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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 (마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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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마13: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 13:33)

사람은 누구나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어디서 누구에게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 자랐느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글에서 늑대와 함께 자란 어린이가 사람으로 돌아오는데는 실패하였다고 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사회와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줍니다. 그러나 자연과 환경은 누구에게  영향을 받습니까?

세상과 환경은 사람에게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좋은 사람이 모여서 사는 곳은 좋은 세상이 되고  좋지 못한 사람이 모여서 사는 세상은 좋지 못한 세상이 되고 맙니다. 세상은 전적으로 사람에 의하여 형성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에 영향을 주는 인간이 악하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땅을 정복하라, 충만하라, 다스려라, 하셨지만 범죄 한 이후에는 에덴에서 쫓아내고 화염 검으로 에덴을 막으셨습니다. 범죄한 인간에 의하여 에덴의 더럽혀짐을 막기 위해서 아닐까요? 이 망가진 세상, 더럽혀진 세상, 일그러진 세상을 누가 고쳐야 할까요? 그것은 교회에 주어진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제자를 보내 복음을 전파하고 진리를 가르치며 병든 자를 치유하라고는 하는 것은 교회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하라고 하신 말씀인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시간적 이기도하고 장소 적이기도 합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말씀의 실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오심으로 임한 것이고, 예수님의 말씀이 전파됨으로 확장되며, 예수그리스도가 다시 오심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속에 넣은 누룩과 같다"(마13:33)

1.  적은 것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작은 것은 큰 것의 반대라면 적은 것은 많은 것의 반대말입니다. 겨자씨비유는 작은 것이 커진 외적 성장을 말한다면 누룩비유는 적은양으로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는 내적 변화를 말합니다.
비록 적은 누룩일지라도  많은 가루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소수라 할지라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적은 것을 무시하고 많은 것의 가치만 강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적은 것이라도 주님이 함게할 때 무한한 가치와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님 입니다.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2) 작은 나귀의 어린것을 타신 예수님 입니다. 이도 예언대로 입니다.
3) 과부의 엽전 두닢을 칭찬하신 예수님입니다.
4)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 되다고 가르치신 예수님입니다.
5) 이 소자중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고 가르치신 예수님입니다.
6) 적은 오병이어를 통해 기적을 베풀어 5천명이상을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미약한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게 되리라.

스코트랜드에서 두 분의 목사님 있었습니다. 그 두 분의 목사님은 그다지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한 목사님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3년의 목회를 하는 동안 진정한 의미에서 거듭난 사람은 한 사람밖에 얻지를 못했습니다." 그 한 청년은 로버트 마펫이라는 청년입니다.

또 다른 목사님도 말했습니다. "나는 우리교회에서 한 주간 집회를 하였는데 사실 커다란 기대를 걸고 하였지만 한 사람밖에 얻지 못했습니다." 두 분의 쓰라린 목회생활을 나눈 것입니다.

그러나 수년 후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3년 동안 맺은 한 청년 로버트 마펫은 아프리카 선교의 기초를 놓은 사람이 되고, 일주일 부흥회에서 얻은 한 청년은 리빙스톤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불을 지른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적은 수의 가치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영국에 5살 된 한 어린이가 1페니의 지정헌금을 했습니다. 이것으로 신약성경을 사서 인도에 보내 달라는 것입니다. 그냥 우습게 지나칠 수 있는 적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작은 소년의 뜻을 귀히 여긴 목사님은 돈을 더 보태서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소년의 싸인을 해서 인도로 보냈습니다. 이일을 소년도 잊고 목사님도 잊고 있었습니다.  20년 후에 목사님이 인도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아주 진지하게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있어 이야기를 나누는 중 어떻게 이 마을 에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는지를 나누게 되었답니다.

