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를 의지하리이다 (시 56:1-13)

by 운영자 posted Jul 02, 2010 Views 236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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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의지하리이다 (시편 56:1-13)


1. 들어가는 말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이까?”(4, 11절) 오늘 본문에는 이 질문이 두 번씩이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을 다른 말로 바꾸면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으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신문사회면을 보면 금방 그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아침 조간신문만 보아도, 오늘날 사람들이 사람에게 행하는 일들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지난 3,4일 동안 보았던 신문의 사회면에는 이런 기사들이 실려 있었습니다. (1) 경남 창원 경찰서는 친딸(초등 6년)을 3년간에 걸쳐서 상습적으로 성폭행하고, 이를 알게 된 처를 2차례에 걸쳐 살해를 기도한 최모씨를 긴급체포 함(7월 2일) (2) 운전 중 걸려온 전화를 받기 위해 휴대폰을 찾던 코란도 승용차 운전자가 신호 대기 중이던 택시를 들이받아 뒷좌석에 앉아 있던 승객 두 사람이 그 자리에서 즉사함(7월 3일) (3) 서울경찰청 소속의 배모 일경이 고참으로부터 “기분 나쁘게 처다 본다”는 이유로 둔기와 주먹으로 얼굴 등을 구타당한 뒤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다 2달여 만에 사망(5일) (4) 북한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는 지난 7월 1일 대표 담화를 통해 “미국이 우리를 반대하는 재재 또는 해상. 공중봉쇄를 감행하거나 전력증강을 개시할 경우, 정전협정 파기로 간주하고 즉시 강력하고 무자비한 보복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함. 담화는 이어 “정전협정을 무시한 전력증강과 대대적인 무력의 집결, 정전 상대방에 대한 봉쇄는 실제적인 전쟁행위를 의미 한다”면서 “미국의 무모한 전쟁행위로 무고한 남조선 인민이 당하게 될 재난에 대해서는 미국이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임(4일).

그 외에도 신문에는 지난 주 동안, 지구촌 이곳저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행한 많은 사건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미군의 총격으로 이라크 어린이 사망, 이스라엘군의 가자 공습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18명 사상,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에서는 내전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가운데, “총을 든 소년들이 마약에 취해 풀린 눈으로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거리를 쏘다니다 보이는 것마다 약탈하고, 소녀들을 강간 함”

오늘 우리는 정말 두려움으로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소식이라고는 모두가 다 이렇게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고, 공격하고, 죽이는 소식들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현대인들에게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어본다면 많은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다른 사람이 나를 미워합니다” “그가 나를 욕합니다” “그녀가 나를 비난합니다” “나를 겁줍니다” “나에게 상처를 줍니다” “나를 몰아내려고 합니다” 심지어는 “나를 죽이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아마도 우리들 가운데 많은 분들도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합니다”라고 대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그렇게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는 대답하기를 “Nothing!”, 다른 사람이 내게 할 수 있는 것은 한 마디로 “아무 것도 없다”고 대답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대적들을 향하여 서 계시므로,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여러분들 가운데는 지금 이 순간 이런 생각이 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거야 다윗이니까 그렇게 대답할 수 있었겠지. 다윗은 왕이고, 그를 호위하는 많은 군사들이 있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는 요새화된 왕궁 안에서 살고 있지 않았는가? 그러니 누가 감히 다윗을 해할 수 있었겠나? 그러므로 다윗은 ‘사람이 내게 어찌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었겠지”
성도 여러분, 과연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2. 몸 말

1) 시편의 배경

여기 오늘 본문에 보면 원수들의 세력에 온통 둘러싸여 있는 한 사람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그가 바로 다윗입니다. 물론 다윗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모와 고통과 위협을 겪었는지 모릅니다. 특별히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그의 앞선 왕이었던 사울로부터의 위협과 핍박은 실로 그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였습니다. 사울왕은 다윗이 반역자요, 패역무도한 범죄자라는 부당한 누명을 씌워, 그의 생명을 여러 차례 위협했습니다. 결국 다윗은 주전 약 1020년에서 1010년 까지 약 10년 동안 정든 고향 땅을 등지고 피난 생활을 했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땅에서는 더 이상 살수가 없어서 그 당시 이스라엘과는 적대관계에 있었던 블레셋의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시편 56편은 다윗이 이렇게 10년이라는 긴 방랑세월 중 블레셋 땅 가드로 피신하였다가 도리어 블레셋인들에게 사로잡히게 된 상황에서 고백한 시입니다. 

