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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몇 개가 있느냐? / 막 6: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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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몇 개가 있느냐?
본  문 : 마가복음 6장 30~44절

몇 개가 있느냐?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간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그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저희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저희보다 먼저 갔더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저물어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가로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제자들을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떼로 혹 백씩 혹 오십씩 앉은지라
  예수께서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가 오천 명이었더라" (마가복음 6장 30~44절) 

<목회기도>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거룩한 주일, 예배드리는 자리에 앉게 하심 감사합니다.
세상에 살며 이런 저런 일에 상처받고 지친 무리들이
여기 모여 예배드립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상처는 싸매 주셔서
강하고 담대함으로 세상에 나가 빛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지금 이 땅은 범죄가 늘어 '납치될까' 두려워하고,
'강도 만날까' 사방을 살펴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정치인들은 편가르고 험담하고 모함하고
보통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들의 유익만을 위해 목청을 높이고 있고
국민들은 실망하여 지도자를 우습게 여기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우리들 천국의 소망으로 새 힘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사랑으로 평안함 갖게 하옵소서.
병들어 몸이 괴로운 이들, 외롭게 사는 이들에게 평안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이 복된 자리에 함께 있지 못한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기도하는
성도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이들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군대에, 객지에, 외국에 나가 있는 이들, 병상에 누워 있는 이들을 모두에게
우리가 받은 은혜를 함께 베풀어 주시옵소서.
부족한 종, 말씀 전합니다.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지난주간 동해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경하기 위해
[대포항]에 가서 어시장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어떤 분이 가깝게 다가서서 "고목사님, 참 반갑습니다. 뵙게 되어 기쁩니다."하며
정말 반갑게 인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목소리나 표정이… 정말 반가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오산서 사신다는 그분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습니다.
여러분도 옆의 분들과 정말 반갑게 인사 해 봅시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뵙게 되어 기쁩니다."
 
지난 금요일밤 <심야기도회>에 나오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미소짓는데는 몇 개의 근육이 움직여야 하지요? 14개
인상 쓰는데, 찡그리는데는 몇 개의 근육이 움직여야 하지요? 72개
14개만 움직이면 미소가 되는데...
72개씩 움직이면서 인상 쓰고 계시려니 얼마나 고생이 많으신지요?
좌우를 둘러 보시고 미소 짓고 계신 분에게는 <미소가 아름다우십니다>
인상 쓰고 계신 분에게는 <수고가 많으십니다>라고 인사하십시오.
오늘도 평안한 날, 기쁨의 날, 감사의 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린아이 같아야 천국에 간다고 했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따라서 하십니다.
"나는 예수 믿음으로 구원받았다."(요3:16)
"나는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요1:12)
"나는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다."(빌3:20)
"나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
믿습니까?
그런 당당함으로 하나님께 나오고 그런 당당함으로 사시기 바랍니다.(엡3:12)
에베소서 3장 12절에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음으로 담대하고 당당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오늘, 장로님께서 봉독 해 주신 말씀(막 6:30~44)에는 만찬이 소개됩니다.
이 들판에서의 만찬은
저물어서도 먹을 것이 없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으며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운 들판에서 단지 굶주림을 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이룬 기적의 만찬은
요한복음 6장에도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각기 전도활동을 마치고 돌아와
예수님께 보고를 마치고(막6:30) 쉬려 했으나
사람들이 계속 따라 다녔습니다(막6:31~33).
해는 저물었고 한적한 빈들에 성인 남자만 세어도
5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막6:44)
사실 그 사람들은 청하지도 않은 불청객들이며
전도활동을 마치고 쉬고 싶은 제자들에게는 귀찮은 존재들이기도 했습니다.
 
해는 저물었고 식사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36절에 보면 제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먹게 하옵소서."(마6:36)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그 때 빌립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 '200 데나리온을 가져도 부족합니다.'(요6:7)
1데나리온은 도시 노동자 한 사람이 하루 종일 일하여 받는 돈을 말합니다.
빌립의 판단으로는 200명이 돈을 벌어 들판에 모인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사 주어도 모자란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렇죠. 이성적인 빌립의 판단이 옳은 것입니다.
빌립은 참으로 똑똑한 사람입니다. 현명한 사람입니다.
계산이 정확한 사람입니다.
그런 빌립의 판단으로 보기에는 불가(不可)였습니다. 안된다는 말입니다.
돈이 있어도 그 많은 음식을 어디가서 구해오겠냐는 것입니다.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똑똑한 머리로 계산하여 판단한 확실한 답은, "안됩니다"입니다.
 
