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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조국을 위한 기도 / 에 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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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위한 기도 /  에 4:6-17 

  이번 주간이 6.25가 있는 주간입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아는 사실입니다만 우리 민족은 참으로 순탄하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이야기 할 것 없이 근자의 역사만 봐도 그렇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해방이 되어 이제 한 번 세계사에 활개를 치고  멋지게 살아볼 것 같았는데. 느닷없이 6.25가 터져 같은 민족끼리 죽고 죽이는 세계사에 유래 없는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을 치루어야만 했습니다.

*전쟁 피해 - 인명 > 남북한 군인, 유엔군, 중공군 사망 - 645,000명

              민간인 사망 - 37만 / 피난민 - 18만

              실종 - 남한 군인만 13만(북한은 집계가 안 됨)/민간인-50만

물질적인 피해는 논하지 않겠습니다. 인명 피해에 비하면 물질적인 피해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전쟁의 아픔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반세기가 지났는데 아직도 남북의 냉전과 갈등은 그치지 않습니다. 요즘에 와서 조금 교류의 물고가 트이기는 했습니다만, 그동안 남과 북이 얼마나 서로 원수시 하면서 틈만 나면 비난하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살벌하게 대치해 왔습니다. 국제 사회에서 서로 비난하며 경쟁해야 하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지금도 이산가족들 보세요. 부모 자식이 보고 싶을 때 보지 못하고 마음속에 그리워만 하면서 헤어져 삽니다. 저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하는 장면이 텔레비전 화면이 비치게 되면 어떤 때는 의도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너무 가슴 아픈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해괴한 일입니까? 무슨 태평양 바다 건너, 이 억 만리 밖에 산다고 보고 싶고 그리울 때 보지 못하고 이렇게 헤어져 살아야만 하는 이런 비극, 참으로 우리 민족의 슬픔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쩐 일인지 그동안 우리 민족은 6.25전쟁 이후 반세기가 훌쩍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사회 구석구석에서 갈등과 혼란이 그치지를 않고 있다는 겁니다. 세대간의 갈등이 있고, 지역간의 갈등이 있고, 노사의 갈등이 있고, 교사와 학생간의 갈등이 있고, 하여간 사회 전반에 걸쳐서 갈등과 혼란이 그치지를 않습니다. 정권을 바꾸면 좀 달라지려나 하여 군부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간민주정부를 수립해 보기도 하고, 수평적 정권교체를 하면 또 좀 달라지려나 하여 정권 교체도 해 보았는데 역시 큰 변화가 없습니다. “안 되겠다.” 이번에는 젊은 사람으로 바꿔보자 하여 젊은 대통령을 세웠는데, 오죽하면 대통령으로 취임한지 불과 며칠 되지 않아서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하는 대통령의 자조적인 함숨 소리가 한 동안 매스컴에 회자되기도 했고...

a.북한이 핵무기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째든 핵무기를 무기 삼아서 미국과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강력하게 맞서고 있고

b.미국은 미국대로 “폭격한다, 해상과 영공을 봉쇄한다.” 계속적으로 북한을 위협하고 있고

c.한국은 그 틈바구니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지금 한숨만 푹푹 쉬면서 눈치만 보고 있고

d.그런가 하면 노사 간의 갈등, 노정 간의 갈등, 농민은 농민들대로 “이거 못 살겠다. 농촌이 붕괴된다. 농사짓는 사람은 다 망하게 생겼다.”

e.전교조 데모하지요, 교총 데모하지요, 또 이제는 학부모들까지도 힘을 규합해서 거리로 뛰쳐나오지요

f.저는 경제에 대하여 전문적인 식견이 없습니다만, 여러 사람을 만나 분위기를 살펴  보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이렇게 힘들어 보기는 난생 처음이라는 것”입니다.

g.정치하는 사람들 저마다 치고 박고 싸우지요.

