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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국의 열쇠(9) / 마 16:13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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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7. 13 설교 천국의 열쇠(9) 마 16 : 13 - 20

요즘 우리는 천국의 열쇠는 오직 믿음이라는 단순하지만 그러나 매우 중요한 주제를 다루면서 과연 믿음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생각한 것은 믿음이란 하나님으로만 끈을 삼는 것으로 큰 물주를 좇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조물주만 믿고 좇아다니는 것이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 생각한 것은 믿음이란 하나님의 젓가락을 살펴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를 시험해 보는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잔치를 생각했고 창립 2주년이 되는 10월 첫 주일에 buffet, just for God!! 이름으로 정말 근사한 행사를 한번 하자는 결론을 내리는데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로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드리는 것이라는 내용의 말씀을 여러분들과 함께 생각하려고 합니다. 말로는 참으로 간단하고 단순한데 사실 그것은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을 거스르고 세상과 모순 되어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믿기가 참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시편 12편을 보면 다른 시편에서와 마찬가지로 다급하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다윗의 기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 이와 같은 다윗의 시편을 읽으면서 예나 지금이나 경건하고 충실한 자는 세상에서 살아남기가 참으로 힘들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마음을 품고 거짓말을 하며 강하고 높은 자에게는 아첨을 하고 낮고 약한 자들에게는 폭력을 행하여 저들을 억울하게 하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지금 뿐만이 아니라 다윗이 살던 세상도 똑같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마음으로 말하는도다>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의 혀로 이길지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그런데 경건하고 충실하여 세상에서 끊어질 자 중에 하나가 다윗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상상이 아닌 현실로 자신의 삶을 옥죄어 오고 있었고 그와 같은 상황은 아주 다급한 것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다윗은 시편 12편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기도 가운데 떠오르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기억하고 저들을 도와 줄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사실 어떻게 생각하면 다윗이 그 때 생각해 내고 기억해 낸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과 비교하면 아주 동떨어진 엉뚱한 말씀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안전지대에 경건한 자와 충실한 자를 두시겠다는 것이지만 다윗이 지금 처한 상황은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없어지게 된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윗은 바로 그와 같은 상황에서 전혀 상황과 맞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는 그 말씀을 그냥 믿어 버립니다. 조금도 의심 없이 믿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상황과 전혀 다른 엉뚱해 보이는 말씀에 대하여 우리 같은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시편 12절 6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지금 자신이 안전지대에 있게 되었다면 그와 같은 고백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지금 말씀과는 정 반대의 상황과 자리에 처하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말씀과 전혀 모순 된 자리에서도 다윗은 조금도 의심 없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요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라고 고백합니다. 도대체 다윗은 믿음은 좇아가기가 어렵습니다. 흉내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만큼 대단합니다. 너무 근사합니다. 너무 훌륭합니다. 저는 다윗의 믿음이 너무 부럽습니다. 저는 정말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다윗의 이와 같은 믿음이 부럽습니다. 경건하게 살다가 끊어지게 되면, 충실하게 살다가 망하게 되면 우리도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하여 거짓을 말하고 두 마음을 품고 강한 자에게는 아첨을 하고 약한 자에게는 허세를 부리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며 핑계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라고 고백한 후 하나님의 말씀을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은 믿음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다 망하게 되었는데도, 다 끊어지게 되었는데도, 다 죽게 되었는데도 하나님께 대한 경건과 충실함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비루해지지 않고 신앙의 지조를 지킵니다. 다윗은 시편 12편 8절에서 <비루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 때에 악인이 처처에 횡횡하는도다>라고 고백하는데 저는 그 고백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믿고 비루하게 살지 않겠다는 단호하고 결연한 의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과 하나님께 대하여 말씀에 대한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여호와여 저희를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존하시리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믿음대로 끊어지지 아니하고, 없어지지 아니하고, 죽고 망하지 아니하고 승리하였다는 것입니다. 