그러나 그런 똑똑함이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일본의 [우찌무라 간죠]는
"하나님 앞에서 계산하는 죄를 짓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실 계산만 앞세우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해낼 수 없습니다.
빌립 같이 이성적인 사람은 신앙생활을 해도 큰 일 하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목사가 무슨 일을 하자고, 하라고 하면 똑똑한 머리를 굴려 계산하고,
자기 경험에 비춰 판단하는 사람들의 결론은
"힘든데요, 무리일 것 같습니다. 때가 아닌데요…"하며 일을 막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몇 개가 있느냐?
 
들판에서 빌립이 말한 것은 옳습니다.
"말도 안됩니다. 계산상으로 불가능합니다.
200 데나리온을 가져도 모자랍니다.…"라는 보고를 들으신 후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
"너희에게 떡 몇 개가 있느냐?" (How many loaves do you have?)
"가서 보라" (Go and see.)
계산만 앞세우지 말고 너희들이 가진 것, 구할 수 있는 것이 몇 개냐?
그걸 "가서" 알아 "보라"고 명하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 기준에 따라 생각하고, 자기 기준에 따라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래서 '내가 못하면 남도 못하고', '내가 어려우면 남도 어렵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된다], [안된다], [가능하다], [불가능하다]는 것에 대해 너희가 말하지 말고
[있는 것]이 있는지 가서 확인하고 그것이나 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6장 8~9절에 보면 이때, 안드레는 정말 기막힌 보고를 합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요6:8~9)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세요.
갈릴리 호숫가에 여자와 아이들의 숫자를 제외하고 세어도 5000명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먹을 것, 가진 것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안드레가 "애 하나가 떡 5개, 물고기 2마리 가졌네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 보면,
엄청난 크기의 교회를 지으려고 하는데, 예수님이 '목재가 있나 가봐라.' 했더니
한 제자가 성냥개비 하나를 들고 와서
'예수님 성냥개비가 하나 있는데 이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한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보고하는 안드레도 기가 막혔던지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요6:9)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보고가, 그 드림이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지금 가진 것'을 내어놓을 때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됩니다.
해결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은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를 두리번거리지 말고
먼저 네 자신부터 바치라" 하였습니다.
사실 마음의 드림이 없이, 믿음의 드림이 없이,
몸도, 물질도… 드림이 없이 무슨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겠습니까.
물론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도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신앙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기독교 역사를 통해… 보면
하나님은 똑똑한 사람, 현명한 사람,
계산이 정확한 사람, 약삭 빠른 사람이라고 모두 쓰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믿고 순종하는 사람, 믿고 맡기는 사람,
믿고 드리는 사람…을 쓰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안드레를 통해 예수님 손에 넘겨진
어린아이의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인해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게 되었고 <12바구니>나 남았습니다."
 
오늘 신앙생활하는 사람들 가운데, 여러분 가운데…
▶ 빌립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계산이 앞선 사람, 자기 지혜가 앞선 사람, 안된다고 하는 자…가 있습니다.
  '일주일 내내 열심히 일해도 살기가 어려운데 7일 중에 하루를 쉬어가며
  예배를 드리다니 어려운 일이지…,'
  '10개 가지고도 살기가 어려운데 그 중에 하나를 드리라니 어려운 일이지'
  '나혼자 즐기고 살기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열심히 봉사하라니 말도 안되지.'
  계산상으로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계산상으로는 신앙이 맞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입에서는 "안돼. 어려워."라는 말이 나옵니다.
 
