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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곱 : 이기적이고 간교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 창 27: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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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란 무엇인가(5) “야곱:이기적이고 간교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창27:18-27

오늘 “죄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5번 째 설교를 합니다. 죄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를 가지고 시리즈 설교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죄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의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 주 영국에 있는 목사님 한 분이 저에게 전화를 걸고 죄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의 설교를 인터넷으로 보고 들으면서 많은 은혜를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한 주간 동안 다음 설교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감사한 일이고 격려가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아침의 설교도 축복해 주시고 오늘 아침의 설교를 통해서도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과 함께 우리들의 죄를 바로 아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심을 보고 깨닫는 순간 자기는 망할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5).

죄는 술집에서 술과 여자에게 몸과 마음을 빼앗기고 놀아난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경건한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들과 저에게도 있습니다. 죄는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아내에게도 있었습니다. 아마 교회 안에서 경건하게 예배 드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는 죄가 보다 파렴치하고 보다 기가 막히는 죄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목사 장로가 파렴치하게 저지르는 죄가 술집에서 술과 여자에게 놀아난 사람들의 죄보다 더 기가 막히는 죄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아침 믿음의 조상 중의 한 사람인 야곱이 범한 죄에 대해서 설교를 하겠습니다. 앞으로 다윗이 범한 죄에 대해서도 설교를 하고 베드로가 범한 죄에 대해서도 설교를 할 것입니다. 사실 저들은 모두 지옥에 떨어질 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사탄에게 잡혀 죽을 뻔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시몬아,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를 청구하였느니라”(눅22:31). 성경이 왜 야곱과 다윗과 베드로가 범한 죄의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이 그런 죄를 범해도 된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 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들을 경고하기 위해서 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높고 넓고 크신 긍휼을 나타내 보여주시기 위해서 이지만 그것보다는 우리들이 그런 죄를 범하면 우리도 사탄의 밥이 될 수도 있고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죄를 범할 때 하나님을 슬프시게 한다는 사실도 보여 주기 위해서 입니다. 이제 야곱이 범한 죄를 세 가지로 나누어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야곱은 이기적이었습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기적입니다. 자기만 아는 존재입니다. 자기의 이익과 자기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죄입니다. 아마 그것이 죄의 근본일 것입니다. 야곱은 이기적인 사람의 모델입니다. 야곱은 이삭의 둘째 아들이었는데 그것이 늘 불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형 에서가 배고 고파서 죽을 지경에 처해 있을 때 팥죽을 형에게 먹여주는 대신 형의 장자 권을 샀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형 에서에게 축복 기도를 해 준다고 했을 때 야곱은 아버지를 속이고 형 대신 자기가 아버지의 축복 기도를 받았습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가 먼저 나오겠다고 형의 발꿈치를 붙잡고 태어날 정도로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이란 이름의 뜻이 바로 발꿈치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태어나기 전부터 이기적이었고 태어난 후에도 이기적이었습니다.

이기적인 것은 죄입니다. 자기만 아는 것은 죄입니다. 그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욕심이 많습니다. 욕심이 많은 것은 죄입니다. 저도 본성적으로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사람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사람은 이기적인 존재이다”라고 스스로 말하곤 했습니다. 제가 많은 훈련으로 이기적인 욕심을 조금씩 버리고 이타적인 삶을 조금씩 배워서 지금 이정도가 되었지만 저는 본성적으로 이기적입니다. 이기적인 성향을 그대로 유지하고 발전시키면 지옥에 가까워지고 그것을 조금씩 버리고 이타적인 성향을 조금씩 지니게 되면 천국에 가까워집니다.

야곱은 예쁜 여자만 좋아했고 예쁜 자녀만 사랑했습니다. 이기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라헬이 레아보다 예뻤기 때문에 레아보다 라헬을 사랑했고 요셉이 다른 자녀들보다 예뻤기 때문에 다른 자녀들보다 요셉을 극진히 사랑했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서 하란에 가서20년 동안 생활하다가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 형 에서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려고 오고 있었습니다. 그 때 야곱은 두려워하며 자기의 가족과 재산을 두 떼로 나누었습니다. 한 떼를 치면 다른 한 떼를 데리고 도망하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종자와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누고 가로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창32:7,8). 야곱은 이기적이었습니다.

