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감사가 예배입니다(1) (시 50:23)

  • 잡초 잡초
  • 394
  • 0

첨부 1


감사가 예배입니다
(시편 50:23)

지난 시간에는 예배자의 태도가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겸손함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감사는 예배자의 태도일 뿐 아니라 예배의 내용입니다. 예배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입니다. 그러니까 감사가 없다면 당연히 예배도 없습니다. 감사는 기도, 자기 부인, 십자가를 지는 것, 모든 경건의 연습, 예배드리는 일 등 모두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믿음을 가진 자만이 드릴 수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믿음과 감사는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자는 믿음이 있는 자란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감사하는 자는 인간의 지고의 목적을 성취할 뿐 아니라, 만사에 있어서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그분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렇습니다. 예배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라면,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감사가 조건이나 환경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감사조건이 있다고 다 감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감사는 조건이나 환경보다 마음의 태도와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인격여하에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감사할 줄 압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감사하지 못합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자는 인격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영하의 추위에 아버지와 아들거지가 육교 위에 앉아 구걸을 합니다. 그들 앞에 놓인 깡통에 행인들이 동전을 던지면 아버지거지는 “감사합니다.” 인사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바빠서 걸음만 재촉하지 돈을 넣지 않습니다. 아들은 심심해져 깡통 바닥의 동전을 주워 땡그랑 깡통에 떨어뜨립니다. 그럴 때마다 눈먼 아버지거지는 “감사합니다.”를 연발합니다.

잘 차려 입고 커다란 선물꾸러미를 든 아버지와 아들이 그 곁을 지나지만 거지를 못 본채 합니다. “아빠, 왜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아요?” 아들이 묻습니다. “너는 왜 돕지 않았지?” 아버지가 되묻습니다. “텔레비전에도 나오지 않는데 뭘.” 아들이 서슴없이 대꾸합니다. 여전히 거지부자는 장난삼아 동전을 떨어뜨리고 연신 “감사합니다” 인사를 했습니다. 감사가 무엇인지를 잘 말해주는 이야기입니다. 거지아버지는 받았다고 생각하니 감사하다고 인사를 합니다. 반대로 지나가던 부자는 서로에게 돕지 않았다고 불평만 합니다. 감사는 조건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이며 인격입니다.

받은 것을 받았다고 인정하는 것이 또한 감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날 베풀어주신 은혜를 받았다고 인정하는 게 바로 감사입니다. 인정하지 않으면 교만합니다. 그러나 인정하면 벌써 감사의 마음으로 변합니다. 감사가 사라진 자리에는 자기 자랑이 꽃피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감사할 줄 모릅니다. 부모님께서 낳아주고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키우고 돌봐주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걸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불평합니다. 하나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린도교회 사람들은 많은 은사를 받았음에도 감사대신 자기 자랑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분쟁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고전4:7]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 그들이 자기 자랑을 늘어놓을 때 마귀는 역사하였고, 분쟁이 계속되었습니다. 자기자랑이나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 사람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자랑은 자기를 들어내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배의 본질이 하나님을 드러내고 그분이 가장 높다고 인정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자기를 들어내는데 어찌 제대로 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까.

감사의 걸림돌은 무엇입니까

감사의 걸림돌은 자신입니다. 조건이나 환경, 하나님께 그 책임이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특별히 자기의 죄 때문에 감사를 모르게 됩니다. 죄를 짓기 전의 인간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존재였습니다. 즉, 예배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감사를 잃고 예배를 모르는 존재로 전락하였습니다. 아담은 죄를 짓기 전에 아내를 일러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창2:23)고 했습니다. 그러나 죄를 저지르고는 모든 죄를 아내에게 전가시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2) 감사의 마음이 원망과 불평의 마음으로 변한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영적 생명이 없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그 마음에 없습니다. 그러니 영이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도 예배할 수도 없습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롬8:7-9]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엡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아직 죄 가운데 있다면 감사는커녕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없습니다. 감사의 걸림돌은 바로 죄입니다. 감사는 그 사람의 마음이요 인격이지만, 하나님을 인정하고 감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죄입니다. 그러니까 죄는 예배를 잃게 만듭니다. 그것은 곧 인생의 목적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감사를 잃으면 어찌 됩니까

[롬1:21-23]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죄를 지은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거나 감사치 않습니다. 이 말은 예배를 잃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상관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사람이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감사를 잃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합니다. 마땅히 섬겨야 할 하나님은 안 섬기고 마땅히 섬기지 말아야 할 우상을 숭배합니다. 사람이 마땅히 하나님 앞에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감사하는 일입니다. 예배는 인간이 해야 할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인간은 그 반대로 합니다.

죄를 짓기 전의 사람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이후 사람은 우상을 숭배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사람은 무엇인가를 예배하는 자입니다. 그 대상이 누구냐 만 다릅니다. 다시 말씀을 바꾸면, 죄를 짓기 전에는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후에는 잘 된 것은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자기를 자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에 실패하는 사람들은 항상 자기를 들어내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발견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실패하는 자들이 바로 자기를 들어냅니다. 그래서 예배와 감사는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깊은 감사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가 없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자기를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여 원래 하나님께서 만드신 감사의 제사를 회복하십시오. 자신이 아닌 마땅히 돌려드려야 할 하나님께 감사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