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그리스도인만의 일 (유 1: 20-21)

  • 잡초 잡초
  • 349
  • 0

첨부 1





그리스도인만의 일
유 1: 20-21

  오늘은 유다서 1장 20절에서 21절까지 있는 말씀가지고 "그리스도인만의 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이기에 믿는 사람들만의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은 돈을 줘도 못하고 죽어도 못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진짜로 믿는 사람들은 오늘 전할 말씀의 일을 아주 재미있고 또 쉽고 보람 있게 합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을 웃기는 희극배우들이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을 웃기는 일이 그 배우들에게는 쉽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을 울리라고 하면 절대로 못합니다. 그렇지만 웃기는 일은 아주 쉽게 합니다. 또 사람을 웃기는 일을 아주 재미있게 합니다. 웃겨 놓고는 재미있고 또 재미가 있어서 또 웃깁니다. 그리고 이 배우들은 사람들을 웃겨 놓고 보람을 느낍니다. 사람들을 울려놓고는 보람을 못 느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만의 일을 잘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만의 일이 무슨 일인지 본문에 의지하여 상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자기를 건축하는 일 (20상)

  오늘 본문이 20절과 21절이지만 참고로 17절부터 읽겠습니다. 17절부터 19절까지를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을 보면, 교회에 나오기는 나오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의 정욕대로 사는 사람들이며 기롱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남을 속여서 농락하거나 실없는 말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교회는 나오는데 나와서는 당을 짓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당이란 패거리 짓는 것을 말합니다. 다음으로는 육에 속한 자들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영에 속한 자, 육신에 속한 자, 육에 속한 자를 얘기합니다(고전 2:14-3:1). 영에 속한 자란 하나님께 속한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육신에 속한 자란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믿기는 하지만 육신이 좋아하는 일을 많이 합니다. 이따금 교회에 나와 예배하면서도 그것보다는 주일날 대천 해수욕장에 가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온 육에 속한 자란 믿음은 자기의 알 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교회에 나와서는 자기가 좋을 대로 육신이 좋은 대로만 살아가면서 패거리를 짓습니다.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마지막으로 성령은 전혀 없는 자라고 합니다. 성령이 없으면 끝난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교회는 나와도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전혀 얘기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고 사도들이 말한 것을 기억하라고 먼저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한다고 본문은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어떤 일들인지에 대해서 주신 말씀이 20절부터입니다.

  먼저 20절 상반절의 말씀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는 일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열 번을 죽었다가 살아나도 할 수 없는 일이요, 하려고도 안 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들은 자기 건축을 너무 재미있어합니다. 오늘 본문은 유다라고 하는 사람이 썼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동생입니다. 즉 예수님의 동생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입니다(마 13:55). 그런데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와 유다는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30년 동안을 한 지붕 밑에서 살고 한 방에서 자며 한 솥의 밥을 먹고 살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조상적부터 기다리는 그리스도가 형님인 예수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데 안 믿습니까? 믿음이란 좋은 조건만 가져서 잘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그때 야고보와 유다는 자신들의 주장이 맞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사흘 후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았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 동생들이 만났습니다. 그때부터 마음을 열고 믿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40일만에 승천하시면서 너희들이 약속한 성령을 받기까지 기다리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의 아우들로 더불어 120명이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전부 목숨을 걸고 충성합니다. 이때 유다가 순회 전도자가 되고, 그의 형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이 됩니다. 유다가 각지에 세워진 교회를 돌아보았는데 좋지 않은 교인들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유다가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라고 말한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유다가 말하는 지극히 거룩한 믿음은 예수님은 죽었지만 분명히 부활하심을 믿으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충성을 다하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이 믿음을 지극히 거룩한 믿음이라고 합니다. 좋은 조건만 가졌다 해서 다 잘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유다와 같이 목을 내놓고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주님을 증거하고 자랑하는 것이 지극히 거룩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는 일, 신앙 인격을 세워가는 일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돈을 줘도 못합니다. 죽었다 살아나도 못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꼭 해야 하는 일이요, 기쁨으로 해야하는 일입니다.

