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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가족 / 엡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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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에베소서 2:19 
  제목 / 하나님의 가족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하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아오신 사랑하는 방문자 여러분, 지난 한 주간 여러분을 뵙지 못했는데 한 달이나 된 느낌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저는 지난주일 몇 분들과 함께 수도권 교회를 탐방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사실 담임목사라는 직책은 좀처럼 주일날 다른 곳에서 예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면 자기 방식 말고는 아는 게 없는 사람이 되기가 쉽습니다. 다행히 지난 주일은 좋은 기회가 되어서 지구촌교회 비전센터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혼자서 못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결혼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생활이다.’ 그렇습니다. 결혼, 혼자서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결혼하기 원하면서 서른 넘어가도록 혼자 있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누구 말마따나 “사소한 게 하나 없어서 결혼을 못했다”고 그러던데 혼자서는 되는 일이 아닙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오늘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다. 그러나 나와 앉아 있으면서도 신앙생활이 더불어서 함께 해야 된다는 사실을 소홀히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바깥에 있을 때에 “저 교회”라고 울산교회를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예배에 참석하고 나서부터는 “이 교회”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조금 더 주인의식을 가지게 되면 “우리 교회”, “우리 울산 교회”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울산교회를 부르고 있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소속감을 말해 줄 것입니다. 하긴 성도들뿐만 아니더라고요. 새로 부임해 오신 교역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은 6개월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이 교회”, 아니면 “울산교회”이렇게만 말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다가 “우리 울산교회” 내지 “우리 교회”라고 부르게 되면 상당히 적응을 하게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제가 이렇게 친절하게 분석을 해 드렸는데도 계속 말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 울산교회에 사역하기 위해 오신 분으로서 자세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혹 의심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예배를 드리고도 나가서 “저 교회”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손님입니다. 그런 사람은 나가서 어떻게 말할까요? “오늘 저 교회에 한 번 가봤는데 저 교회는 어떻더라” 아마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겠지요.

1년을 넘게 우리 울산교회를 다니고도 아직도 “이 교회”라고 부른다면 여러분은 결단을 하셔야 합니다. 이제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셔야 합니다. 더 이상 왔다 갔다 출석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교인이 되십시오. 큰 교회의 단점이자 장점은 잘만 피하면 1년 넘도록 한사람에게도 들키지 않고 계속해서 다닐 수가 있습니다. 저는 울산 오기 전에 개척교회 두 개를 해봤어요. 백 오륙십명 모이니까 사람들이 와서 불평하는 게 이런 불평입니다. “이 교회는 오니까 숨을 데가 없습니다.” 그렇죠 백 오륙십명 제 손안에 다 들어오니까요. 숨을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반면에 우리 울산교회 오셔서 아주 숨을 곳 잘 찾아서 지금 몇 개월씩 1년 넘게 다니시는 분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저희 울산교회는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그리고 출석하게 만들고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교인이 되도록 하는 일에 우리의 힘을 쏟고 있습니다.

몇 해를 다녔지만 아직도 “이 교회”라고 부르는 사람은 건강한 성도가 아닙니다. 물론 그런 분들도 자신을 좋은 교인이라고 자부할 수는 있습니다. 저는 그런 성도를 지난 주말에 한 분 만나보았습니다. 그분은 자기 집 가까이 있는 교회를 한동안 나가다가 뭔가 교회하고 문제가 생겼답니다. 교회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벽돌에 부딪혔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렇죠? 뭡니까? 사람들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 다니기를 그만두고 좀 떨어진 곳에 조그마한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물론 무명으로 십일조를 꼬박꼬박 내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까 종종 감사연보를 드릴지 모릅니다. 지금껏 신앙경력이 있지습니까? 총각 집사로서 왕년에, 그리고 지금도 직분이 있는데 어떻게 주일 예배를 빠지겠습니까? 좀처럼 쉽게 주일예배 빠질 리도 없습니다. 자기 몫은 한다고 부끄러움 없이 목사인 저에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렇게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고백하는 성도의 바람직한 모습이 결코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혼자서도 못하지만 언제까지나 익명으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중직자가 되었는데도 이름을 밝혀서 절기연보에 동참하지 못할 정도라면 회복되어야 합니다.