승리를 해도 보통 승리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 다윗의 승리를 마태복음 1장 1절에서 발견합니다. 예수님의 족보로 복음을 시작하면서, 마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라고 기록합니다. 다윗은 믿음의 조상으로 유대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으며, 유대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게 까지 ‘다윗은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최고의 칭찬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다윗의 결국은 보면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히브리서 11장의 말씀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천국을 연 믿음의 조상임에 틀림이 없고 다윗을 보니 믿음이 천국의 열쇠라는 말씀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91년 12월 첫 주 동안교회에 부임하면서 교회를 말씀을 연구만하는 연구소 같은 교회보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연구한 말씀을 실험하는 실험소 같은 교회가 되게 하고 싶다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실험한 말씀이 있었는데 그것은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인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당시 동안교회는 6억 원 정도의 돈을 모아두고 새로운 교회 건축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대략 50억 원 정도 규모의 예배당 건축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동안교회는 32년 된 교회로서 세 번째 예배당 건축을 생각하리만큼 꾸준히 성장해 온 교회였습니다. 저는 무조건 교회가 예배당 짓는 일에만 관심을 쏟는 일에는 비판적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예배당 짓는 일을 잘못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때 상황은 예배당을 새로 지어야만 하는 상황이었고, 그와 같은 상황을 알고 짓게 되면 지으리라 생각하고 부임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32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성장해 온 교회가 밤낮 자기 교회만 생각하고 자기 예배당만 짓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에게 설교 중에 엉뚱한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십일조 예배당을 짓자는 것이었습니다. 십일조 예배당이란 우리 교회 건축 예산 규모가 50억 원 정도 되니, 그 50억 원의 십일조인 5억 원 정도 규모로 농촌이나 다른 지방에 개척교회를 하나 세워보자는 것이었습니다. 50억 원으로 우리 예배당만 지으면 힘들고 어렵겠지만, 55억 원을 들여 우리 교회와 함께 개척교회도 함께 건축하면 오히려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당회와 교인들이 그 설교를 옳게 생각하여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린 후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사무실에서 성경을 읽으며 묵상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잘 아는 마태복음 6장 33절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며 마음으로 이렇게 말씀을 걸어 오셨습니다. “십일조 예배당을 함께 짓겠다는 것 너무 좋은 생각이다. 정말 그렇게 한다면 너희 교회 50억 예배당 쉽게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왕 잘하는 거 조금 더 잘해 보면 어떻겠니? 십일조 예배당과 너희 예배당을 함께 짓지 말고 십일조 예배당을 먼저 지어 보거라. 보통 순서가 내 예배당 건축 먼저 개척교회 교회 나중 이지만 너는 한번 그와 같은 세상의 순서를 바꾸어 개척교회 건축을 먼저하고 너희 교회 예배당 건축을 한번 나중으로 미루어 보거라. 네가 개척교회 건축을 먼저 하면 나중에 너희 교회 예배당 건축은 내가 책임지고 해 주마” 저는 전혀 엉뚱한 말씀이었지만 그것이 바로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의 의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그런 생각이 들자 그것을 실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에게 그와 같은 설교를 하였고 교회와 당회는 그와 같은 상식을 뒤 엎는 것과 같은 설교에 아멘 해 주었습니다. 결국 일산에 종교부지를 사고 예배당을 짓고 목사 사택과 승용차 그리고 1년 생활비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94년 2월 20일 일산동안교회를 헌당했습니다. 약속이나 한 듯 꼭 6억 원의 비용이 들었습니다. 우리 예배당을 짓겠다고 모았던 돈 모두를 개척하는데 쓰고 만 것이었습니다. 일산동안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 가운데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개척 1년 만에 장년 출석이 500명을 넘어서리만큼 정말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였습니다. 지금 교회 개척 10년을 앞두고 있는 일산동안 교회는 생각만 해도 입을 다물 수 없으리만큼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한국 교회에 좋은 모델이 되었습니다. 일산동안 교회를 건축하고 재정적으로 빈손으로 동안교회를 건축하였습니다. 하나님은 50억 원 규모의 예배당을 생각하고 있었던 우리들에게 100억 원 규모의 예배당을 건축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100억 원 예배당을 건축하면서 또 다시 6억 원의 예산을 들여 대전에 대전동안교회를 건축할 수 있으리만큼 축복해 주셨습니다. 물론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예배당을 건축할 당시 재정 규모가 처음보다 약 4배 정도 늘어나 있었기 때문에 50억 원의 두 배인 100억 원 규모의 예배당을 건축하는 일을 능히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동안교회 건축은 정말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셨다고 하지 않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동안교회 건축 중에는 많았습니다. 