  진센돌프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큰 영지를 가진 부자요, 백작이라고 하는 작위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엄청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었는데 건성으로 믿었습니다. 그가 젊었을 때에 어느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고통 속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생생한 그림을 보았습니다. 몇 시간을 한없이 바라보았습니다. 넋을 빼앗긴 것입니다. 그때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주었건만 너 날 위해 무엇을 주느냐"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큰 감동을 받고 집에 돌아와 밤새도록 울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천주교와 신교사이에서 싸움이 있었는데 신교도들이 쫓겨오지만 숨을 곳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잠잘 곳도 없습니다. 그들을 자신의 영지로 받아들였습니다. 땅을 주고 집을 지어 주고 예배당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교파가 모라비안 교파입니다. 열심히 농사지어서 십일조를 꼬박꼬박 바치고 600명 정도가 모여서 세운 교회가 나중에는 아프리카, 서인도, 핀란드까지 100명의 선교사를 보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의 믿음이 지극히 거룩한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해야 합니다. 믿는 흉내만 내고 믿는다는 이름만 가지고 살아가면 쭉정이입니다. 여러분들은 거룩한 믿음 위에 신앙인격을 건축하고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 (20하)

  여러분들에게 제가 상을 잘 차려 줄 테니 그것을 들고 귀신 앞에 가서 빌고 그 앞에 춤을 추라고 하면 추겠습니까? 돼지를 잡아서 몸통은 내가 먹고 웃는 돼지머리와 떡을 차려 줄 테니 귀신 앞에서 빌고 절하라고 시키면 돈을 준들 하겠습니까? 죽었다 살아나도 믿는 사람으로서는 못하는 일이 아닙니까?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과 깊이 사귄다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은 못하는 일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20절 하반절을 보면, "성령으로 기도하며"라고 하였습니다.

  기도라고 하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이 없다 보니 너무 아쉬워서 새벽마다 나와서 '하나님,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라고 하는 것이 기도라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아쉬운 것을 달라고 졸라대는 것이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하다보면 아쉬운 것도 있어서 조르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것은 극히 작은 기도의 한 부분인 것뿐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은 월급이 전부 남편의 통장으로 들어가지 않습니까? 통이 큰 남편은 아내에게 몽땅 맡겨 버립니다. 시장에 가서 순대를 사먹고 싶으면 사먹고 떡을 사먹고 싶으면 사먹으라고 합니다. 다 맡겨주는 남자가 있는 반면에 소위 '좁쌀영감'이라고 하는 남편은 통장과 도장을 절대 맡기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 남편이 퇴근해서 대문 안으로 들어오면 아내의 첫마디가 돈 십만원만 달라고 합니다. 저녁 밥상을 차려놓고 마주 앉아서 또 돈 십만원만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려고 누워서도 돈 십만원만 달라고 합니다. 이것이 부부간의 대화입니까? 그러면 남편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지겨워서 못삽니다. 대화는 깊고 진지하고 활발할수록 행복한 것입니다.
  남편이 퇴근하면 기쁨으로 영접을 하고 저녁 밥상을 잘 차려 대접하고 저녁예배 드리고 다정한 대화를 나눕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남편이 어제 저녁에 뭐라 했지? 라고 묻습니다. 그때 아내가 말하기를 딸이 성적표를 받아왔는데 전교1등을 했다고 하면서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똑똑하다고 칭찬을 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아버지를 닮은 것은 하나도 없지만 그렇게 얘기를 하면 남편이 좋아하지요. 그러면 남자는 단순해서 좋다고 야단합니다. 그때 남편이 요즘 학교 교실이 무너진다고 하는데 학원을 보내자고 합니다. 아내는 말하기를 딸아이는 학원 같은 곳은 안가고 필요한 참고서만 몇 권 사다주면 혼자 하겠다고 하는데 그게 한 십만원 될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대화 아닙니까? 그래야만 지나온 일, 앞으로 살아가면서 해야할 모든 일을 진지하고 활발하게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교제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그런데 내 기분 내키는 대로 하면 안됩니다. 오직 성령으로 해야 합니다. 대화는 교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기 까닭에 성령으로 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사탕만 준다고 하면 잘 따릅니다. 사탕을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조금 크면 친구를 따라 움직입니다. 또 조금 더 크면 사랑을 따라 움직입니다. 이제는 같은 여자친구, 남자친구는 소홀히 합니다. 이성을 따라 움직입니다. 조금 더 커서 결혼하면 돈을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다가 돈을 좀 벌어놓으면 감투쓰는 명예를 따라 움직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따라 움직이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결정이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까 성령을 따라 움직이라고 합니다. 즉 성령을 따라 기도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까닭에 성령으로만 하나님과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는 영이기 때문에 성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만 하나님과 교제가 성립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었다 살아나도 못합니다. 그러나 제대로 믿는 사람은 어린아이가 사탕만 보면 정신 없이 시간 가는 줄을 모르듯이 성령의 감화 감동 받으며 기도를 하면 한시간 가고 두시간이 가도 모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는 그리스도인만의 할 일입니다. 반드시 성령으로 기도하고 교제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삶이 이런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사랑을 관리하는 일 (21상)

