 인내를 가지고 참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새 생명을 얻는다는 기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힘들지만 25년을 참을 수 있습니다. 25년은 목적지가 가까울수록 기쁨이기 때문에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삭을 데리고 가는 모리아 산의 3일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25년의 시간은 소망이지만 3일의 여정은 목적지가 가까울수록 아픔이요 도망가고 싶은 시간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변의 모습은 우리에게 무서움을 가져다 주고 힘든 시간으로 몰아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가장 힘든 시간을 겪었던 3일의 시간이 바로 우리가 당하고 있는 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3일후면 부도난다. 3일후면 아내가 수술을 받게 되어 있다. 3일후면 내 아내가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삶 가운데에서 우리의 믿음 생활은 달라질 것입니다. 겁내는 인생이 아니라 담대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은 구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하늘의 뭇별처럼 약속하신 약속의 성취가 또한 준비되어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상급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삭을 재물로 바치라는 음성을 듣고 걸어야 하는 3일의 여정은 짧습니다. 우리가 겪는 인생은 정말 짧습니다. 그러나 이 짧은 인생을 하나님께 순종할 때 우리는 하늘의 뭇별처럼 열매를 맺는 인생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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