많은 헌금을 드리면서 무명으로 하는 것은 성숙한 신앙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보 액수가 너무 적어서 자기 직분, 이름을 밝힐 수가 없다고 하면, 그래서 못쓴다고 하면 한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저는 이전에도 한번 말씀드렸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어떻게 하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안수집사, 권사, 장로, 목사 그렇게 중직자가 되면 자기 이름을 밝혀서 떳떳하게 자기 몫을 감당해야 합니다. 온지 얼마 안 되는 분들이야 무임승차하는 것이 가능하지요. 그러나 우리가 이 교회 중직자라고 하면 우리는 자기 몫을 감당해야만 합니다. 소액의 연보 때문에 이름 밝힐 수 없다면 헌신이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형편에 맞게 드린다면 액수 때문에 이름 밝히지 못할 이유가 뭐 있습니까? 하늘의 하나님이 아시고 내 양심이 아는데 “내가 수입 뭐 있습니까?” 그래서 하는 것 같으면 부끄러울 것이 전혀 없습니다.

사실 이렇게 말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여러분이 얼마 헌금하는지 살펴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아마 수년은 된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특별히 누구를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 전혀 아닙니다. 그러나 원리적으로 말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저 기억에는 제가 온지 팔년 됩니다 마는 지난 오년 동안에는 개인적으로 누구 살펴본 적이 없습니다. 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울산교회 주인으로서 신앙생활 한다면 그건 기본이 아니겠습니까?

지난 주 토요일에 우리가 방문했던 수도권 교회 가운데 한 교회의 담임 목사님께서 자기가 250명 교인을 데리고 분립개척을 해서 4년 만에 900명으로 자기 교회가 성장한 요인을 정직하게 밝혀주셨습니다. 그동안 증가한 650명 가운데 95%는 다른 교회에서 수평 이동해온 교인들이라는 것입니다.

“떠돌아다니는 신자”가 그 만큼 많다는 것입니다. 어찌 수도권만의 현상이겠습니까? 울산광역시에도 더 이상 희귀한 현상은 아닐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점점 더 보편화하는 추세일 것입니다. 내가 어느 교회 속해있다는 정체감이 없어요. 그러니까 책임감도 없지요. 그러니까 더더욱 하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떠돌아다니는 그리스도인이 늘어가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대우하기가 쉽지를 않습니다. 혹시 어쩌다가 주차 안내라도 조금 친절하게 안하며는 마음에 상처 받았다면서 그냥 떠나는 것입니다. 그렇죠? 한번 해 보세요 와서 직접 주차안내 한번 해보세요. 속상한 일 없는가. 저는 이렇게 비 오는 날 그분들 참 많은 수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분들이 기왕 수고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끝까지 참고 웃음으로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인지라 또 어떤 때는 욱하고 한마디 할 수도 안 있겠습니까?

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은 안돌아보고 남한테는 완벽한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는 손을 듭니다. 그래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완벽한 수준을 요구하면서 자신은 어느 정도 되는지 돌아보지 않으면 어떻게 함께 지내기가 쉽겠습니까? 다른 사람도 여러분과 같은 사람들 입니다. 신앙생활 10년, 20년 해도 성숙하게 처신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가 내가 속한 교회, 내가 헌신하는 교회라고 하면 우리는 그런 사소한 문제 가지고 옮기겠다 말겠다 그렇게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단지 믿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속되는 것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마는 어느 지역 교회인지 소속 되어야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총각 집사로 헌신했고 지금도 어느 교회에선가 중직자로 임직까지 받았는데 그냥 한 교회 가서 예배 참석하고 자기 십일조 내고 그런다고 신앙생활 한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결혼과 같지 않습니까? 결혼 했으면 배우자에 대해서 헌신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배우자가 시원치를 않아도 끝까지 헌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결혼생활을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되기로 주님을 구주로 모셨으면 몸 된 교회에 소속되어서 헌신하는 것 그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고백하는 신자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 속에 있을 때에 신앙생활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사오며” 무슨 이야기 입니까? 서로 왔다 갔다 하는 이것이 있어야 제대로 된 교제 입니다.