▶ 안드레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기는 하는데…, 드리기는 드립니다. 참석은 합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이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며 확신 없이, 자신감 없이
신앙생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 이름 없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것을 다 드린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이 아기가 몇 살이나 된 아이였는지 모르지만
그 상황에 그것을 드릴 수 있었다니… 대단한 일입니다.
보통 아이들은 먹을 것이 생기면
자기가 움켜쥐고, 감추고, 혼자 먹으려 했을 것입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매점에서 도넛을 팔았습니다.
쉬는 시간에 뛰어 가 도넛을 사서 입에 넣으면 그 맛이 기가 막힙니다.
그런데 돈이 없는 아이들도 쉬는 시간이면
'한 입' 얻어 먹으려고 매점으로 뛰어 갑니다.
그러면 누가 어쩌다 하나 사면 벌떼 같이 모여 들어 '한 입만, 한 입만'합니다.
달라고 할까봐, 뺏길까봐… 얼른 입에 넣습니다.
이것이 보통 아이들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내놓은 어린아이의
그 헌신이…, 그 드림이…, 그 이름 없는 봉사가…,
그 믿음이…, 들판의 기적을 이루게 했습니다.
정말 자신(我)만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우리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 놓았던 어린아이 처럼…
여러분도 여러분의 것을 내놓을 수 있는 믿음과 용기가 있으신지요?
 
사실 어떤 모임이든지, 어떤 조직이든지
그 모임을 위해, 그 조직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놓는 사람이 있을 때
그 모임이, 그 조직이 움직여 갑니다.
일반 사회 모임이나 조직도 그렇지만 교회 모임이나 조직은 더 그렇습니다.
 
어느 교회나 목사, 장로, 부서장…등이
자신의 생각, 자신의 시간, 자신의 물질… 등
자신의 것을 희생하지 않으면 말이 많습니다.
문제 많은 교회를 보면
대부분 희생하지 않는 목사, 장로, 부장/팀장… 등 지도자들이
자기의 것을 내놓지 않고 희생 없이 "입"만 가지고 일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희생, 물질의 희생, 육체적인 섬김의 희생이 없으면
5병 2어 같은 기적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교회 부서의 책임을(팀장) 맡은 사람의 주머니가 열려야 합니다.
1년동안 차 한잔, 밥 한 끼, 빵 한 조각 한번도… 베풀지 않고
예산만 받아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도 일할 즐거움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할 맛을 잃게 만듭니다.
이렇게 인색한 사람이 부서의 책임자가 되면
그 부서는 1년 내내 뻑뻑하게 돌아갑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무슨 일이 생기면 빌립처럼 계산부터 합니까?
아니면 "기도" 하기는 하되, "순종" 하기는 하되
안드레처럼 "이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의심하며 확신 없이 의무만 행합니까?
 
 
너희가 주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주라"하신 말씀은
오늘 우리 모두에게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이 상황의 주체가 되라는 것입니다.
  〃  이 어려움의 앞에 서라는 것입니다.
  〃  이 문제의 열쇠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보잘 것 없어 보여도, 비록 의심이 생겨도, 확신이 없어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예수님의 요구대로, 성경말씀대로
내 것을 내어 맡기고 주님 손에 맡기고 드리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우리 판단에 안되는 일도,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아멘"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사실 내 욕심을 포기하면 모두가 풍요로워집니다.
어린아이가 비록 [떡 5개, 물고기 2마리]지만 혼자 먹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안드레의 손을 거쳐 예수님께 전달되었을 때 기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이 평안하지 못한 이유는,
내 것을 움켜 쥐고, 상대방에게만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마음을 열지 않고 남편에게만 마음을 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자존심 죽이지 않고 아내에게만 자존심을 살려 달라고 합니다.
내 것을 먼저 죽이고 포기할 때 화목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자기 주장, 자기 감정만 내세우고 움켜 쥐고
상대방에게만 책임을 돌리면 안됩니다.
가정에서, 부부간에, 고부간에, 형제간에도 
자신의 마음과, 자신의 소유를 양보하면 쉽습니다. 평안해집니다.
 
교회, 선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마음, 자신의 소유, 자신의 체면… 내 놓으면 쉽습니다. 평안합니다.
내키지 않아도, 생각이 달라도, 속상해도…
여럿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접으면 평안합니다.
자기의 욕심을 꺾지 않기 때문에 화목하지 못한 것입니다.
 