공사 2년 동안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하루도 공사가 방해 받지도 않았고, 단 하루도 공사가 지연되지 않았습니다. 약속한 날 약속한 예산 안에서 정확하게 공사가 끝났습니다. 공사 중 IMF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저에게는 제 나름대로 마태복음 6장 33절에 대한 아주 독특한 간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세상과 다른 식으로 순서를 바꾸어 살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바라던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것도 하나님이 더 하여 주신다는 간증입니다. 그것을 바라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그것 까지도 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혹시 여러분 제가 설교 중에 ‘할렐루야!!’라고 외치는 것 들어보신 일 있으십니까?) 저는 이제까지 모내기 한 번 해 본일 없는 사람입니다. 농사에 대하여 전혀 무식한 사람입니다. 때문에 지금 제게 배추 씨와 무우 씨를 놓고 어느 것이 배추 씨고 어느 것이 무우 씨 인가를 구별하라고 하면 저는 전혀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설교 중에 그것을 구별하여 교인들에게 말씀을 전해야 한다면 저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것을 알아내 설교할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책을 보고 아는 방법과 무우 와 배추 농사를 짓고 있는 분에게 물어 보아서 아는 방법일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직접 심어보고 눈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저는 조금 시간이 가고 힘이 들어도 세 번 째 방법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보다 실험하는 것이 더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책을 보고도 얼마든지 알 수 있고, 물어 보고도 얼마든지 알 수 있지만 아는 것의 힘이 다릅니다. 그런 경우 설교를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 이렇게 될 것입니다. ‘무우 씨래 ....’ ‘배추 씨래 ....’ 말에 힘이 실리지 않습니다. 자연 설득력과 감화력도 현저하게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걸리고 힘이 들어도 심어보고 알게 되면 아는 것은 똑같아 보이지만 아는 것의 힘이 달라집니다. ‘ 무우 씨다!’ ‘배추 씨다!’ 말에 힘이 있습니다. 말에 설득력이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믿음이란 구체적으로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세상과 우리들에게 참 믿고 살기가 힘들어 보이는 엉뚱한 말씀으로 보일 때가 많습니다. 말씀대로 살다가는 망하기 십상이고 쪽박 차기 십상일 것처럼 보일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럴 때에도 세상과 자기의 상식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들은 동키호테처럼 볼는지 몰라도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밤에 운전을 하다보면 방향이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른 쪽이 서울인데 왼 쪽이 서울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저는 저를 신뢰하지 않고 쓰여 진 대로 운전을 합니다. 느낌은 꼭 반대로 가는 것 같았지만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운전할 때 저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표지판을 신뢰합니다. 저는 인생과 세상을 운전할 때 저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식과 싸인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의 상식과 느낌과 전혀 다르다 할지라도 저는 저와 세상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합니다. 저는 그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믿음은 정말 겨자 씨 보다도 작은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정말 말씀대로, 약속대로 그 겨자 씨만한 믿음에 산이 옮겨지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저는 하나님의 축복이 꼭 그런 식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넉넉함과 형통함과 성장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저의 넉넉함과 형통함과 성장에 대하여 비판하고 비난하지만 그것은 제가 한번도 하나님께 기도해 본 일이 없는 것들입니다.(양심을 걸고) 그런데 하나님은 그와 같은 것들을 저에게 더하여 주셨습니다. 저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하나님의 증거를 통하여 믿음이 천국의 열쇠가 된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저는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다윗의 복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처음부터 힘드시다면 아주 건방진 말씀이 되겠습니다만, 제가 받은 복부터라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풀어 주신 감당할 수 없는 은혜와 축복이 사랑하는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가정에도 충만하시기를 저는 진심으로 기도하고 바랍니다. 믿음에 생명을 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으로만 끈을 삼는 것,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젓가락을 생각하며 결국에는 하나님을 위한 잔치를 준비하는 것 그리고 철저히 자기와 세상을 부인하고 전혀 세상과 맞지 않고 엉뚱해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 위에 약속하신 천국의 열쇠를 우리들에게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모두 다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를 통하여 믿음의 은사와 복을 받으시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도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천국을 열고 닫으며 사시는 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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