아직도 울산교회를 가리켜 “이 교회”라고 말하는 성도 여러분,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교회”라고 부르는 자리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단지 새 가족 과정을 마치고 수료식에 참석해서 환영받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있는 몸의 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몸에서 분리되면 바로 접합수술 하지 않으면 그 분리된 한 동강이 지체는 죽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특정한 교회에 헌신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를 향해 “우리 교회”라고 부르지 못하는 교인은 건강한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그러면 그런 분들을 향해서 울산교회를 우리 교회라고 부르는 여러분과 제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많은 교회들은 일단 개인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나면 교회의 임무가 끝났다고 착각을 합니다. 이제 그가 교회의 교인이 되는 것은 자기 헌신에 달렸다고 잘못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 영혼을 두고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 할 때에 우리가 그들을 일컬어서 태신자라고 불렀습니다. 태신자가 이제 교회에 출석함으로서 관심을 갖고 나오게 됨으로서 당장 바뀔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태에서 태어나면 아기지 않습니까? 그 아기 신자가 되었다고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 못합니다. 적어도 우리가 울산교회 신자라고 하면, 교인이라고 하면 처음 온 사람들을 향해서 사랑을 나타내야 하는데 무엇이 어려워요? 누가 처음 온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죠? 저도 8년을 여러분 앞에 서 있지만 아직도 이 사람이 처음 이번 주일이 왔는지 아닌지 좀 아리송한 사람이 사실 있거든요 그러니 저는 여러분을 향해서 늘 서 있는데도 그렇다고 하면 여러분은 앞사람 뒷꼭지만 보고 어떻게 사람들을 알겠습니까? 모르지요. 그러다 보면 인사가 잘 안나옵니다. 아는 사람 있으면 반갑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손뼉도 한번 같이 칠 수 있습니다. 아니까요.

모른다고 해서 그냥 지나간다고 하면 처음 오신 분들 섭섭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천명이 넘는 교인이 함께 예배를 했는데 나한테 아무도 아는 척 하지 않고 간다고 하면 여러분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개구리는 영원히 올챙이 때 시절을 모르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처음 나왔을 때 그때 입장을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냥 웃으면서 인사하나 하는 것, 모르면 무조건 먼저 인사하면 될 것 아닙니까? 잘 모르겠다 싶으면 아는 사람만 하지 말고 여러분들이 만약에 잘 모르겠고 싶은 사람에게 다섯 명만 주일날 인사하고 가십시오. 교회 분위기가 확 바뀌어 질 것입니다. 제 말 믿으시라니까요. 한번 해 보십시오. 저는 뭐 엄청나게 어려운 것을 여러분에게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사소한 것 순종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인사 받는 성도들의 마음에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울산교회를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면 무엇을 알고 싶어 할까요? 내가 여기 울산교회에 맞는 사람인가? 나를 받아 주는가를 궁금해 할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 위해서 관계를 갖도록 도와야 합니다. 비슷한 나이, 관심사, 문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관계를 가지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나올 때는 교회 이름이나 혹은 목사 명성을 듣고 온대요. 그런데 남아있는 경우에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친구들 때문에 이 교회에 남아있다고 그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교회 안에서 자신이 처할 자리를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소그룹으로 모일 때에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처음 오신 분들에게 “여기 울산교회에 여러분을 위한 자리가 있습니다.” 라고 내어 드릴 수가 있어야 됩니다. 실제로 예배할 좌석조차도 어떤 때 못 내줘서 쩔쩔 매는 것을 보면 뭔가 대책이 서긴 서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우리 울산교회에 처음 오신 분이라면 두 번째의 질문을 가질 것입니다. “울산교회에는 나에게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사람들은 누구나 개인적인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처음 울산교회를 찾았을 때를 기억한다면 여러분은 또 다른 질문을 가졌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울산교회는 나를 필요로 하는가?” 이것은 가치에 대한 질문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삶으로 무언가 공헌하기를 원합니다.

달리 말해 자신이 중요하다고 느끼고 싶어 합니다. 처음 오신 분들께 울산교회에 속함으로써 자신들의 재능과 은사를 사용하여 의미 있는 공헌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기꺼이 우리 교회의 일원이 되고자 할 것입니다.

