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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인생 (사 5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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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인생
본문 : 사55:1-6 

오늘의 세상은 한마디로 전쟁입니다.
이 세상은 성공을 위해서라면 ‘너 죽고 내가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위해서 실력을 키우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소위 ‘생존경쟁’의 피흘리는 싸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육개발원에서 전국 남녀 3,300명에게 조사를 했는데,
정직하게 살면 손해를 보는가? 학력별로 구분을 했습니다. 대졸자의 77%, 고졸자의 73.3%, 중졸자의 67.7%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되는가? 대졸자의 71.7%, 고졸자의 74.5%, 중졸자의 68%가 그렇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현대인들의 생각입니다. 지식이 많든 적든 거짓말을 해서라도 출세해야 되고 돈만 벌수 있다면 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인생의 성공의 비결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데 두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가지 종교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자력 종교이고 다른 하나는 타력 종교입니다.
* 자력 종교-‘자신의 인생문제는 자신이 책임지고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는 자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스스로 노력해서 구원받아야 합니다. 불교, 도교, 힌두교. . . . . 열심히 도를 닦고 손바닥이 닳도록 비비고 백배도 모자라서 천배를 하고, 고행을 하고 욕심을 버리고 스스로 깨끗한 심성을 갖고 깨끗한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모든 근심과 고뇌와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마침내 모든 것을 초월하고 신적인 존재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이 자력 종교입니다.
* 타력 종교-‘자신 스스로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어디로부터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절대자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 타력 종교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타력의 종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인생 성공의 방법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롬 8:7에서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적극적으로 대적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설명할 수 없는 무조건적인 용서와 사랑을 우리는 은혜라고 합니다. 진실로 놀라운 은혜입니다.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의 100% 은혜로만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 받을 만한 아무런 조건도 아무런 자격도 아무런 공로와 어떠한 이유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랑과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심판과 절망과 저주와 죽음에서 영원한 축복과 소망과 생명으로 옮기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직 그 은혜와 그 이름을 믿음으로. .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자를 믿는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은혜’-헬라어로 "카리스"입니다. 이 말은 ‘기쁘다’, ‘감사하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은혜는 비와 같습니다. 비가 없으면 인간이 존재하지 못합니다.
비가 적당히 오는 지역은 문화가 발달합니다. 그러나 비가 오지 않는 지역은 문화가 발달하지 못합니다. 사막에는 문화가 일어설 수 없습니다. 인류 문명은 강을 끼고 발전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 은혜가 그렇습니다. 하나님 은혜의 단비가 적당하고 때에 따라, 필요에 따라 내려야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어떤 종교에도 죄인이 용서받고 사함 받는 곳은 없습니다.
이 은혜라는 것은 기독교에만 있는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이 은혜를 모르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랬습니다. 예수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보호를,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간구 하노라”(요삼 2절)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자가 되었기에 잘 되는 것입니다.
인생 성공의 비결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길입니다. 은혜 속에 사는 길인 것입니다.
은혜속에 산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이 말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에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라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선물을 받고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선물로, 하나님의 덕택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만 합니다.
1. 어떤 자들이 은혜를 받고 살아갑니까?
겸손한자 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찾습니다. 겸손한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언 22장4절)
여호와를 경외해도 겸손하지 않은 분이 많습니다. 그 말은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이 함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재물을 주십니다. 이 세상에 물질의 복을 주십니다.
겸손한 사람이 잘 삽니다. 겸손해야 부지런하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모든 일에 긍정적이기 때문입니다.
또 겸손한 사람에게 영광 즉, 명예 지위 축복이 있습니다.
또 생명이 주어집니다.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교만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노력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물로 살기 때문입니다. 교만할 이유가 없습니다.
늘 겸손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늘 감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유능한 헬렌 켈러 여사를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그는 삼중 장애자입니다.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고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불행을 딛고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러
나 그는 훌륭하게 귀중한 일들을 많이 하며 심지어는 저술까지 하면서 살았습니다. 말년에
어떤 기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이런 육체적 고통과 함께 한 평생을 살아왔는데 당신은
하나님을 원망해 본적은 없습니까?" 헬렌 켈러 여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제
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헤아리는 것으로 만도 시간이 없는데, 그리고 하나님께 대
한 감사하는 것으로도 부족한데 어찌 원망할 시간이 있겠습니까? 감사하고 그 은혜를 기뻐
하는 것으로도 시간이 부족해요." 원망할 시간이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남들은 그를 불행하게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왜 다윗이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군왕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야이로는 회당장이었습니다. 아쉬움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딸이 죽을 병에 걸렸을 때 체면과 지위를 던져 버리고 예수님께 나와 “주여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막5:21)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겸손함을 보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가난한 마음을 가지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인간은 본래 교만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만해질까봐 고난을 통해서 철저하게 겸손하게 만드십니다. 왜냐하면 고난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의 모습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그 은혜를 알기 위해서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더러운지 알아야 합니다.
2. 먼저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 겸손의 시작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하나님 앞에 나오라는 것입니다.
더욱 큰 은혜를 받으려면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러 나온 것은 겸손의 첫 발걸음입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겸손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물이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르듯이 은혜는 겸손한 곳을 향하여 흐릅니다. 우리가 겸손할 때 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잘났다고 큰 소리를 칠수록 은혜와는 멀어지고 맙니다.
교만은 마귀의 기질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인 겸손을 소유해야 합니다.
겸손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통회하며 창조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겸손은 낮고 천한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영적 기질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낮추는 겸손은 오히려 큰 자가 되게 하십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4:10)고 하였습니다.
"5만번 응답 받은 뮬러의 기도 비밀"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분은 고아원을 운영하며 2000명이 넘는 고아들을 먹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부의 힘을 빌리지도 않았고 부자에게 손을 내밀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순수하게 하나님 아버지 한 분만 의지하고 기도하여 응답 받아 먹이고 양육했습니다. 그런데 뮬러는 무척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뮬러는 많은 일을 하면서도 겸손한 모습으로 일관했으며 그만큼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었고, 그만큼 기도하며 구한 바를 응답 받을 수 있었습니다.
3.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은 나의 생각을 뛰어 넘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내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보고 느낀 것 이상을 알지 못합니다.
본문 5절을 보십시오.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알지 못하는 일이 내게로 닥아오게 됩니다.
우리를 영화롭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알지못하는 크고 비밀한 것을 우리에게 보이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8, 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
니라"
잠언 3장 5-7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며 그를 인정하고 사는 자에게는 우리의 길을 지도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말입니다.
4. 은혜는 언약의 말씀을 확신하는데서 옵니다.
오늘 성경은 무엇이라고 얘기하십니까? 10절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하늘로 다시 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입에서 나간 말씀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
고 건질 사람 다 건지고 변화시킬 사람을 다 변화시키고 열매맺을 사람을 다 열매맺고 돌아
간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확신하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것이 복입니다. 믿고 싶다고 믿고, 믿고 싶지 않다고 믿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믿어지는 것은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믿지 못하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은 실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저희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늘"(눅24:)이라고 했습니다. 눈이 가리워졌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영안이 어두워졌다는 것입니다. 영안이 어두웠기 때문에 주님이 곁에 계셔도 그들과 함께 동행하셔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은혜가 없으면 눈이 가리워집니다. 영안이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하늘의 신령한 것을 보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믿어지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길에서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뜨거워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믿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행복입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말씀이 믿어지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속에 약속의 말씀에 대한 비젼으로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은혜 가운데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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