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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말론적 신앙간증 - 롬 8:26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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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종말론적 신앙간증
본 문 : 로마서 8 : 26 ~ 28절

  아주 최근에 베스트셀러로써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감명을 주고 있는 작은 책 한 권이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보내 와서, 제가 보면서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책의 이름은 “지선아! 사랑해” 그런 겁니다. 이건 자기 이름입니다. 지선이라고 하는 본인이 이 책을 쓰면서 자기가 자기를 향해 하는 말입니다. “지선아! 사랑해” 어째서 이렇게 책제목이 나올 수 있을까? 이제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지선이라고 하는 청년은 3년 전에 대학 졸업을 바로 앞두고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전신에 55%의 피부가 불에 탔습니다. 3도 중화상을 입고 많은 고생을 하게 됩니다. 이는 고통 중에서 자기가 당하는 어려움, 때론 느끼는 감격을 인터넷에 띄우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 수천 명이 그녀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그녀의 글을 읽고 방문하게 됩니다. 그는 7개월 동안 입원 생활을 했습니다. 11번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손가락 끝을 절단하는 고통도 치렀습니다. 귀볼까지 모두 타버렸습니다. 지난날에 자기얼굴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흉한 얼굴이 됐습니다. 그러한 그는 자기 글에서 이렇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산다는 것은 죽음보다 훨씬 더 천배, 만배 힘들었습니다. 그 귀한 사람을 동정하지 마십시오. 오해하지도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세상에 정말 귀중하고 중요한 모든 문제들을 알고 있습니다. 영원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입니다.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사랑이 얼만 따뜻한 것인지, 절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소망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행복은 얼마나 가까이 있는 것인지, 정말 세상에서 부질없는 것들이 무엇인지,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힘들 때라도 ‘여기가 끝은 아니다. 내게 소망이 있다.’ 라고 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가슴으로 들으면서 모든 어려움을 참을 수 있었습니다. 분명히 저를 살려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테니까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지금이 더 좋기 때문에 지금 저는 행복합니다. ‘아~ 하나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를 어떻게 하실 겁니까?’ 수없이 부르짖고 묻고 기도했습니다. 멋진 해피엔딩을 이루어질 줄로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는 장차 선교사가 되겠답니다. 많은 고난당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상담자가 되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랑하는 딸에 고백을 들으며 아직도 불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보다 더 불행한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그는 말합니다.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다고…… 이 종말론적 고백을 우리는 깊이 새겨야 될 것입니다. 그는 찬송을 좋아합니다. 기도하고, 명상하면서 나름의 행복을 나날이 즐기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알거니와’ 라는 말로 시작이 됩니다. 오이다멘, 우리가 안다, 우리가 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알고 계시기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는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압니다. 그 뜻대로 부르심 받은 사람, 그리고 내가 선택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믿는 사람은 미래를 봅니다. 세상을 압니다. 그 종말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의 신앙고백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세상 사람들은 모릅니다. 몰라서 불안해하고, 몰라서 죄짓고, 몰라서 항상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더구나 닥쳐올 미래를 모르고 있고 그리고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심리학자 굴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가진 고정관념, 고정의식을 버려야한다. 그리고야 새로운 생을 살수 있을 것이다. 첫째, 안정이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라! - 여러분, 세상에 안정이 있습니까? 우리는 오늘까지 살면서 요문제만 해결되면, 요정치문제만 해결되면, 아니 요것만 해결되면 안정이 있을 거라고 지금까지 생각했는데 안정은 없었습니다. 갈수록 태산입니다. 하나 해결되는가 하면 두 문제가 나옵니다. 점점 더 어려운 세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직도 안정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좋은 집을 샀으니 될 것 같습니까? 또 내가 소원하는 대로 자식들이 이만큼 성공했으니 이제 안정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빨리 꿈을 깨세요. 세상에는 안정이 없습니다. 애당초, 기대 하지를 마세요. 이 세상에는 안정이 없습니다. 아니, 없어야 합니다. 이건 잊지 마세요. 하나님의 뜻이 여기 있기에 우리는 세상에서야 안정을 빨리 포기해야 됩니다. 그 기대를 버려야 합니다. 또 하나는 사망을 너무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 우리는 수없는 날 장례식에 가기는 하지만은 그 죽은 사람과 나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없는 장례식을 보면서도 나는 안 죽을 것처럼 생각을 하고, 아니,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안 죽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가,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떠나게 될 때 “ 이럴수가~” 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이럴수가라니?’ 그게 그렇게 돼있는 거예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합니까? 죽음은 항상 현실적이고, 항상 실존적이고, 항상 내 앞에 있는 거예요. 이건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항상 내 얘기고 오늘의 얘기입니다. 사람이 올 때는 순서적으로 오지만, 갈 때는 순서도 없습니다. 할아버지보다 손자가 먼저 가기도 하고, 젊은 사람이 먼저 가기도 합니다. 항상 죽음은 바로 내 앞에 있다는 것을 의식해야 합니다. 그것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또 하나는 좀더 심각합니다. 보호자 없이 못산다는 생각을 버려라. -

