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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응급실의 기도 - 행 4: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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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의 기도
사도행전 4:23-31 

오순절 날 성령께서 임하시면서 사도들을 비롯한 120명 모두는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현상은 계속되는 교회부흥이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기도했고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날마다 믿는 자가 더해 갔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핍박도 시작되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축복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사도행전을 살피면서 사도행전 적인 교회가 되자고 기도하고 있는데 어떤 것이 사도행전 적인 교회입니까?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를 살피면 부흥과 핍박이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회가 누리는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일까요? 저는 교회부흥이라고 생각합니다. 천하보다 더 귀한 영혼이 구원받아 교회가 부흥되고 천국이 확장되니 하나님께서 이보다 더 기뻐하실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교회가 누리는 축복 가운데 영혼 구원 보다 더 큰 축복이 있겠습니까? 우리교회가 축복 받길 원하십니까?
그러면 전도하여 교회부흥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동시에 교회가 누리는 축복 가운데 하나는 주님 때문에 받는 핍박입니다. 왜 핍박이 축복입니까? 핍박이 있어야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면 그 눈물은 천국에서 진주보다 더 값어치가 있습니다. 십자가 없는 면류관은 없습니다.
또한 핍박은 교회를 든든하게 하고 교회부흥을 가져다줍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든든히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신앙의 선배들이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핍박 속에서 더욱 더 든든해지고 핍박이 오면 올수록 강해집니다. 그러니 핍박은 교회가 누리는 큰 축복 중의 하나가 분명합니다. 핍박은 견디기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한 천국에서의 상급이라면 우리가 감수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여러분에게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 있다면 천국상급을 생각하면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3-31절은 석방된 사도들의 보고에 다른 성도들의 합심기도 및 담대한 말씀 전파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 첫째 베드로와 요한이 석방되자 서도들에게 가서 모든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23절을 보세요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류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고하니>
예수님 때문에 핍박받던 사도들이 풀려났습니다. 풀려나자 곧 바로 자신들을 걱정하고 있는 형제들, 믿는 동료들, 즉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찾아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다 설명했습니다. 즉 자신들이 겪은 경험에 대해 보고하고 나누고자 갔습니다.

몇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①베드로와 요한이 신앙의 동지들에게 간 이유는 단순히 계속된 심리와 재판으로 인해 쌓인 피로를 풀거나 위로를 얻기 위해서 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풀이 죽거나 낙담하거나 기가 꺾이지 않았습니다.
공포에 질리지도 않았습니다. 떨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교회가 은익 하거나 교회의 메시지를 교회 밖으로 전하지 말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투옥되었고 최고 법정에서 심리를 받았고 위협하고 경고도 받았으나 그들은 패배 당하지 아니하고 침묵을 지키지 안았습니다.

②또한 자신들을 놓아준 대제사장 무리들이 마음이 변하기라도 하면 다시 붙잡힐 것이 두려워서 함께 피하자고 말하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③ 그렇다고 베드로와 요한은 의기양양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섬기면서 부당한 강요와 압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땅의 최고의 관원들에게 주님을 증거 하는 일에 그들을 놀랍게 사용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에 대한 자랑이나 자부심이나 하나님께서 더 사용되었다고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고 하나님의 특별한 종이라든지 믿는 동료들보다도 더 높아 질려는 어떤 말이나 행동이나 암시나 기미조차도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④그들이 석방되자 다른 성도들에게 달려간 이유는 교회에 자신들에게 힘을 준 성령의 역사와 재판 결과를 속히 알리고 복음 전파를 금지한 산헤드린 공회의 판결에 굴하지 말고 오히려 복음전파에 더욱 매진할 것을 다짐하고 이를 위해 합심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성도들을 찾아간 이유는 성도들(교회)을 격려하고 교훈을 주며(세워주며), 이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임박한 핍박에 대하여 경고해 주는데 있었습니다.

여기 <다 고하고>라는 말에 주목하세요. 그들은 공회가 말한 것, 즉 공회가 질문하고 협박하고 경고한 것을 모두 교회에 가서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주님을 전파하면 어떤 핍박이 올 것인지, 또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놀랍도록 보호해 주셨는지에 관해서 나누었습니다.

놀란 만한 한가지 사실은 ! <계속 예수님을 전파해야할 것인지 말 것인지 하는 것은 문제조차 되지도 않았습니다.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자하는 결정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내리신 것으로 논쟁거리가 될 수 없었습니다>.
믿는 자들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막16:15). 

2. 둘째 성도들이 합심하여 통성으로 기도했습니다.

