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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향기로운 냄새를 드리자 / 레 1:1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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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냄새를 드리자
레위기 1 : 1 - 9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만남의 교재는 제사 즉, 예배를 통하여 가능했습니다. 이러한 거룩한 교재를 가능케 하기 위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제사법을 지시하셨습니다. 그것은 제물을 모두 불에 태워서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를 드리는 번제라고 하는 제사법입니다. 구약의 이 번제를 통한 신약의 예배는 구약에 나타난 제사제도의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사 구약의 번제가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Ⅰ. 구약의 번제물의 종류입니다.

본문 1장 2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예물}( , 코르반)의 동사 '카랍'( )은 '바쳐드린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물'이라는 말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가지고 가서 바치는 제물이란 의미입니다. 예물이라는 말은 번제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지는 모든 것의 총체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 중에는 5가지가 있습니다. 즉 그 중에 번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이 4가지는 동물을 희생시켜 드리는 제사법이고 다른 한가지는 소제라고 하는데 이것은 일용할 양식으로 드리는 제사법입니다.

번제는 이 다섯 가지 제사 중에 가장 기본적인 제사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제물을 드리는 단을 총칭하여 번제단이라고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번제물은 다음과 같이 3종류로 정해졌습니다.

1) 흠 없는 수소라고 했습니다. 본문 1장 3절에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지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번제}( , 오라)는 '피워 올라가다'라는 뜻입니다. 번제(燔祭)란 희생제물을 불에 태워서 그 냄새를 하나님께 피워 올려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제사는 반드시 피 흘리는 제사입니다.

2) 흠 없는 수양과 수염소라고 했습니다. 본문 1장 10절에 {만일 그 예물이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라고 했습니다. {흠 없는}이란 말은 제물로 드릴 짐승이 신체적으로 아무런 결함이 없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제물에 대한 필수적인 조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제물은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과 관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차 신약 시대에 흠 없고 죄 없으신 몸으로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제물이 되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기 때문입니다(히 7:20). 번제와 속건제의 경우에는 수컷이어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남성 여성의 성차별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의식과 예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효력은 남녀 양성 모두에게 차등 없이 동일하게 적용되었습니다. 3)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라고 했습니다. 본문 1장 14절에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삼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식용으로 사용되는 집비둘기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소나 양이나 염소를 살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마련한 제도입니다. 이것은 구속의 은혜에는 빈부귀천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입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아기를 주께 드리고 비둘기 한 쌍을 제사 드리려 한 것은 당시에 그의 가정이 얼마나 가난하였던가를 보여줍니다(눅 2:24). 여기에 마리아가 드린 비둘기 한 쌍은 하나는 번제로 하나는 속죄제로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레 5: 7-10). 구약의 이러한 제물은 장차 신약에 나타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수소는 고난과 인내를 상징하고 수양은 겸손과 순종을 상징하고 비둘기는 온유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모든 상징들의 실체가 되었고 그가 친히 제사장이 되시고 그가 친히 영원한 번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이러한 제사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Ⅱ. 구약의 번제를 드리는 방법입니다.

1) 제물에 안수한다고 했습니다.

본문 1장 4절에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안수}(사마크 야도, )는 자신의 손을 얹는다는 말인데 그 의미는 제물을 드리는 자가 직접 자신의 손을 제물 위에 놓아야 하고 얹을 때 힘껏 누르면서 얹어야 했습니다. 안수(按手)는 피차간에 서로 연합을 상징하는 행위입니다.

안수의 목적은 자신의 것을 타인에게 건네주기 위함입니다. 제사장은 그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드리는 자의 죄를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제물이 태워질 때 제물을 드리는 자의 죄도 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물을 드리는 자가 직접 피를 흘리지 않고도 자신과 연합된 안수 받은 제물의 피흘림을 통해 자신의 죄를 속함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물을 드리는 자는 자신의 죄를 가지고 죽어 가는 제물을 보면서 속죄의 은총에 감사해야 합니다.

2) 제물을 잡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본문 1장 5절에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여기 {수송아지}( )는 직역하면 '소의 아들'이라는 말이 되는데 이 말은 일년 된 송아지와 성숙한 소에 함께 사용되는 단어로서 어떤 경우에든지 늙지 않은 어린 소에 해당하는 의미입니다.

여기 {잡는다}는 말 자체가 거칠고 처참한 죽음을 연상시킵니다. 이처럼 인간들의 죄 때문에 흠 없는 동물들이 죽임을 당한 것은 장차 이 세상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희생되실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표입니다(요일 2:2; 갈 3:13). 그리고 잡은 짐승의 피를 단 사면에 뿌리는 것은 하나님께 이 제물이 온전히 바쳐졌음을 보여드리는 공개적인 행위입니다.

3)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야 한다고 했습니다.