여러분, 대게 보면 보호자가 떠날 때 “아이구 큰일났다.” 그러는데요. 보호자 떠난 다음에 더 잘사는 사람도 많아요. 보호자나, 가정. 이것이 없이는 못 살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아니올시다! 그런 생각도 버려야 되고요. 내가 보호자 될 수도 없고, 또 내가 누구를 보호자를 생각하고, 거기다가 모든 것을 믿고, 의지할 것이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부부간도 남남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저가 나를 돕지 못합니다. 난 언제나 혼자요, 혼자서 하나님 앞에 서야 됩니다. 보호자의 존재의 의미를, 여러분 믿을 것이 못됩니다. 또한 자신은 늘 예외적으로 깨끗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 실수할 때 나도 실수하고, 다른 사람 넘어질 때 나도 넘어지고, 아니 다른 사람의 잘못도 내 책임일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종종 나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말합니다. 전혀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말합니다. 전혀 나와는 관계없는 것처럼 말해버립니다. 그런 일들이 바로 나를 점점 더 어려운 수렁에 빠지게 한다 하는 얘깁니다. 그렇습니다.

  또 나아가서 사람들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하지를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그걸 모릅니다. “ Best for me” 무엇이 나에게 최선인지 말이에요. 그걸 내가 모르고 있어요. 그래서 요것만 해결되면 될 것이라고 하는데 되보니 좋은 것도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난 그런 사람 봤어요. 좌우간 그 청년 3년 동안 지독하게 집요하게 따라다녀 가지고 굴복을 시켜서 결혼을 했어요. 결혼 할 때 얼마나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랐어요. 이제 소원성취 했다고, 그랬는데요. 1년만에 헤어지더라고요.

여러분, 정말 좋은 일이 뭡니까? 어떻게 되는 것이 좋은 일 입니까? 유익한 것입니까? 아니, 꼭 건강해야겠습니까? 병들어야겠습니까? 성공해야겠습니까? 실패해야겠습니까? 도대체 내 소원이 그게 정당한 것입니까? 그것이 정말 유익할 것입니까? 그걸 알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일본의 우찌무라 같은 분은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내 소원을 들어주시지 아니 하는 것을 감사하나이다. 만약 다 들어주었더라면 영영 몹쓸 사람이 되고 망가질 뻔 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내 소원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나는 밝은 미래를 지향하는 자격이 있느냐? 이걸 내가 모르고 있어요. 좋은 세상은 바라보면서 좋은 사람은 되질 못해요. 아름다운 세상을 지향하면서 당신이 자격이 있느냐고, 당신이 한일이 무엇이냐고, 우리는 할말이 없어요. 그건 고로, 늘 생각해야 합니다.

또 한가지는 얼마나 깊이 정욕에 노예가 되고 있다는 것을 내가 모르고 있습니다. - 알게, 모르게, 잠재의식 속에, 내 생각, 내 행동 속에, 깊은 곳에 원죄적 죄가 있어요. 뿌리 깊은 죄가 있어서 해결되지 않은 죄가 아직도 남아 있어서 꿈틀거려요. 이래서 모든 일이 다 망가지고 있는 거예요. 내가 얼마나 깊이 정욕에 노예가 되어 있다는 것을 스스로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들은 이제 알고 있습니다. 십자가 앞에 있는 성도는 압니다. 모든 것의 근본이 하나님께 있다는 걸 압니다. 그의 능력과 그의 지혜와 그의 경륜 속에 있다는 것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압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왔다가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그의 드라마요, 그의 경륜 속이 있는 겁니다. 거기에 모든 사건 속에 깊이를 봅니다. 형상을 외적 형상을 보는 게 아니고, 겉으로 나타난 사건을 보는 게 아니라 속 깊은 곳에 있는 것을 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요. 하나님의 선하심이 있어요. 하나나의 사랑이 있어요. 그것을 볼 줄 알아야 해요. 적은 파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물의 흐름을 보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성도가 아는 지식이요, 좀더 나아가서는 최종 승리를 알고 있습니다. 최후승리, 마지막에는 선을 이룰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이룰 것입니다. 하나니 원하시는 대로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말씀은 “합동하여 소원을 이룬다” 하는 중요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헬라 원문대로는 주동사가, 주어가 밝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합동하여 소원을 이루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합동하여 소원을 이루게 하신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최종에는, 마지막에는, 선으로 끝난다. 선이 이긴다. 의가 이긴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 방향으로 주도 하신다.