다윗은 이전에 블레셋의 대장군이었던 골리앗을 죽인 장본인으로서, 블레셋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에 다윗은 블레셋의 국가발전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 원수였습니다.(삼상 17장) 때문에 그들은 이전부터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그러던 차에 다윗이 사울왕의 위협을 피하여 제 발로 블레셋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에서 볼 때, 다윗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급박하고 위험한 것이었는가 하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삼상 21장 13절의 기록에 의하면, 이 때 다윗은 그곳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침을 수염에 흘리면서 미친 척까지 해야 했습니다. 즉 다윗은 이 때 블레셋 왕궁에서 미친 척하며 그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비참한 신세에 놓여 있었습니다.(삼상 21:10-15) 그러므로 다윗의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이까?”라는 고백은 그가 강력한 왕으로서 떵떵거리면서 왕궁에서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1절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합니다”라는 말씀은 다윗이 블레셋에 있는 동안 블레셋의 많은 방백들로부터 압제와 조롱을 당하였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절의 “나의 원수”라는 말은 블레셋 땅으로 피한 다윗을 헤치려고 한 블레셋인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모두 다윗을 “삼키려 하여 그를 치는 자들”이었습니다. 5절에 “저희가 종일 내 말을 곡해하여 내게 대한 저희 모든 사상은 사악한 것이라”는 말대로 원수들은 다윗이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을 왜곡하여 해석하였고, 그것을 빌미로 다윗을 헤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6절의 말씀대로 끊임없이 다윗의 생명을 엿보았고, 다윗을 죽이려고 24시간 내내 그의 종적을, 즉 행위를 살피었습니다.
 
2) 하나님만을 의지함

그러나 다윗이 이러한 삶의 가장 밑바닥에 처한 상황 속에서도 한 가지 놓치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는 오늘 본문의 전반부에서 우리가 방금 살펴 본대로 자신이 처한 위급한 상황에 대해 하나님께 호소하면서, 동시에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그의 신앙을 강하게 표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본문 3-4절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 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이까?”

다윗은 그 환란의 날에도, 그 두려움으로 가득 찬 날에도, 원수들이 호시탐탐 그를 죽이려고 노리고 있는 그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결단코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라고 하는 말 가운데, “의지한다”는 말씀은 일인칭 미완료형의 동사입니다. “바타흐”라고 하는 이 동사는 “어디에 꼭 매어 달리다”(Cling to)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마치 어린 아이가 어머니에게 착 달라붙어 안겨 있는 것과 같이, 어떤 대상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가지고 그를 완전히 의지하여 그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긴 모습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제 막 젖을 뗄 무렵의 아이들, 그리고 낮을 가리기 시작한 아이들이 엄마 품에 안겨 있을 때, 그 아이를 다른 사람이 안아보려고 하면, 그 아이가 어떠한 반응을 보입니까? 엄마 품에서 안 떨어지려고 하지요. 만일 누가 강제로 그 아이를 떼어내려고 하면 결국 그 아이는 울고 말 것입니다. 지금 다윗이 하나님을 의뢰하는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그는 원수들이 그를 죽이려 하고, 그를 하나님으로부터 떼어놓으려고 하지만, 하나님을 마치 나의 어머니처럼 꼭 붙들고 그 분을 놓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그 시제가 미완료형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하나님께 대한 계속적인 신뢰를 나타내는 동사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잠시 힘들 때만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그가 흥할 때나, 그가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나, 계속해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가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다윗이 이렇게 삶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의지하였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님만을 의지하였던 것입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참으로 의지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참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오늘 다윗의 고백 속에서 구체적으로 그가 하나님을 의지한 세 가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함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즉 다윗이 참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한다 할 때, 그것은 먼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4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 하올지라.” 여기서 “그 말씀”은 물론 넓게는 다윗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모세 오경”과 “여호수아서” 그리고 “사사기”의 하나님 말씀 전부를 뜻합니다. 그러나 시편 56편 말씀이 성경 여러 곳(시 118:6, 롬 8:31, 히 13:5-6)에 인용된 것을 보면, 여기서 “그 말씀”은 보다 특별한 말씀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셨으므로(삼상 16:1-13), 항상 그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의 “그 말씀”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히브리 기자는 오늘 본문을 히 13:5-6절에 인용하고 있는데, 거기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