본문 1장 6절에 {그는 또 그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짐승의 가죽을 벗기는 이유는 첫째는 성결의 의미로 가죽을 벗겼습니다. 둘째는 제물의 완전한 헌신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벗긴 가죽은 제사장이 가지고 갔습니다(레 7장 8). 각을 뜨는 첫 번째 이유는 제물의 각 부위에 불이 잘 타도록 하기 위함이요 둘째 이유는 그 제물을 빠짐없이 모두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4) 제물의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어야 한다고 했습 니다.

본문 1장 9절에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는다는 말은 아직도 내장에는 짐승이 먹었던 음식물이 소화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갱이 역시 땅에 접촉한 부분이기 때문에 성결상 씻어야만 했습니다(출 20장 17).

5) 제물은 불살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본문 1장 9절에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고 했습니다. 불살라 번제를 드린다는 말은 제물을 불에 태워서 연기와 김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기 위하여 제물의 각 부위를 정성껏 불에 태운다는 말인데 이로써 번제는 끝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화제(火祭)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고 했습니다.

짐승을 잡아 화제로 드릴 때 나는 냄새를 가리켜서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후각으로 생각할 때 고기 태우는 냄새가 향기가 난다는 것은 이상합니다. 오히려 비위를 거슬리는 냄새일 것입니다. 여기에 『여호와께』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후각에는 좋은 냄새가 되지 못할지는 몰라도 하나님께는 향기로운 냄새라는 말입니다. 특별히 여기 {향기로운}( , 니호아흐)이라는 말은 '편안한'(comfortable) 혹은 '휴식'(restful)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고 평화로운 상태가 지속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제물을 드린 자와 거룩한 교재를 하시면서 그를 만족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를 가리켜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했습니다(엡 5:2). 예수님은 우리의 평화입니다.

그는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이 향기로운 제물은 곧 샬롬을 가져왔습니다. 이 샬롬은 세상이 주는 평화(peace)는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참 평화가 없습니다. 참 평화는 영혼의 평화입니다. 따라서 이 평화는 하늘 위에서 내려온 평화입니다.

그래서 우리 찬송가 469장에도 "이 땅 위에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우리 모두다 예수를 친구 삼아 참된 평화를 누리겠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진정한 의도는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자기 백성들이 주 안에서 순종하는 모습을 기쁘게 받아들이신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친히 우리를 위하여 향기로운 제물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와 만족하게 교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저와 여러분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 것입니다.

Ⅲ. 구약의 번제가 신약의 예배에 주는 진정한 의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3절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구약의 사람들은 아직 신약에 나타날 어린 양 되신 예수를 보지 못하고 죽었다는 말입니다. 제사장들이 드렸던 구약의 번제나 예수님께서 친히 제물이 되셨던 십자가의 죽음이나 그 목적은 동일합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의 번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예표이며 상징일 뿐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제사였습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번제와 속죄제를 드림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 신약에 우리의 영원한 제물로 나타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오실 메시야를 믿고 구원받았고 신약의 사람들은 약속대로 오신 메시야를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의 예배는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번제물은 철저히 신약에 나타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오늘에 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를 드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은총에 감사해야 합니다.

번제물에 대한 안수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므로 번제물인 짐승에게 자신이 받을 형벌을 대신 받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한 영원한 제물이 되셔서 우리의 죄 문제를 십자가의 보혈로 단번에 해결하셨다는 믿음을 가지고 예배하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교통이 이루어졌다는 확신을 가지고 교회 운동을 해야 합니다.

2) 산제물이 된다는 사명감으로 교회운동을 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습니다. 번제는 짐승의 모든 부위가 불에 태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온전한 희생이요 빈틈없이 완벽하게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물이 되는 예배 행위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찬송도 희생도 봉사도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받은 우리의 자세는 분명히 그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거룩한 사명으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바로 신약의 교회운동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받기로 작정된 택자를 찾는 사명이 오늘 신약교회가 받은 사명이며 우리의 예배는 이것에 대한 서원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에바브로디도편에 보내 준 선물로 자신의 생활이 풍부해졌다고 하면서 빌립보서 4장 18절에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짐승을 잡고 태우는 냄새가 결코 향기로울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향기롭다고 한 것은 신약에 나타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아름답다는 말입니다. 그 희생이 향기로운 냄새가 되어 온 세상에 가득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정결한 제물이 되셨습니다. 구약에 번제물과 번제를 드리는 방법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넉넉히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엡 5:2; 빌 4:18; 요일 2:2).

바로 이 번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그 모습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항상 진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저와 여러분은 이미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구원받기 위하여 예배하는 것과 이미 구원받은 데 대한 감사로서의 예배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는 때로는 무기력할 수 있고 실망할 때도 있지만 후자는 전자와는 달리 항상 타오르는 감격과 감사로 충만한 것입니다. 내가 살까 죽을까, 될까 안될까 하는 불확실 속에 사는 사람은 항상 불안하고 초조하고 주위 환경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에서 살아난 감격으로 삽니다. 확실한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케 되는 소망 안에서 살아갑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걱정과 근심이, 불안과 초조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마침내 우리의 몸과 마음과 정성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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