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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쇠하지 않는 기업 (벧전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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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하지 않는 기업
벧전 1:1-4

3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1. 無常한 세상에서

이 세상은 자연의 생성 소멸의 법칙을 따라 진행되고 있습니다. 봄이 오고 여름이 되며 가을이 오고 겨울을 맞이합니다. 그러면서 새싹에서 시작한 생명들이 자라 무성하고 결실하여 풍성함을 이루지만, 곧 떨어지며 앙상해지는 소멸의 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부터 7-8월은 강단 꽃꽂이를 쉬게 될 것입니다. 꽃꽂이 봉사자들의 수고로 인하여 주일 아름답게 강단을 수놓아 예배 드리는 자들의 마음을 맑고 아름답게 해주지만, 여름 날씨 탓에 곧 시들어서 화요일 새벽이 되면 오히려 꽃들이 강단을 우중충하게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여름 두 달은 쉬게 될 것입니다. 

근래 몇몇 기회에 옛적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도 옛 모습이 많이 남아 그대로였습니다. 아니 오히려 40대 중반의 중후한 멋들이 잔득 베겨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저마다 안정된 자리들을 잡고 가정도 자녀도 별 모자람 없이 살아가는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들 중에도 벌써 세상을 떠난 친구들도 있고, 喪妻한 친구들도 있고, 병으로 누워있는 친구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더구나 요즘 사오정이란 말이 새로운 의미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 말은 "45세가 정년"이란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시편 90편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란 표제어가 붙어 있는 시입니다. 언제 어디서 창작한 시인지 알 길은 없어나, 이스라엘의 해방자요 國父인 그도 인생의 무상함을 탄식하고 있었습니다.

"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5)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 . . 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3-5, 10)

2.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더구나 우리 인생들은 나그네(strangers)입니다. 다른 말로는 순례자(pilgrim) 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도 베드로는 그렇게 불렀습니다. 나그네는 다른 이들에게도 이상한 사람들일 뿐 아니라 사실 자신에게도 이상한 사람입니다. 도대체 왜 그리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아직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귀천을 쓴 시인 천 상병 선생도 浮萍같은 인생에게 왜 날개가 없을까 하며 시를 썼습니다. 

    날개

날개를 가지고 싶다.
어디론지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싶다.
왜 하나님은 사람에게
날개를 안 다셨는지 모르겠다.
내같이 가난한 놈은
여행이라고는 신혼여행뿐인데
나는 어디로든지 가고 싶다.
날개가 있으면 소원 성취다.
하나님이여
날개를 주소서 주소서.

얼마 전 아버님 기일(35주기)을 맞아서 산소를 찾아갔습니다. 여름비에 흠뻑 젖어 우거진 잡초를 제거하다가 잠시 주위를 돌아보았습니다. 벌써 새로운 묘들이 많이 들어섰습니다. 비석의 이름들을 보니 아는 분들의 이름이 많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이름들이 그 위의 더 일찍 돌아가신 분들의 장례에 참례하며 그 산에 올라와서 조문을 했던 분들이었습니다. 위 묘 하관 할 때 내려다보시던 분들이 이제 그 아래 함께 묻혀있었습니다.

특히 뛰어 내려가서 본 묘가 있었습니다. 묘비 뒤에 흔히 자녀들의 이름을 세겨 넣는데 그 묘비만은 고인의 약력이 세겨져 있었습니다.

경북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상대 졸업/ 한국 과학원 석사/ 미국 남가주 대학교 경제학 박사/ 삼성 경제 연구소 연구원/ 대구대학교 교수

그래서 순간 뛰어내려가 보니 저의 고등학교 친구의 묘였습니다. 제 기억엔 2-3년 된 흐름이었는데 벌써 5년이 다되어 갔습니다. 1998년 5월에 묻힌 것으로 세겨져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순례자들입니다. 잠시 이 곳에 왔다가 돌아갑니다. 세상 자연물들만 소멸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젊다고 몸까지 그대로 있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의 손등을 보십시오. 제가 우리 장로님들 손등을 자주 봅니다. 그러면서 제 손등을 보면 참 좋습니다. 왜냐면 너무 싱싱합니다. 아직 혈색도 괜찮고, 피부도 훨씬 깨끗하고 부드럽습니다. 그 어른들의 손등엔 시퍼런 핏줄이 굵게 드러나 있습니다. 그리고 검은 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목욕탕에 가서 고등학생의 손등을 보면 저는 기가 죽습니다. 살깟이 살아 있습니다. 아직도 우유빛 같은 하얀 손등을 보면 제 손등은 꺼죽해 보이고 생기가 없어 보입니다.