이렇게 성경의 다른 곳에서 오늘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되, 그 내용이 하나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고, 지켜주시는 분이시므로 두려워 할 것이 없다는 고백을 하면서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다윗이 말하고 있는 “그 말씀”이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겠다는 바로 그 약속의 말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되,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의지하였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할 때에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머리 속으로, “나는 하나님을 의지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나는 하나님을 좋아하고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도대체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다윗은 여기서 그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그 분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함으로 찬송하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가 칼빈은 이 말씀을 해석하면서, 여기서 다윗이 말하고 있는 “그 말씀”이란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의 하나님이 되시고, 당신의 백성이 당신에게 부르짖을 때에 반드시 응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도 타지 아니 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속자임이라”(사 43:1-3)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의 말씀을 다윗은 굳건히 믿고 의뢰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 본문 4절 하반 절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 하였은즉,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여기 “혈육 있는 자”란 문자 그대로 “육체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지금 다윗을 괴롭히고 죽이려고 하는 원수들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다윗은 그들이 비록 두렵기는 하여도,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자신을 지키시는데, 감히 피조물인 인간들이 자기를 헤칠 수가 없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안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도 진정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정말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는 것입니까? 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젖뗀 아이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엄마의 품속에서 떼어가려고 할 때에, 엄마가 “응, 엄마 여기 있어. 엄마가 지켜줄게” 하면, 그 아이들은 두려움에 울다가도 엄마의 음성을 듣고 곧 울음을 그칩니다. 엄마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그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젖뗀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한 믿음, “주께서 말씀 하시오니, 믿고 감사하오며, 두려움 가운데서 오히려 찬양을 드립니다”라고 하는 고백이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너무나 세상의 흉한 소식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들려오는 난리 소식, 실직의 소리, 노동자들의 데모 소리, 정치가들의 서로 비난하는 소리, 이런 저런 소식에 조석으로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세상의 흉흉한 소식에 그 마음이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속에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의 약속의 말씀을 굳건히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아무리 세상이 요동을 쳐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미 오늘 말씀의 배경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지금 다윗은 원수들의 손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입니다. 주변의 환경으로 따지자면, 실망할 수밖에 없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볼 때, 한마디로 그는 지금 절망의 깊은 구렁텅이 속에 빠져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절망의 정점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오히려 “내가 그 약속의 말씀으로 인하여 찬송을 드립니다”라고 찬송하고 있습니다.(10절에서 다시 반복.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이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오늘도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며,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주십니다.
         