24절에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설명을 하고 설명을 듣고, 그 다음 그들이 함께 한 일은 기도였습니다.
사도들은 잡혀 있었기에 잠을 못 잤고 피곤했을 것입니다.
먹지도 못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잠자는 것도, 먹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위협하는 어두운 세력에 맞서 기도했고, 교회의 위기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1) 바로 기도가 승리요 문제 해결의 방법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해야 될 최우선의 일은 기도입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기도를 귀중하게 여깁니다. 복된 교회, 좋은 교회는 기도를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기도의 시작은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요 교회 부흥의 출발점입니다.
어떤 문제, 어떤 어려움이든 기도를 통해서 해결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기도를 바르게만 사용한다면 엄청난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고 염려할 시간이 있으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염려와 걱정은 하면 할수록 커집니다.
반대로 아무리 큰 염려와 문제일지라도 기도하면 문제가 적어지고 하나님만 커 보입니다.

교회의 핍박이 시작됐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핍박이 일회성으로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시작합니다.

2) 그들이 어떤 자세로 기도했습니까?

24절 보시면 두 가지 자세가 나옵니다.

①일심 기도, 즉 한마음을 합한 기도였고, 한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기도하는 내용에 집중하고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들은 흔들리지 않았고,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즉 어떤 사람은 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일을 생각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일심으로 하나님과 그분의 놀라운 보호하심과 공급하심에 마음을 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기도는 바로 그러한 모임의 기도입니다. 

②소리를 높여 기도했습니다.

<소리 높였다>는 것은 열정적으로 기도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런 기도는 전심전력으로 기도하라는 성경의 명령과 조화를 이룹니다.
예레미야 29:13절에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이런 기도는 31절에 나오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가시적 응답을 받을 수 있었고 또한 말씀전파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마음을 합하여 뜨겁게 통성기도 한 것입니다. 기도의 모임에 모이기를 힘쓰십시오.

무슨 일을 할 때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모이는 것입니다. 모여야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예배도, 기도도, 성경공부도, 제자훈련 등등. 이런 모든 것들은 사람들이 모여야 진행됩니다.
여러분! 기도하기 위해서 모였습니까? 그 때마다 뜨거운 통성기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통성기도는 머리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통성기도는 응급실의 기도입니다.
응급실은 위급한 상황이 전개되는 곳입니다. 죽기 직전일 수 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상황일 수 있습니다.
이 때 점잖게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서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서 살아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도행전 프로젝트에 참석하고 있는 광성교회는 응급실에 있는 교회라 말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도행전 프로젝트는 교회를 살리고, 부흥시키고, 회복시키고, 교회답게 변화시키는 최후의 마지막 방법이라고 말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을 통해서도 교회가 일어서지 못한다면 더 이상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사도행전을 살핀 게 벌써 3달이 지났습니다. 이제 계속해서 사도행전 강해설교가 끝나기까지 남은 시간동안 반드시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면 지금 우리 광성교회가 얼마나 큰 위기에 처해 있는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위기의 때에 마음을 합해 뜨거웁게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위기 시에 열심히 기도하면서 나갈 때 우리는 가장 힘있고 튼튼한 교회, 가장 부흥되는 교회, 가장 교회다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기도에 생명을 걸어봅시다.
그래서 우리 교회를 한번 살려봅시다. 한국교회가 살기 위해선 먼저 우리 광성교회가 살아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교회전체가 살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응급실 중환자처럼 위급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가정이 파탄 직전인 사람, 사업이 망하기 직전인 사람, 질병으로 인해 오늘내일 하는 사람, 이모저모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벼랑 끝에 서 있는 분이 계십니까?
그런 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하면서 하나님께 맡기고 점잖게 기다리고만 있겠습니까?
응급상황이 아닌 척 하면서 속으로만 눈물 흘릴 것입니까? 아니면 자포자기하고 있습니까?

소리 지르십시오. 통곡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엉엉 우십시오. 주님을 큰 소리로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르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히스기야 왕이 질병의 사형선고를 받고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자 그는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열왕기하 20:3절에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그냥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심히 통곡하더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15년 동안 생명을 연장해 주셨습니다.

지금 벼랑길의 상황입니까? 낭떠러지에 서 있습니까? 앞이 캄캄해서 전혀 길이 보이지 않습니까?
포기하면 진짜 벼랑길이 됩니다.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길이 열립니다. 희망이 보입니다.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간절한 기도에 해답이 있습니다.