 
진짜 부자는 "있는 것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아무리 가져도 '없는 것'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감사]하기보다는
[없는 것을 갖게 해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많이 합니다.
진짜 부자는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질, 돈… 등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며 살라고 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며 살도록 명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21절 말씀에 보면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보물은 물질이고, 마음은 신령한 것인데 이것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기회가 될 때마다, 할 수 있을 때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합니다.
 
여러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빈 들판에 모인 5000명의 사람들이 저녁을 만났습니다.
어둠을 만났습니다. 배고픔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라간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따라가도 해는 저뭅니다. 어둠이 옵니다. 밤이 옵니다.
때론 먹을 것이 없는 상황도 만납니다. 
예수님 따라간다고, 예수 믿는다고 언제나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어도 어려움을 겪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가던 배도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다 어둠 만나고, 배고픔을 만나도…
예수님 모시고 가다 풍랑 만나도… 
주님 모시고 가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 실 줄 믿고 가야 합니다.
찬송가에도 502장에 보면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태산을 넘고, 험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살다 보면 캄캄한 밤에 다닐 수도 있습니다.
2절에 보면 "캄캄한 밤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의 길 되시고
            나에게 밝은 빛이 되시니 길 잃어버릴 염려 없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태산도 넘고, 험곡에 가고, 캄캄한 밤에 다닐 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주님 따라 가시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바보처럼 어리석어 보여도 주님 따라 갑시다.
배고픔을 느껴도 주님 따라 갑시다.
그 삶이 결국 승리의 삶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너희가 주라]고 명하십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답하지 말고 "가서(Go)  보라(See)"고 명(命)하십니다.
 
어린아이의 이름이 밝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드린 작은 것이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피흘리시면서 까지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영생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이루시려는 뜻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험한 세상, 희망이 보이지 않고 어두워만 가는 세상에…
하나님은 우리가 빛 되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사회 봉사를 위해(어린이집, 야간학교, 노인복지관…등) 일합니다.
사회관/Vision Center를 짓고, 선교사를 돕고, 작은 교회를 돕습니다.
비록 5병 2어 같은 것, 보잘 것 없는 것이라 생각되어도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줄로 믿고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입니다.
"없다, 못한다, 안된다, 틀렸다…" 하지 말고
있는 것, 혼자 먹으려고 하던 것을 함께 나누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단돈 100원에서 10원을 드려도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사회관/Vision Center 건축에 동전을 모아서라도 동참해 보십시오.
이웃을 위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멸치 2마리 같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겠다는 생각을 가져 보십시오.
크든지, 작든지 여러분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는 하지 않고 남들이 하기를 바랍니다.
자기는 말로만 하고 누군가가 '하겠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두운 곳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엄마가 아이에게 뒷마당에 있는 빗자루를 가지고 오라고 시켰습니다.
"엄마, 바깥은 지금 캄캄해서 무서워요."
"얘야, 밖에는 예수님이 계신데 뭐가 무섭니? 널 지켜주실 거야."
"정말 밖에 예수님이 계세요?"
"그럼, 그분은 어디에든 계신단다. 네가 힘들 때 널 도와 주신단다."
그러자 아이가 잠시 생각하더니 뒷문을 살짝 열고 틈새로 말했다.
"예수님, 거기 계시면 빗자루 좀 갖다 주실래요?"]
이런 것이 보통 예수 믿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자세입니다.
자기가 직접 하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해 주기를 바랍니다.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예수님까지도 부리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가족의 일원으로,
교회의 일원으로, 세상의 일원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처한 위치에서 우리의 작은 것을 희생하고, 작은 것을 드림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너희에게 정말 아무 것도 없느냐?,
너는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냐?"
너는 절망이고 불가능이냐?"
"가서 보라."고 물으십니다.
앉아서 없다 하지말고 가서 찾아보라고 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있는 것, 우리가 가진 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께 드리며, 베풀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 2000여년 전 유대땅 갈릴리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던 것처럼 우리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그리고 명하십니다. "가서 보라."
 
 
<기도>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
"가서 보라."
오늘 말씀을 듣고 가슴에 이 질문을 새기고 돌아가는 성도들
없다고 불평하고, 없는 것만 찾던 삶에서
있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있는 것을 가지고 행복하고 화목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을 가지고 베풀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없는 것을 찾기 전에, 있는 것을 찾아 주님께 보고하고
주님 손에 들려 드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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