  사람은 건강할 때 그 건강을 관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재산은 있을 때 관리해야 합니다. 또 시간은 나에게 시간이 주어졌을 때 관리해야 합니다. 어리나 젊으나 늙으나 하루 24시간은 틀림없지만 그 중에도 가장 귀한 시간은 젊음의 시간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레위인들에게 25세부터 50세까지 젊음을 바쳐 봉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젊음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아내들은 남편이 물 붓듯 사랑을 부어줄 때 그 사랑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그 사랑을 벗어나면 안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21절 상반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에게 물 붓듯 부어질 때 그 사랑을 떠나지 말고 그 사랑 안에 자리를 잡고 자기 관리를 잘하라는 것입니다. 사랑 받을 행동만 하고 미움받을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자기 관리를 잘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 관리를 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재산을 주었을 때 잘 관리하듯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건강을 주셨을 때 잘 관리해야 하듯이 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물 붓듯 부어질 때 그 사랑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그 사랑가운데서 자신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관리입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사랑 받을 일만 하고 미움받을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다섯달란트와 두달란트를 맡은 종은 주인의 사랑 받을 일만 하였습니다. 그 결과 더 받고 더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한달란트 맡은 종은 똑같은 사명과 시간과 조건이 주어졌는데 주인이 미워하는 일만 골라 하였습니다. 다 빼앗기고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주인의 사랑 안에 자기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어제도 사랑하셨고 오늘도 사랑하시고 내일도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을 잃지 않도록 하나님께 계속해서 사랑 받는 일만 하며 하나님의 사랑관리에 성공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려고도 하지 않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믿는 사람들은 재미있고 쉽고 보람 있게 할 수 있습니다.

  넷째, 긍휼을 기다리는 일 (21하)

  저는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서 농사짓는 일을 보면서 가난하게 살아보기도 했고 하루에 밥 세끼를 넉넉히 먹고 살아보기도 했습니다. 하여간 농부는 너무 고달팠습니다. 봄철이 돌아오면 부모님이 밭에 가서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싹이 나면 잡초가 함께 나는지라 김을 매야 합니다. 나의 고향에 가면 서속이라고 조농사를 짓기도 하였습니다. 그 조밭에 들어가 마지막 김을 맬 때에는 숨이 콱콱 막힙니다. 김을 많이 매주는 집은 다섯 번씩 맵니다. 그 다음에는 무르익고 추수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께서 할 일입니다. 농사를 다 지어서 이제는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오뉴월에 서리라도 내리면 그동안의 농사는 모두 헛것이 됩니다. 일년 농사를 다 망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마지막에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고 가을에 햇빛을 강하게 내리 쬐어 주시면 곡식이 잘 무르익어 풍년이 되고 창고가 차고 넘치게 됩니다. 농사는 나 혼자 짓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짓습니다. 내가 할 일을 최선을 다한 후에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결말을 지어주실 때 성공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것이 농부들이 할 일입니다. 사람이 할 일을 하나님께 해달라고 하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내가 하겠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것은 절대로 믿음이 아닙니다. 내 할 일은 내가 하고 결론은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괘씸죄라는 것이 있는데 다윗이 그 괘씸죄에 걸렸습니다(대상 21:7). 다윗은 나라가 평안해지고 왕권이 확립되자 백성의 수가 많아서 그렇게 된 줄 알고 인구조사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해도 끝내 고집하였습니다. 얼마나 괘씸한지 하나님께서 삼일동안 온역을 내리시는데 칠만명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며 긍휼을 베풀어주실 때에는 곧 죽을 사람에게도 살 길이 열립니다. 불쌍하면 도와주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괘씸히 여기시면 하나님께서 빼앗지 못하실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괘씸죄에 걸리지 말아야 합니다. 영생에 이르도록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려야 합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구원의 완성이 안되었습니다. 구원의 완성이 될 때까지 즉 재림하심으로 우리의 육신도 성화 되어 영육이 함께 영생할 때까지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려야 합니다. 긍휼을 도움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좋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만의 일입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인만의 일은 첫째로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는 일입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처럼 쭉정이 믿음 위에 자기를 짓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까닭에 성령의 감동으로 교제, 즉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는 사랑을 관리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물 붓듯이 부어주시는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켜야 합니다. 넷째는 긍휼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긍휼을 도움이라 해도 좋습니다. 사람이 할 일은 다 해놓고 그 일의 결과는 하나님이 짓도록 긍휼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인만의 일입니다.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