한 무명의 선교사가 전해준 작은 신약성경 한 권이 이 마을의 복음화의 기초가 되었다고 하면서 작은 낡은 책을 보여주는 데 뒷장을 보니 바로 20년 전에 5살 된 어린 소년의 싸인이 기록된 그 성경이었습니다.
아람나라에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침 받는데는 유대에서 잡혀온 보잘것없는 어린 계집아이로부터 들은 기쁜 소식 덕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위대한 역사는 트럼팻을 울리며 거창하게 시작되지 않습니다.
보잘것없는 적은 양의 누룩이라도 가루 서 말속에 들어가면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받은 자는 적고, 넓은 길로 가는 자는 많으나 좁은 길로 가는 자는 적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씨 뿌리는 비유에서 말씀을 받고 깨달으며 순종하여 열매를 맺는 자는 1/4밖에 안됩니다. 그러나 적은 수이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이 나라는 변화되고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어갈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불과 열두 명의  적은 무리를 선택
하여 보내셨습니다. 이는 양을 이리가운데 보내는 것 같고 달걀로 바위를 깨는 일과 같은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비유는 먼저 적은 것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2. 변화시키는 능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겨자씨는 작은 것이지만 심어만 놓으면 싹이 나고 새들이 깃들일 만큼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누룩은 적은 것이지만 가루 서말 속에 들어가 자체는 보이지 않지만 전체를 남김없이 변화시키는 내적 변화의 능력이 있음을 말합니다. 바울 사도 역시 적은 누룩의 위력을 증언하였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5:7)
교회는 많고 큼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살아있음을 자랑해야 합니다.
아무리 그 수가 많고 그 규모가 크다 할지라도 죽은 것이라면 벽제의 공동묘지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고기는  아무리 커도 죽은 것은  힘도 없고 값도 없습니다. 고기는 산 고기가 힘있고 값이 있습니다.  세계 십대교회가 거의 한국에 다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 더 이상 어떤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죽은 고기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죽은 고기는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떠내려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의해 변하는 것입니다. 죽은 고기는 거슬러 올라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커도 죽은 고기는 떠내려 갈 뿐입니다. 교회가 작고 신자의 수가 적어도  진정한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마10장에 예수님께서 12명의 사도를 세워 그들을 파송 하면서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하셨습니다. 
양이 이리를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이길 수 없다면 왜 목자이신 주님은 양을 이리가운데 보내십니까?

이리에게 양이 진다면 왜 양을 이리가운데 보내신다는 것입니까? 그러나 양된 성도가 이리 같은 세상을 이길 수 있고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양으로 사자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양이 이리를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양이 이리를 이기기 위하여 이리가 되어야 할까요?
양이 이리를 이기려면 끝까지 목자와 함께 하는 양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끝가지 신자는 신자로 있어야 하고 성도는 성도로 있어야 하고 의인은 의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아들 6인 중 5인이 목사요 손자 10 명이 목사이고 13명이 선교사라고 합니다. 이는 그가 얼마나 감화력이 있는가를 말해줍니다. 
감화력은 복음의 특징이며 전도자의 무기입니다.

누룩은 많은 가루를 변화시키기 위하여 쇠 덩어리가 되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누룩이면 됩니다.
소금이 녹아 자기의 형체를 버리지만 소금의 본질까지 버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사람이 되셨지만 하나님의 본질을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양은 끝까지 양으로 남아있는 것이 이리를 이기는 방법입니다.

부패한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주님처럼 거룩하게 살아가야 하고, 거짓된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진실하게 살아야 하고, 일그러진 세상을 고치려면 정직하고 곧게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병든 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야 이 병든 사회를 고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양 같은 성도를 이리 같은 세상가운데 보낸 이유입니다. 친일파가 되어 내 나라를 빼앗은 나라의 녹을 먹으며 호강하게 살기보다 독립군이 되어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피 흘리며 싸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누룩은 가루 속에 들어가 흔적도 없지만 누룩은 가루 서 말을 다 누룩으로 변화시킵니다. 이것이 복음의 특성이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표시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군사입니다. 우리는 패잔병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적진 한복판에 들어가 마귀와 세상을 이기고 그 땅을 점령하는 점령군이 되어야 하고 그 땅에 억류된 사람들을 자유케하는 해방군이 되어야 합니다. 거기에 영광이 있으며, 전리품을 나누는 기쁨도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풍부한 축복과 영광이 있습니다.

1.  적은 것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2. 변화의 능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눅 12:32) 가루 서말 속에 넣어진  누룩같이 예수를  전염시키는 한양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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