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용서는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 몬 1:8-22

  • 잡초 잡초
  • 402
  • 0

첨부 1



 
용서는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 : 빌레몬서1장8절-22절
--------------------------------------------------------------------------------

빌레몬은 사람 이름입니다. 이 사람은 골로세 교회에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가슴이 뜨거운 사람입니다. 그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울의 전도로 예수님을 믿은 사람입니다.(몬1장19절). 그로 인해 그의 전 가족도 예수를 믿었습니다. 여기 압비아는 빌레몬의 아내입니다. 아킵보는 빌레몬의 아들입니다. 당시 골로세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골로세뿐 아니라 당시는 다 지금처럼 교회 건물이 있었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특정한 사람 집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빌레몬은 자기 집을 예배 처소로 제공했습니다. 그만큼 믿음이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여러 편지를 쓴 사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서신은 빌레몬서뿐입니다. 이것은 빌레몬이라는 사람에게 오네시모를 잘 봐 달라는 편지입니다. 지금 바울은 로마 감옥에 있습니다. 오네시모는 도망 군인, 종으로 아마 주인의 것을 손해 냈을 것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에서 바울을 만나 신자가 되어 바울은 언제까지나 숨겨 둘 수는 없었습니다. 때마침 로마에 온 에바브라가 오네시모를 골로세인의 종으로  알아 본 때문에 사실이 폭로되고 본인도 과거를 깨끗이  자백한 것이라 합니다. 사실은 바울은 자기 곁에 두고 싶었습니다. (12절) 남의 종을 말없이 그리할 수 없어 (13절) 오네시모를 주인에게 돌려보냅니다. 바울은 이 일을 두고 매우 고민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때 종이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일하는 도구로만 생각했습니다. 종은 주인이 마음대로 했습니다. 주인에게 생사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죽일 수도 있습니다. 맘에 안 들면 팔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당시의 종의 신분은 정말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종에게 제 것이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시간, 재산, 자식, 생명도 다 주인의 것이었습니다. 도망 군인 종을 잡으면 주인이 마음대로 벌하건 이마에 화인을 찍거나 심하면 십자가에  달아 죽였습니다. 그 때 로마에는 종이 6천만 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로마는 무너집니다. 그래서 종이 조금만 잘못해도 엄하게 다스렸습니다. 이 사정을 잘 아는 바울은 빌레몬에게 선처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오네시모에게 직접 쥐어주어 가게 합니다. 그는 빌레몬에게 이 종이 앞으로는 정말 너에게 유익한 종이 될 것이라 합니다. 바울은 정말 남에게 신세지기를 꺼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좀처럼 아쉬운 부탁을 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독 오네시모에 대해서는 간곡한 부탁을 합니다. 이는 잘 못하면 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형편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오네시모는 어떤 이유로 주인의 집에서 도망갔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서 복음을 영접합니다.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로 갑니다. 그는 이미 모든 것을 각오했습니다.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간곡한 사정을 합니다. 오네시모가 너에게서 가져간 돈이 얼마인지는 모르나 저가 나를 봐서라도 탕감해 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면 내가 갚아주마 그러니 선처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이를 종으로 보지 말고 한 형제로 봐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그만큼 바울은 이 한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런 사람을 쉽게 용서 할 수 있습니까. 어렵지요. 용서는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오늘 용서는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라는 말씀으로 같이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I. 용서는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외웁니다. 용서해야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씩 용서해야 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쉽습니까. 어렵지요. 이는 뼈를 깎는 것처럼 어렵습니다.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용서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 용서하라 하신 것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원수가 주리면 먹여주라 하셨습니다. 그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 원수를 저주는 안 해도 과연 우리가 사랑할 수가 있습니까. 정말 어려운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늘 살아가면서 사랑이 좋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미워합니다. 용서를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은 늘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바울사도는 용서를 위해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내가 책임지겠다 합니다. 돈도 갚겠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용서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용서가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사랑 중에 사랑은 용서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무엇입니까. 용서입니다. 아무리 혼을 내어도 사랑입니다. 아무리 매를 들어도 사랑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미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방법입니다. 저는 목회학을 배우면서 교수님에게 목회는 부모의 마음으로 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지금 저는 가르치면서 그 말씀을 자주자주 인용합니다.

부모의 사랑의 핵심이 무엇일까요. 용서입니다. 야단치고도 곧 잊어버립니다. 그 밑바닥은 용서입니다. 용서가 있는 곳에 미움이 자리 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왜 자식을 용서 합니까. 이는 핏줄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네시모를 내가 감옥에서 낳은 내 아들이라 합니다. 이미 그는 바울의 믿음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이 아닙니다. 내 몸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자식입니다. 목숨까지 줄 수 있는 것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게 부모입니다. 그래서 야단맞는 자식보다 마음이 더 아픈 것이 부모입니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식을 미워하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바울은 오네시모에 대한 애정이 남다릅니다. 제발 용서를 바란다고 합니다. 빌레몬에게 사정사정합니다. 우리 마음의 문을 엽시다. 우리는 남이 아닙니다. 한 때 유행어가 우리가 남이가 하는 말이 유행되었습니다. 물론 이는 지방색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이 말은 정말 좋은 말입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이 아님을 말합니다. 옥중에서 낳은 내 아들이라 합니다. 그래서 빌레몬에게 사정을 합니다. 자식이 잘 못하면 부모가 가서 빕니다. 변상도 합니다. 이건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선입니다.