교회를 다양한 사람들이 봉사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가야합니다. 단지 성가대원과 안대 위원, 그리고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는 것 말고도 교회에서는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안내해 주어야만 합니다. 온갖 재능과 능력이 표현될 수 있는 창조적인 곳으로 교회를 만들어 갑시다.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이 아름답고 선한 것처럼 하나님이 주신 각가지 은사가 소중하게 사용되도록 장을 창출해 갑시다.

그리고 처음 우리 울산교회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또 다른 질문을 할 법합니다. “이 교회의 교인이 됨으로써 내가 얻는 유익이 무엇인가?” 이것은 “혜택”에 대한 질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울산교회에 소속됨으로 비로소 거룩한 공교회의 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는 본문에서 읽은 것처럼 “하나님의 권속” 즉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교회라고 부르는 한 누릴 수 없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특권을 울산교회를 우리 교회라고 부를 때 여러분은 맛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울산교회가 제공하는 모든 유익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영아 부부터 경로대학에 이르는 모든 교육과정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가족 과정부터 시작해서 새생명 훈련, 성경대학, 각종 세미나, 제자훈련까지 여러분은 주인으로서 동참할 수 있습니다.

울산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가질법한 마지막 질문이 있습니다. “울산교회 교인이 되면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기대에 대한 질문입니다. 교인이 되는 혜택도 분명하게 제시되어야 하지만 그 책임도 분명하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교인이 되기 전에 교회가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 권리가 있습니다. 무조건 가입만 시키고 끝나버리는 보험이 아니라 우리가 그 보험에 가입하면 어떤 혜택이 있는지 분명하게 알아야 여러분은 시작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인이 되는 것은 물론 헌신하는 것입니다. 헌신 없이는 교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또한 동시에 여러 가지 혜택이 따릅니다. 여러분이 우리 울산교회에 일원이 될 때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축복의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따라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힘과 격려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은사를 발견하여 사역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나름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으셨는데 그 여러분의 특성 여러분의 은사를 살려서 여러분은 봉사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언제나 손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참여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보람을 느낄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생명 사랑 나눔의 공동체 울산교회는 여러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비시키는 일을 도와 줄 것입니다. 예배 공동체로서 울산교회는 여러분과 함께 뜨거운 감격이 있는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교제 공동체로서 울산교회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지원과 격려를 통하여 삶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성도로 만들기를 원합니다.

교육 공동체로서 울산교회는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고 성경적 원리를 여러분의 각자의 삶에 적용하여 여러분의 믿음을 강화시켜 줄 것입니다. 봉사 공동체로서 울산교회는 여러분 각 사람의 재능을 발견하여 다른 사람을 섬기는데 사용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선교공동체로서 울산교회는 가까이는 친구와 가족을, 멀리는 방언과 족속, 나라와 민족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여러분의 사역을 잘 감당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떠돌이 교인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소속이 없는 교인은 마치 팀이 없는 축구선수와 같습니다. 소속 부대가 없는 군인과 같습니다. 오케스트라가 없는 튜바 연주자나 다름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다시 말하면 가족이 없는 아이와 같습니다.

그리고 소속이 분명하지 않는 교인은 살아있을 때뿐만 아니라 돌아가셔도 문제가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 한분이 돌아가셨는데 저희 교역자들이 갔어요. 갔더니 다른교회에서 또 와있는 것입니다. 왜? 이교회, 저교회 걸쳐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집례를 해야 할지 저쪽에서 집례를 해야 될지 이게 애매해서 말입니다. 도대체 돌아가신 후에 어느 교회가 장례를 집례를 해야 할지 애매하게 만들지 마시고 살아있을 때 소속을 분명히 하십시오. 오늘 우리는 울산교회 교인임을 확인하는 헌신서약을 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신년 첫 날 저녁에 제직 헌신예배를 드리면서 제직 헌신선언의 성경적인 근거를 살피고 헌신선언에 동참했습니다. 오늘 예배는 그 연장선상에서 제직으로서는 재 헌신을 결단하고 일반 성도들도 헌신을 서약하는 자리를 가지기를 원합니다. 자신이 울산교회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밝힐 수 있는 사람은 울산교회 교인서약에 동참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헌신의 세례의 헌신이 있습니다. 이제 울산교회 교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울산교회에 속한 다른 그리스도인에게 자기를 드리는 헌신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 신자는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되어 있듯이 서로에게 헌신되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것이 초대 교회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자신을 주께 드렸을 뿐 아니라 상호간에 드린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 8:5).