30대 아주머니들 요즘 미시족이라고 하며 아직도 자기가 처녀 같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손등만 보면 당장 그 착각에서 깨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손은 너무나 정직합니다. 세월의 연수가 세겨져 있고, 돌아갈 길이가 짧아지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3. 그러나 우리에겐 산 소망이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3-4절)

生成은 하나님이 주신 복입니다. 그러나 消滅은 인간이 지은 죄의 대가입니다. 그 대가를 "하나님의 그 많으신 긍휼대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다 지불되었음을 선포하시고, 다시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을 통하여 소멸 후의 새 생명을 약속하심으로 산 소망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더구나 베드로 사도의 말씀에서 2절은 나그네들 중에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또한 "택하신 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미리 아시고 택하신 우리 성도들에게 "성령의 인치심"과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에 확신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지렁이 같은 야곱을 이스라엘로 택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그러시면서 보태시기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다)"(4절 a)고 하셨습니다. 미리 아시고 택하신 당신의 자녀에게 特恩이 있음은 당연할 것입니다.

이 믿음 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확신의 노래를 지었습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4-16)

4. 쇠하지 않는 기업

당시 로마 시대엔 귀족과 부자들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각종 전쟁을 통하여 귀족들과 상인들은 엄청난 전리품으로 부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대를 이어 내려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오래지 못하여 썩고 더려워지며 쇠하여져갔습니다. 집도 허물어져갔고, 동방에서 온 비단 옷들도 더러워지며 낡아졌고, 제대로 저장하지 못했던 음식물들은 썩어져 갔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사실을 지적하면서 우리 성도들이 가진 기업은 "썩지 않으며, 더럽지 아니하며, 쇠하지 않는 영원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업이란 유산 혹은 상속물을 의미합니다. 즉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물러 받은 유산입니다. 그것은 곧 복음이며 하늘에 간직할 수 있는 영생입니다.

지난 주간 교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실린 글을 보셨습니까? 손 희욱이란 형제가 오랜만에 고향교회인 우리 교회 예배에 참석하고 실은 글입니다.

"중학교 2년 때부터 대학에 입학 전까지 그리고 이후 군 복무 기간 중, 그야말로 저로 하여금 신앙의 기틀과 믿음의 기초를 쌓아 주었던 늘 마음속에 그리워했던 언제나 저의 마음의 고향 교회였던 범어교회였습니다. . . . 하나님께서 내가 허락하시고 분부하신 작은 사명을 이 곳에서도 충실히 이행하겠습니다."

교회보에 실렸던 글들 중에서 지금 서울 할렐루야 교회 안수 집사로 섬기시는 모 집사님의 글이 기억나십니까? 지금 50대 초반인데 사회에서도(아마 어느 방송국 기자?) 교회에서도 훌륭하게 신자의 본문을 다하는 삶을 전해주셨습니다. 그 분은 약속하기를 나중 100주년 건축에 헌금으로 동참하시겠다는 공적인 약속까지 하셨습니다. 그 만큼 우리 교회를 사랑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까닭이 바로 우리 범어교회가 그 들에게 쇠하지 않는 기업을 물러주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오랜 세월동안 그들의 육체도 쇠하고 우리 교회 건물도 많이 낡아졌지만, 그들 속에 심은 복음과 영생은 결단코 쇠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 교회의 사명이 있습니다. 주일 학교 교사들의 사명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복음 사역을 통하여 무상한 이 세상에서도 영원히 변치 않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며 심어서 사람들을 "용감한 고상한 생애"(우찌무라 간조오의 "최대의 유산")를 살아가도록 이끌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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