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 눅 9:51-62

  • 잡초 잡초
  • 415
  • 0

첨부 1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눅 9:51-62

어느 대학에서 두 교수가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그러면서 한 교수가 동료교수에게 말합니다. 자네 영태라는 학생을 아는가? “그럼 알지 내 강의를 듣고있네.” “그래 그래서 그 학생이 그러는 구나,” “뭐라고 그러는데” “그 학생이 그러더군 자기가 자네 제자라구” , “그래 그렇게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  계속 내 강의를 좇아 다니며 듣고 있으니까? 그러나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그는 내 제자가 아닐세” 좇아 다닌다 고 다 제자입니까? 예수님을 좇아 다닌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자는 아닙니다.

제자가 무엇입니까? 제자는 스승을 닮은 자입니다. 스승을 따르는 자입니다. 자기일보다 스승의 하는 일을 더 좋아하는 자입니다. 스승이 원하는 대로  하는 자라야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그렇게 많이 좇아 다녔지만 주님이 택한 제자는 12입니다. 함부로 제자라 할 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평생을 두고 그 자신을 변호한 일 하나가 바로 이 제자냐는 문제입니다. 바울은 나도 사도이다 나도 제자이다 하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아무도 믿지를 않습니다. 네가 어떻게 주님의 제자이냐 네가 어떻게 사도이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같이 있었던 사람들도 다 탈락을 하고 겨우 12명이 선택되었는데 네가 어떻게 주님과 같이 있지도 않았으면서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지요, 여기에 대하여 그는 말합니다. 나는 다메섹에서 주님에게 직접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살든지 죽든지 내게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바란다. 자 이만하면 제자가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주님을 따르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있습니다. 우리는 참 좋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박해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오늘날 예수를 믿는 많은 사람가운데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도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지금도 공산권이나 이슬람권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제가 맨 선교회를 세우고 최초로 아세아 연합 신학대학에서 애급에 파송한  선교학 교수를 지원한 적이 있습니다. 3년동안을 지원했는데요 단 한사람도 전도를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었다 하면 그 날로 직장에서 쫓겨나는 거예요, 공식적으로는 종교의자유가 있어요, 그러나 그 전체 분위기가 예수를 믿으면 저놈은 우리를 배반 한 놈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그 집안에서 쫓겨났습니다.

애급에 가면 피난 교회가 있는데 그곳에 가면 여러 가지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예수 믿고 직장에서 또는 집안에서 좇겨 난 사람들입니다. 그들 가운데는 교사도 있고 변호사도 있습니다. 공무원으로 일하던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 좇겨 났어요.  생계를 꾸려 갈 힘이 없으니까 성지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합니다. 생각하면  비참한 거예요. 예수 믿기 위해서 매를 맞고 이혼을 당하고 감옥에 가기도 하고 때론 죽음을 당하기도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쉽습니까? 우리 선배들이 그렇게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런 순교의 터 위에서 오늘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또 하나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편안한 시대이기에 예수를 바로 믿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제자의 길을 바로 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지요. 언뜻 생각하면 편안한 시대이기에 예수 믿는 것이 쉬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오늘도 예수를 바로 믿는 것은 이전에 박해를 받던 시대 이상으로 어렵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박해는 없습니다. 그러나 유혹이 엄청납니다.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를 않습니다. 박해가 무서워 예수를 부인했던 것처럼 오늘날은 유혹에 끌려서 예수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를 부인하지는 않아도 오늘날 수많은 성도들의 신앙이 유혹에 이끌려 병들어 있습니다. 제자입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오늘 성경의 교훈이 그 사실을 깨우쳐 줍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실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마음을 정하시고 방을 구하러 미리 사람을 길목에 있는 사마리아 한촌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신다는 이유로 방을 내 주지 않습니다. 이 말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 이 말합니다. 선생님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들을 태워 버릴까요 그러자 예수님이 저들을 꾸짖으시고 다른 마을로 갔습니다. 여기서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을 따른 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덮어놓고 주님을 위하는 것입니까? 내 생각대로 주님을 위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아닌 것입니다. 생각하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저들을 혼내주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이듭니다. 그런데 그것은 내 생각입니다. 주님의 생각은 아닙니다.

저들이 주님을 영접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저들에게는 스승이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는 아닙니다. 더욱이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을 싫어합니다. 유대인을 싫어하는데 거기에다가 예루살렘에 간다고 합니다. 누가 좋아서 방을 내어주겠습니까? 저들의 거절은 당연한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잘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은 전혀 고려하질 않고 성질 나는 대로 하늘에서 불을 내려 태워 버린다구요. 이것은 세상의 방법입니다.

