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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좋은 땅에 많은 결실 [마 13: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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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좋은 땅에 많은 결실 <마 13:18-23>

□ 좋은 땅에 많은 결실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리운 자요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
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
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3장 18절-23절>

저는 음식 중에 냉면을 좋아합니다.
냉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남한에서는 냉면이란 6.25 이후에 생겨난 음식이라고 봅니다.
국어사전에서 표준말은 <메밀>이라고 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산(뫼)에서
도 자랄 수 있는  <밀>이라고 하여 <뫼밀>이라고 한 것 같고, 또 모양이 <모>
가 졌다고 <모밀>이라고 하는 줄 압니다.
그러나 저는 뫼밀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합당한 말이라고 봅니다.
제가 왜 <뫼밀>에 관하여 말하는가 하면, 뫼밀은 아무데나 씨를 뿌려도 뿌리
를 내려 잘 자라 결실합니다.
그래서 화전민이 처음 심어 거둘 수 있는 것이 뫼밀입니다.
그러나 다른 곡식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사실 냉면은 양반들이 먹었던 음식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씨 뿌리는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씨를 뿌리려 나가는데 그 씨가 길 가에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돌짝 밭에 떨어진 경우도 있었고,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경우도 있었다고 하면
서 모두 결실을 맺을 수 없었으나, 옥토에 떨어진 씨는 30배, 60배, 100배의 결
실을 맺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씨 뿌리는 비유는 모두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상태를 비유적으로 말하
고 있습니다.

1. 말씀을 수용하는 마음의 반응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4가지 밭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① 길가와 같은 마음,
② 돌짝 밭 같은 마음,
③ 가시덤불 같은 마음, 그리고
④ 옥토와 같은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의 마음의 상태가 이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직접적인 해석을 보면 이러합니다.
  길가 같은 마음은 아예 말씀이 들어갈 틈이 없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길바닥같이 닳고 달아 굳어진 마음이 되어 말씀에 귀 기울이지 못합니다.
  돌짝 밭 같은 마음은 들을 때는 반응이 있으나,
뿌리를 내릴 수 없어 곧 말라버리는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날 교회 나왔다 도둑이 들었다고
그 후부터 안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돌이 깔렸기에 뿌리가 내리지 못합니다.
  가시덤불 같은 마음이란 말씀을 듣고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어느 정도 자라기는 하지만 가시덤불에 기운이 막혀 결국 열매를 거두지 못하
고 쭉정이들이 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처음 가난했던 시절에는 열심히 믿던 사람들 중에 중간에 돈이 많이 생겼다든
가, 또는 고시에 합격하여 출세를 했다든가, 인기 있는 사람이 되어 세상
으로 나가는 경우를 말합니다. 
  옥토란 문자 그대로 말씀을 잘 받아들여 그대로 순종하여 30배, 60배, 100배
의 결실을 낼 수 있는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비유를 볼 때마다, 내 스스로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처음부터 이 네 가지 밭은 한 사람의 마음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좋은 땅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척박한 땅도 가꾸면 좋은 땅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안수 받기 전에 강도사로 있을 때, 대구 경산에 있는 어느 실업학교에 교
목으로 일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 때 그 학교는 직원들에게 사택을 주었는데, 사택 주변에 있는 땅을 일구어
마늘도 심고, 배추도 심고, 오이, 고추, 가지, 토마토 등을 심어 자작 농사를 지
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버려진 땅들이었습니다.
잡초들이 무성한 땅이었습니다.
그런 땅을 먼저 삽으로 갈아엎고, 돌을 추려내고, 나무 뿌리들을 뽑아버리고,
소변과 인분을 갔다 붓고, 이렇게 하였더니 땅이 점점 좋아져 나중에는 정말로
옥토가 되는 것을 친히 보았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오늘 이 비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고 봅니다.
처음에 길가처럼 닳고 달은 사람들도 말씀의 보습으로 갈아엎어 버리고, 마음
속에 박혀 있는 죄의 돌 뿌리들을 추려내고, 날마다 기도와 성도의 교제를 넓
혀 가노라면 어느새 옥토와 같은 마음으로 변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가시덤불 같은 마음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들을 때는 늘 반응은 잘합니다.
주일이 되면 교회출석은 잘합니다.
심지어 새벽기도회도 잘 나옵니다.
교회 직분이 된지도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생활 속에 말씀의 열매가 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내가 해당되지 않는가?
우리 모두 한번쯤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가시덤불에 기운이 막혀서 결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시나무 뿌리는 번식력이 강하여 보이는 대로 뽑아버리지 않으면 그 땅에서
는 아무런 수확도 기대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시덤불을 마음에 두고는 말씀은 늘 듣습니다.
그러나 은혜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사실 따져보면 길가 같은 마
음, 돌짝 밭 같은 마음으로 나와 있는 사람은 여기에 한 사람도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길가처럼 그런 마음의 소유자라면 여기까지 들어와 앉을 수도 없기
때문이고, 돌짝  밭 같은 마음도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환난 중에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은 날마다 말씀으로 회개
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인 줄 압니다.
그러나, 제일 무서운 것은 가시덤불 같은 마음이란 말입니다.