또 하나, 현재에 모든 사건은 선 지향적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을 행해서 가는 길이요. 이런일, 저런일, 내 마음에 안 드는 일들까지도 반드시 선으로 향해 지향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내가 인정 해야됩니다. 이제 한번 보십시다. 믿음에 사람, 사도 바울의 간증을 들어보십시다. 빌립보서 1장 12절에서 말합니다. “나의 당한 일이 복음에 진보가 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바라노라” 저는 이 요절을 사랑합니다. 왜요? 너무나도 귀중한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종종 현실적으로 당하는 어려움에 대한 문제의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가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가지고 재판도 없이 2년 동안 감옥에 갇혀있었습니다. 그가 상소해서 로마로 갈 때, 로마로 가는 배가 파선이 됩니다. 다시 로마로 가서 감옥에 지하실에 갇혀서 쇠사슬에 묶여서 삽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로마광장에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되겠는데, 어쩌자고 이렇게 하나님은 감옥에 쳐 넣는가? 내가 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왜 하나님은 이렇게 손해 보는 일을 하시는가? 그랬습니다. 답답했읍니다마는 조용 조용 하나님의 경륜을 알기 시작합니다. 그 감옥에서 로마의 교관들 친위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바울로 인해서 밖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일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끝내 이 고백을 합니다. “나의 당한 일, 이 모순되고 부조리한 모든 당한 일! 이것이 오히려 복음의 진보가 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실패가 없다” 하나님의 지혜 속에 이 모든 일이 이렇게 소중하게 쓰여지고 있다는걸 알게 됐다는 것이죠. 잠언 16장 4절에 보면 또 귀중한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약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악인도 쓰임에 알맞게 하셨느니라! 여러분 왜 악한일이 있을까? 왜 악한 저 사람이 있을까? 왜 악한 사건이 있을까? 왜 이런 불행이 있을까? 왜 불행한 사건들이 있어야 하나? 정말 이해가 안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조용히 하나님을 원망하지 맙시다. 현실을 탓하지도 맙시다. 악인도 약한 날에 필요에 적당하게 지으셨습니다. 이 모든 일이 합동하야 선을 이룹니다. 그

유명한 어거스틴은 말합니다. 마귀는 하나님께 간접적으로 영광을 돌리고, 천사는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영광을 돌린다고…… 그렇습니다. 모든 부조리한일들이 있어 보이지마는, 합동하여! 합동하여! 협력하여! 소원을 이루신단 말이요. 이것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알아주는 3대 테너가 있죠? 여러분, 잘 아시는 파파로치 라던가? 뭐 이런…… 거기에 ‘ 호세 카레라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3대 테너 중에 하나입니다만, 그는 41세 1987년 오페라 라보엠을 위하여 열심히 즐거운 마음으로 연습을 하다가 쓰러집니다. 진찰하고 보니, 백혈병입니다. 그래서 그는 절망하게 됩니다.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손톱이 다 발톱이 다 빠지는 큰 고통을 치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히스기야 왕을 생각했다고, 히스기야 왕처럼 기도했다고, 하나님! 잠시만 살려 주시면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겠습니다. 히스기야 왕처럼 기도했습니다. 그의 투병 생활할 때 그를 사랑하는 모든 그의 팬들이 위해서 기도 해줬습니다. 그는 이병을 이겼습니다. 작년엔가 한국에 와서 올림픽경기장에서 할 때, 그 표 한장에 25만원입니다. 이걸 가지고 제가 들어갔어요. ‘ 파파로치 ’ 보다 난 ‘ 호세 ’ 가 보고 싶었어요. 그전에는 내가 호세의 소리를 들으면서 ” 아이고……건강이 넉넉지 못하구나!“ 호흡이 약해서 고생하는 걸 내가 보았어요. 그래서 마음이 아팠어요. 아 이번에 와서 보니까 훨씬 좋아 졌어요.

자! 여러분, 어려운 고생을 치르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때로는 질병도 은혜가 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이 어려운 질병을 통해서 두 가지로 변했다고…… 하나는,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보다 남을 사람! 여러분, 남을 죽여가면서도 내가 살겠다는 세상이에요. 이 사람은,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신 됩니다. 또 하나는, 나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기를 위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감사로 노래를 부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노래를 부른다. 이러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각 곳에서 연주해서 얻는 수입을 다 가지고 백혈병 연구하는 병원을 지어, 그리고 후원하고 있습니다. 한사람, 한가수가 이렇게 딴사람으로 중생 하게 됩니다. 그 많은 시련을 통하여…… 여러분! 합동하여 선을 이루십시오. 협력하여 선을 이뤘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세요. 얼마나 많은 시련이 받았습니까? 이삭, 야곱, 요셉, 그리고 욥, 모세, 그 어느 누구 하나 순탄한 생을 살았습니까? 많은 고난과 역경을 통하여, 그리고 역경과 정면으로 도전 하면서 이제 합동하여 선을 이루었습니다. 여기에 신앙간증이 있습니다. 구원 얻은 사람,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을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면 미래가 보입니다. 나의 삶의 의미가 보입니다. 내가 처한 이 현실이 합동하야 선을 이룰 수 있는 저 final triumph, 마지막 미래가 훤하게 보입니다. 그 앞을 바라보며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어리석고 우둔하여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이루고저 하시건만, 우리는 작은 일에 매여 주를 원망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근시한적이여서 저 앞에 있는 승리와 영광을 미처 바라보지 못하고, 좌절될 때도 있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또 높은 지혜를 주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그에게는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룰 것을 오늘 믿고, 그 미래를 바라보며 오늘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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