♬.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간구 해보세요. 마음을 정결하게 뜻을 다 하여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

오늘 설교 후에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그때 히스기야처럼 부르짖으십시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즉시 응답해 주신 것처럼 여러분에게 응답해 주십니다.
그리고 금요일 철야 기도회에 나와서 합심기도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에 해답이 있다면 참석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계기로 하여 밤마다 성전에 모여 기도합시다. 그래서 교회가 살고 저와 여러분이 살기를 바랍니다.

3) 그들이 합심해서 기도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24절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요>

①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왕 되신 하나님이시여 하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높여드리면서 기도가 시작됩니다.

②그리고 25절 26절은 시편 2:1-2에 있는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세상의 모든 이들이 연합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한다는 예언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27절은 예언된 대로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 등에 의해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③그 다음 2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성에 모였나이다>
28절에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모두가 합작하여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도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또 실제로 핍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 일이고 하나님의 예정 속에 되어지는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헤롯과 빌라도가 자기의지대로 예수그리스도를 못 박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 뜻, 예정)이었습니다.

세상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섭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일도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방해 때문에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듯한 나의 신앙생활, 또는 환경 때문에, 어떤 사람 때문에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나의 지금 이 모습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실패자가 아니고 승리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지금 우리 교회의 모습, 우리 가정의 모습이 실패처럼 보인다 할 지라도 하나님의 예정 속에 포함되어 하나님의 계획대로 나가고 있는 셈이니 우리교회는 실패가 아닙니다. 우리가정은 실패가 아닙니다. 우리는 패배자가 아닙니다.
단지 사람의 눈에 어려워 보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실패는 없습니다. 아무리 사탄이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한다 해도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섭리를 깨뜨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합력 하여 선이요 결국엔 승리요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반드시 부흥됩니다. 반드시 축복 받고 반드시 사도행전 적인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서 더욱 더 기도에 힘을 쓰시기 바랍니다.

④ 29-30절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낳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에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29-30 절을 보시면 기도의 내용 3가지가 나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①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 하옵시고> 입니다.

이것은 위협, 핍박을 없애 달라는 게 아닙니다. 피하게 해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우리를 핍박하고 있고 우리를 위협하고 있음을 살피시고 돌아보소서 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있습니다.
무조건 피해 가는 게 상책입니까? 하나님께서 핍박을 다 막아주시는 게 좋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일은 다 이길 수 있습니다. 넘지 못할 산은 없고 넘지 못할 파도는 없습니다.
어떤 핍박도 견딜 수 있고 또 핍박 속에서 우리의 믿음은 든든히 서 갑니다. 만약 핍박이 없다면 온실 속의 화초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힘들고 어려운가요? 하나님이 하감하고 계십니다.
지금 영적 전쟁중인가요? 하나님께서 싸우는 나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초대교회 7 집사중 한사람인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기 직전 예수님께서는 하늘보좌 우편에서 일어서시어 스데반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때 스데반의 눈이 열려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께서 바라보고 계신다는 사실에 힘을 얻어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그 길을 기꺼이 즐거움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형편을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데 믿음의 길, 하나님의 뜻을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② 두 번째 기도 내용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달라>는 내용입니다.

세상 권세 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합니다. 전하면 죽이겠다고 하고 감옥에 가두겠다고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전파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흔들리지 않고 강하게 말씀을 전할 수 있는 담대함입니다. 말씀전파에 있어서 담대함은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담대함이 없으면 그 때부터는 제대로 된 말씀, 말씀다운 말씀을 선포하기가 어려워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려면 담대하게 선포되어져야 합니다. 전파자가 담대하지 못하면 말씀을 통한 능력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설교가 됐든, 전도가 됐든, 전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듣는 사람의 비위를 맞추고 눈치나 살피면서 전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눈치를 살피면서 벌벌 떠는 것과 똑 같은 이치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도구들입니다. 하나님의 대사들입니다. 그러니 담대하십시오. 어떤 핍박 앞에서도 두려워 떨지 마십시오. 설령 말씀을 전하다 죽는다 할지라도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말씀을 적당히 타협할 수는 없습니다. 담대하게 전파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③ 셋 번째는 기도는 능력이 나타나게 해달라는 내용입니다.