둘째 야곱은 거짓되고 간교했습니다.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가 야곱이 간교하고 속이는 사람이라고 다음과 같은 말을 주고 받았습니다. “이삭이 가로되 네 아우가 간교하게 와서 네 복을 빼앗았도다 에서가 가로되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이니이다. 그가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창27:35,36). 야곱은 이기적이었을 뿐 아니라 거짓되고 간교했습니다. 장자권을 형에게서 빼앗았을 때에도 간교했고 아버지 이삭에게서 축복 기도를 받았을 때에도 간교했습니다. 이삭은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했습니다. 야곱은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아버지에게 가서 축복 기도를 받았을 때 자기를 에서로 가장했습니다. 형 에서의 옷을 입었고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손과 목을 꾸몄습니다. 어머니 리브가와 합작하여 거짓으로 꾸민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네가 누구냐?” 라고 이삭이 물었을 때 야곱은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라고 거짓 말을 했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네가 어떻게 이같이 [짐승을] 속히 잡았느냐?”고 물었을 때에도 야곱은 능청스럽게 다음과 같이 거짓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기적이고 그리고 거짓되고 간교합니다. 자기의 유익과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거짓되고 간교한 짓을 합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하란 근처에 이르렀을 때 삼촌 라반의 딸 라헬이 양떼를 몰고 오고 있었습니다. 라헬은 외모가 아주 예뻤습니다. 야곱은 라헬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라헬의 양떼에게 물을 먹였습니다. 그리고 즉시 라헬에게 입을 맞추고는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멋진 연극을 했습니다. 결국 라헬의 마음을 사고 말았습니다. 야곱은 아주 간교했습니다.

야곱이 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머물면서 7년을 하루같이 열심히 일한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여전히 간교했습니다. 14년 동안 열심히 일한 후 야곱이 라반에게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야곱이 삼촌 라반의 양떼와 염소떼와 소떼를 치면서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들은 자기의 것으로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라반이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후 야곱은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어 얼룩얼룩하게 만들어 교미하는 양들과 염소들과 소들에게 보이므로 그들이 새끼를 날 때 얼룩얼룩한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들을 낳게 했습니다. 결국 자기의 양떼는 풍부하게 만들었고 라반의 양떼는 빈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야곱은 아주 간교했습니다. 아마 유대인들이 야곱을 닮았기 때문에 지금도 간교해서 돈을 잘 버는지 모르겠습니다. 야곱이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 형 에서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려고 오고 있었을 때 야곱은 자기의 가족과 재산을 두 떼로 나누었습니다. 한 떼를 치면 다른 한 떼를 데리고 도망하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극히 이기적이었고 극히 간교했습니다. 형 에서를 만나서 서로 목을 어긋하고 입을 맞추며 울었을 때 야곱은 형을 가리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는 아부의 말을 했습니다. “내가 형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옵니다”(창33:10).

간교한 것이 처세술에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간교함은 하나님 보다는 자기 자신을 믿는 불신앙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간교함을 무서운 죄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창3장에 보면 들 짐승 중에 뱀이 간교하다고 했습니다. 간교함은 마귀적이란 말입니다. 잠7장에 보면 호리는 기생이 간교하다고 했습니다. 간교함은 타락의 본질이란 말입니다. 삼하13장에 보면 암논의 친구 요나답이 심히 간교한 자라고 했는데 결국 요나답은 암논으로 하여금 강간의 죄를 짓게 했습니다. 간교함은 타락을 초래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창27장에 야곱이 간교하다고 했습니다. 간교함은 죄이고 불신앙입니다. 신앙은 단순한 것이고 순수한 것이고 우직한 것이고 어리석은 것이고 바보스러운 것입니다. 간교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발전시키면 지옥에 가까워지고 단순함과 순수함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면 천국에 가까워집니다.