(2) 하나님께서 내 모든 고난을 아심을 믿음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자신의 모든 고난당함을 하나님께서 아심을 믿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다윗의 믿음은 막연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즉 다윗은 하나님께서 지금 자신의 모든 억울한 처지를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을 확신하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말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 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여기서 다윗은 아주 중요한 세 가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다윗의 유리함, 즉 도망 다니는 자신의 형편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의 생명을 쫓는 대적을 피하여 거의 10년 동안을 이방 땅으로, 광야로, 때로는 굴속으로 도피생활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심지어는 그 날들을 계수하시고 있음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다윗의 도망다니는 날을 계수하신 것일까요? 그것을 다 갚아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다윗은 이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가 지금 억울하게 쫓기면서 흘리는 모든 눈물을 눈물병에 담으신다고 말합니다. 고대 사람들의 풍습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를 애도하며 애정과 슬픔의 기념물로 눈물을 받아 눈물 병에 보존하였다고 합니다. 다윗은 압제 속에서 흘린 자신의 고통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는다는 이 표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고난을 세밀히 감찰하시어 구원의 손길을 베풀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다윗의 흘린 눈물을 눈물병에 담으시겠습니까? 그 흘린 눈물을 닦아 주시고영광으로 갚아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다윗은 바로 그것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또 다윗은 이 모든 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었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역사가가 인간의 역사를 낱낱이 책에 기록하여 보존하듯이, 하나님께서도 다윗의 흘리는 눈물과 유리 방황하는 고통의 날들을 책에 다 기록하여 잊지 않으실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윗이 말하고 있는 “주의 책”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말라기의 기록에 의하면 하나님 앞에 놓여진 “기념책”(Book of Remembrance)입니다. 이 책은 우리의 모든 행함을 다 낱낱이 기록하는 책을 말합니다. 우리의 말한 것, 우리의 행동한 것, 이 모든 것을 기록하여 놓는 책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사도 요한도 언급하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요한의 기록에 의하면 하늘에는 두 가지 책이 있는데, 하나는 생명책이요, 또 하나는 우리의 모든 행위를 기록한 책이라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 책을 해석하면서 두 가지를 지적합니다. 하나는 이렇게 우리의 언행심사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앞에 놓여진 이 기념책에 기록이 되므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용기와 힘을 주는 것이요, 그러나 안믿는 자들에게는 아주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이 비록 지금은 억울함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고, 빼앗김을 당하여도, 결국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책에 기록이 되므로, 반드시 우리의 모든 억울함과 고난은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이 세상뿐인 줄로 알고 살면서, 다른 사람들의 것을 빼앗고, 그래서 그들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모든 세상의 악한 자들은 결국 그들의 모든 악행이 드러날 것이므로 반드시 심판을 당하고야 말 것입니다. 다윗은 바로 이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지금 하나님의 기념책에 자기의 모든 고통과 눈물이 기록되어 지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다윗의 믿음은 자신의 모든 고난과 형편을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동안교회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환란과 질고를 모른다고 불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들은 얼마나 자주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내 삶속에 그리고 우리 가정에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의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 이해할 수 없는 환란과 어려움이 있는 분이 있습니까? 나 혼자 외롭게 버려져 있다고 남몰래 눈물짓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우리들의 고통과 눈물을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 앞에서 계수 되고 있으며, 우리가 주님을 사랑해서 흘리는 눈물, 그리고 이 세상의 악한 세력들에 의해서 환란과 핍박을 당하면서 흘리는 눈물을 주님께서는 당신의 눈물 병에 다 간직해 주시고 계십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이 사실을 다 깨닫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알 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다 깨닫지 못한다면, 이후에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이 계신 천국에 들어가는 날,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당했던 모든 일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눈에서 흐른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흘린 눈물과 고통을 싸매시고, 위로하시고,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섬기느라고 흘린 눈물을 당신의 눈물 병에 고이 간직해 주셨다가 “내가 네 눈물을, 네 수고를 안다”고 따뜻하게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이것을 먼저 보았습니다.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계 21:1-4)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흘린 모든 눈물을 우리 주님께서 친히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의 두 눈에서 우리의 눈물을 씻어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었고, 오늘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입니다.         