2. 가시덤불 같은 마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들을 때 기쁨으로 응답합니다.
뿌리도 잘 내립니다.
줄기도 잘 자랍니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결실하지 못하고 쭉정이가 되어 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시의 기운 때문입니다.
가시덤불에 숨이 막혀 결실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남미 칠레에 가서 보면 도로변에 울창한 가시나무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번식력이 강한지 한번 뿌리가 내리면 그 주변을 온통 가시나무로 뒤덮
어 버립니다.
그만큼 가시나무는 번식력이 강한 나무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아카시아 나무를 묘지 곁에는 심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
니다.
그 뿌리가 굉장히 깊게 그리고 넓게 퍼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해석을 보면 여기서 가시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것들에 대한 염려로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설교 말씀을 들을 때는 즐겁게 듣습니다.
부흥회에 참석해서 은혜를 받기는 받습니다.
그러나, 다음순간 세상 것에 대한 근심과 걱정으로 말씀이 막혀버립니다.
말씀이 결실하지 못합니다.
또, 재물에 대한 유혹으로 말씀이 막힙니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 대부분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 믿은지 10년 20년이 되어도 말씀대로 열매가 보이지 않습니다.
생활에 변화도 못 느끼고 은혜의 기쁨도 체험하지 못하고 매일 그 모양 그대로
입니다.
항상 들으나,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유는 그 마음 속에서 가시를 제거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시를 그냥 그대로 허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시는 번식력이 강하기 때문에 그대로 두면 가시 기운에 땅은 묶은 땅이 되어
버립니다.
이 점을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구약 호세아 선지자는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호10:12)고  하였습니다.
기경이란 보습으로 갈아치우라는 말입니다.
또 예레미아 선지자는 "나 여호와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노
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렘 4:3)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다 무슨 뜻입니까?
묵은 땅은 좋았던 땅입니다.
그런데 돌보지 않고 내버려 두었기에 잡초들이 생겼고, 묵은 땅이 된 밭입니
다.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으로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그 마음에서 결실을 기대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제가 이 교회를 목회한지도 이제 두달만 있으면 만 21년이 됩니다.
21년 동안 지켜본 결과 말씀 속에 성장한 교우들도 많이 있습니다. 
처음 등록할 때만 해도 아무 것도 모르고 교회에 나왔으나, 이제는 말씀에 뿌리
가 내려 움직이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된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그토록 많은 시간동안 말씀을 듣고 배우고 가르쳤지만 그대로인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주보를 보니까 987번의 <지혜의 샘> 번호가 나갔습니다.
1,000번에 가까운 말씀 선포의 설교를 들었으나, 인격과 성품과 생활에서 아무
런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
까?
말씀을 잘못 전하였는가?
아니면 가시밭에 파종을 하였기 때문인가?
어느 쪽이라고 보십니까?
말씀은 진리인데 이 말씀이 잘못 되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말씀
을 받는 내 마음이 가시덤불을 그대로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시를 제거해야 하겠는데, 그것을 허용하고 듣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그런 분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마는 아침에 눈뜨면 기도
하기 전에 증권란부터 보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주가가 얼마나 올랐나?
어제 산 주가가 얼마나 내리지는 않았는가?
온통 생각은 투자한 돈에 대한 염려와 유혹으로 말씀이 마음 밭에서 결실 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돈 없이 살수는 없지만, 그 돈이 말씀의 생명력을 빼앗아 버린 상태입니다.
그러니 돈에 손해를 보면 예수도 안보입니다.
교회도 멀어집니다.
교인들과의 교제도 싫어집니다.
이것이 재리에 대한 염려입니다.
돈이 있고서야 교회도 신앙도 있지, 돈 없으면 모두 다 없어지는 그런 사람들
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가시덤불 마음을 지닌 사람이란 말입니다.

3. 가시덤불 같은 마음을 옥토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믿음은 생각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모든 것을 건 행동이 뒤따라야 하겠습니다.
가시 뿌리를 뽑아 버리려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가시나무 뿌리를 뽑는데는 힘이 듭니다.
얼마나 질긴지 모릅니다.
보통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처음 밭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 우선 불을 질러서 태웁니다.
그리고는 괭이나 가래로 뒤집어 엎습니다.
요즘은 포크레인이나 불도저로 밀어 치우지만, 옛날에는 소나 짐승의 힘을 빌
렸습니다.
소에 쟁기를 메우고 보습으로 갈아치웠습니다.

이것은 상징하는 영적인 뜻이 있습니다.
우선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는 내 속에 가시뿌리를 뽑아버릴 수 없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런 아픔도 뉘우침도 없이 듣는다는 것은 가시를 뽑으려는 의도가
없이 그대로 방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듣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진지하게 듣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하면서 그대로 앉아 있을 뿐입니다.
심지어 다른 책을 보면서 말씀은 건성으로 듣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증권 소식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주가가 오른 날에는 목사의 설교도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손해본 날에는 예배시간이 지루하기만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시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근심과 재물의 유혹의 뿌리를 뽑으려는 결단적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도 말씀하였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성경말씀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
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
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1서2:15-16)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들에게 결국은 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려고
하는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때때로 그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과 다를 때가 있어 이해할 수 없는 경우
가 있습니다.
때로는 억울하게 당하는 것 같이 그런 기가 막히는 경우를 당할 수도 있습니
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귀한 상급으로 채워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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