서로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바로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 것을 표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설교 들으셨죠? 깃발이 휘날리면 뭐라고요? 여왕이 성에 있다는 것처럼 우리가 서로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있을 때에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는 것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여러분 아십니까? 요한복음 3장 16절을 외울 수 있는 분들은 요한 일서 3장 16절도 외워야 되겠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우리는 주께 속한 자들인 동시에 서로에게 속해있는 사람입니다. 서로에 대해서 헌신해야만 여러분은 건강한 성도입니다. 서로라는 말이 신약 성경에는 50번 이상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서로를 격려하고 권면해야 합니다.

서로 문안하고, 섬기고 가르치며 용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서로를 높이 여기면서, 서로의 짐을 지고, 서로를 용서하며, 서로에게 순종하며, 서로에게 헌신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교회와 음식점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음식점은 돈 내고 여러분 먹고 싶은 음식 사먹고 나오면 됩니다. 그것이 영화관과 예배당이 틀리는 점입니다. 여러분 자리에 앉아서 영화보고 끝나고 가면 끝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여기서 함께 앉았을 때뿐만 아니라 돌아가서도 우리는 소그룹에 속해서 서로에게 헌신하는 삶이 뒤따라야 건강한 성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울산교회의 교인이 된다는 것은 이런 성경적임 명령을 수행하기로 결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아무것도 다른 짐을 지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분명하게 교인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제가 울산교회 교인 서약에 넣었습니다. 주저 하지 말고 여러분이 울산교회 교인이라고 생각하면 동참하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라기는 여러분의 서약을 통해서 구주대망 2003년 하반기 우리 울산교회가 새로워지기를 소원합니다. 먼저 모든 제직들이 지난 6개월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남은 6개월을 내다보며 재 헌신하도록 재직들이 먼저 일어설 것을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제직 여러분 1월 1일 저녁에 헌신하기로 결단하신 제직 여러분, 남은 6개월을 다시 헌신하기로 결단하는 마음으로 자리에 한번 일어서 주십시오. 울산교회 1200여 제직들은 자리에서 일어서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이어서 자신이 울산교회 교인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오늘 올때 까지는 이 교회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부터는 우리 교회라고 내가 말하기로 생각하는 분들은 자리에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헌신 서약을 한 다음에 성찬의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울산교회 교인 선언문

1. 우리는 울산교회 교인으로서 울산교회의 하나됨을 위해서 힘써 노력하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다른 성도들을 사랑으로 대하겠습니다.
둘째, 우리는 다른 성도들에 대해서 수군거리지 않겠습니다.
셋째, 우리는 교회의 지도자들을 따르는 일에 힘써 노력하겠습니다.

2. 우리는 울산교회 교인으로서 교회에 대한 책임을 나누어지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울산교회의 성장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둘째, 우리는 믿지 않는 이웃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일을 힘쓰겠습니다.
셋째, 우리는 울산교회를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환영하겠습니다.

3. 우리는 울산교회 교인으로서 교회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우리의 은사와 재능에 따라서 교회를 섬기겠습니다.
둘째, 우리는 섬기는 훈련을 받음으로써 교회를 섬기겠습니다.
셋째, 우리는 섬기는 자의 마음을 가짐으로써 교회를 섬기겠습니다.

4. 우리는 울산교회 교인답게 처신하므로 교회의 이름을 높이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예배에 잘 참석함으로써 울산교회의 수준을 높이겠습니다.
둘째, 우리는 경건한 삶을 추구하여 울산교회의 덕을 세우겠습니다.
셋째, 우리는 정한 예물을 드림으로써 울산교회 비전성취를 힘쓰겠습니다.

나는 매일 매일 이 선언을 기억하고 울산교회 교인답게 살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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