(3) 내 생애가 하나님 앞에(Coram Deo)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자신의 생애가 언제나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굳게 확신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하나님의 의지했던 믿음의 세 번째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coram deo),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치 않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다윗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때로는 원수들의 공격 앞에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하였으나, 이내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생애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진정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원수 앞에서 어떤 때는 미친 척까지 하면서 목숨을 부지하면서, 그럴 때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모든 사정을 아시고 계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환난 중에서도 오히려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0-11절에서 그는 다시 한번 외칩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네게 어찌 하리이까?”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억울할 때에, 내가 홀로 외로움으로 눈물지을 때에, 사랑하는 내 아내도, 사랑하는 내 남편도, 사랑하는 내 자식들도 나의 이 괴로움과 외로움을 몰라 줄 때, 우리는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누군가 단 한사람만이라도 나의 이 억울함과 답답함과 외로움을 알아준다면 다른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의 눈을 열어 바라보십시오. 오늘 우리들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은 결단코 외롭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억울함과 탄식을 아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진정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내 인생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을 아는 자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바라보고 계시고, 내가 하는 말과 나의 모든 것을 듣고 아십니다.

토요일 밤늦게까지 설교를 준비하고 있던 한 목사님이 너무 고단하여 그만 서재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책상에서 잠이 든 사이에 꿈을 꾸게 되었는데, 그 꿈은 다음 날의 주일 예배 장면이었습니다. 목사님은 힘들게 설교 준비를 마치고 예배당으로 달려갔는데, 예배당에는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상한 사람이 예배당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안내 집사가 인도하는 대로 그 사람은 자리에 앉았는데, 그의 모습은 위엄이 있었고, 예배에 아주 신중하였습니다.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데 마치 자기는 그 사람 하나를 향해서 설교를 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생각하기를 예배가 끝나는 대로 곧 저 분을 만나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목사님은 인사를 하면서 나가는 교인들 속에서 아까 그 사람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눈에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목사님이 안내 집사에게 “그 사람이 어디에 갔느냐?”고 묻자 안내 집사가 대답을 하기를, “목사님, 그 분이 누구인지 모르세요?”라고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그 분이 누구시냐?”고 물었고, 안내 집사는 “목사님, 그 분이 예수님 아니십니까?”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목사님은 속으로 크게 한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 그 분이 예수 님이었다니, 하필이면 오늘같이 설교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날 주님께서 오시다니...” 그러자 안내 집사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염려하지 마세요. 그 분이 가시면서 다음 주일 예배에도 또 오시겠다고 말씀을 했으니까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목사님은 잠이 깨었습니다. 그리고 이 목사님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그렇다! 내가 매번 설교를 할 때마다 주님은 예배에 함께 참석하셔서 나의 설교를 들으신다!” 이날 이후 목사님의 설교는 과거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그 목사님을 새롭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 교회에 큰 부흥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만든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미국의 보스톤에서 목회를 하던 고든(A.J. Gordon)이라는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모든 예배 때에 행해지는 설교를 주님께서 다 듣고 계신다는 이 믿음과 깨달음을 가지고 평생 그의 목회와 설교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그 분은 어디에 계시는 것입니까? 저 멀리 우리의 시선이 닿지 못하는 곳에 계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그 분은 우리 앞에 계십니다. 아니, 우리의 생이 그 분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살아계신 주님 앞에 있습니다. 예배드리는 지금 이 순간 주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상한 심령을 어루만져 주시고, 고치시고, 싸매고, 위로하시고자 주님의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 마십시오. 두렵습니까? 떨리십니까? 내 아버지가 내 옆에 서서 나를 지켜보시고 계심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용기가 생길 것입니다. 힘이 생길 것입니다.
 

3. 나가는 말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그 말씀을 신뢰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마 약속하신 그 말씀을 붙잡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찬송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찬송합니다. 아직 내 삶의 상황이 아무것도 변화된 것 없어도, 그 약속의 말씀으로 인하여 그 분을 찬양합니다. 상황이 절망적일수록 더욱 의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내 모든 사정, 내 깊은 한숨, 나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께서 다 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진정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내 인생이 불꽃같은 눈동자로 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인생인 것을 압니다.

여기 이 모든 것들을 아시고, 우리들 보다 더 안타까와 하시며,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씻겨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동안의 성도들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들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8-10)
이것이 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짧은주소 : https://goo.gl/1tek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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