h.요즘은 또 부녀자 납치 강도, 강간, 살인, 어린이 유괴, 조직폭력, 마약, 이혼, 청소년 범죄... 사회 전반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어디를 봐도 희망이 보이질 않습니다. 어떤 때는 말이지요. “이러다가 나라가 어떻게 되는 것이냐?” 솔직히 격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목사의 마음이 이럴 데에야, 세상에서 직접 몸을 부딛치고 사는 분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래도 말이지요. 저는 우리 민족을 향한 소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한 숨 밖에 나오는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혼란하고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그래도 안심하게 되는 것은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10명이 없어서 심판을 받았다면, 이 민족 가운데 다만 얼마의 의인만 있다면 그래도 이 민족 버리지 아니하시고 붙드시고 또 축복하실 줄로 믿기 때문입니다. 어디를 봐도 소망이 없는데, 그런데 제가 산기도만 가면 힘이 생기고 소망이 생기고이 땅, 이 나라에 태어나서 주의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제가 산 기도를 가면 어디를 가는가 하면, 갈멜산 기도원 옆으로 올라가는 산이 있습니다. 15분 쯤 올라가면 커다란 바위가 있고, 여기저기 흩어져서 기도하기가 참 좋습니다. 그 산에 가면 날마다 올라오는 60세 정도의 할머니가 계십니다. 항상 그 자리에 앉아서 기도합니다. 그야말로 그 추운 겨울, 한파 속에서도, 눈보라 속에서도 하루도 거르지 아니하고 올라와서 기도하는 할머님이시다. - 권사. 집이 구로동. 밤 10시에 올라와서 새벽 4시에 내려간다. 자가용 몰고 와서 기도하고 자가용 타고 가는 분이 아닙니다. 버스 타고 와서 버스 타고 갑니다. - 저는 그 분이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은 잘 모릅니다. 왜냐면 밤에만 봤기 때문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닙니다. 돈이 많다면 자가용 없이 시내버스 타고 오고 가겠습니까? 그렇게 유명인사도 아닙니다. 유명인사라면 제가 몰라보겠습니까? 그런데 위대하고 훌륭해 보입니다. 우리의 조국이 이렇게 혼란스럽고 위태한 지경에 처해 있어도,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는 기도의 용사들이 있는 한 그래도 이 민족 가운데는 희망이 있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a.이스라엘이 파사제국에 나라를 빼앗겨 있을 때의 일이다.

b.유대인으로서 에스더라고 하는 여인이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가 되었다.

c.그런데 이 때 왕의 대신 가운데 하만이라고 하는 자가 있었는데, 그가 그만 유대인을 대량 학살할 괴략을 꾸미고 있었다.

d.이 사실을 에스더의 사촌 오라비가 되는 모르도개를 비롯해서 유대 사람 거의가 알고 베옷으로 갈아입고, 대궐 문 앞에까지 와서 금식하며 애통하고 있었다.

e.그런데 이런 와중에 성 안에서 왕비 노릇을 하고 있는 에스더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 유대인 전체가 베옷으로 갈아입고 금식하며 통곡하며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이렇게 처절하게 몸부림하며 애쓰고 있는 와중에, 그런데 성안의 왕비 에스더는 까마득히 모르고 태평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f.이 때 에스더의 사촌 오리비가 되는 모르도개가 에스더에게 사람을 보내어 자초지종을 죽 알려 주면서, 이렇게 에스더에게 주문을 한다. “빨리 왕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아뢰고 우리의 조국 유대를 구원하소서.”

g.그런데 문제가 있다. 아무리 왕비라 할지라도 아무 때나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자유롭게 왕에게로 나아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에스더도 왕을 본지 30일 이 지났다. 언제 왕이 자기를 부르게 될지, 자기 처소로 들게 될지 전혀 예측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까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왕에게 가까이 나아갔다가는 법에 의하여 죽여버림을 당하는 것이다.

h.그래서 에스더는 자기의 사정, 형편을 또 모르도개에게 다시 전달한다. “사실 왕궁의 사정이 이러하다. 내가 왕의 얼굴을 뵌 지 30일이 지났다. 내가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왕이 불러 줘야 왕을 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내가 맘대로 왕에게 나갈 수 잇는 형편도 아니고...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이해해 달라. 내가 비록 왕비지만 내 힘으로도 어찌 할 수 없으니 이해해 주세요.” 이렇게 또 소식을 전한다.

i. 이 때 이 소식을 전해들은 모르도개는 다시 전갈을 보낸다. “에스더 왕비여, 네가 왕궁의 왕비로 있다고 유다 사람이 아닌 줄 아느냐? 유다 사람들이 다 모함을 받아서 죽게 된다면 왕비인들 무사할 줄 아느냐?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음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지금 사정 따지고, 형편 따지고, 왕궁의 법도를 따질 때가 아니다. 우리 민족이 말살될 위기를 만났는데, 이런 저런 입장 따지고, 득실 계산하고... 그럴 때가 아니다.”

j.이 때 이와 같은 전갈을 받은 왕에게로 나아가기로 에스더는 결심을 한다. 이 때 에스더의 결심을 함축한 한 마디가 참으로 유명하지요. 「죽으면 죽으리라.」 하면서 에스더는 모르도개에게 이렇게 부탁의 편지를 한다. 「모르도개 오라버니, 오라버니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제 제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심으로 왕에게로 나아가겠습니다. 그럴테니 오라버니는 수산성에 있는 유대인을 다 모으시고 밤낮 3일을 먹지도 말고 하나님 앞에 금식기도 해 주세요. 나도 시녀들과 함께 금식기도 한 후에 왕에게 나아가서 담판을 지겠다.」

->이렇게 해서 자기의 조국을 건져 내게 되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가지의 교훈을 얻게 된다.