능력이 나타나게 해 달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이들의 관심은 오직 복음전파입니다.
병을 치료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기적을 나타내서 자신들이 인정받고 대접받겠다는 게 아닙니다. 개인적인 욕심은 전혀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능력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세를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능력주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에게도 능력이 필요합니다.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악하고 험한 이 세상에서 예수 믿으라고 말만해서 예수 믿겠습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여줘야 믿을게 아닙니까?
기도하십시오. 오직 전도를 위해서라는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담대하게 나가서 전파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나타납니다(30절). 예수님 이름으로 요청할 때만 하나님은 능력을 행하십니다. 베드로의 이름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바울의 이름도 소용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이름 뿐 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예수님 앞세우고 나갈 때 모든 장벽이 무너지고,
예수 이름으로 나갈 때에 죽은 자가 살아나고,
예수 이름으로 나갈 때에 질병이 치료되고, 귀신이 쫓겨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명할 때 강퍅한 마음이 깨어져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을 앞장세웁시다.
우리 가정에, 우리 사업장에, 우리 인생여정에 예수님을 앞세웁시다.
나의 공부에 예수님을 앞세우고, 내 인생 목표와 모든 삶에 예수님을 앞세웁시다.
예수님 안에서 실패는 없습니다. 예수님 이름 앞세우는데 패배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 모든 승리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이제 기도가 끝났습니다. 기도 후에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31절 보십시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①모인 곳이 진동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나타난다고 하면 더욱 더 좋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은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여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기도의 사람들에겐 각종 영적 체험들이 있습니다.
단지 그 체험을 말하지 않을 뿐입니다. 본문과 같은 현상이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기도하다 보면 온 몸이 진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역사 하시는 다양한 증거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신비한 체험만을 사모해서는 안됩니다. 또 신비주의에 빠져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영적 깊은 체험을 사모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영적 체험은 필요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영적 체험을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모여서 기도할 때마다 진동하는 것과 같은 능력이 나타나도록 합시다.
기도에는 힘이 있기에 수많은 영적 역사들이 나타납니다. 당연히 나타나게끔 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이런 체험이 필요합니다.
죽은 기도엔 능력이 없지만 살아 있는 기도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제한시키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마음껏 역사 하시도록 하나님께 맡겨 버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잘못될게 뭐가 있겠습니까? 아무 능력 아무 증거도 나타나지 않는 게 잘못된 게 아닙니까?

우리광성교회의 금요철야기도회가 다양한 영적 체험을 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예배시간에 통성기도 할 때마다 성령의 능력이 넘치게 나타나길 바랍니다.
이제는 능력이 나타나야하고 고전12장에 기록된 은사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또한 영적 깊은 체험이 필요한 때입니다.

②<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 충만> 하였습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다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다 받았지만 참석하지 않은 사람은 국물도 없었습니다.
모이기에 힘쓰는 자는 이처럼 반드시 축복을 받습니다. 합심기도에는 개인기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이 있습니다. 함께 모여서 기도할 때 기도의 깊은 맛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설교가 끝남과 동시에 합심해서 통성기도 할 것입니다. 그 때 이곳이 진동함을 믿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성령 충만함을 받으세요. 오늘 꼭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신앙생활 해 오면서 영적 체험이 한번도 없다면 너무 부끄럽지 않습니까?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뜨겁게 부르짖으십시오. 그럴 때 우리 모두에게 넘치는 영적 역사가 나타남을 믿습니다..
그들의 기도가 다 끝났습니다. 그리고 무엇입니까? 휴식입니까? 내일부터 전도입니까? 아닙니다.

③기도 후에 즉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나서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즉시 공격적으로 뛰어나가서 사탄의 세력을 물리치며 전도에 힘을 썼습니다.
모든 교회들이 부흥을 달라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리고는 기다립니다. 하나님 일꾼을 보내 주시옵소서, 부흥을 주시옵소서. 그리고는 1년, 2년, 10년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어떤 교회가 부흥됩니까? 기도한 다음에 뛰어나가는 교회입니다. 깨달음을 즉시 순종하는 교회가 부흥됩니다.
주님은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가만있어도 채워주시는 게 아닙니다. 내가 나가서 끌어다가 채워야 합니다.
기도 열심히 했습니까? 그렇다면 능력은 받은 것입니다. 이제는 기다리지 말고 나가야 능력이 나타납니다.
기다리는 것은 마치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기다리면 1년에 한 명도 오지 않습니다.

물론 나가지 않고 기다리기만  해도 스스로 찾아와서 등록하는 사람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영혼구원이 아닙니다 천국확장이 아닙니다. 멀리서 이사온 다른 교회 교인입니다.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것이 왼쪽으로 옮겨졌을 뿐입니다. 수평이동에 불과한 것이니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 전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해야만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는 즉시 순종했습니다. 이 시간에 여러분이 깨달았습니까? 그렇다면 예배 후에 점심 드실 생각말고 즉시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실 때 아브라함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창세기 22:3절을 보시면 <아브라함이 일찍이 일어나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죽이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뜻에 조금이라도 빨리 순종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도 순종합시다. 기도했으면 뛰어 나갑시다. 그리고 담대히 전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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