선이란 덕입니다. 덕이 무엇입니까. 덕(virture영어,Tugend불어, Vertu독어) 입니다. 덕이란 선을 실현하기 위한 인간의 영혼에 있는 여러 가지 능력입니다. 원래는 힘 또는 남자다움을 나타내는 말에서 온 것입니다 덕이 있다는 것은 선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선량한 사람은 유덕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덕도 선과 같이 인간이 추구 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최고의 덕이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의 극치가 용서입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남의 잘못된 일 때문에 남에게 빌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이 세상은 남의 잘못을 까발리는 일에는 전문가가 많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마음씨를 배워야 합니다. 빌레몬은 본래 마음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너그러운 사람이었습니다. 남을 많이 도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많은 담력을 얻어 이 편지를 씁니다. 빌레몬은 바울의 부탁을 잘 들어 줄 사람임을 믿고 이 편지를 씁니다. 바울이 그에게는 명령도 할 입장입니다. 그러나 그는 오리려 사정합니다. 정말 바울 멋진 사람이지요. 그의 제자에게 이런 태도는 우리가 배워야 할 좋은 본입니다.


II.빌레몬의 인격

오네시모는 정말 덕이 많은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존경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네시모를 자기가 곁에 두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돌려보냅니다. 빌레몬의 신앙 인격을 믿었습니다. 바울은 믿었습니다. 그는 이해심이 많았습니다. 남을 용서 해 줄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미 바울은 빌레몬의 마음을 잘 압니다. 그는 골로세 교회에 없어서는 안 될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는 골로세 교회 뿐 아니라 이미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우리는 어떤 인격입니까. 남이 나에게 상대하기 정말 편한 사람이지요. 남이 나에게 정말 부드러운 사람으로 남아 있습니까. 그 사람에게 가면 거절하지 않는다는 그런 사람입니까. 그 사람은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라는 것이 새겨져 있으면 좋지요.

그러나 그 사람은 부정적이란 인상은 본인도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다 손해 입니다. 우리는 늘 이런 인격자가 되려고 애를 많이 씁니다. 그러나 그게 쉽지는 않습니다. 늘 말합니다. 용서는 사랑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용서하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우리는 쉽게 남의 말을 생각 없이 합니다. 우리는 사람이 웅덩이에 심심풀이로 돌을 던집니다. 그러나 거기 개구리는 그 돌에 맞으면 직사 합니다. 우리는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말 한마디가 죽일 수도 있습니다. 남의 말 좋게 합니다. 

우리는 남의 말을 할 때에 이 말이 내 이야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몇 번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요즈음 높으신 분이 신문 때문에 어렵다고 합니다. 우리는 바른 말이라 해도 여러 번 생각하고 말해야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합시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말을 합시다. 사람을 칭찬하는 말을 합시다. 그러니 그 사람이 없을 때는 다른 사람의 말을 조심 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여기 빌레몬은 남에게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고 이 편지를 씁니다. 그만큼 빌레몬은 신앙이 거물입니다.

우리도 남을 위해 이런 글을 쓸 줄 알아야합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이 나를 그렇게 믿어 줄 만한 인격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남을 죽이거나 큰 피해를 주는 말이나 글을 얼마나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늘 남을 사랑하는 인격자가 됩니다. 바울이나 빌레몬이나 오네시모 다 하나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는 사이입니다


맺는 말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정말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바울은 감옥에 있습니다. 그는 오네시모라는 한 노예를 만납니다. 알고 보니 골로세에 사는 빌레몬의 종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이 전도해서 예수님을 ale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사람을 주인에게 돌려보냅니다. 당시 노예가 달아나가 잡히면 주인은 이마에 화인을 찍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나쁜 사람은 죽이기도 합니다. 오네시모는 도망 오면서 주인의 돈까지도 훔쳐 왔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편지를 씁니다. 오네시모는 내가 감옥에서 낳은 아들이니 제발 용서 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합니다. 그가 손해를 기친 돈은 탕감해 주리라 믿는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면 내가 그 빚을 갚아 주겠다고 합니다. 이는 용서는 이런 것이란 것을 잘 말 해 줍니다. 용서는 기독교의 정신입니다. 용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사랑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남을 용서 합시다. 우리도 빌레몬과 같이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 봅시다. 그리고 남의 장점을 말합시다. 부지중에라도 남의 인격에 험이 되거나 손해가 되는 말은 하지 맙시다. 늘 우리도 이런 사람이 되어 늘 진리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삽시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본 받아 늘 진리와 함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3년 7월 13일 설교원고 박충웅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