1)모르도개가 에스더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한 말입니다. 「왕비여, 당신이 왕궁에 있다고 우리 유대 민족이 죽게 될 때에 당신은 죽지 않고 무사하리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도 죽습니다.」- 나와 조국은 공동운명이라는 사실입니다. 조국이 망하면 나도 망하는 것이고, 조국이 없이는 나도 없는 것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조국의 오늘의 현실을 뒷짐 지고, 나 몰라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에스더 입장에서는 어쩌면 자신하고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자기는 지금 왕궁에서 왕의 총애를 받고 있는 황후거든요. “다른 사람들이야 죽던, 살던 나는 괜찮다. 나는 안전하다.” 충분히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모르도개가 하는 말은 그게 아닙니다. “우리 민족이 죽으면 너도 죽는다. 너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난 몰라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민족이 함께 들어야 할 좋은 교훈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모세의 경우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애굽의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부와 권세와 명예와 영화를 누리고 살았습니다. 자기의 동족이 모두 힘겹게 노예 생활을 할 때 모세는 왕국에서 호의호식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늘 상 나는 히브리인이라고 하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선택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는 자존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자기의 동족이 애굽 사람에 의하여 피해를 당하는 장면을 보고 선뜻나서서 참견하다가 그만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습니다. 모른 척 할 수도 있었습니다.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듭니까? 그냥 지나친다고 누가 뭐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냥 지나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아브라함의 피를 이어 받은 한 동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북한이 지금 굶주리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굶어 죽는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하는 자도 있고, 보고에 의하면 북한은 지금 원조해 주는 식량으로 간간이 연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세계에서 가장 자존심이 강한 나라 하면 북한입니다. 자존심 하나로 버티는 사람들입니다. 오죽하면 우리식대로 살자는 슬로우건이 있습니까? 그런데 지금 북한이 얼마나 식량 사정이 다급한지 그 콧대 높은 자존심 다 내려놓고 우리보고 식량 원조 해 달라. 지금 미국하고 핵무기를 가지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결국에는 뭡니까? “먹을 것 좀 내 놔라.” 이겁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지난해의 국내 입국 탈북자 수가 1141명으로 집계되고 있는데, 매년 배로 증가하고 있다는 겁니다. 오죽하면 고향을 등지고, 부모 형제를 버리고, 붙잡히기만 하면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는데, 목숨을 걸고 무작정 뛰쳐나오는 겁니까? 이유는 하나지요. 먹을 것을 찾아서입니다. 그런데 저들이 누구입니까? 먹을 것이 없어서 고향 산천, 부모형제를 버리고 뛰쳐나오는 저들이 누구입니까? 북한 괴뢰도당 원수입니까? 아니지요. 그런 냉전 이데오로기로 적대시 할 때는 지났습니다. 저들은 우리의 한 피 나눈 형제들입니다. 우리 겨레입니다. 저들의 아픔을 나 몰라라 외면한다면 이것은 수치입니다. 부끄러움입니다. 저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도울 수 있다면 도울 수 있는 방도를 찾고, 함께 손에 손을 잡고 가슴을 부여안고 사랑과 정을 나누며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할 날을 소망하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하나 할까요? - 탈북자 선교회에서 일하고 게신 목사님이 저하고 함께 공부를 하는데 그 분의 이야기입니다. 탈북자들이 국내에 입국하게 되면 일정 적응 교육을 받고 정착금 얼마를 받게 되는데, 그런데 현금으로 얼마를 손에 쥐어 주는 것이 아니라 은행에 예치시키고 그리고 통장과 현금 카드를 줍니다. 그런데 생전 이 사람들이 은행을 다녀 봤나요. 카드를 써 봤나요? 이 때 슬슬 접근하는 자가 있는데, 「카드 사용할 줄 모르세요. 제가 찾아다 드릴께요. 카드 비밀 번호가 몇 번이라고 합니까?」- 다 빼앗아 도망갑니다. >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의 대단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국내에 들어오게 된 것을 후회한다는 겁니다. 속이고 등칠 생각만 하지, 무시하고 업신여기기만 하지, 도무지 살벌해서 못 살겠다는 겁니다. - 우리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 경제가 얼마나 어려운 때입니까? 이렇게 어려운 때는 일생 처음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어려운 고비를 극복하려고 애를 쓰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때에, 성도님들! 엊그제 신문 보니까 사스 때문에 한동안 주춤했던 보신관광, 골프 관광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황의 와중에 고가의 명품은 없어서 못 판다는 것입니다.  나는 돈 있다 이거예요.  너희들은 불황이지만 나는 호황이라 이거예요.