셋째 야곱은 세상을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하란에서 돌아와서 벧엘로 올라가는 대신 세겜 성에 이르러 거기서 살았습니다.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난 땅 세겜 성에 이르러 성 앞에 장막을 치고 그 장막 친 밭을 세겜의 아비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사고 거기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하였더라”(창33:18-20). 벧엘은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던 곳이었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곳이었습니다(창13:4). 벧엘은 또한 야곱이 하란으로 도망칠 때 하나님이 나타나서 그에게 말씀하시던 곳이었고 야곱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던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야곱을 지키시고 평안이 돌아오게 하시면 그곳에 돌아와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기로 서원했던 곳이었습니다(창28:22).  그런데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크게 받고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왔지만 벧엘로 가지 않고 세겜에 머물러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사는 가가 중요합니다. 맹자가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 집을 세 번이나 옮겼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 가까이 사느냐 소돔 성 근처에 사느냐가 문제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의 집 보다는 세상의 집을 사랑합니다. 야곱과 그의 가족은 세겜 성에 살면서 세겜성의 풍속을 좇았습니다. 세겜 성 사람들의 옷을 입었고 세겜 성 사람들의 이방 신상을 집에 두었으며 세겜 성 사람들의 유행을 따라 몸을 단장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왜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세겜 성에서 살고 있느냐는 책망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이제라도 벧엘로 올라가라는 분부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거기서 단을 쌓으라”(창35:1). 사실 이와 같은 말씀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임하고 있습니다. “너의 본토 아비 친척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 롯에게도 임했습니다. “두 천사가 롯에게 이르되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내라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창19:12-17). 지금 야곱에게도 임했습니다. 세겜을 떠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중에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저들이 비록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요17:14). 때로는 심리적으로만 아니고 물리적으로 하나님 집 가까이 와서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에 김홍영 집사님 박정희 집사님 가정이 교회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집을 샀습니다. 얼마나 잘 한 일인지 모릅니다. 김시원 집사님 강정애 집사님 가정은 중국에서 돌아오면서 교회 가까운 곳에 집을 얻었습니다. 새벽기도를 하기 위해서 입니다. 얼마나 잘 한 일인지 모릅니다. 교회 멀리 살면 새벽기도는 물론 수요 예배도 제대로 나오지 못합니다. 박치원 장로님 부부는 예외입니다.

다윗은 항상 주의 집을 사모했고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고백하고 또 고백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시15:1).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시65:4).

세상을 사랑하며 세상에 파묻혀 사는 것은 죄입니다. 세상을 너무 좋아하며 세상을 풍습을 따라서 사는 것은 죄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요일2:15).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며 세상에 파묻혀 살던 야곱은 결국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집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창35:2이하의 말씀을 읽습니다.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 나무 아래 묻고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 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창35:2-5) 세겜에 머물었을 때는 경제적이고 세속적인 만족은 누릴 수 있었지만 가정의 재난이 계속되었고 마음의 근심과 불행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세겜을 떠나 벧엘로 향했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이 함께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 그에게 복을 주시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창35:9,10). 야곱의 운명이 바뀌어졌습니다. 아마 그 때부터 이기적인 야곱이 이타적인 야곱으로 바뀌어지기 시작했고 간교한 야곱이 단순하고 순수한 한 믿음의 사람으로 바뀌어지기 시작했고 세상을 사랑하던 야곱이 하나님의 집을 사랑하는 천국의 사람으로 바뀌어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히11장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천국을 바라보면서 세상에서는 나그네로 살았다고 기록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히11:9,10). 세상에 대한 애착을 벗어버리고 하늘을 바라보던 야곱의 마지막 고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9). “야곱이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에브론의 밭이 있는 굴에 장사하라”(창49:28,29).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믿음의 조상 중의 한 사람인 야곱이 몸에 지녔던 세 가지 죄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야곱은 본성적으로 이기적이었고 간교했고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이와 같은 죄를 몸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이런 죄를 지녀도 좋다는 말은 절대로 아닙니다. 다윗이 간음죄와 살인죄를 지었으니 우리도 그런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은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몸에 스며들어 있는 죄악의 모습을 똑 바로 바라보고 그 죄를 벗어버리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날마다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죄를 사하시옵소서 내 죄를 도말하시옵소서. 내가 잉태될 때부터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내 몸에 지니고 태어난 나의 모든 죄를 말갛게 씻어 주시옵소서”(시51). 우리 몸 속에 흐르고 있는 이기적인 것들을 도말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몸 속에 흐르고 있는 간교한 것들을 도말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몸 속에 흐르고 있는 세상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제해 주시고 없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시여 야곱을 불쌍히 여기시던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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