세상은 정복하고 다스리고 장악하고 빼앗고 말 안 들으면 힘으로 눌러 버리는 것이 세상의 방법입니다. 주님의 방법은 그것이 아닙니다. 섬기고 돌아보고 보호해 주고 나누어주고 보살펴 주는 것이 주님의 방법입니다. 폭력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런데 힘으로 밀어 부치겠다구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조심 할 것이 이런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막무가네 입니다. 법도 필요 없고, 윤리 도 필요 없고 그들이 가지고있는 전통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내가 가지고 있는 열정만으로 밀어 부칩니다. 그것은 주의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주님을 욕되게 할 때가 더 많습니다. 더욱이 한 생명은 천하보다 귀한데 하늘에서 불을 내려 다 죽인다구요. 기독교는 살리는 종교지 죽이는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한 생명을 살리려오신 것이지 죽이려 오신 것이 아닙니다. 불을 내려 다 죽였다고 생각해보세요.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겠습니까? 오늘날로 보면 살인자 예수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이름이 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저들을 책망하시고 다른 마을로 가십니다. 가시는 동안 주님을 따르겠다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과의 대화에서 주님을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첫째는 주님을 따르려면 세상영화를 끊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그에게 주님이 대답하시지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으되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네가 바라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예수를 따른 다는 것은 세상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서 따른 다는 것입니다. 그동안에 예수님은 숱한 기적을 나타내셨습니다. 병자를 고쳤습니다. 병원을 채리 면 떼돈을 벌 것입니다. 그물을 던져라 하니까 그물이 찢어 질만큼 잡힙니다. 어업을 하면 얼마나 부자가 되겠습니까? 갈릴리 안에 있는 고기는 다 내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습니다. 빵 공장을 만든다면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빵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신다고 합니다. 그것은 왕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만 다라 다니면 이제 왕실에서 사는 것입니다. 정말 끝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머리 둘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두말도 안하고 도망을 쳤으리라 생각합니다.

둘째는 주님을 따르는 것은 뒤로 미루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 하니까? 무어라 합니까?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주의 일은 기회가 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아무 때나 내가 하고싶다고 주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가 주어질 때, 나를 부를 때 그 때를 놓치지 말고 해야 주의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나를 따르라 하는데 부친을 장사하고 따르겠데요, 그러니까 주님이 뭐라 하십니까?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십니다. 세상일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세상일입니다. 또한 세상일은 내가 하지 않아도 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한 세상일은 아무리 해도 죽은 것입니다. 다 썩을 것입니다. 썩지 않을 것이 무엇입니까? 영생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일입니다. 지금 나를 부르는 이 시간 하지 않으면  다시는 할 수 없는 일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나중에 돈벌어서 하겠다구요 죽을 때까지 돈을 벌어 보세요 돈이 벌리나, 그 마음 가지고는 안됩니다. 나중에 한가하면 일 하겠다구요 평생에 무거움 짐을 지고 살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일하는 거예요 지금 일하면 하나님이  일하도록 채워 주실 것입니다. 지금 일하면 일하도록 시간의 여유를 주실 것입니다. 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을 바라봅니까? 오늘 이야기는 부모 공경이 우선인 것 같은데 예수 잘 믿는 것이 우선입니다. 내 방법으로 부모 공경은 제대로 부모 공경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 잘 믿으면 부모 공경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먼저다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뒤로 미루면 주님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이모든 것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셋째는 주님을 따르는 것은 앞만 보고 가는 것입니다.
뒤를 돌아보면 안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 고요 달리는 선수는 뒤를 돌아보면 안됩니다. 오직 앞만 쳐다보고 가야 합니다. 한 사람이 와서 예수님에게 말하지요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답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셨습니다. 쟁기를 잡은 자는 앞만 쳐다보고 전심 전력을 다 해야 합니다. 그래야 밭을 바로 깊게 갈 수 있습니다. 조금만 정신을 차리지 않아도 곁길로 빠지거나 밭을 제대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뒤를 돌아 본다구요 이것을 농사를 망치자는 것이지요,

차라리 쟁기를 잡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쟁기를 잡을 것입니다. 쟁기를 잡은 사람은 앞만 보고 가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 저것 다 챙기다 보면 주님을 따라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확끈 하게 해야 합니다. 어정쩡하게 하는 것은 주인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주인의 사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인이 마음놓고 일을 맡길 수 있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금년도 반년이 지났습니다. 잘 믿었습니까? 칭찬 받을 만 합니까? 그만 하면 축복 받겠습니까? 이제 다시 다짐합시다. 사랑 받는 제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