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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고후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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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고린도후서 5:15)

오늘 설교제목을 들어보지 못한 분은 없을 것입니다.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에서 따온 것입니다. 원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17세기 영국의 성직자 시인인 존 단의 시 제목입니다. 같은 제목으로 미국의 작가 헤밍웨이가 1940년 소설을 출판하고 이것이 영화화 되면서 유명해졌습니다. 미국의 젊은 대학교수인 로버트 조단은 에스파냐 내란에서 반(反)프랑코파의 게릴라 부대에 참가하여 적군의 중요한 교량을 폭파하고 자신도 적탄에 맞아 쓰러집니다.

이 작품은 폭파 임무를 수행하는 3일 동안의 주인공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에스파냐 여자 마리아와의 열렬한 사랑의 장면은 감명 깊습니다. 작가는 개인과 인류와의 관계, 전쟁으로 인한 자유의 위기와 진정한 자유와의 관계, 개인의 무력함과 연대책임의 중요성 등을 말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왜 전쟁을 해야 하는지 묻고 있습니다.

저는 이 아침 여러분에게 왜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너무 무거운 질문입니까? 그러나 분명히 하지 않으면 표류하는 난파선과도 같은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진정 누구를 위하여 살아야 할까요? 전쟁을 하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진정한 자유와 인류평화를 위하여’라고요. 그러나 여기에 얼마나 많은 모순이 있습니까? 여러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는 나를 위하여 산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처럼 비진리인 말이 없습니다. 그럼, 누구를 위하여 살아야 할까요? 오늘은 생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죄와 의

삶의 목적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인간은 죄인입니다. [롬3: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또,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여기에 관한한 성경은 분명합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는 ‘난 법 없어도 살 사람이야’라고 속으로 말하면서 ‘난 죄인이 아냐’라고 단정 짓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도 분명히 죄인입니다. 이 세상에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죄인과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죄인, 이 두 종류의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성경에서 ‘죄’라는 단어는 ‘하마르티아’라는 헬라어를 사용합니다. 이 말의 뜻은 “과녁을 잘못 맞히다.”입니다. 활 쏘는 사람이 활을 당겼는데 과녁을 빗겨갔다는 뜻입니다. 인생은 분명한 과녁이 있는데 그 과녁을 빗겨 살면 그게 죄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 때 과녁을 향해 가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굳이 피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게 죄란 말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과녁은 무엇일까요?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로마서 3장의 말씀을 보면, 의인이 없다는 말은 죄인만 있다는 말이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게 죄란 말입니다. 그러면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가야 하는 게 인간의 삶의 목적입니다. 과녁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란 뜻입니다. [고전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성경은 단도직입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명령합니다.

죄와 의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느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똑 같은 일을 해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헤롯 같은 사람은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자기에게 돌렸다가 충이 먹어 죽었습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의의 결과는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살아있는 것처럼 보여도 죽은 죄인이 있고, 죽은 것처럼 보여도 살아있는 의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죄는 윤리적이며 법적인 차원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사느냐 아니냐의 차원입니다.

자기 영광과 하나님 영광

죄와 의를 조금 더 진전시켜 생각하면, 죄는 자기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고, 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죄는 과녁을 잘못 맞히는 것이라고 할 때 과녁에 아주 근접한 화살을 어떻게 될까요? 애석하긴 하지만 그것도 잘못 맞춘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과 교회에 안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좀 더 세분하면, 과녁을 맞히거나 아니면 과녁에 근접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과녁에 근접한 사람이라면 교회밖에 있는 사람과 똑 같다는 말입니다. 아주 무서운 말씀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자기 영광을 구하는 사람은 바로 과녁을 계속 잘못 맞히는 사람입니다. 과녁을 잘못 맞히면 그가 교회 안에 있든 교회밖에 있든 상관없이 죄인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교회 안에서의 죄인이든 교회 밖에서의 죄인이든 둘 다 똑같다는 말입니다. 자기 영광을 위해 사느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느냐? 하나님이 구별하시는 것은 이 둘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 자르듯이 우리의 삶에 대하여 참견하십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직장생활을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하라는 말입니다. 설거지를 하여도 사명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라는 말입니다. 공부도, 목회도, 기도도, 봉사도, 마을일도, 나라일도, 심지어는 싸움을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하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이 목적이 되게 해야 합니다. 자기가 목적이 되면 그게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내가 편하기 위해, 내가 이익을 남기기 위해, 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내가 칭찬을 듣기 위해.... 이런 것은 자기를 예배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선하게 산다 하여도 자기에게만 초점을 맞춘 삶은 하나님 보실 때는 쓰레기 같은 삶입니다. 짐승과 다름이 없습니다. 짐승도 제 새끼를 위해 희생하고, 자기 먹을 것을 얻으려고 온 숲을 헤맵니다. 사람이 이와 같이 산다면 어찌 과녁을 제대로 맞힌 것이겠습니까? 사람은 죄를 도덕과 법에 비추어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영광에 비추어서 생각하십니다. 쉽게 말하면, 누구를 위하여 살았느냐가 죄의 기준이란 말입니다. 자기 이익 때문에, 자기 명예 때문에, 자아실현의 방편으로 살고 있다면 이미 하나님의 과녁에서는 멀리 벗어난 삶입니다.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모든 삶이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모든 삶이 바로 예배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교회에 다니면서 우상 숭배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인 중에 무슨 형상을 만들어놓고 섬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자기를 섬기는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상숭배자들입니다.

나냐? 하나님이냐?

결정은 간단합니다. 사는 이유가 ‘나냐? 하나님이냐?’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이나 자기 명예를 위하여 양로원에서 봉사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일은 다른지 모르지만 목적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예배자인지 우상숭배자인지 가려지는 게 아니라, 무슨 목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예배자인지, 우상숭배자인지가 갈리는 것입니다. 예배가 삶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히 우리의 삶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고후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할렐루야! 이 세상을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눈다면, 남자와 여자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사람을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 부자와 가난한 사람, S대학생과 비S대생, 건강한 사람과 병든 사람, 서울 사람과 농촌 사람 등으로 나누는 게 아닙니다.

‘죄인이냐 의인이냐’로 나누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느냐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며 사느냐, 그 삶의 목적이 자기 자신이냐 하나님이냐로 나눈다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이 자기라면 우상숭배자입니다. 삶이 목적이 하나님이라면 예배자입니다. 예배에 실패한다는 말은 곧 자기라는 우상을 숭배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예배가 중요합니다. 예배에 성공하지 않으면 우상숭배에 성공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인정받는 사람이라 하여도,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면 그 삶은 성공적인 게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배를 가지고 평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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