「에스더 황후여! 나라가 망한다면 당신인들 무사할 것 갖습니까?」오늘 우리 민족에게 들려주시는 경고의 음성으로 들어야 합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여! 나라가 망하면 그 때에도 골프 관광 다닐 수 있을 것 같으냐? 나라가 망하면 그 때에도 명품을 찾을 것이냐?!」각성해야 합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농민들은 농민들대로 못 살겠다고 이대로 가다가는 정망 망하게 생겼다고 아우성이고... 저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왜냐면요? 우리와 한 민족이니까요.



2)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유대 백성들이 함께 금식기도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가지고 말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조국을 붙들고, 지키고, 축복하시지 않으면 앞으로 전개되는 국제적 상황이 우리에게 그렇게 유리하지 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이지 이제는 우리의 조국을 위해서 기도할 때입니다. 「정치를 잘 한다. 못한다. 나라가 왜 이 날마다 이 꼴이냐?」원망하고 비난하고, 그럴 때가 아닙니다. 그것 다 누워서 침 뱉기 입니다. 정치를 못한다고 야단하고 비난하지만, 그러나 그들을 누가 뽑았습니까? 우리 손으로 뽑은 것 아닙니까? 잘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고, 격려해 주고, 충고해 주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우리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도록 기도로 지원하고... 이래야 되는 것 아닙니까?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사무엘 선지자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나라가 블레셋에게 망했습니다. 법궤를 빼앗겼습니다. 이스라엘의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지고...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길이 없습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갑자기 국력이 커져서 다시 전쟁을 일으켜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때 사무엘 선지자가 백성 앞에 나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들은 우상을 다 버리고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라. 그리고 미스바로 모이라. 그리고 우리가 금식하며 회개하자.」저들은 하나님께 나왔습니다. 그리고 금식하며 성경 삼상7:7-를 보니까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며 쉬지 않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도가 나라를 살립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하려고 하실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나아가 두 손을 높이 들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이 성에는 불의하고 범죄한 자도 많지만, 그러나 의로운 자도 있을 것이 아닙니까? 저들을 봐서 멸하지 마옵소서.」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심판을 지연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 나와서 아말렉 군대와 전쟁을 벌일 때, 군인들은 나가서 싸우고 모세는 저 후방에서 하나님께 두 손을 들고 기도하고...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모세가 두 손을 들고 기도하기만 하면 승리하고, 팔이 아파서 손을 내리면 패하고... 그렇다면 성도님들! 나가서 싸우는 군인들의 승리입니까? 두 손을 들고 기도한 기도의 승리입니까? 기도의 승리지요. 그렇다면 분명해 졌습니다. 정치가 나라를 살리는 것도 아니고, 군사력이 나라를 지키고 보존하는 것도 아니고, 수출을 많이 해서 외화를 벌어들여 나라를 부강하게 한다고 해서 우리의 조국이 흥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입니다. 기도가 나라를 살립니다. 기도가 나라를 구합니다. 기도가 원수의 손에서 우리의 조국을 지키고 건집니다. 우리의 주국을 정치하는 사람들에게만 맡기지 말자구요. 군인들에게만 맡기지 말자구요. 우리가 한 번 맡아보자구요. 어떻게 다 국회의원 출마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다 총 들고 싸움터로 나가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두 손 높이 들고 기도하자는 얘기입니다.



할렐루야! 이럴 때 우리의 조국은 부흥합니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참 좋은 주국을 물려주십시다. 더 이상 갈등, 분열, 퇴폐문화... 이런 것 물려주지 말고 하나님이 붙드시고 축복하시니 번영하는 조국을 물려주십시다. 우리의 기도하는 손이 내려오면 우리의 조국도 쇄락하게 될 것이고, 우리의 기도하는 손이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우리 조국의 운명은 날로 상승할 것입니다. 위기를 만나지만 하나님이 건지실 것입니다. 원수가 우리를 넘보지만 하나님이 지키실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불황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다시 회복케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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